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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로 간 시위, 청년들의 경제적 불안감과 ‘군사화’ 우려

딸기21 2026. 11. 6. 21:00

유럽을 휩쓴 청년 시위가 독일로도 번졌다. 10월 31일 청년들이 주도한 ‘Z세대가 해결한다(Gen Z regelt)’ 전국 시위에 수만 명이 참가했다. 시위대는 학교 재정 부족, 교육·사회서비스 예산 삭감, 생활비 상승, 징병제를 문제 삼았다.

집회가 끝난 뒤 몇몇 도시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피해가 가장 심각했던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밤 10시 무렵 쇼핑가 약탈이 시작돼 새벽에야 진정됐다. 함부르크에서는 난동꾼들이 시위대에 섞여 들어가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불을 질렀다. 베를린에서도 경찰과 충돌이 일어났다. 사태는 ‘누가 폭력을 저질렀나’를 둘러싼 정치 공방으로 번졌다. 알렉산더 도브린트 연방 내무장관은 "좌파 집단과 이주민 출신 난동꾼”을 비난했다. 그러나 이주민이 주도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고 dpa 등은 지적했다. 경찰은 시위대와 약탈꾼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입장이고, 프랑크푸르트 시장도 “국적이나 부모 출신지는 상관없으며 폭력을 쓴 사람이 법적 책임을 지면 된다”고 선을 그었다. 시위 주최측은 집회 이후에 벌어진 일에는 책임이 없다면서 11월 20일 유럽 전역 청년 시위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유럽 전반으로 번진 청년시위 대부분이 그렇듯이, 독일 시위의 배경에는 독일 경제의 현실이 있다. 독일 경제는 2023년과 2024년 2년 연속 역성장한 뒤 2025년 0.2% 성장에 그쳤다. 올 들어 회복세로 돌아섰고 정부와 주요 연구소는 2026년 성장률 전망을 1.3%로 높였다. 그러나 국채로 조달한 인프라·국방 투자 덕이 컸기에, 재정 효과가 사라지면 성장이 다시 둔화될 수 있다.

청년들의 경제적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미미한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올해 전체 취업자 수는 줄어들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주거비 부담도 크다. 9월에 발표된 학생복지협회 자료를 빌면 대학 도시의 셰어하우스 방 한 칸 평균 월세는 약 510유로로, 국가 학자금의 주거비 보조액을 크게 웃돈다. 뮌헨은 평균 850유로에 이른다. 여기에 징병제 재도입 이슈가 겹쳤다. 자원 입대라는 원칙을 유지한다면서도, 정부는 병역 대상자 등록과 신체검사를 의무화했다. 새 방침에 따르면 2008년 이후 태어난 남성들은 모두 징병 검사를 받아야 한다. 국방에는 막대한 예산을 쓰고 교육과 복지는 줄인다는 인식이 청년층 사이에 퍼졌다. 이번 시위는 이러한 구조적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독일의 안정적 이미지와 유럽 경제 동력이라는 위상은 갈수록 흔들리고 있다. 폭스바겐의 구조조정은 이를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다. 2024년 말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독일 내 3만5000개 일자리를 줄이기로 노조와 합의했다. 그런데 지난 9월 관리직을 포함해 5만 개 일자리를 추가로 줄이기로 했다. 모델 라인업도 절반으로 줄인다. 구조조정 압박은 실적 악화로 더 커졌다. 폭스바겐은 3분기에 58억6000만 유로의 영업손실을 내 2015년 ‘디젤게이트’ 이후 최대 분기 손실을 기록했다. 폭스바겐 구조조정은 독일 자동차 산업 전반의 축소와 맞물려 있다. 자동차 산업 종사자는 2019년 약 83만명에서 올해는 7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2030년까지 최소 20만 개 일자리가 더 사라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독일은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이지만 첨단산업에서는 최강자가 아니다. 정부 자문기구인 연구혁신전문가위원회(EFI)의 올해 연례 보고서는 독일 첨단산업의 강점과 약점을 함께 보여준다. 연방정부는 '하이테크 아젠다 독일(HTAD)'을 통해 인공지능(AI), 양자기술,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바이오기술, 핵융합 및 기후중립 에너지, 기후중립 모빌리티를 6대 핵심기술로 정했다. EFI는 이 가운데 독일이 기후중립 에너지 생산과 모빌리티에 강한 반면 인공지능,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양자기술에서는 경쟁국들보다 뒤처져 있다고 봤다. 드레스덴에 대만 TSMC 합작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고 있지만 AI용 최첨단 칩이 아닌 자동차용, 산업용 칩을 생산하며 인텔의 마그데부르크 공장 계획은 취소됐다. 유럽의회 조사처와 브뤼겔 등의 집계에 따르면 유럽 배터리셀 생산능력의 4분의 3 이상을 한국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그 공장은 주로 폴란드와 헝가리에 있다. 독일은 여전히 유로존 GDP의 30% 가까이를 차지하는 최대 경제국이지만, 제조업에서조차 독일이 홀로 유럽을 견인하던 구조에서 유럽 여러 지역으로 제조 기반과 성장 동력이 분산되는 구조로 옮겨가고 있다.

출구는 어디에 있을까. 청년 시위가 한창이던 때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약 8년 만에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맨 먼저 들른 곳은 허페이의 폭스바겐 전기차 개발센터였다. 리창 총리와의 회담에서 그는 지난해 900억 유로에 달한 대중국 무역적자 문제를 거론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과 유럽연합(EU) 관계에서 경쟁보다 협력이, 차이보다 합의가 크다고 강조했고 중국 관영 언론들은 영국 관계의 새로운 전기라고 보도했지만 성과로 내세울 구체적 합의는 없었다.

앞서 2월 30명의 기업 대표를 데리고 중국을 찾아갔던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이번 슈타인마이어 방중 기간에는 싱가포르, 일본, 한국을 순방했다. 대통령과 총리의 동시 해외 일정은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의존을 줄이려 분투하는 독일의 현실을 보여 준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을 제치고 독일의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올라섰다. 그런데 독일의 대중국 수출은 10% 가까이 줄어 813억 유로에 그쳤고 무역적자는 약 900억 유로로 커졌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가공을 장악하고 있으며, 독일 기업들은 그 수출 통제로 타격을 입고 있다. 중국은 전기차 등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해 독일 시장에서 낮은 가격으로 점유율을 넓히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에 생산기지를 둔 독일 기업들은 오히려 현지 투자를 늘리고 있다. 공영방송 ZDF는 독일이 수십 년에 걸쳐 중국의 후원자에서 청원자 위치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독일은 중국과 고위급 교류를 유지하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아시아 다른 파트너와의 관계를 넓혀 의존을 줄이는 이중 전략에 기대게 됐다는 것이다.

독일의 또 다른 중요한 움직임은 2차 대전 이후 지켜온 ‘군사적 절제’ 원칙을 누그러뜨리고 방위산업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독일은 국방비를 낮게 유지하고, 무기 수출을 엄격히 통제하며, 대학의 군사 연구를 자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왔다. 그러나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흐름이 달라졌다. 올라프 숄츠 당시 총리가 '시대 전환(Zeitenwende)’을 선언한 이후 절제 원칙은 여러 영역에서 동시에 완화되고 있다. 지난해 3월 헌법 격인 연방공화국 기본법을 고쳐, 국방비에 대해서는 부채 제한규정을 완화했다. 정부는 국방비를 계속 늘려 2029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3.5%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무기 수출 규제도 줄였다. 걸프국에 대한 방공무기 수출이 쉬워졌고, 이스라엘에 대한 수출 제한도 풀렸다. 일례로 폭스바겐의 오스나브뤼크 공장은 니더작센주와 투자사 아우렐리우스가 사들여 이스라엘 방산업체 라파엘의 군수 생산기지로 바꿀 예정이다. 대학의 군사 연구를 제한하는 ’민간 조항(Zivilklausel)’도 사라질 판이다. 독일 대학 가운데 약 70곳이 이 조항을 두고 있는데, 바이에른주는 2024년 주법을 고쳐 대학이 연구를 민간 용도로만 제한하는 조항을 두지 못하도록 했다. 헤센주 등 다른 주에서도 대학의 민간 조항을 완화하거나 군사 연구 참여를 확대하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 바탕에는 경제적 계산이 있다. 제조업 일자리들이 사라지는 동안 방위산업은 대체 성장동력으로 떠올랐다. 대표적인 방산업체 라인메탈은 작년에 매출이 30% 가까이 늘었다. 2030년까지 매출을 500억 유로로 다섯 배 늘리고 인력을 7만 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독일은 세계 4위 무기 수출국으로 올라섰으며 국방비 증액으로 산업 부문에서 약 10만 개 일자리가 새로 생기거나 지켜질 것이라는 추산도 나왔다. 대학의 군사 연구를 허용하자는 쪽에서는 드론, AI, 사이버보안 같은 핵심기술 분야에서 독자적 역량을 키우려면 민간 대학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고 중국에는 제조업 경쟁에서 밀리는 처지가 된 독일. 하지만 공급망 안보이든 첨단 기술 경쟁이든 독일을 비롯한 유럽국들의 활로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 베를린의 독일국제안보문제연구소(SWP)가 올 4월 낸 보고서에는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 재정과 ‘절제‘ 원칙을 융통성 있게 조절하자는 논문들이 실렸다. 공급망 안보와 지정학적 경쟁의 시대에 독일만 역사에 발목을 잡혀서는 안 된다, 독일이 과거로부터 풀려나야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미-중 갈등과 러시아의 위협이라는 복잡한 정세에 대응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그러나 다른 유럽국들도 독일의 이러한 움직임을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다. 독일 내에서조차 비판이 거세다. 라이프니츠 평화-분쟁연구소(PRIF)는 무기 수출이 외교·경제 정책의 도구가 되면 인권과 국제인도법 존중 같은 오랜 기준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기관들은 방위산업이 산업 구조조정의 피해를 메우지는 못한다고 비판한다.
청년들의 반발도 군사화에 반대하는 흐름과 이어져 있다. 학생들은 지난해 말부터 징병제 반대 파업을 벌여 왔고, 10월 31일 시위에서도 핵심 요구로 등장했다. 베를린자유대 등에서는 군사 연구와 징병제에 반대하는 점거 시위가 벌어졌다. 일자리와 주거, 세대 간 부담에 짓눌린 청년 세대에게 국방비 증액과 징병은 또 하나의 부담이다. 경제 위기를 방산으로 돌파하려는 독일의 선택이 청년 세대의 불안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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