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많은 것 느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기자로서’ 생각한 것들을 몇개 두서없이 나열해보자면.
기자생활 8년여만에 처음으로, ‘기자같이’ 생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다른 곳도 아닌 중동 땅에 덩그마니 홀로 뚝 떨어진 느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맨땅에 헤딩이 아니라 맨땅에 온몸으로 부딪칠 수 밖에 없는 것. 내일 일을 모르니 그냥 흘러흘러 발길 가는대로, 그러다가 취재거리를 만나면 취재하고, 이리저리 혼자 돌아다니고.
특히 바그다드에서는 다들 팀을 이뤄서 코디 데리고 돌아다니는데 저 혼자만(전세계 기자들 중에 저 혼자였을 겁니다 아마) 가이드 없이 몰래몰래 스트릿 택시 타고 돌아다녔어요. 위험하다면 위험하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사실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듭니다. 몸이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고--마음이 힘든 것은 아마 삐삐언니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이 전쟁 때문입니다. 저는 정말 이 전쟁이 싫습니다. 혼자 호텔방에 돌아와서 가만히 이라크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눈물이 납니다. 누군가를 만난 뒤 돌아서면서 ‘저 사람이 죽으면 안 되는데’ 하고 기도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비참합니다.
오늘 이곳 요르단 대학에 근무하시는 공일주 박사님을 만났습니다. 얘기하면서 저도 생각들을 좀 정리할 수가 있었는데요. ‘카우보이 문화가 바빌론 문명을 두들겨부수는’ 이번 전쟁을 보면서, 전쟁을 보는 시야 자체를 좀더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선배 말대로 ‘한국인들의 전쟁관’을 조금이나마 넓혀주는 기사들이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그러기가 쉽지 않겠죠.
아마도 선배 혼자 고군분투하고 계시겠군요. 우리 신문 인터넷 사이트에서 기사들 보면서 중동에 대해 너무나 단편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아서(저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만) 조금 불쾌(?)한 마음도 있었더랬습니다.
저는 한국 신문들을 아예 안 보고 있습니다. 정해진 출입처 따라다니면서 말도 안 되는 보도자료 속보경쟁이나 벌이는 짓 안 하고 이 곳에서 이야기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니까 참 좋은데, 굳이 한국 기자들 뭐 쎃나, 여기까지 와서 그거 들여다보고 싶지 않더라구요. 또 그런거 자꾸 신경쓰게 되면 결국 ‘늘 똑같은’ 기사 밖에 못 쓸 것 같아서요.
잘 하고 있는 걸까 싶어서 항상 스트레스 받고 있었는데 며칠전 박노해 선생님과 건국대 최창모 교수님이 오셔서 힘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냥 처음에 제가 생각했던 대로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전해주는 것, 그것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언제 돌아갈지 모르겠지만(정말 모르겠네요^^) 돌아갈 때 선물로 돈 싸가지고 갈께요.(이라크 돈--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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