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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 빈 라덴은 누구인가

딸기21 2011. 5. 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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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그렇게 죽이고 싶어했던 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숨졌다는군요. 지금 CNN 라이브뉴스로 마구마구 나오고 있네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공식 발표를 했습니다. 파키스탄에서 사살됐다고 하네요. 오사마 빈라덴이 어떤 사람인지 다시 한번 짚어봅니다.


오사마 빈 라덴은 1957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사우디 최대의 건설업체인 '빈라덴그룹'의 소유자인 모하마드 빈 라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서방 문화에 심취했던 대학시절까지만 해도 사우디의 여느 부잣집 아들과 다름없었던 그는 1979년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기로 인생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분노한 무슬림 청년

서구화되고 자본주의화된 집안 분위기와 달리 빈 라덴은 이슬람 신앙을 독실하게 신봉했으며, 청교도적인 생활로 빠져들어갔다고 주변에서는 전합니다. 나이 22살에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보면서 '제국주의'에 대한 거센 분노심을 갖게 됐던 것이죠. 빈라덴 그룹의 스무명에 가까운 아들들 중에서도 사업수완이 뛰어나고 영민했던 그는 사재를 털어 아프간으로 달려갑니다.

당시 미국은 중앙아시아에서 소련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아프간 내 이슬람 반군들을 은밀히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양쪽은 자연스럽게 연결됐던 겁니다.

사우디 왕자이자 정보국장이던 투르키 왕자의 주선으로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윌리엄 케이시와 빈 라덴이 만나게 됐습니다. (공교롭게도 사우디의 모든 정보를 주무르던 투르키는 9.11 테러 2달 전에 정보국장을 그만뒀죠. 그 뒤에 주미대사를 지낸 바 있고요. 투르키와 케이시가 오늘날의 이 분란;; '아프간 무자헤딘(이슬람 전사)'들을 만들어냈다고 봐야죠)

빈 라덴은 아프간 무자헤딘들에게 돈을 대고, 미국은 스팅어미사일 등 무기를 지원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졌습니다. 이 때만 해도 빈 라덴과 미국은 밀월관계였습니다.



그러나 1989년 소련군이 물러나고 아프간이 혼돈상태에 접어들면서 양측의 관계는 깨지기 시작합니다. 아프간에서의 생활로 더욱더 이슬람 근본주의에 경도된 빈 라덴은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제국주의를 깨부수기 위한' 조직을 확대한 것이죠. 점조직 형태로 이뤄져 실체조차 파악하기 힘든 테러조직 알 카에다가 전세계에 뿌리를 내린 것도 이 때부터입니다.

빈 라덴은 소련이 무너진뒤 세계의 단일 패권인 미국을 적으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체첸과 수단, 소말리아의 이슬람 반군을 지원하는 것을 비롯해 중남미와 아시아 일대를 넘나들며 테러조직을 확대해갔습니다. 미국은 '호랑이를 키운 꼴'이 됐습니다.

90년대 초반까지도 갈등이 표면으로 떠오르지는 않았습니다.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은 1993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폭탄테러사건(이 사건에 대해서는 '새로운 전쟁' 참고)입니다. 이 테러로 6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하자 미국은 테러 주범을 찾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람씨 유세프로 알려진 파키스탄 청년이 테러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고, 그 뒤에는 빈 라덴이 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테러조직은 미 수사당국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고, 테러의 뿌리도 깊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필리핀을 잇는 이슬람벨트 전역에 빈 라덴의 지원을 받는 과격파 무슬림 청년그룹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사우디 왕정의 오랜 독재와 부패, 서구 문화의 이슬람권 침식, 빈곤으로 인해 절망하고 분노한 광범한 젊은층의 존재 같은 것들이 빈라덴 세력의 자양분이었던 셈입니다.

다시 아프간으로, 그리고 9·11

사우디 왕정은 반체제 세력이 된 빈라덴을 국외로 추방했습니다. 빈라덴과 알카에다의 발흥은 사우디 왕정 입장에서 보면 국가의 근간인 '사우드 세속권력-와하브(사우디의 이슬람 근본주의세력) 종교권력'이라는 축을 깨뜨리려는 시도였으니까요. 쫓겨난 빈라덴은 아프리카로 건너가 수단과 소말리아 일대에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사업을 재개, 테러자금을 끌어모았습니다.

[오들오들매거진] 믿거나 말거나... 빈라덴의 참깨

그리고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에서 대형 연쇄폭탄테러가 발생했습니다. 빌 클린턴 당시 미국대통령은 빈라덴을 주범으로 지목하고, 그의 군사기지가 있던 소말리아를 공습했습니다. 전세계에 수배령이 내려지자 그가 갈 곳은 한 군데, 고향과 다름없는 아프간의 산악기지였습니다. 1996년 아프간을 장악한 이슬람 근본주의 탈레반 정권을 버팀목 삼아 미국의 추적을 피하면서 재기를 노렸습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WTC와 워싱턴의 국방부가 수천명의 사상자를 낸 전대미문의 테러공격을 받았습니다. 미국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빈라덴이 주범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각국 정부들은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했지만 정치적, 경제적 모순이 중첩된 복잡한 이슬람 세계에서 빈라덴은 '저항의 상징' '알라(신)의 대리인'으로 떠올랐습니다. 빈라덴은 쫓겨다니면서도 미국과 서방을 상대로 '성전(聖戰)'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아프간의 산악동굴에 막대한 화력을 쏟아붓고 2년 가까이 추적을 벌였지만 그를 잡는데 실패해 '테러와의 전쟁'이 결국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초간단 Q&A] 빈라덴 사살... 아프간전 끝날까

빈라덴을 사살했으니, 오바마는 이제 아프간에서 손을 뗄 명분을 잡았습니다. 오바마는 계속 이 전쟁의 늪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니까요. 그리고 아프간은... 다시 버려진 땅으로 남겠지요. 이미 미국 정부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정부는 "강경 탈레반과 온건 탈레반을 분리해서 온건파와는 권력분점 협상을 한다"는 둥, '출구전략'이라는 것을 가동시켜왔던 차였습니다. 10년 동안 지지고 볶고 그 많은 이들이 숨지게 만든 뒤에 결국 이런 식으로 미국은 상처만 입은 채 손 털고 나가게 되는 건가요...

좀더 긴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만(시간이 엄떠 ㅠ.ㅠ) ... 어찌 되었든 미국의 아프간 전쟁은 미국에도, 중동-이슬람권에도, 남아시아에도, 엄청난 혼란만 가중시킨 '실패한 전쟁'으로 기록될 겁니다. 더불어 미군을 과감히 끌어들인 파키스탄에도 혼란이 가중될 것 같네요.

tip. 빈라덴이 사살된 곳이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라는 곳이라죠. 이슬라마바드, 잘랄라바드, 아보타바드...아프간, 파키스탄 일대엔 '~아바드'가 많은데요. abad는 그 동네 말로 '샘(물)'이라는 뜻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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