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랴오닝성 다롄에는 하루 약 40만 배럴의 원유를 정제할 수 있는, 중국 민영 정유회사 중 최대 규모라는 헝리석화(恒力石化)의 정유시설이 있다. 모기업인 헝리그룹은 1994년 장쑤성 쑤저우에서 여성 기업가 판훙웨이(范紅衛)가 창립했다. 석유화학 전반에서 사업을 확장했고 2018년 다롄 앞바다 창싱 섬 경제기술개발구역에 정유플랜트를 지었다. 2023년부터 이란산 원유를 대량 수입, 정제해 내다 파는 사업을 하고 있다.
산둥성 일대에는 이런 민영 정유시설이 몰려 있다. 국영 기업들에 비하면 소규모이지만 중국 전체 정유 능력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이런 회사들을 찻주전자 정유공장(茶壺煉廠)이라고 부른다. 이란이나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국제 제재를 받는 나라들로부터 원유를 헐값에 사서 정제하는 찻주전자들은 2010년대 중반 중국의 원유 매입이 급등했던 시기에 크게 성장했다. 국영 대형 정유사는 리스크를 피해 이란산 원유와 거리를 둔 반면에, 찻주전자들이 제재 스펀지 역할을 대신해왔다. 대금은 위안화로 중국이 만든 국제 결제시스템인 CIPS로 결제된다. 이 원유를 운반해온 것이 신원을 위장한 선박들, 이른바 ‘그림자 선단’이다.

지난 4월 미 재무부는 헝리를 비롯한 찻주전자 정유사 5곳을 제재 리스트에 올렸고, 이들과 거래하는 금융기관들에도 2차 제재를 경고했다. 중국은 반발하면서 5개 기업에 대한 미국 제재를 무력화하는 ‘역외 적용 차단’이라는 규정을 발동했다.
누가 이겼을까.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21일 폭스비즈니스 방송에 나와서 미국이 찻주전자들까지 제재한 뒤 중국의 이란 원유 구매량이 40% 줄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란산 뿐 아니라 중국의 전체 석유수입이 줄어든 것이고, 그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걸프 국가들로부터의 수입도 당연히 감소했다. 중국은 원유를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며 수입량은 전쟁 이전 하루 1200만 배럴을 웃돌았다. 그러나 지난 6월 수입량은 하루 712만 배럴로, 2016년 10월 이후 최저치였다. 오일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걸프산 원유 수입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20% 정도로 줄었다.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도 감소했다. 2분기 카타르로부터 사간 LNG는 겨우 10만톤, 작년 같은 기간 470만톤과 비교하면 거의 다 없어진 수준이었다.
미국이 21일 테헤란 공습으로 전쟁을 재개했지만, 지난달 휴전 합의 뒤 잠시나마 이란 제재를 풀어주는 유화조치가 뒤따랐다. 하지만 바로 그 시기에 미스터리한 일이 벌어졌다고 CNN은 보도했다. 걸프에 갇혀 있던 원유 2억 배럴 이상이 쏟아져 나왔는데 구매자들이 달려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카타르에너지와 아랍에미리트 국영석유회사 아드녹(Adnoc)은 배럴당 6~9달러를 할인까지 해주면서 동남아시아로 넘겨야 했다. 걸프 아랍국가들이 생산한 원유 가운데 탱커에 실려 걸프 밖을 떠돌며 매수자를 찾는 분량이 2000만 배럴에 육박한다. 전쟁 이전 수준의 2.5배다. 이란은 걸프 이웃들보다 기름 팔기가 더 어려운 형편이다. 미국과 양해각서를 체결한 이후 원유 7000만 배럴을 풀었지만 사려는 나라가 나서지 않았다. 그나마 중국이 사주긴 했으나 중국도 예전처럼 거센 원유 식욕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중동 산유국들 입장에선 글로벌 시장의 최대 구매자가 지갑을 닫은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 전체에는 이득이라면 이득이었다. 호르무즈 위기로 유가가 극단적인 수준으로 치솟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2003년 이라크 전쟁이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와 비교해 상승폭은 적었다. 중국이 수입을 줄이면서 일종의 쿠션 역할을 했다. 원유시장 연구자 로리 존스턴은 “시진핑의 은혜”라고까지 표현했다.

세계 유가를 끌어올리던 중국이 완충재가 된 이유에 대해,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와 시노펙(Sinopec) 회장을 지낸 푸청위는 오일프라이스닷컴 기고에서 여러 요인을 짚었다. 먼저 원유 매입과 정제유 수출이 모두 줄었다. 정유사들은 해외 현물 매입을 대폭 줄이고, 프리미엄이 붙은 중장기 계약을 보류한 뒤 재고 소비에 나섰다. 국가 차원에서도 원유 매입을 억제해 산유국들과 ‘가격 결정력 균형’을 맞췄다. 구매를 줄임으로써 산유국들이 마음껏 값을 올리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정제유의 경우 올 2분기부터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상무부가 수출 감독을 강화했다. 5월에는 정제유 제품에 대해 선박별 승인과 엄격한 수출 쿼터를 도입했다. 7월 들어 수출 규제를 완화했지만 2월 수준의 재고량을 유지하라는 조건을 붙여놨다. 이 과정에서 찻주전자들의 원유 재고도 중국의 쿠션 기능에 한 몫을 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지만, 공급 위기를 견뎌낼 준비가 가장 잘 되어 있던 수입국이기도 했다. 중국은 통상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넘으면 원유 수입을 줄이고, 배럴당 60~70달러의 저가일 때는 대량 매입에 나선다. 특히 유가가 팬데믹 이후 최대 연간 낙폭을 기록했던 2025년, 비축량을 크게 늘렸다. 비축분 규모는 공개하지 않지만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 최대 14억 배럴을 보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규모이자, 미국 재고의 세 배가 넘는 양이다.
중동산 원유 수입이 줄어든 것과 함께 눈에 띄는 것은, 러시아산 원유수입도 두달 연속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그간 미국의 압박 속에서도 중국이 러시아산을 구매한 것은 러시아가 기름값을 대폭 깎아줬기 때문이다. 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오르자 러시아는 값을 올렸고, 중국은 그에 맞춰 구매를 줄였다. 하지만 다른 에너지원 구매는 회복세를 보인 것으로 봤을 때, 원유 수입 의존을 줄이려는 움직임인 듯하다.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은 6월에 전년 대비 8.3% 늘었다. 중동산 수입이 줄어든 대신 말레이시아와 러시아산 물량이 두배가 됐다. 석탄 수입도 늘렸다. 지난 5월 산시성 탄광 폭발사고 뒤 안전점검이 강화되면서 중국 내 석탄생산량 10% 가까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원유시장의 변덕에 대비해 쟁여두는 것일 수 있다.
석유 수요 자체가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것이 전기차다. 전쟁 기간 도로 위 전기차 수는 30% 이상 늘었다. JP모건 애널리스트는 로이터통신에 “전쟁은 이미 진행 중이던 변화를 가속화했으며, 중국은 시장의 예상보다 원유 의존도가 낮은 구조를 유지할 수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원유나 가스 대신 석탄에서 원료를 뽑아 플라스틱과 비료를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국내 원유 생산을 조금씩 늘리면서 동시에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식으로 대응했다.

중국이 수입을 줄인 채로 계속 있을 수만은 없다. 중국의 원유 재고가 지금 얼마인지에 대해선 추측이 분분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6월에만 4100만 배럴을 꺼내 쓴 것으로 봤다. CNN은 중국이 하루 200만 배럴 속도로 비축분을 소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117일 동안 쓸 분량이 남아 있다고 보도했다. 전략비축유는 줄었지만 전체 잉여 원유는 오히려 늘었다는 분석도 있다. 정제 물량과 원유 수입물량, 비축유에서 인출된 물량 등을 더하고 빼면 올 상반기 동안 잉여 원유가 오히려 하루 약 53만 배럴씩 늘어났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비축량을 늘려야 하는 시기가 오겠지만 그게 언제일지는 시장 가격에 달려 있다. 가격이 배럴당 80달러 아래로 낮아지면 다시 쟁이기 시작할 것이고, 석유의 수요공급 곡선은 중국의 결정에 따라 복잡한 함수를 그릴 것이다.
현재 에너지 시장의 최악 시나리오는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 입구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원유 흐름이 몇 년에 걸쳐 차질을 빚는 것이다. 호르무즈 공급 감소량의 3분의1은 중국이 수입을 줄여 흡수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반면 미국의 전략비축유(SPR)는 1983년 도입 이래 최저 수준이다. 미국은 전쟁을 일으켜 유가 충격을 불렀지만 스스로 충격을 완화할 만큼의 재고는 없다. 역설적이지만 중국의 유가 완충 역할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는 반사이익을 준다. 그러나 지정학적 계산으로 보면 중국이 계속 쿠션이 돼줄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이 많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기고에 “이란 전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중국이 자기네 비축분을 낭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제일 높았을 때 배럴당 150달러까지 올라갔는데, 만약 이런 고유가가 한 달 정도만 이어지면 미국 인공지능 주식 버블이 터져버릴 수도 있고 연쇄 위기로 미국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차라리 그렇게 돼서 미국이 전쟁 끝내버리는 상황으로 가게 하는 게 지금의 위기가 장기화되는 것보다 세계 전체에 낫다는 이들도 있다. 무력 충돌이 계속돼 걸프의 산유시설이 더 파괴되면 공급망 교란이 10년은 갈텐데 조기에 끝나는 게 낫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한국처럼 수입 에너지 의존 높은 나라에는 재앙일 것이다. 현재로선 어떤 것도 전망하기 힘들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26년 원유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보지만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증가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을 내놓는다. 호르무즈 주변 상황이 하루하루 바뀌고 시장 예측도 거의 매일 바뀌는 판국이니 전망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중국이라는 뜻밖의 쿠션이 갖는 지정학적 함의다. 비싸면 덜 사고 값이 떨어지면 쟁여두는 것은 당연한 대응이지만, 중국은 워낙 큰 손이다. 수입과 수출을 신속하게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능력은 산유국이 아닌 중국을 사실상의 가격 결정자로 만들어준다. 또한 중국은 원유 수입국인 동시에 정제유를 수출하는 세계 시장의 공급자다. 이란이 호르무즈라는 ‘병목’을 잡은 것처럼, 중국도 정유 시장의 병목을 잡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인 것이다. 에너지 칼럼니스트 론 부소는 로이터 기고에서 “중국의 에너지 역학이 취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무기로 작용하는 시대에 접어든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은 대규모 공급 충격을 견뎌낼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에너지 상호의존’에 손발이 묶여 있던 상황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것은 세계 전체에 또 어떤 영향을 가져올까.
-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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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u.finance.yahoo.com/news/china-does-australia-an-enormous-favour-to-keep-oil-prices-down-190000187.html
https://oilprice.com/Energy/Crude-Oil/Inside-Washingtons-Quiet-Bid-to-Break-Chinas-Grip-on-Iraq.am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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