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유럽 최대의 육군을 만들고 있다. 우리 군이 쓰는 장비를 폴란드에서 만드는 게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폴란드 관리가 1일 로이터통신에 한 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을 새로운 군비경쟁의 시대로 몰아갔고, ‘안보는 스스로 지키라’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메시지가 덧붙여지면서 세계가 무기를 더 만들고 더 팔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두 차례 세계대전의 격전지였고 늘 러시아의 위협을 걱정해온 폴란드도 그 중 하나다.
폴란드군은 올해 병력 22만 명을 넘어섰다. 프랑스(20만명), 독일(18만명)보다도 많아 유럽 최대다. 폴란드 언론들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최초로 1조 달러를 돌파한 것으로 추정하면서 세계 20위 경제권으로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국방예산도 덩달아 최대로 늘어나 GDP의 5%에 이르게 됐다. 올해 국방 예산은 2000억 즈워티, 약 75조원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에 이어 EU 4위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연합(EU)은 회원국들 군사 조달에 저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있다. 폴란드가 주요 수혜자다. 1500억 유로 규모의 ‘유럽을 위한 안보(SAFE)’ 대출에서 폴란드가 확보한 액수가 최대 437억 유로에 이른다. 이 제도는 폴란드가 다른 EU 국가에게 자기네 무기를 팔 기회도 돼준다. 지난달 24일 폴란드, 노르웨이,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는 ‘피오룬(천둥)’이라는 이동식 방공시스템 구매협정에 서명했다. 계약 상대는 폴란드 국영방산업체 PGZ(Polska Grupa Zbrojeniowa)다. 폴란드 국방장관은 “폴란드의 힘과 회복력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8~11일 중부 키엘체에서 열리는 방산전시회는 방산 강국으로 부상하려는 야심을 보여줄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몇 년 동안 폴란드는 에이브럼스 전차, F-35 전투기, 아파치 헬기, 패트리엇 미사일 등 미국산 장비를 대거 사들이는 동시에 자국산 무기와 장비, 탄약 제조능력을 키웠다. 로이터에 따르면 방위 조달에서 자국산 구매가 2022년 이후 4배로 늘었다.
디펜스뉴스는 폴란드의 민간 방위기업 WB그룹을 우크라이나 전쟁의 대표적인 수혜자로 꼽았다. 이 회사는 자폭형 드론 ‘워메이트’와 단거리 전술 무인기 FT5 등을 만든다. 2015년부터 우크라이나 군에 드론을 공급해왔으며 최근에는 스웨덴 업체 사브와 함께 ‘글라디우스’ 라는 군용 드론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폴란드의 전략은 유럽의 방위산업 ‘공급망’ 전략과 맞물려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무기 기술뿐 아니라 ‘재고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줬다. 유럽은 점점 더 못믿을 파트너가 되어가는 미국을 보면서 자체적으로 무기를 조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일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 조치들 중 하나가 방위조달에 돈을 대주는 것이고, 폴란드를 중심으로 러시아에 인접한 동유럽 국가들이 손을 잡게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공급해온 체코의 CSG는 폴란드 내 드론과 미사일·탄약·장갑차량 생산을 늘리기로 했고 에스토니아 방산기업도 폴란드에서 초단거리 방공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헝가리, 슬로바키아와의 방산 협력도 논의 중이다. 전문가들은 나토 안에서 협력하되, 먼 나라 무기공급에 기대는 걸 줄이기 위해 공급선을 주변국으로 바꾸는 ‘니어쇼어링’으로 설명한다.
중동부 유럽에 방산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것은 유럽 밖 나라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예를 들면 한화나 한국항공우주산업주식회사(KAI), 현대로템 같은 한국 회사들은 폴란드에 장갑차·훈련기와 자주포 등을 공급하며 수출을 늘리고 있다.
캐나다도 한 자리 차지하려는 나라다. 캐나다는 지상 체계, 항공우주, 조선 분야가 강하다. GDLS-C는 경장갑차와 장갑전투 지원차량 같은 지상 전투차량을 만드는 대표적인 방산기업이고 어빙과 시스팬은 ‘국가조선전략’에 따라 군함을 만드는 대형 조선기업이다. 항공우주 부문에는 세계에 시뮬레이션과 훈련 기술을 제공하는 CAE가 있다. 캐나다 산업부의 올해 방위산업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92억달러였던 매출액이 2024년 173억달러로 늘었다. 10년만에 두 배가 된 것이다.

마크 카니 총리는 지난 2월 ‘안보, 주권, 번영’을 내세우며 캐나다 최초의 방위산업전략을 발표했다. 핵심은 국방투자청 신설과 ‘구축-협력-구매’ 프레임워크다. 캐나다가 강한 분야와 핵심 ‘주권적 관심 분야’에서 국산 우선을 원칙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맥귄티 국방장관은 2035년까지 약 12만 5000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고 방산 수출을 50% 늘리는 목표를 내놨다. 나토 회원국들에게 돈 좀 더 쓰라고 압박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캐나다 방산기업들에는 정부 금고를 여는 열쇠가 되고 있다.
캐나다는 폴란드 키엘체 방산전시회에서도 ‘올해의 주빈국’ 자리를 꿰찼다. 80여개 캐나다 기업이 군용 차량, 항공우주 솔루션, 사이버보안 시스템, 광전자 장비, 레이더 시스템 등을 선보인다. 지난달 캐나다 정부는 차세대 초계 잠수함 프로젝트에서 나토와의 연계가 중요하다며 한국의 한화오션 대신 독일 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역으로 유럽 시장에서도 나토 동맹이라는 게 캐나다의 강점이다. 작년 12월 캐나다는 EU 회원국이 아닌 나라로는 최초로 유럽 방산 대출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다. 폴란드를 고리로 캐나다 방산이 유럽과 더 밀착될 수 있다.
미국의 안보 우산이 너덜너덜해진 지금, 국가들의 각자도생은 이처럼 방산 키우기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이 ‘방산 대국’으로 거론된 지는 오래됐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1~2025년 세계 9위 무기 수출국(점유율 약 3%)이다. 떠오르는 방산 수출국으로 한국과 함께 튀르키예가 늘 거론된다.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과의 ‘메카 협정’을 계기로도 튀르키예의 군사적 자산, 특히 방산 기술에 관심이 쏠렸다.
튀르키예는 1970~80년대 아셀산, 하벨산 등 방산부문 핵심 공기업을 만들었고 1985년에는 국방산업청을 만들었다. 신흥 방산 강국의 기반이 갖춰진 것은 2002년 정의개발당(AK) 집권 이후다. 방위산업 투자를 계속 늘리면서 국산화율이 2000년대 초반 20%에서 85%로 올라갔다. 미국 F-35 프로그램 참여, 한국 전차 라이센스 개발 등 외국 도움도 컸다. 지금은 한국과 방산 시장의 경쟁자가 됐지만 말이다. 프리깃함, 상륙강습함 ‘아나돌루’ 등 함정 건조 역량에다 아셀산이 만드는 통합방공망 ‘스틸돔’, 국영 방산업체 로켓산의 히사르·시페르 방공미사일 등이 더해졌다. 튀르키예항공우주산업(TAI)은 아타크 헬기와 카안 전투기를 개발했고, 지난해 인도네시아와 카안을 수출하는 첫 계약을 맺었다. 바이락타르, 크즐엘마 등의 무인기는 튀르키예에 ‘드론 강국’ 타이틀을 안겨줬으며 한국, 이스라엘 뒤를 이어 세계 11위 무기 수출국이 됐다.

그만큼 주변의 경계감도 커졌다. 그리스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오랜 지배를 받았고, 지중해 섬나라 키프러스를 두고 튀르키예와 대립해왔다. 이스라엘이 가자 학살로 세계의 지탄을 받는 와중에 그리스는 이스라엘과 손을 잡았다. ‘아킬레스실드’라는 방공망을 구축하는 30억 유로의 방위계약을 8월 말 체결한 것이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 계약 중 하나”라고 했다. 2023년과 2024년 독일, 핀란드가 ‘애로우3’와 ’다윗의 맷돌’ 같은 이스라엘 무기체계를 사간 적 있지만, 이스라엘의 여러 방공 플랫폼을 하나로 엮어 단일 방공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한 나라는 유럽에서 그리스가 처음이다.
그리스와 이스라엘은 오래 전부터 친했다. 정기적으로 합동 군사훈련을 해왔고, 올 1월에는 전방위로 군사협력을 늘리는 데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번 계약은 이스라엘과 거리를 두려는 유럽 전반의 흐름을 깨는 것이었다. 알자지라방송은 이란이 걸프의 미국 동맹국들에게 보복 공격을 하는 상황이 미 해군기지를 둔 그리스에도 영향을 줬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리스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튀르키예의 드론이다. 에게해와 동지중해 관할권을 놓고 오랫동안 대립해왔는데, 튀르키예와 몹시 사이가 나쁜 이스라엘과 굳이 이 시점에 방산 계약을 한 것은 앙카라에 보내는 메시지다.
방산은 수출로 돈 버는 영역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국가안보를 떠받치는 힘이다. 그러나 전쟁은 무기만으로 이뤄는 게 아니다. 미국은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세계대전을 종결지었지만 베트남은 식민통치와 간섭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로 버텨 미국을 몰아냈다. 군사력이 꽤 세다던 이라크는 미국의 전면 침공에 며칠 못 가 무너진 반면 이란은 드론과 ‘주변 때리기’ 전술로 미국을 옭아매고 있다. 어느 나라가 센지는 붙어봐야 안다. 그러나 맞붙지 않는 게 물론 최선이다. 방산 규모는 남들이 그 나라를 함부로 넘보기 힘들게 만드는 억지력이 될 수 있다.
동시에 군비 경쟁은 딜레마를 불러온다. 내가 힘을 키우면 남도 키운다. 군사력을 키울수록 주변의 경계심도 커지고 위험도 늘어난다. 폴란드만 해도, 이미 2000년대에 미국 미사일방어시스템을 배치하려다 러시아의 반발을 산 전례가 있다. 일본도 아시아 주변국들의 의심을 산다. 일본은 2022년 안보전략에 ‘반격 능력’을 집어넣은 뒤 장거리 타격 능력을 끌어올렸고 최근에는 수중발사형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일본이 “공공연히 군비를 확장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는 중국도 이웃들을 걱정시키는 것은 마찬가지다.
많은 나라들이 무기 생산에 힘쓰지 않고도 반세기 넘게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유럽에서 중립을 지키던 스웨덴조차 나토에 가입했고 최근에는 프랑스산 군함을 사기로 했다. 국가들은 실존적 위협 때문에, 그리고 무기를 팔아 얻을 이익 때문에 방산을 키운다. 국제규범을 박살내는 강대국들 때문에 쟁기를 녹여 총칼로 만드는 나라들이 계속 늘어나게 생겼다.
참고 자료
https://moderndiplomacy.eu/2026/09/01/poland-boosts-domestic-defence-production-as-army-expands/
https://www.canada.ca/en/department-national-defence/maple-leaf/defence/2026/02/mnd-message.html
https://ised-isde.canada.ca/site/ised/sites/default/files/documents/State_of_Defence_2026_eng.pdf
https://www.politico.eu/article/israel-greece-strike-3b-air-defense-deal/
https://www.aljazeera.com/news/2026/8/31/why-has-greece-signed-a-3-5bn-missile-deal-with-is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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