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시작, 암만에서
3.20. 암만.
이라크전쟁 개시와 함께,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요르단도 급격하게 긴장된 분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암만 시민들은 몇 달 전부터 침체를 겪어온 경제가 이번 전쟁으로 붕괴하지 않을까 걱정했으며, 미군을 지원한 것에 대한 이라크의 보복공격이 있을까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세이프웨이 수퍼마켓에서 만난 라지다는 "무슨 이유로든 전쟁을 하는 것은 나쁘다"면서 전쟁의 불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했다. 반면 기독교도라고 자신을 소개한 잘랄은 "자국민을 죽이는 정권은 사라져야 한다"며 "사담 후세인은 제거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암만 시민들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지만,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비판적이었다.
경제적으로 보면 이미 암만은 수개월 전부터 전쟁의 영향을 받고 있다. 요르단은 이라크에서 저렴한 가격에 원유를 들여옴으로써 연간 5억달러의 이익을 얻어왔다. 대규모 산업도, 막대한 부존자원도 없는 요르단은 미국과 이라크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로 생존해왔다.
암만 시민들은 전쟁의 추이 뿐 아니라 국내정치적 상황도 불안한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압둘라 국왕이 '포스트 사담'을 내다보고 이번 전쟁에서 미국편에 서기로 결심했다"고 보도했다지만, 압둘라 국왕의 '도박'에는 만만찮은 대가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요르단 인구(약 500만명)의 60%는 팔레스타인계열로 반미감정을 갖고 있다. 이라크계 인구도 40만명이나 된다. 대규모 시위나 소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지난1월 미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요르단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8%는 정부의 미군 지원에 반대한다고 대답했다. 20일 오후에도 암만 시내에서는 대규모 반전시위가 있었다.
이라크로부터 난민들이 대거 몰려나올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이미 요르단 정부는 국경 부근에 유엔의 지시에 따라 난민촌을 건설중이다. 걸프전 당시 요르단에는 이라크는 물론,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난민 수십만명이 몰려왔었다. 국경 마을 루웨이셰드에서는 각국에서 온 취재진들이 난민 유입을 취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이라크가 보복공격을 해올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여기 사람들은 그럴 리 없다고 말하지만. 주 요르단 한국대사관의 김경근 대사를 만났더니 "요르단내 한국 교민 200여명 중 70여명이 본국으로 철수한 상태"라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 육로와 해로를 거쳐 교민들을 이집트로 수송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사가 소개한 루트를 혹시나 해서 알아뒀다. 비행기가 안 뜨면 그렇게 해서 나가는 수 밖에 없을테니까.
3.21. 암만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이라크와 접경한 요르단에서도 전쟁의 파급효과가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첫 공습 당일과 다음날 국경지대에는 이라크에서부터 1만3000여명이 쏟아져 들어오는 등 '엑소더스'가 연출됐고 난민신청이 시작됐다. 암만에서는 연일 반전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21일 암만 시내 중심가 후세인 모스크 앞에서는 300여명의 시민들이 반전시위를 벌였다.
요르단은 인구의 60%가 팔레스타인계여서 극심한 반미감정을 갖고 있지만 압둘라 2세 국왕은 미군의 기지 사용을 허용했다. 이 때문에 정부와 국민들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전날 카프탄 마잘리 요르단 내무장관은 "허가되지 않은 집회는 모두 불법"이라면서 시위대를 향해 강력하게 경고를 했었다. 요르단 정부는 2월에는 "모든 시위와 집회를 1년간 금지한다"는 무지막지한 초강경 조치를 내놨고, 15일에는 평화운동가 7명을 구속했다. 그렇지만 요르단대학과 알 자르카 대학, 아랍대학 등 암만 시내 대학에서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전날인 20일에는 변호사 700명이 법무부 앞에서 반전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국경 쪽의 혼란도 가중돼 가고 있다. 미군이 첫날 공습에서 바그다드 외곽의 아부가리 세관과 바그다드에서 160km 떨어져 있는 사막횡단도로의 거점마을 미오시틴, 그리고 요르단으로 넘어오는 케라메 국경검문소 건물을 폭격했다고 보도했다. 폭격을 당한 지점들은 암만-바그다드를 연결하는 횡단도로가 통과하는 곳들이다.
요르단 정부는 매일 1만톤씩 이라크에서 들여오던 원유 수입이 끊김에 따라 아카바의 원유저장고에 비축해놨던 원유를 이날부터 정유소에 옮기기 시작했다.
유니세프 요원 제프와의 대화
늦도록 텔레비전을 보고 잠들었다가 일어나 벌건 눈으로 자이드 이븐 후세인 거리에 있는 유니세프를 찾아갔다. 유니세프 요원 제프리 킬(34)을 만났다. 캐나다 사람인데, 인상이 아주 좋을뿐더러 대단히 친절했다. 1년간 바그다드에서 구호활동을 하다가 지난주 철수해 나왔다. 이번 이라크 전쟁은 '어린이들에 대한 전쟁'이다. 이라크는 인구의 50%가 18세 이하 어린이다. 미국은 지금 인구 절반이 어린애들인 나라를 스텔스기로 때려부수고 있다.
-이라크 어린이들의 현재 상황을 얘기해달라.
"한때 부국(富國)이었던 이라크 어린이들이 지금은 수단이나 아이티보다도 안 좋은 상황에 놓여 있다. 전체 어린이의 25%는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 교육, 위생 등 모든 면에서 시급한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8세 이하 어린이들의 상황은 대단히 심각하다."
-이라크 정부의 식량배급 체계는 상당히 잘 운영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말은 맞다. 이라크 정부는 바트당 조직을 이용해 최소 지역단위까지 배급을 하고 있다. 문제는 배급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체 가계의 60%는 식량을 정부 배급에만 의존하는데, 그들 중 상당수는 배급 식량을 되팔아 의복과 생필품을 산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위생 문제다. 깨끗한 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어린이의 15%가 설사병과 구토, 복통에 시달리고 있다. 지방의 병원에 가보면 어린이들의 건강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심지어 가난한 부모가 6살난 딸을 성노예로 파는 것을 봤다."
-아동노동도 심각한가.
"6-7세 된 어린 남자아이들이 수레를 끌고 제철소에서 일을 한다. 그 나이의 여자아이들은 일하러 나간 부모 대신 가사노동을 한다. 경제제재 이전에는 이라크 어린이들의 92%가 학교에 다녔다. 지금은 남자아이 17%, 여자아이 31%가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 인프라는 어떤가.
"12년간의 금수조치가 어떤 것인지는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다. 사회의 모든 인프라가 깨지고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이라크에서 단 한 곳의 학교도 새로 지어지지 않았다. 비가 오면 교실 안에 물이 차고, 앉아 공부할 책상과 의자조차 없는 곳이 허다하다. 제재로 인해 병원, 학교 같은 시설은 물론이고 교사나 간호사, 의사 등 전문 인력 자체가 부족하다. 지금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들의 문제는 이라크의 미래에 심각한 영향을 불러올 것이다."
-유엔의 '석유-식량 교환계획'으로 상당한 자금이 이라크에 들어가고 있지 않나.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계획에 따라 물품을 수급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픈 아이에게 바로 약을 줘야 하는데 적시에 배급이 안 된다. 질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 중 20%는 의약품 부족으로 죽어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전쟁 이후 상황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아무도 알 수 없다.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기를,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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