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이 소국 카보베르데와 월드컵에서 만나 빵대빵 무승부. 충격.
카보베르데는 난리가 났다. 월드컵 첫 출전에 강호를 만나서 선전했으니. 주민들은 창문, 발코니, 옥상에 국기 내걸고, 차들은 경적 울리고… 안 봐도 상상이 된다 ^^
특히 마흔 살 골키퍼 조시마르 디아스(보지냐)가 이번 월드컵 최대 화제 중 하나다. 경기 보면서 깜놀한 놀라운 수비. 현지 언론 ‘엑스프레소 다스일랴스’를 보니 “보지냐, 몇 시간 만에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 기사가 떠 있다. 경기 뒤에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약 5만 명에서 수백만 명으로 급증했다고. 오늘 들어가보니 팔로워 1120만명 ㅎㅎㅎ. 카보베르데 전체 인구 50만명의 20배가 넘는다.
잼난 건, 브라질 팬들과 인플루언서들이 자발적으로 보지냐 홍보하는 캠페인을 벌였다는 것. 둘 다 포르투갈 식민지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지언론은 “경기 종료 후 감격에 북받친 보지냐의 모습은 그의 끈질긴 인생 역정, 그리고 대표팀의 저력과 어우러지며 세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적었다.
그런데 그 골키퍼 엄마인 아나 칸디다 에보라는 미국 비자 보증금 비용이 없어 아들의 역사적인 경기를 보지 못했다고. 그래서 보지냐 골키퍼가 경기 끝나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비자 기간을 넘기고 체류하는 사람들 막겠다면서 새 규정을 도입했다. 그 규정에 따라 올 1월부터 수십개국 여권소지자가 최대 1만5000달러 보증금을 내야 비자를 받을 수 있는데 카보베르데도 목록에 오른 나라들 중 하나다.

비난이 쏟아지니까 지난달에 월드컵 경기 티켓 가진 사람은 보증금 면제한다고 했는데, 이미 골키퍼 어머님이 미국 가서 경기 보기엔 늦은 시점이었다. 미국서도 이 사건이 정치적 이슈가 되자 국무부가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이란 선수들이 미국 내에서 훈련과 체류 못하게 한 것도 정말 말도 안 되는데... 이번 월드컵은 티켓값에 교통수단 요금에 숙박비에 엄청 비싸다고 BBC가 기나길게 규탄의 기사를 올려놓은 걸 봤다.
카보베르데. 옛날엔 카페베르데, 카포베르데 막 혼용했는데 카보베르데로 굳어진 듯.
아프리카 서부 해안에서 650~850km 떨어진 대서양 가운데 군도 국가. 수도는 프라이아. 열 개의 화산섬과 8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면적은 약 4,033㎢. 카보베르데라는 이름은 아프리카 대륙 서쪽 끝인 세네갈의 카프베르(Cap-Vert) 반도에서 나왔다.
15세기 포르투갈 탐험가들이 정착하기 전까지 무인도였는데 1462년 포르투갈인들이 정착지를 만듦. 16~17세기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노예 붙잡아 아메리카로 보내는 ‘대서양 삼각무역’ 중간 거점이었다. 정착민이 늘고 노예, 상아, 금 교역으로 경제도 커졌다. 16세기 말, 영국의 유명한 사략선(해적선) 선장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섬을 약탈한 일도 있었고 찰스 다윈이 1832년 비글호를 타고 항해할 때 첫 기항지도 여기였다. 19세기 중반부터는 가뭄에 노예무역이 줄어들면서 쇠락했다가 중계 무역항으로 살아남았다.
영국, 프랑스에 비해 포르투갈은 식민지를 참 안 놔줬다. 시대에 뒤쳐진 제국주의 유지하느라 오히려 발전을 못했다는 분석도 많다. 아프리카 서부 앙골라가 격렬한 투쟁 뒤 1975년 독립했고, 카보베르데도 그 해에 독립국가가 됐다.
포르투갈은 1950년대 카보베르데를 식민지에서 해외 주(州)로 변경해 민족주의 억누르려 했지만 실패했고 아밀카르 카브랄이라는 독립 영웅이 ‘기니·카보베르데 독립을 위한 아프리카당(PAIGC)’을 만들어 무장 투쟁을 시작했다. 소련의 지원을 받아 독립 전쟁을 벌였으며, 새 국가를 세운 뒤 1990년까지 이 정당이 카보베르데를 통치했다. 그후로는 안정적인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발전하고 민주적인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세계의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V-Dem 민주주의 지수에서 2025년 세계 40위였다. 미국은 51위, 미국보다 낫다(참고로 한국은 22위).
2021년 기준 인구는 49만명 조금 넘음. 아프리카계와 다양한 유럽계 후손. 인구 80% 이상 기독교도이고 포르투갈어와 크레올을 사용한다. 경제적으로는, 한창 발전 중이다. 구매력 기준 2023년 1인당 GDP 9900달러. 유엔 최저개발국(LDC) 즉 소득수준 최저 국가들 목록에 올라 있었는데 2007년 벗어나 중간단계 개발 국가로 올라갔다. 보건의료와 교육 등 사회경제 분야 대부분 지표에서 아프리카 상위권이다. 문자해독률 91%에 인구 네 명 중 한 명은 대학을 졸업했다.

포르투갈과 경제 전반에 걸쳐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자국 통화 escudo를 포르투갈 에스쿠도에 연동시켰다가, 포르투갈이 유로 가입한 1999년부터는 유로에 연동시켰다. 천연자원이 거의 없는데도 경제가 커지고 생활수준도 높아져 국제사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해외 거주 카보베르데인들의 송금액이 GDP의 20%를 차지하니 일종의 송금경제라 할 수도 있다. 해외거주자가 100만명으로 섬에 남은 주민의 2배인데 그중 절반인 50만명이 미국에 산다. 섬 인구와 비슷한 미국 내 카보베르데 사람들, 이번에 어깨가 으쓱했겠다.
최근에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재생에너지 분야의 선도국으로 주목받고 있다. 2011년 네 개 섬에 풍력발전단지가 건설돼 국내 전력의 약 30%를 공급한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50%, 2050년까지 100%로 높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2023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카보베르데를 방문해 기후 위기에 대해 세계의 관심을 촉구했다. 그해 포르투갈은 카보베르데가 환경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조건으로 1억4000만 유로의 빚을 없애줌. ‘자연을 위한 채무 스와프(debt-for-nature swap)’ 사례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곳들이 개발보다 환경 보전을 택하면, 탄소 뿜뿜 부국들이 대가를 지불해주는 것이다.
월드컵에 출전한 나라들 중에 식민지 역사를 가진 곳들 많다. 2026 FIFA 월드컵 출전국의 식민지 역사를 분류해보자.
1. 과거 식민지를 보유했던 나라: 영국(잉글랜드·스코틀랜드),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미국
2. 과거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호주.
-아프리카에선 이번에 출전한 모든 나라.
알제리 코트디부아르 세네갈 튀니지는 프랑스 식민지,
이집트와 가나는 영국,
남아공은 영국과 네덜란드,
콩고민주공화국은 벨기에,
카보베르데는 포르투갈 지배를 받음.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때 돌풍 일으켰던 모로코는 프랑스, 스페인 지배를 받았다. 모로코 지중해 도시 탕헤르에 벨기에, 이탈리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웨덴, 심지어 미국도 조차지를 뒀었는데 당시 이 나라들을 줄줄이 이기며 설욕을 했다.
-중동 국가들은 식민지배를 받은 경우는 적지만 위임통치, 보호령은 있었음.
이라크와 요르단은 영국 위임통치,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는 한때 영국 보호령
유럽 열강 식민지배 받은 나라가 중동에 별로 없음.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 대부분, 굳이 따지자면 대부분 튀르키예 영토였지.
출전국 가운데 지금도 유럽국 영토인 나라도 있다. 퀴라소. 면적 444㎢, 인구 15만6000명. 지금도 네덜란드령이며 독립국가로 볼 수는 없다. 그런데 국제축구연맹(FIFA)이 국가 독립 여부와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축구협회를 운영하면 출전을 허용한다. 퀴라소는 네덜란드 왕국 내 자치령인데 별도 축구협회가 있고 FIFA와 북중미카리브해 축구 연맹(CONCACAF)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이 각기 대표팀 갖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로코도 북부에 여전히 스페인 영토가 남아 있고.
파나마는 미국령은 아니지만 미국이 운하 지대를 사실상 통제한다. 원래 콜롬비아 영토였어야 하는데 미국이 운하지대를 차지하려고
콜롬비아를 압박, 파나마로 분리독립하게 만들었다. 1903년 파나마 독립 직후 미국이 파나마 정부와 조약을 체결해 운하 지대를 영구 임차하고 군사요새로 만들었다. 1977년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협약을 다시 맺어 운하 지대 통제권을 단계적으로 파나마에 이양했다. 1999년 12월 31일 운하 지대 전체의 주권이 파나마로 완전히 넘어갔다.
그런데 작년에 트럼프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에 대한 미국의 통제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제국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미국의 오만을 보여주는 발언이었다.
월드컵 축제 뒤편에서 이처럼 식민주의 그늘을 볼 수 있다. 사실 스포츠는 늘 정치와 연결된다. 특히 축구는 더더욱.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후, 국제 스포츠 공동체가 반전 시위를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같은 주요 국제 스포츠 기구들은 전쟁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주요 국제 스포츠 기구들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에서의 국제 스포츠 대회를 정지하고 해당 국가 대표 선수들의 각종 대회 참가를 무기한 금지시켰다. 반면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별반 조치가 없다.
어떤 학자들은 스포츠의 가장 가시적인 노동력인 선수들을 분석, 스포츠 노동의 국제적 분업에서 제국주의적 패턴이 나타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1960년대부터 미국 대학들이 젊은 아프리카 스포츠 인재들을 발굴하는 것이라든가, 가난을 벗어나려고 글로벌 사우스의 청년들이 스포츠 분야에 진출하는 것이라든가. 이것은 또 다른 이주의 네트워크, 대체로 옛 피지배국 주민들이 옛 식민지배국으로 이동하는 글로벌 이주 네트워크의 일부분이며 월드컵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벤트다.
암튼 카보베르데는 다음 경기를 월욜에 우루과이랑 하는데. 잘 했으면.
참고문헌
https://www.instagram.com/vozinha1/
https://www.bbc.com/news/articles/clyer09rd1ro
https://edition.cnn.com/2026/06/16/sport/vozinha-state-department-world-cup
https://en.wikipedia.org/wiki/Cape_Verde
https://www.v-dem.net/documents/75/V-Dem_Institute_Democracy_Report_2026_lowres.pdf
https://data360.worldbank.org/en/economy/CPV
https://www.tandfonline.com/doi/epdf/10.1080/17430437.2023.2214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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