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의 알바니아. 조용하던 이 나라에 정부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 시끄럽다.
발단은 지중해에 면한 즈베르네츠, 나르타의 해안지대에서 추진되는 초호화 개발 프로젝트다.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플라밍고와 바다거북 서식지를 침범한다며 반발했다. 5월 30일 개발업체가 철조망을 둘러치고 통행을 막자 시위가 시작됐다. 개발업체 사설 경비원들이 복면을 쓰고 환경운동가들과 충돌했는데 경찰은 보고도 방관해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시위는 수도 티라나로 번졌다. 플라밍고 모양의 피켓을 든 시위대가 연일 거리에 나와서 개발 중단과 외국인 투자 폐지, 에디 라마 총리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알바니아는 판매용이 아니다.” 시위대의 슬로건이다. 출발점은 환경 문제였지만 그 뒤에는 정부가 외국 자본과 결탁해 땅 장사를 하고 있다는 불만이 있다. 정부는 2024년 환경 관련 법률을 고쳐 보호구역 규제를 풀어줬다.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40억 유로 규모의 투자 프로젝트인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딸 이방카와 그 남편 재러드 쿠슈너가 끼어 있다. 쿠슈너의 투자회사 어피니티파트너스가 과거 군사시설이 있었던 사잔 섬에 14억 달러를 투자해 리조트를 짓기로 돼 있는 것이다. 카타르 투자사도 리조트 건설에 관여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과 소유권 분쟁이 끝나지 않은 땅도 포함돼 있고, 국유지가 민간 개발업자에 넘어간 과정도 투명하지 않다. 게다가 앞으로 지어질 리조트는 알바니아 보통 사람들은 가보지도 못할, 외국 부자들을 위한 것이다. 티라나 타임스는 시위에 대해 “정치적 연줄과 유명세를 등에 업은 사적 권력이 공적 책임 위에 군림하려 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설명했다. 취약한 제도, 환경 파괴, 권력의 오만함에 대한 분노가 합쳐지면서 리조트 건설 분규가 아닌 국민적 반발로 향해 가고 있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플라밍고 혁명’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시위가 더 확대될지는 알 수 없다. 이번 캠페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전통적인 야당이 주도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공산 체제 붕괴 이후 처음 나타난 독립적인 풀뿌리 운동이라는 평가도 있다. 시위대는 주로 서른 살 이하 젊은 세대다. 이들은 라마 총리뿐 아니라 정치 기득권 전체를 비판한다. 외국 자본이 권력과 손잡고 공공의 공간을 독점하려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알바니아는 요즘 유럽에서 관광으로 뜨는 나라다. 작년 외국인 방문자가 1200만명에 이르렀다. 라마 총리는 부가가치 낮은 계절성 관광을 넘어 글로벌 자본, 국제 브랜드, 그리고 더 부유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쿠슈너의 프로젝트를 고급 관광 산업 육성 비전의 일부로 선전하면서, 이방카와 쿠슈너가 리조트 예정지를 방문할 때 직접 안내하기도 했다.
알바니아는 뉴스에 많이 등장하는 지명은 아니다. 유럽 남동부 발칸 반도에 있는 나라인데 북쪽으로는 몬테네그로와 코소보, 동쪽으로는 북마케도니아, 남쪽으로는 그리스와 접경하고 있다. 서쪽은 지중해다. 면적은 약 2만9000㎢인데 험준한 설산에서부터 아드리아해와 이오니아해 연안을 따라 펼쳐진 비옥한 저지대 평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형을 갖고 있다. 역사는 길다. 일리리아인들이라 알려진 부족들이 거주하다가 로마 제국에 편입됐다. 로마가 동서로 갈라진 뒤 동로마(비잔틴 제국)의 일부가 됐다. 중세 때부터 여러 공국, 왕국들이 있었으나 15세기 오스만 제국에 편입됐고 1912년에야 독립했다.

독립 이후 왕정을 거쳤고 두 차례 세계대전 중에는 외국에 점령되기도 했다. 냉전 시기 공산주의 정권을 지나 지금은 의원내각제 공화국이 됐다. 2026년 구매력 기준 1인당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만5000달러인데 최근 발전이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유럽연합(EU)의 공식 가입 후보국으로 2022년부터 가입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인구 240만명 중 96%가 알바니아계이고 절반이 무슬림이다. 인구의 1%가 그리스계인데 이번 시위로 그리스와 외교 갈등이 일어났다. 부상자 중 한 명이 알바니아와 그리스 이중국적자였기 때문이다. 그리스 외교부는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리스 언론과 정치권은 알바니아 정부가 소수민족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고, EU 가입 후보국으로서 법치주의를 준수할 의무도 못 지켰다고 주장한다. 그리스계를 건드리면 알바니아가 EU에 가입하는 것 반대할 수 있다는 압박이다. EU 집행위원회도 동조하면서 알바니아의 가입을 더욱 엄격히 검증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리스는 과거에도 마케도니아를 상대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반대라는 압박 카드를 써서 나라 이름을 북마케도니아로 바꾸게 한 전례가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소수민족 문제라기보다는, 알바니아 정부의 투명성 부족, 법치주의의 취약성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럼에도 알바니아에서 그리스계가 오랜 세월 차별에 불만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그리스계는 주로 남부에 거주하고 있는데 알바니아가 독립한 이듬해인 1913년 독립을 외치며 봉기해 자치지역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치가 작동하지 않았고 공산 체제에서는 잠재적인 반체제 세력으로 간주됐다. 1990년 20만 명에 이르렀던 그리스계가 자유화 이후 대거 그리스로 이주해 이제 2만3500명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게 차별을 방증한다.

다시 트럼프 일가 얘기로 돌아가보자. 그들의 땅 욕심, 돈 욕심이야 유명하지만 어떻게 해서 알바니아에까지 투자하게 됐을까. 이방카 트럼프는 2024년 미국 팟캐스터와 인터뷰하면서 “여행하면서 친구 보트를 타고 바닷가를 돌다가 사잔 섬을 발견했고, 경치가 좋아 맨발로 하이킹한 게 인연이 됐다”고 했다. 쿠슈너가 가디언 인터뷰에서 말한 걸로는 세계 금융계 큰 손 로스차일드 일가인 친구가 소유한 요트를 타고 여행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로스차일드와 쿠슈너 모두 유대계다. 그 뒤에 트럼프 측근 리처드 그리넬을 통해 알바니아 투자 기회를 소개받았다고 했다.
그리넬은 트럼프 1기 때 독일 주재 대사와 백악관 국가정보국장(DNI) 대행을 지낸 사람이다. 대사 재임 시절 트럼프의 ‘코소보 특사’로도 활동했다. 코소보는 세르비아 안에 있는 알바니아계 지역으로 2008년 독립을 선언했다. 세르비아와 러시아는 인정하지 않지만 유럽국들과 미국은 독립국으로 인정한다. 코소보를 매개로 그리넬과 쿠슈너 부부의 ‘알바니아 인연’이 맺어진 셈이다. 그리넬은 대사 시절 극우 발언으로 독일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공직에 있으면서도 여러 사업과 로비에 관여해 논란을 빚었는데 지금은 쿠슈너를 위해 투자 중개역을 하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리조트 개발 계약을 성사시키는 데에 트럼프 권력이라는 뒷배가 과연 작용하지 않았을까? 알바니아는 지중해 해안선이 450킬로미터에 이르는데 공산정권 시절 엄격히 통제해 거의 개발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보호구역 토지가 민영화됐는지 불투명하다는 게 이번 시위 국면에서의 주요 쟁점이다. 쿠슈너는 로스차일드의 요트 위에서 라마 총리를 만났다는데, 그 자체가 특권적이다. 그후 알바니아 당국이 쿠슈너 측 투자회사에 특별 투자자 지위를 주고, 규제도 풀어줬다. 라마 총리는 쿠슈너 부부를 “특별한 파트너들”이라 부르면서 알바니아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해줄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투자계약 자체가 알바니아에 불리하다는 얘기가 있다. 건설 단계에서는 세금이 전혀 없고, 알바니아 정부가 물과 전기, 하수도를 포함한 모든 기반 시설을 책임지기로 했기 때문이다.
쿠슈너 부부의 개발 사업이 문제가 된 곳은 알바니아만이 아니다. 이웃한 세르비아에서는 작년 11월 의회가 수도 베오그라드의 옛 국방부 건물을 초호화 호텔로 개조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지정 문화유산 보호구역이었는데 정부 요청으로 의회가 규제를 풀었다. 그 사업도 쿠슈너의 투자회사가 돈을 댈 예정이었다. 당시 세르비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편을 들면서도 미국에 밉보이지 않으려 쿠슈너 쪽에 줄을 댔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법규를 완화한 다음달 세르비아 조직범죄 담당 검찰이 이 사업과 관련해 직권 남용과 문서 위조 혐의로 고위관교 4명을 기소했고 결국 쿠슈너는 손을 뗐다.
사실 쿠슈너의 투자회사는 미국 자산가들을 위해 일하는 회사도 아니다. 어피니티 파트너스에 투자된 자금 대부분은 미국이 아닌 외국 자금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의 국부펀드들이 돈을 대고 있다. 그들 역시, 쿠슈너가 트럼프 사위가 아니었으면 그렇게들 투자를 했을까.
세르비아에선 무산된 쿠슈너의 사업, 알바니아 해안 개발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될까. 시위가 계속되자 총리는 시위대 대표들에게 면담을 제안하면서도 “투자자들이 법적 절차를 다 지켰다”고 편을 들었다. 재산권 분쟁은 법원에서 해결할 문제일 뿐이라고 했다. 특별반부패검찰청(SPAK)이 개발구역 내 토지 소유권이 어떻게 민간에 넘어갔는지 수사에 들어갔으나 쿠슈너 쪽이 아닌 카타르 투자자 쪽에 조사를 집중하고 있다.
총리는 투자 프로젝트는 계속 추진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 3일에는 미국 CNN과 인터뷰하면서 “환경영향평가가 진행 중이다, 자연과 개발이 공존해야 하며 아직 사업은 시작되지도 않았다”고 했다. 라마 총리는 화가, 작가 출신이고 알바니아 권위주의 정부를 비판해서 명성을 얻었던 사람이다. 티라나 시장과 문화체육청소년부 장관을 거쳐서 2017년 총리가 됐으며, 경제 성장에 힘입어 4연임 중인데 이번에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해외 거주 알바니아인들까지 브뤼셀 유럽의회를 비롯해 스톡홀름, 베를린, 뮌헨, 토론토, 밀라노, 피렌체, 뉴욕, 볼로냐 등지에서 항의 시위를 했다. 투자와 개발도 중요하지만 이방카-쿠슈너 부부의 돈을 늘려주느라 플라밍고들을 쫓아내는 일은 없어야 할텐데 말이다.
참고문헌
https://www.tiranatimes.com/albanias-zvernec-revolt/
https://albaniandailynews.com/news/from-protected-park-to-trump-linked-playground-how-albania-is-privatising-its-coastline
https://www.politico.eu/article/jared-kushner-resort-albania-flamingo-revolution-protest/
https://www.occrp.org/en/news/albania-freezes-assets-in-kushner-resort-probe
https://balkaninsight.com/2026/06/03/albanian-protests-mount-against-kushner-linked-luxury-resort/bi/
https://apnews.com/article/albania-kushner-trump-development-protest-tourism-sazan-8d7d0e216c28d23fe1b2e51cbb05b926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6/jun/04/protests-in-albania-grow-over-jared-kushner-backed-luxury-resort
https://www.thedial.world/articles/news/issue-29/donald-trump-jared-kushner-albania
https://www.ft.com/content/da95388e-324f-449f-9f1e-3fd6289ed649?syn-25a6b1a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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