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싸우러 가는 이라크인들

딸기21 2003. 3. 2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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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을 불태우고 내 가족을 죽이는 적에 맞서 싸우러 갑니다."

요르단 암만 시내 알 마하타의 버스터미널에는 25일 이라크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이라크인들이 줄을 서 있었다. 전쟁 전에는 바그다드행 고속버스 1-2대가 운행되던 것이 미국의 이라크 공습 개시 이후 이라크인 귀국행렬이 몰려들면서 5-6대로 늘어났다. 노동자 모타즈(23)도 때늦은 눈발이 날리는 정류장에서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청년들 중 하나였다.


모타즈는 "TV에서 미군이 공격을 시작했다는 뉴스를 보는 순간 너무 분노하고 긴장돼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면서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러 간다"고 말했다. 

"싸우는 것은 겁나지 않습니다. 가서 싸워야지요." 


모타즈의 가족들은 바그다드시 외곽의 안바르에 살고 있다. "공습이 시작되던 날 돌아가겠다고 전화를 했더니 부모님은 아무 말 않으셨고, 형제들은 어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내가 아니면 내 땅과 내 가족을 누가 지키나요."

 

무엇을 갖고 싸울 것인지 물었다. 

"무기는 우리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는 칼리시니코프 권총이 있어요." 

칼리시니코프로 미군의 스텔스 전투기와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무기가 아니라 싸우고자 하는 강한 마음입니다." 모타즈는 버스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가리켰다. "모두들 돌아가려고 해요. 우리는 싸울 수 있어요."


겉으로는 겁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표정은 더없이 굳어 있었다. 아직 어린 그가 정말로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언제나 전쟁이었어요."

 

 

사실 이날 인터뷰에서 모타즈와 긴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우선 모타즈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터미널 사무실 직원이 통역을 해줘야 했다. 또 버스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오래 붙들고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별다른 감흥 없이' 호텔로 돌아와 몇줄 안되는 메모 내용을 놓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어느 순간 갑자기 그가 불쌍해졌다. 띄엄띄엄 나눈 얘기로 내가 재구성해본 모타즈의 인생은 이렇다. 모타즈는 1980년 생이다. 그가 태어나던 해에 이란-이라크 전쟁이 일어났고, 그 전쟁은 8년을 끌었다. 아마 그의 어린 시절은 전쟁의 기억으로 점철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 이라크인들은 '전쟁' 하면 걸프전보다 이란-이라크 전쟁 이야기를 많이 한다. 후세인은 79년에 궁정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곧바로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의 지원 덕택에 이라크는 이란에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었지만 자신들 역시 피해를 입었다. 바그다드 시내 빌라타 슈하다라는 곳은 이란의 스커드 미사일 오폭을 받았던 초등학교 자리에 세워진 전쟁기념관인데, 어쩌면 모타즈도 당시의 그 아이들처럼 죽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타즈는 11살 되던 해 걸프전이 터지면서 맏형을 전쟁터에 내보내야 했다. 그 이후 계속된 금수조치는 '삶과의 전쟁'이었다. 이라크는 교육제도가 아주 잘 되어있으니까 공짜로 공부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집안 형편 때문에 진학을 포기했을 것이다. 모타즈는 19살 때 암만으로 나왔다고 했다. 경제제재 속에서 14식구 대가족이 먹고살기 힘들어 외국 땅에서 노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말마따나, 태어나면서부터 그의 조국은 언제나 '전쟁 중'이었다.

 

 

이번 전쟁에도 네 형제 중 두 명이 전장에 나가 있다고 한다. 부모 세대와 달리 모타즈는 이라크의 '좋은 시절'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에게 '전쟁'은 '학교' 만큼이나 익숙한 단어였다. "어쩌면 다칠지도 모르고, 죽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늘 협박을 받아왔기 때문에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함께 일하던 요르단 친구들도 싸우기 위해 돌아가는 자신을 이해하고 격려해주었다고 했다. 

 

이 전쟁에서 이라크가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나는 다만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울 뿐"이라면서 "인샬라(신의 뜻대로)"라고 대답한 뒤 버스에 올랐다. 아랍인들의 '인샬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경우가 많은데, 모타즈는 어떤 심정으로 집에 돌아가는 것일까.

 

 

'죄없는 시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9.11 테러로 미국에서 숨져간 수천명의 사람들이 죄없는 시민이었다고? 아니다, 그들은 절대로 '무고한 사람들'이 아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살았다는 것, 그것이 그들의 죄다. 지금 이라크인들이 '이라크 땅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숨져가는 것처럼, 재작년 아프가니스탄의 순박한 사람들이 미군의 폭격에서 죽어갔던 것처럼. 지금 이라크인들은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을 몰아내지 못한, 인간으로서 국민으로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피폐해진 땅, 죽어가는 어린이들, 화염에 휩싸인 바그다드. 그것이 이라크가 '사담 후세인'이라는 지도자를 그동안 쫓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죄의 대가다.


뉴욕에서 숨진 수천명 또한 죄없이 죽은 것이 아니다. 미국이라는 강대국 정부가 멋대로 전세계를 유린하도록 내버려둔 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죄의 대가를 치른 것이다.

 

역사는 교훈을 얻는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신들이 저지른 짓의 대가를 불과 2년전에 그토록 혹독하게 경험해놓고서도 지금 똑같은 죄를 다시 저지르고 있다. 이라크 땅에 사는 사람들을 마구 죽인데 대한 보복으로 미국에서는 또다시 테러가 일어날 것이고,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역사의 '정의'다. 피는 피를 부른다는 단순한 진리를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고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은 무의식과 무지, 무책임, 역사의식 부재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그들이 이라크에 핵무기를 떨어뜨려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을 겁니다. 이라크인들은 다 죽은 뒤일 테니까요."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면 우리 손으로 고치게 해달라. 왜 미국이 우리를 공격하는가."
"저기 보이는 게 미국 대사관이예요. 미 제국주의자들의 성 말입니다."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는 첫 번째 이유는 이스라엘, 두 번째는 석유를 위한 거예요."
"미국이 당신네 형제인 북한사람들을 죽이려 하는데 왜 그들을 지지합니까?"

 

한국은 50여년 전에 역시 처참한 전쟁을 경험했다. 그러고도 거기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반세기 동안 남북이 서로 미워했고, 베트남에 군인들을 보내 우리에게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을 죽이고서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닦았다"면서 환호했다. 베트남에서 학살당한 이들은 물론, 자신들의 핏줄인 라이따이한들에게조차 지독하게 잔인한 나라. 그리고 이번에는 다시 이라크에 군인들을 보내겠다고 한다.


나는 대통령도 아니고 국회의원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다. 나의 기준은 나의 양심이다. 그래서 나는 전쟁에 반대한다. 내게 필요한 물건을 저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를 죽인다면? 한국의 이해관계? 그런 것은 없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해관계란 존재할 수 없으니까. 그것이 '국익'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을지라도.


나는 요르단 암만의 좋은 호텔 방 안에 앉아서 TV를 켜놓고 축구 중계를 보고, 아랍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CNN 방송에 귀를 기울인다. 이라크인들도 축구를 좋아하고, 레바논과 시리아와 이집트의 가수들을 좋아한다. 그들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는 아무것도 없다.

이라크 반군 현황

미국은 지난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탈레반군을 붕괴시키기 위해 북부동맹과 동부동맹 등 반군들을 동원, 미군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전술을 수행했다. 이번 이라크전을 앞두고도 미국은 수개월 전부터 유럽에서 쿠르드족 반군 수천명을 훈련시켰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는 아프간전때와 달리 반군들이 이라크 정부군을 무너뜨리는데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반군들은 쿠르드족과 아랍족, 이슬람 순니파와 시아파 등 민족적, 종교적으로 서로 갈등하는 다양한 세력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미국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자칫 이라크내에 내분을 불러와 전후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라크 북부에서 자치지역을 형성하고 있는 쿠르드족 반군은 크게 쿠르드민주당(KDP)과 쿠르드애국연맹(PUK)의 두 세력으로 나뉜다. KDP는 1946년 결성돼 60년 가까이 쿠르드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싸우고 있는 집단으로 중화기와 소화기로 무장된 1만5000명의 게릴라 병력을 소유하고 있다. 주로 이라크 북부와 북동부의 순니파 쿠르드족으로 구성돼 있다. PUK는 지난 75년 결성됐으며 1만여명의 병력으로 중북부 키르쿠크 유전지대를 중심으로 반군활동을 벌이고 있다. 시아파 쿠르드족이 대부분으로,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다.


KDP 지도자 마수드 바르자니와 PUK 지도자 잘랄 탈라바니는 쿠르드족의 양대 지도자로서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투쟁을 벌여왔으나 두 세력간에는 항상 대립이 있어왔다. 지난해 12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반후세인 망명그룹 연석회의에서도 두 세력이 후세인정권 축출 이후 키르쿠크와 모술 등 중북부의 유전지대 이권을 놓고 갈등을 노출했었다.


쿠르드족의 행보는 미국의 작전판도에 큰 영향을 줄 변수로 꼽힌다. 미국은 이들이 후세인 정권의 정규군과 싸워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이라크에서는 소수민족 반군이라는 성격상 아프간전의 북부동맹군과 같은 역할을 해줄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더욱이 북부지역에서 쿠르드족 두 세력 간에, 혹은 또다른 소수민족인 투르크멘과 쿠르드족 간에 충돌이 일어날 경우 터키군과 이란군의 개입을 끌어들여 분쟁을 확산시킬 우려도 있다.

남부의 시아파 반군 역시 미국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골칫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 또한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이들이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오히려 꺼리는 실정이다. 남부의 시아파 반군들은 걸프전 당시 디와니야 등 일부 도시를 점령했지만 바트당 간부 처형과 민간인 약탈, 살해 등을 저질러 순니파 무슬림들의 반감을 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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