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체포영장을 언급하면서 국내 언론들이 조금 시끄러웠다. 이스라엘의 국제 구호선 나포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네타냐후 총리에게 발부한 체포영장을 “우리도 (집행 여부를) 판단해보자”고 말한 게 파장을 일으켰던 것이다.
정작 이스라엘 언론들은 별로 다루지 않았다. 유력 일간지 하레츠는 별도 기사를 쓰지 않았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은 로이터통신 보도를 인용해서 이 대통령 발언을 전하는 정도였다. 앞서 4월 이 대통령이 이스라엘군의 잔혹행위를 비판하면서 홀로코스트에 비유했을 때에도 이스라엘 정부는 반짝 항의 뒤 봉합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레츠 등은 오히려 자국 정부를 비판하는 맥락에서 이 대통령 발언을 인용했다.
구호선단 나포와 탑승자 억류 사건은 행위 자체가 불법적이기도 했지만 이스라엘 당국의 폭력적인 방식 때문에 국제사회의 공분을 일으켰다.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캐나다 등은 항의 표시로 이스라엘 대사를 소환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를 비롯해 캐나다 외교장관, 아일랜드 외교장관, 스페인 외교장관 등의 거센 비판이 이어졌다. 유럽국들은 물론이고 카타르, 튀르키예, 브라질, 콜롬비아, 파키스탄, 요르단, 방글라데시 등이 입을 모아 “국제법 및 국제인도법에 대한 노골적인 위반”을 규탄했다. 유럽연합과 유엔도 비판과 우려를 표시했다.
구호선단을 막고 활동가들에게 고문 수준의 폭력을 쓴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은 대체로 일치할 듯하다. 다만 ICC의 네타냐후 체포영장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입장이 좀 다를 수 있다. 영장 집행 의사를 맨 먼저 보인 나라는 네덜란드다. ICC 소재지이기도 한 네덜란드는 ICC의 설립 근거인 로마규약을 “100% 이행하겠다”고 했다. 노르웨이, 뉴질랜드, 말레이시아도 영장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명확하게 표현했다. 프랑스와 폴란드 등은 조건부 이행 혹은 모호한 입장을 보였지만 로마규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원칙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사실 이 문제는 국제법적으로는 논란거리가 아니다. 로마규약 가입국은 ‘당연히’ 영장이 발부된 사람이 입국할 경우 체포해서 헤이그의 재판소로 보내야 한다. 유독 미국만 나서서 이스라엘을 편들며 ICC 제재까지 추진하고 있지만, 미국은 로마규약에 가입조차 하지 않았고 ICC에 돈을 대는 것도 아니라 지렛대가 없다.
유엔은 1998년 로마규약을 채택했고 2002년 ICC 문을 열었다. 반인도범죄, 전쟁범죄를 국제사회가 한 뜻으로 처벌하기 위해 오랜 논의 끝에 상설재판소를 설치한 것이었다. 한국은 2000년 서명했고 2002년 비준했다. 2007년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도 만들었다. 규약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국내법의 근거를 만든 것이다.
재정 기여도 꽤 많은 편이다. 2024년 ICC 재정 분담금 납부 순위를 보면, 16% 정도를 책임지는 일본의 기여가 가장 컸다. 2024년부터는 ICC 소장도 일본 출신 아카네 토모코가 맡고 있다. 이어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순이고 5%를 부담하는 한국이 6위다. 한국은 2009~2015년 송상현 재판소장을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동안 한국은 유엔 무대에서 이스라엘 친화적인 행태를 보여왔다. 세계가 이스라엘의 잔혹행위들을 규탄할 때, 한국은 미국이나 남태평양 몇몇 섬나라들과 함께 이스라엘 편을 드는 극소수 국가들 중 하나였다. 지금은 과거처럼 ‘묻지마’ 수준으로 이스라엘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한국 대통령이 체포영장 문제를 거론하고 가자 학살을 비판한 것에 이스라엘이 놀랐을 것 같기는 하다. 이스라엘 로비 단체인 유엔워치(UN Watch)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2016년 이후 한국의 이스라엘 관련 유엔 결의안 표결을 들여다봤다.
2016년 한국은 12건 중 11건 찬성, 1건 기권. 2017~2022년 매년 12건 중 10건 찬성, 2건 기권. 해마다 반복해서 올라오는 결의안들이라 결과가 대체로 겹친다. 한국이 기권한 2건은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한 시리아 골란고원을 반환하라는 결의안과, 이스라엘의 인권 침해를 유엔 차원에서 조사하자는 결의안이었다. 팔레스타인 인권 보호와 구호를 촉구하는 결의안에는 찬성하면서도 정작 팔레스타인 인권을 침해하고 구호를 막는 이스라엘의 행위를 규탄하는 데에서는 몸을 사렸다.
2023년에도 그 전 해처럼 12건 중 2건에서 기권을 했는데 그해 이스라엘이 가자 전쟁을 시작하면서 열 세번째 결의안이 올라왔다. 민간인 보호를 촉구하는 이 결의안에는 한국도 찬성표를 던졌다. 2024년과 2025년 한국은 가자지구 휴전 결의안에 찬성하면서도 역시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땅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불법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는데도 그에 관련된 결의안에서는 기권했다.
ICJ 판결은 새로울 것도 없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걸쳐져 있다.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에 귀속된다고 유엔이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규정하고 있으나 이스라엘은 1967년 이래로 수십년간 점령하고 있다. 2024년 ICJ는 이것이 불법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결의안 표결에서 기권했을 뿐 아니라, 한국 외교부 웹사이트는 이스라엘 페이지에 ‘수도 : 예루살렘(Jerusalem)’이라 적고 있다. ‘지위 문제에 논란이 있으며, 미국과 과테말라 대사관은 예루살렘에 소재하고 여타 국가들의 대사관은 텔아비브 또는 인근에 소재’하고 있다는 문장을 덧붙였지만 국제법과 유엔의 판단을 무시하고 예루살렘을 한국이 나서서 이스라엘 땅으로 못박는 꼴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1기 정부가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서 엄청난 국제적 파장을 일으키고 반발을 샀는데, 한국 정부는 어떤 인식으로 저렇게 웹사이트에 적어두고 있는 것일까.

한국이 이스라엘에 편향적이었던 것은 이스라엘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 눈치를 지나치게 봤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한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별로 가깝다 할 사이는 아니다. 두 나라는 1962년 수교했지만 1970년대 산업발전에 바빴던 한국 정부는 아랍 산유국들을 당연하게도 더 중시했다. 중동전쟁과 오일쇼크를 지나며 1978년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아예 문을 닫았다. 대사관을 다시 서로 연 것은 1992~1993년이었다.
그 뒤 기술협력과 교역이 늘었고 2022년 말에는 자유무역협정(FTA)도 발효됐지만 2024년 기준으로 양국 교역량은 31억달러 수준이다. 1조 4000억 달러에 이르는 한국의 전체 교역에서 이스라엘 비중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면 청와대의 어떤 고위 간부처럼 미국 추종이 뼛속 깊이 배어있는 사람이거나, 종교적 영향이거나, 혹은 ‘이스라엘의 무기기술과 군사력이 엄청나다’는 신화에 빠져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혹은 유럽이) 밀어주지 않으면 우리 이스라엘은 아랍국들에 둘러싸여(혹은 이란 때문에) 존립이 힘들어진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고정 레퍼토리인데 말이다.
그 전에는 그저 미국 따라 자기네들 편을 들어줄 것으로 믿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앞으로 네타냐후가 한국에 오지는 않을 것 같다. 사실 한국과 이스라엘 간에는 정상급 외교 자체가 거의 없었다. 이스라엘 총리가 한국에 온 것은 수교 이후 딱 한 번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네타냐후였다. 1997년 8월 네타냐후가 첫 집권 때 방한했다. 한국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은 없었고 다자회의에서도 대화도 거의 없었다. 정부의 그간 입장과 달리 이스라엘에 대한 한국인들의 여론도 좋지 않다. 2025년 미국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이스라엘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 한국인은 31%에 불과했고 60%는 부정적이었다. 이라크전 이후 지난 20여년 동안 이스라엘에 대한 한국 내 여론은 계속 악화됐지만 특히 가자 학살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이란과의 관계와 비교하면 어떨까. 한국은 이란과도 1962년 외교관계를 맺었다. 주이란 한국대사관은 1967년, 주한 이란대사관은 1975년 개설됐다. 1977년 양국 우호관계의 상징으로 서울과 테헤란에 각각 ‘테헤란로’와 ‘서울로’가 만들어졌다.
정상외교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상호 국빈 방문이 전부였다. 그러나 한-이란 양국 관계는 꽤나 괜찮았다. 경제적 필요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과 긴밀한 관계이고 이란은 북한과 가까운 사이지만, 그럼에도 한국과 이란은 대체로 우호관계였다. 그런데 미국과 유엔이 핵 의혹을 들어 이란을 제재하면서 한국은 곤란한 처지가 됐다. 2020년 한국이 이란에 내줘야 할 석유값을 묶어둔데다가 국내 이란인들 개인 계좌까지 동결시켜 갈등이 불거졌다. 고유가이던 2008년 100억 달러에 이르렀던 양국 교역규모는 지금은 2억 달러도 안 된다.
여러 나라가 요즘 ‘전략적 자율성’을 언급한다. 자율성과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라도 국제 규범이라는 틀 안에 있어야 한다. 윤리적으로도 그게 옳고, 국제적 위상과 더 큰 역할을 위해서도 그게 맞다. 미국에 끌려다니면서 이스라엘을 맹목적으로 편들거나 이란과 적대하는 것은 국익에 배치된다. 이란과 대화 채널을 넓히고 우리 이익과 안전을 지키면서, 동시에 이란이 국제 수역인 호르무즈를 이용해 세계경제를 볼모로 잡는 것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제는 경제 대국이자 국제사회의 주요 행위자로서 중동 이슈에 손놓고 있을 수 없다. 이란이든 이스라엘이든, 반인도적 행위나 국제법을 어기는 짓을 할 때에 국제규범을 기준으로 우리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세상이 불안정하니 리스크가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의 몸집이 커지면서 생겨난 ‘뿌듯한 부담’이라 생각하면 나쁠 것도 없다.
참고문헌
- https://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1259561.html
- https://www.reuters.com/world/asia-pacific/south-koreas-lee-criticises-israel-detentions-says-actions-way-out-line-2026-05-20/
- https://www.jpost.com/international/article-893046
- https://www.aljazeera.com/news/2026/5/20/at-least-87-gaza-aid-flotilla-activists-abducted-by-israel-on-hunger-strike
- https://www.euronews.com/my-europe/2026/05/20/italys-pm-meloni-call-israels-treatment-of-gaza-flotilla-activists-unacceptable
- https://www.aljazeera.com/news/2026/4/30/act-of-piracy-world-reacts-to-israeli-interception-of-gaza-aid-flotilla
- https://www.nippon.com/en/japan-data/h02027/
- https://www.mofa.go.kr/www/nation/m_3458/view.do?seq=194
- https://unwatch.org/database/country-info/?country_voted=24263
- https://www.pewresearch.org/short-reads/2025/06/03/most-people-across-24-surveyed-countries-have-negative-views-of-israel-and-netanyahu/
- https://en.wikipedia.org/wiki/Israel–South_Korea_relations
- https://en.wikipedia.org/wiki/Iran–South_Korea_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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