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요르단]국경 지대 난민촌에서

딸기21 2003. 3. 1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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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방송은 '불타는 바그다드'의 모습을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다. 불과 며칠전에 방문했던 바그다드가 폭격음과 화염에 휩싸여 있는 것을 보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누가 바그다드를 저렇게 파괴하는가. 바그다드가 어떤 도시인가. 지구상에서 몇 안되는, 수천년의 문명을 간직해온 도시 아닌가. 바그다드는 사담 후세인만의 도시가 아니라 셰라자드와 알리바바의 도시, 카디미야의 황금돔과 알 주베이다의 탑을 가진 도시이기도 하다. 바그다드 시내에는 도시를 만들었다는 위대한 칼리프 아부 자파르 만수르의 거대한 두상(頭像)이 있다. 만수르는 자신의 도시가 저렇게 파괴되는 것을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을까.

미군의 바그다드 본격 공습이 시작된 뒤로 암만에서 만난 외국 기자들 사이에서 단연 화두는 '바그다드'였다. 폴란드 기자, 말레이시아 기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그다드를 저렇게 파괴하는 것은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얘기가 나왔고, 동질의 분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 방송 기자인 카마루딘, 조한과 함께 국경에서 50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난민촌을 방문했다. 국경에 가까워오자 조용했던 사막에 미군기의 굉음이 들렸다. 베두인들은 여전히 양떼를 몰고 다녔고, 도로 주변에는 낙타떼가 늘어서 있었다. 기린처럼 높은 낙타 두 마리가 도로로 넘어오는 바람에 차가 잠시 멈춰섰다. 탱크로리들이 질주하던 길에는 국경으로 가는 외국 취재진들의 차가 드문드문 달릴 뿐이었다.

국경마을인 루웨이셰드에서부터 무장군인들의 검문이 시작됐다. 정부의 공식 허가가 없이는 들어갈 수 없도록 극도의 통제를 하고 있었고, 그나마도 국경 20km 이상은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현재 국경지대에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 관할하는 이라크인 전용 난민촌과 제3세계 출신들을 위한 국제적십자사·적신월사 난민촌 등 3개의 난민촌이 만들어져 있다. 요르단 정부가 국경을 봉쇄했기 때문에 아직 이라크인 난민촌에는 난민이 없었다. 이라크인으로는 지난 19일 이집트인 남편과 함께 요르단으로 들어왔다가 이미 이집트로 떠난 아즈할이라는 부인이 유일하다고 했다.

난민촌 중 최대규모인 적신월사의 제3세계 출신 난민촌에 들어가봤다. 5000명에서 최대 2만명까지 난민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계속 텐트를 짓고 있었다. 이미 만들어진 천막촌에는 수단과 소말리아, 차드, 에리트레아 등 이라크에서 일하던 아프리카 출신 난민 300여명이 들어와 있었다. 한 천막 안에 어른 두셋과 아이 7-8명이 거주하는 듯했고, 천막마다 랜턴 한 개씩이 놓여 있었다.

부모와 동생 5명과 함께 난민촌에 들어온 수단 소녀 네즐라(15)는 천진하게 뛰놀고 있는 동생들을 천막안으로 들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네즐라는 "바그다드의 학교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엉엉 울었다"고 말했다.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은 사막에는 모래폭풍이 심하게 불고 있었다. 밤이면 영하로 내려가는 추운 날씨에 얇은 천막 안에서 지내는 것은 몹시 고통스러울 듯했다. 아이들은 외투를 입고 다녀야 하는 추운 날씨 속에서도 맨발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날씨도 문제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급수 문제였다. 캠프 중앙에 트럭 크기의 저수조를 가져다 놓고 수도관을 설치해놨으나 물이 턱없이 모자라 고통을 받고 있다고 적신월사 요원들은 말했다. 적신월사 난민촌 책임자인 함마디 알 하디드는 "난민들이 몹시 지쳐있고 긴장해 있다"면서 "극도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난민들을 위해 입출국 절차를 최대한 간소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곳 난민들 중 상당수는 고향에서 일자리를 찾아 이라크까지 떠나왔던 이들이기 때문에 고국에 돌아가도 생계가 막막한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기보다는 유럽으로 건너가 불법 노동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

난민촌에서 적신월사 간부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요르단의 여기자 아이다가 내게 와서 이것저것 묻더니 이렇게 말을 한다. 
"당신의 프레지던트는 미국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당신의 왕도 미국을 지원하고 있다."

CNN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이 전쟁지지 선언을 하는 장면을 하루 종일 되풀이해서 내보냈었다. 기자들은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고, 요르단인들도 대부분 알고 있다. 택시기사인 하산이 묻는다. 
"미국은 북한이 이라크 다음 차례라고 한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길 원하는가."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에는 이스라엘이 없으니까."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힘이 없으니까."
이해해줘서 고마울 뿐이다.

날은 추웠다. 얇은 점퍼로 버티기에는 모래바람이 거셌다. 물탱크 앞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옆에 와 앉았다. 일본 기자인 것 같았다. 이 곳에서 동양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반갑다. 
"일본 분이세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지 않아요?"
"아, 정말, 분명 전에 만났던 것 같아요."
기억을 더듬어보니 작년에 바그다드에서 만났던 도쿄신문 카이로특파원 시마다 요시유키였다. 머리는 희끗희끗한데 소년처럼 날렵해서 도무지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다.
"어제 우리 대통령과 당신네 총리가 계속 TV에 나오더군요."
"그랬죠. 그런데 한국의 새 대통령은 젊은이들이 뽑아준 개혁적인 사람 아니었습니까?"
"맞아요, 젊은 사람들이 뽑아줬죠. 저도 그 사람을 지지했어요."
"일본 총리는 뭐라고 말했는지 아세요? 'atmosphere'의 문제라나요."
시마다는 그 말을 하면서 웃었다. 나도 웃었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가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와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국적이 곧 도덕성을 상징하는 땅에 서 있었다.

돌아오는 길, 암만을 70km 앞둔 곳에 6-8세기에 지어진 우마이야 시대의 건축물이 있었다. 사막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차창 정면에 지평선 위로 넘어가는 빨간 해가 보였다. 차를 몰던 하산은 "저 해는 다른 나라들을 위한 것"이라면서 "말레이시아와 한국을 위해."라고 덕담을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