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말라붙은 다뉴브, 유럽 에너지와 경제를 흔든다

딸기21 2026. 8. 7. 20:09

10cm.

 

현지언론 기사를 읽으면서 눈을 의심했다. 강의 깊이가 10cm라니?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지나는 다뉴브 강의 수위가 이달 들어 최저점에 이르렀을 때의 기록이다. 혹시나 싶어 몇 번을 읽었지만, 올해 이전의 최저기록이 33cm였다고 하니 10cm가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겠구나 싶다.

 

Far less rain fell over the past weekend than forecast, meaning the relief to the water levels was less than expected, as another wave of hot weather moves in this week. ❘ dpa

 

해마다 지구 평균 기온이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지만 올 여름 더위는 진짜 기록적이다. 유럽이 절절 끓으면서 산불이 휩쓸었다. 아시아로 폭염이 넘어왔다 싶었는데 유럽이 또 한 차례 폭염과 함께 가뭄에 직면했다. 2018년 33cm였던 다뉴브강 역대 최저 수위 기록은 7월 말 23cm로 바뀌더니 이달 4일 10cm를 찍었다. AP 등에 따르면 수위가 최저를 찍은 부다페스트 마르기트 다리의 여울목 모래톱은 기후변화의 현장을 찍는 사진작가들의 포스트가 됐다.

 

독일 남서부의 슈바르츠발트, ‘검은 숲’에서 발원해 2850km를 흐르는 다뉴브. 유럽 중부와 동남부를 거쳐 루마니아의 다뉴브 삼각주를 지나 흑해로 흘러든다. 한때는 로마 제국 국경 역할을 했고 지금은 유럽 10개국을 연결한다. 다뉴브 분지로 불리는 유역권에 걸친 나라까지 합하면 9개국이 추가된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 등 네 나라 수도가 다뉴브 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유럽의 가장 긴 강인 볼가 강은 러시아에서만 흐르기 때문에 두 번째로 긴 다뉴브가 가장 중요한 내륙 수로다.

 

그런데 강물이 줄면서 곳곳에서 배들이 멈췄다. 부다페스트의 유람선들은 강 상류에 묶여 있고 화물선 운항은 거의 다 중단됐다. 불가리아에서는 루마니아와 인접한 국경지대 다뉴브 항구인 비딘 근처에서 크루즈선이 좌초했다. 당국이 200명 가까운 관광객을 구조했고, 현지 언론과 선박운영사 측은 좌초 당시 선박에 물과 먹거리가 얼마나 있었느냐를 놓고 논쟁 중이다. 세르비아에서는 수백 척의 소형 보트와 수십 척의 화물선이 북부 도시 노비사드 인근의 말라붙은 강둑에 좌초됐다.

 

Over 200 Nazi vessels were intentionally scuttled to slow advancing Soviet forces during the fall of 1944. Credit: Amir Hamzagic / Anadolu via Getty Images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암초와 모래톱이 노출되면서 강바닥에 있던 역사의 유물들도 함께 햇빛을 봤다. 세르비아 프라호보 부근에서는 수십 년 동안 물속에 잠겨 있던 난파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군함과 약 200척의 선박 잔해들이 80여년만에 대기를 접한 것이다.

 

당시 소련군이 진격해오자 나치는 일부러 배들을 침몰시켰다. 선박과 보급품이 적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하면서 동시에 소련군의 이동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수위가 낮아질 때마다 다뉴브 강을 오가는 배들에게 장애물이 돼왔다. 세르비아는 암초가 된 난파선들 때문에 수상교통 비용이 매년 600만 달러씩 더 들어간다면서 재작년부터 유럽투자은행과 함께 배들을 폭파시키거나 강바닥에 아예 묻는 작업을 시작했다. 올여름 강물이 말라붙은 차에 아예 본격적으로 배들을 제거하려는 논의를 하고 있다.

 

때 아닌 보물찾기도 벌어진다. 크로아티아 동부 오파토바츠 마을에서는 1937년에 가라앉은 것으로 추정되는 선박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한 주민은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역사가 다뉴브 강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했다. 아마추어 보물사냥꾼, 자석을 달아 강바닥에 가라앉은 물건들을 찾는 ‘자석 낚시’ 애호가들이 다뉴브에 몰려들어 오래된 라디오 증폭기, 2차 대전 때의 탄피 따위를 건져낸다. 부다페스트에서는 2차 대전 당시의 불발탄이 강바닥에서 발견돼 당국이 다리 하나를 폐쇄했다. 올여름 다뉴브 바닥에서 나온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털매머드의 유해다. 불가리아 다뉴브에서 털매머드 아래턱뼈와 상아, 어깨뼈, 갈비뼈 따위가 확인됐다. 

 

People explore the exposed riverbed of the Danube River in Budapest, Hungary, July 28, 2026. ❘ Xinhua

 

하지만 유적을 발굴하고 유물 낚시를 즐기기엔 강의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루마니아에서는 다뉴브 물의 양이 7월 평균치의 3분의 1로 떨어졌다. 전국 전력의 5분의 1을 공급하는 체르나보다 원전 냉각수가 부족해지자 정부는 군대를 동원, 원전 상류 50km 지점에서 바위를 폭파했다. 지류 흐름을 바꿔 원전으로 가는 강물을 늘리려는 것이다. 폭파한 바위조각들은 다른 지점으로 옮겨 강바닥을 높일 계획이다. 산업은 이미 차질을 겪고 있다. 일리에 볼로얀 임시 총리는 기업 대표들과 긴급회의를 한 뒤 자동차 공장들의 가동을 19일까지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헝가리에서는 유일한 원전이자 전체 전력 생산량의 거의 절반을 담당하는 팍스 원전의 가동률이 10%로 떨어졌다.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 직전까지 갔다가 간신히 모면했고, 당국은 전력망 부하를 줄이려고 전기 화물열차 운행을 일시적으로 멈췄다. 세르비아에서는 수력 발전소 가동률이 5분의1로 떨어졌다.

 

독일도 영향권에 들어가 있다. 다뉴브뿐 아니라 라인 강도 수위가 사상 최저로 떨어진 것이다. 독일 서부 카우프의 수위관측소는 라인 강 화물선의 적재량을 정하는 기준점인데 이달 초 수위계가 25cm로 떨어졌다.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슈테펜 빌거 신임 교통부 장관은 첫 과제로 수위와 씨름하게 됐다. 라인 강은 곡물, 광물, 석탄과 휘발유 등 주요 원자재를 운송하는 핵심 수로다. 도이체벨레는 수위가 낮아져서 내륙 화물선들은 용량의 15~20%만 실은 채 운항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건조한 날씨가 계속될 것으로 보여, 운송 차질이 다음달까지 이어질 수 있다.

 

The Rhine fell to its lowest ever levels at points in Germany and the Netherlands as heatwave conditions continue. ❘ Getty Images

 

독일 경제가 최근 완만하게나마 회복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라인강 물류가 차질을 빚으면서 다시 정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올 3분기 독일 국내총생산(GDP)이 물류 문제로 0.1~0.2% 줄어들 수 있다는 경제전문가의 말을 전했다. 라인 강 수위가 한 달만 낮아져도 독일 산업 생산이 1% 줄어든다는 추정치도 있다.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었으면 운송 차질에 따른 피해가 더 컸을텐데, 현재 독일 산업이 부진한 터라 충격이 오히려 작다는 자조 섞인 분석도 나왔다.


유럽 강들은 대체로 늦여름 수량이 가장 적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한 자도 안 되는 물줄기를 ‘강’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사막에서 우기에만 흐르는 와디(건천)처럼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걱정을 더 이상 기우라고 부를 수 없게 된 때는 다뉴브와 라인 수위가 기록적으로 내려간 2018년이었다. 라인 강에서는 연중 132일 동안 저수위가 이어졌고, 수온이 올라가 찬물 어류가 무더기로 폐사했다. 스위스 당국이 수거한 물고기 양이 그 지역 연간 어획량의 30%였다고 한다. 2022년에는 과학자들이 ‘500년 만에 최악’이라 부른 가뭄이 유럽을 덮쳤다. 수십년 동안 복원사업을 해서 숫자를 늘려온 대서양연어는 산란지까지 올라갈 길을 잃었고 다뉴브의 용존산소 농도는 송어가 살 수 없는 임계치에 가까워졌다고 한다. 

 

작년에는 최악의 건조한 봄을 지나 최악의 여름 물 부족을 만났다. 그리고 올해는 폭염, 가뭄, 산불이 한 묶음으로 찾아왔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긴 강인 포 강은 지난달 말 북부 도시 크레모나 부근에서 사상 최저 수위를 기록했으며 전문가들은 마실 물마저 모자라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여름 가뭄이 해마다 심해지지만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장기적으로 강수량이 줄었다는 증거는 없다. BBC는 기상학자들의 연구를 인용하면서 기후변화로 수분 증발량이 많아져 가뭄이 늘어난 것일 수 있고, 덥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는 동안 물 수요는 오히려 늘어나는 것이 악순환을 부른다고 지적했다.

 

 

“비엔나의 콘서트홀, 부다페스트의 국회의사당, 오스만과 합스부르크와 비잔티움의 역사적 흔적은 다뉴브를 따라 축적돼 있으며 라인 강은 유럽의 경제를 실어나른 대동맥이었다. 그런데 기원전부터 사람들을 먹여살려온 다뉴브의 어부들, 강을 가장 잘 알던 이들은 강물과 함께 거의 사라졌다. 우리는 늘 매년 여름을 ‘예외’라 생각하며 언젠가 회복될 것이라 희망하지만, 거대한 강들이 옛모습을 유지할 것이라는 가정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그리스 작가 야니스 바불리아스는 5일 가디언 기고에서 ‘강을 중심으로 정체성과 문화를 형성해온’ 유럽 사회에 기후변화는 정체성의 위기까지 부르고 있다고 적었다.  강력한 엘니뇨가 이미 불타고 있는 지구에 기름을 부을 것이라는 유엔 과학자들의 경고가 나오는 지금, 지구 상에서 저 우울한 예언의 예외가 될 수 있는 강이 과연 있을까. 

 

기후변화에 맞서 인류가 할 수 있는, 해야할 조치들을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완화와 적응. 완화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임으로써 기후변화 현상을 누그러뜨리는 것이고, 적응은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회와 경제 전반에 준비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유럽은 지구 기온을 올린 역사적 책임도 크지만 완화와 적응 모두에서 다른 지역들을 앞서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조만간 ‘통합된 기후 회복력·위험관리 체계’를 발표할 예정이다. 기후변화를 에너지, 사회기반시설, 교통, 보건 등 모든 정책 설계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올 여름 더위는 과연 ‘적응’이라는 게 실행 가능한 대책이기나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부르는 것이 사실이다. 에어컨이 별로 없는 프랑스에서 무더위에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의 유튜버들은 “에너지 아낀다더니 이제야 다른 지역 고통을 알겠느냐”며 기후대응 노력 자체를 깎아내린다. 에어컨 보급률을 빼면, 적응할 준비가 유럽보다 잘 돼 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까. 이제는 온실가스 배출 책임에서도 ‘월드클래스’인 한국이 말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