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운영하는 ‘포트워치(PortWatch)’ 프로그램은 세계 주요 교역로의 통행량과 자연재난 같은 위기 상황을 추적한다. 이 모니터링에 따르면 지난 11일 걸프 길목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배는 단 두 척이었다. 올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기 전, 이른바 ‘호르무즈 위기’가 세계를 강타하기 전 이 해협을 지나는 배는 하루 평균 86척이었다.
호르무즈 상황을 지켜보는 또다른 모니터링 사이트 ‘스트레이츠라이브’는 유조선의 전쟁 위험 보험료가 30배로 뛰었다고 했다. 실제로 이달 들어 선박들을 노린 공격이 급증했고 14일에는 배 두 척이 가라앉았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불법적이고 위험한 항로로 운항하던 화물선이 기뢰에 걸려 침몰했다”고 했지만 영국 해사무역기구는 ‘미확인 발사체’에 맞은 것으로 추정했다.
얼마전 혁명수비대는 해협을 지나는 배들을 감시하는 새 부대를 배치했다. 선박 공격이 크게 늘었고, 지난달 전쟁 이전 수준으로 잠시 회복됐던 원유 통항량은 다시 뚝 떨어졌다. 이달 들어 미군은 항모 한 척과 해군, 해병대 등 1만 명 가까이를 걸프에 추가 배치했다. 중간선거 뒤 대규모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위기의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이란이 6월 파키스탄 중재로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잠시 해협이 열리고 분쟁이 수그러드나 했는데 한 달이 안 돼 충돌이 재개됐다. 그 후로 미국의 대규모 공습-소강-재충돌이 되풀이되는 소모전이 이어지고 있다.
호르무즈에 더해, 7월부터는 홍해의 길목인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불안정해졌다. 미·이스라엘이 2월 이란을 공습한 직후, 예멘 후티 반군은 홍해에서 분쟁을 확대하겠다고 위협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타깃 삼은 일종의 외곽 때리기로 이란을 돕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그후 한 달 동안 실제 군사행동은 없었다. ‘관망기’를 지나 3월 말 후티는 이스라엘 공격을 시작했고, 걸프 국가들을 향해 “이란 공습에 가담하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경고했다. 4월 7일 미·이란 휴전이 발표되자 후티는 다시 관망 모드로 돌아섰다. 그러다 6월 8~9일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과 연계해 후티도 이스라엘 공격을 재개했다.
가장 중요한 단계는 7월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로 전선을 확대한 것이었다. 7월 13일 사우디가 지원하는 예멘 정부가 수도 사나의 국제공항 활주로를 폭격하자 후티는 사우디 남부 아브하 국제공항에 탄도미사일과 드론으로 보복을 했다. 일주일 뒤에는 사우디에 대한 해상봉쇄를 선언했다. 호르무즈 위기 때문에 사우디는 원유 수출 70% 이상을 홍해 쪽 얀부 항으로 우회해 내보내던 참이었다. 지난달 후티는 서부 요충지 모카를 점령하고 예멘의 홍해 해안 대부분을 장악했다. 이달 들어 모카 앞바다에서 선박들을 공격하는 한편, 사우디 경제의 핵심인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시설들도 타격했다.

글로벌 공급망을 흔드는 ‘초크포인트(길목)의 무기화’가 호르무즈와 홍해 양쪽에서 벌어지니 에너지를 수입하고 상품을 내다 파는 한국 같은 나라에는 양대 바닷길이 막힐지 모르는 2중의 위기다.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호르무즈 연합’에 가담하라고 요구하지만, 수송로가 불안해진 것 못잖게 미국의 강요도 각국에는 짐이 된다. 그래서 여러 나라가 해상 불안과 미국의 압박이라는 양대 리스크를 피해보려 다자 체제를 만들고 협상을 하느라 바쁘다.
유럽은 프랑스와 영국 주도로 자체적인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3월 중순 트럼프가 ‘호르무즈 연합’에 참여하라 요구하자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에스토니아, 영국 등은 바로 거절했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참여할 생각 없다”고 못박았다. 이어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그리고 일본이 공동성명을 냈다. 이란이 상선을 공격하고 해협을 닫은 걸 규탄하면서 “안전한 통항을 위해 기여할 준비가 돼 있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4월 17일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주재한 ‘호르무즈 국제 정상회의’에 51개국을 불러모았다. 상선을 보호하고 전후 기뢰 제거 등 항로 안전을 위한 소해작전을 맡을 ‘다국적 임무’를 창설한다고 했다. 이 임무는 ‘독립적’이고 ‘방어적’인 것이 될 거라면서, 임무에 들어가는 시기는 ‘휴전 이후’로 못박았다. 5월 12일 영국과 프랑스는 ‘호르무즈 해협 다국적 군사임무(MMM-SOH)’라 명명한 공동 대응이 어디까지나 방어적인 것이 될 것임을 재차 강조했다.
홍해의 경우 유럽연합은 2024년부터 아덴만 일대에서 ‘아스피데스(ASPIDES) 작전’을 해왔다. 올들어 이란 전쟁이 터지자 내년 2월 말까지 기한을 연장했고, 호르무즈까지 작전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미국이 압박하니 나몰라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국 편에 서서 전쟁에 휘말려서는 안 되니 궁여지책을 내고 있는 것이 한국 상황과 똑같다. 하지만 작전 범위를 확대하려면 EU 27개 회원국 모두가 동의해야 한다.
요약하면 유럽은 외교적으로는 ‘항행의 자유’ 원칙을 고수하면서 미국 편에 서라는 요구는 거절하고, 다국적 임무를 스스로 준비해 ‘전후 질서’를 주도하려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위험은 피하면서 항행 질서 재건에서는 발언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미국이 정작 6월 이란과의 양해각서에서 항행의 자유 원칙을 오히려 약화할 수 있는 문구에 서명한 것과 달리, 유럽은 비슷한 시기 정상성명에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이라는 틀은 바꿀 수 없음을 명시하면서 국제법의 수호자로 나선 것도 눈에 띈다.

문제는, 분쟁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모든 임무를 ‘휴전 이후’로 못박으니 실제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다. 물리적으로 해상 공격에 대응할 능력도 떨어진다. EU가 호르무즈보다 홍해 작전을 계속 거론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운영 측면에서나 회원국들이 작전 확대를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스피데스 임무 자체에 한계가 있다. 후티가 공세에 나서자 홍해 부근 병력을 늘리기로 했지만 협력하는 나라가 적다. 홍해보다 러시아 위협을 더 걱정하는 나라들이 많은 탓이다.
그래서 유럽은 또 다른 동맹을 찾고 있다. 동쪽 호르무즈와 서쪽 홍해에서 난타당하는 처지가 된 사우디는 이란과 미국의 휴전을 물밑 중재하려 애쓰는 한편, 7월 30일 14개국이 참여하는 해양방위동맹을 출범시켰다. 이란과의 협상 통로를 유지하고 중립적 중재자 역할을 확보하려는 아랍에미리트와 오만은 이 동맹에서 빠졌지만, 홍해 북단 수에즈 운하를 운영하는 이집트가 파병을 비롯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또 하나, 사우디가 주도하는 이 동맹 회의에는 EU 대표단도 참석했고 9월 말에는 옵서버 자격을 신청했다.
우리 못잖게 해양 수송로에 민감한 일본의 움직임은 세 갈래다. 미국의 파병 압박에는 현행 헌법을 근거로 신중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이란과 직접 교섭해 경제 타격을 줄이려 한다. 그리고 유럽과 협력해 ‘전후 질서 재건’에 관여할 길을 열어두는 것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본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과 법적 틀 안에서 가능한 일을 검토 중”이라고 한 뒤 3월 유럽국들과 공동 성명을 냈다. 1991년 걸프전 때처럼 전쟁이 끝난 뒤 소해작전에 참여할 준비도 하고 있다. 홍해와 관련해서는 예멘 정부를 지지한다는 걸 강조하면서 사우디와 보폭을 같이 하고 있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8월 사우디를 방문하면서 리야드에 머물던 예멘 정부의 실질적 지도자 라샤드 알알리미와 직접 만났고, 후티를 자제시키도록 이란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어떨까. 미국 압박 속에 ‘거절’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그러나 이는 유럽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유럽과 일본은 합종연횡 속에 ‘기여의 형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유럽은 전후 질서를 뒷받침하겠다 하고, 일본은 법적 틀 안에서 독자적으로 바닷길 안전에 기여하겠다 한다. 한국도 “교전 당사자가 되지 않되, 항행 질서 재건에는 실질적으로 기여한다”는 긍정형 틀을 먼저 세워야 하지 않을까. 정부가 홍해 부근에 파견된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호르무즈 근처까지로 넓히려 하자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우회 파병’ 공방이 일고 있다. 정부는 “전쟁에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진보 성향 야당과 시민단체는 파병 수순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은 교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이고, 국제적 위상도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책임과 기여는 계속 확대해야 한다. 호르무즈와 홍해는 한국에 중요한 수송로다. ‘파병 무조건 반대’나 청해부대 철수는 현실적이지 않다. 정부가 조만간 국회에 제출할 청해부대 연장 동의안에서, 핵심은 ‘무엇을 하지 않는지’를 명시하는 것이다. 경계선을 어떻게 긋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한국 선적 선박, 한국인 선원이 탄 선박, 한국행 에너지 화물 보호로 임무 대상을 한정하고, 미국 봉쇄 작전과의 분리를 명문화해야 한다. 독자 지휘를 유지하고 미군과의 정보공유도 ‘항행 안전 정보'로 한정하는 것, 오만만에서의 활동 조건에는 ‘미·이란 간 적대행위 중단 합의 발효’ 등 검증 가능한 기준을 만드는 것 등을 명시해야 한다.
이미 한국은 다국적 임무에 관한 유럽의 회의에 참석해왔다. 다자 틀을 활용하면서, 일본처럼 ‘전후 기여’를 미리 밝히고 발언권을 키워야 한다. 중동 원유 의존과 동맹 압박이라는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일본과 공동 입장을 만들 수도 있다. 유럽처럼 사우디가 주도하는 홍해 동맹에 옵서버로 들어가는 방안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는 비군사적 기여 패키지를 제시하고, 호르무즈 문제가 전작권이나 방위비 같은 한반도 안보 의제와 묶이지 않도록 협의 채널과 메시지를 분명히 나눠야 한다. 동시에 이란과의 채널은 유지하되, 해협에서 요금을 걷으려는 이란의 의도와는 거리를 둬야 한다. 갈길이 험난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게 정치력이고 외교력이다.
참고자료
https://www.congress.gov/crs-product/R48887
https://en.wikipedia.org/wiki/Houthis_in_the_2026_Iran_war
https://edition.cnn.com/2026/03/28/world/live-news/iran-war-us-israel-trump
https://www.aljazeera.com/news/2026/8/1/yemens-houthis-deny-plan-to-charge-ships-transiting-red-sea
https://www.newsweekjapan.jp/articles/-/314858
https://www.mofa.go.jp/me_a/me2/ye/pageite_000001_01769.html
https://www.khan.co.kr/article/202610181716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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