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휴전 협상은 막바지로 가고 있으나 호르무즈는 여전히 시끄럽다.
좁은 바닷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이란과 오만이 협상을 시작했다. 오만 측은 ‘통행료는 안 받겠다’는 이란의 확답을 받았다 했고 미국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선을 딱 그었다. 하지만 지금 논의 중인 ‘호르무즈 항행 메커니즘’에 통행료 아닌 다른 명목으로 돈을 걷는 조항이 들어갈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미들이스트아이는 이란이 미국과의 60일 휴전 합의가 끝나는 대로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게서 ‘보험료’를 걷고 싶어한다고 19일 보도했다. 휴전 기간에는 배들에 요금을 매기지 않기로 미국과 합의했지만 그 기간이 끝나면 모종의 비용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해협 관리 ‘서비스 요금’, 보험료 등 여러 얘기가 오간다.
이란은 이미 ‘페르시아만해협청(PGSA)’을 설립하고 그 이름으로 해운업계에 서한을 보냈다. 해운 전문매체 로이즈리스트가 보도한 서한 내용에 따르면 선박 소유자들에게 ‘무료로’ 보험을 제공할 것이며, 모든 선주들이 가입해야 한다고 했다. 해협청이 앞으로 통행 허가증을 내주고 통행 신청을 처리할 것이며, 이란 라라크 섬 옆을 지나는 항로를 지켜야 한다고 못박았다.
해협의 가장 좁은 지점은 약 54km이지만 실제 항로는 훨씬 좁다. 국제해사기구(IMO)가 공식 채택한 호르무즈 항로는 오만 영해에 있는데 이란 영해만 지나는 다른 항로를 제시했다. 이를 어기면 ‘제재, 통행 허가 취소와 추가 법적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지만 일단 ‘유보’할 것이며, 향후 보험료를 도입할 권리도 유보한다고 적었다.

해협을 잡고 통행료를 걷는 일에는 긴 역사가 있다.
북유럽 발트해 길목은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 외레순 해협인데 몇 백 년 동안 덴마크가 통행료를 받다가 1857년 없앴다. 비잔틴,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흑해와 지중해 입구인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에서 통과세를 걷었다. 호르무즈는 당연히 오래 전부터 지배자들이 욕심내는 길목이었다. 고대 페르시아부터 칼리프 제국까지 모두 관문을 차지하고 돈을 벌었다. 16세기 해협을 차지한 포르투갈은 ‘카르타스’라는 면허 제도를 만들어 수익을 챙겼다.
지금도 운하나 인공 수로는 건설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대개 통과료를 받는다. 이집트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를 지나는 선박은 톤수와 화물에 따라 수만~수십만 달러를 내야 한다. 발트해와 북해를 잇는 독일의 킬 운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해협은 다르다. 바닷길을 잡고 해협 안쪽 나라들의 목줄을 죄는 걸 막기 위해, 어느 나라 영해이든 국제법을 적받게 했다.
호르무즈에는 이란과 오만 영해만 있고 공해는 없다. 1959년 이란이, 1972년 오만이 각각 영해를 12해리로 확장하면서 공해가 사라졌다. 이란이 돈을 걷겠다 할 경우 국제법적 쟁점은 첫째, 이란에 유엔해양법이 적용되느냐는 것이다. 유엔해양법은 연안과 공해를 비롯해 해양의 모든 것을 다루는 포괄적인 조약으로 ‘바다의 헌법’이라 불린다.
이란은 협약에 서명했지만 비준은 하지 않았다. 협상할 때에도, 서명할 때에도, 그 이후에도 계속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에 국제법상 ‘지속적인 이의 제기국(persistent objector)’으로 간주된다. 이럴 경우 관습적으로, 이란에 국제법을 강제해선 안 된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반면 오만은 협약 비준국이고 통행료가 “우리가 가입한 국제 협약에 어긋난다”고 반대한다.
두번째 쟁점은 유엔해양법의 구체적인 기준에 있다. 이란은 자기네 영해에 국제법 상 ‘무해통항(innocent passage)’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미국을 비롯한 대다수 국가는 ‘통과통항(transit passage)’ 권리를 주장한다.
무해통항은 말 그대로 연안을 지나가는 배가 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안국은 안보상 필요, 범죄 감시 등을 이유로 배들을 정지시킬 수 있다. 외국 군함이 지나갈 때에는 사전 통보나 허가를 요구할 수 있다. 잠수함도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국기를 달아야 한다. 통과통항은 ‘국제 해협’에 적용되는데, 연안국은 어떤 이유로도 배를 정지시킬 수 없다. 잠수함은 해저로 다녀도 되고, 군함도 사전 통보나 허가 없이 지나다닐 수 있다.
한 줄로 요약하면 무해통항은 주권 우선, 통과통항은 항행의 자유 우선이다. 호르무즈는 국제해협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이란과 오만의 영해 주권은 유엔해양법의 제한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란은 오래 전부터 무해통항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무해통항이든 통과통항이든, 지나는 배에 통과료를 매길 수는 없다. 하지만 안전 제공 등 어떤 ‘서비스’를 연안국이 해줬다면 비용을 물릴 수 있다. 예를 들어 호주는 파푸아뉴기니와 공유하는 토러스 해협에서 선박에 안전 관리 비용을 매긴다. 튀르키예도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 선박에 안전·구조·환경 서비스 명목으로 요금을 받는다. 영국과 아일랜드 영해에서도 선박 통행료가 부과되지만 국가가 아니라 등대 관리기구인 트리니티하우스가 소요 비용만 걷는 정도다. 오만 역시 해군 관련 단체를 통해 지형이 험한 해안에서 안전 관리 비용을 걷고 있다.
이란이 말하는 ‘보험료’도 통행료를 우회하는 개념으로 정당화될 여지는 있다. 그러나 이란과 오만이 협상해서 선박에 사전 승인을 요구하는 메커니즘을 만들 경우, 배가 바다를 지날 ‘권리’가 ‘돈 주고 사는 허가’로 바뀌게 된다. 말라카(동남아시아), 바브엘만데브(홍해), 지브롤터(지중해) 등 다른 해협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미 지난 4월 인도네시아 재무장관이 아시아의 핵심 무역로인 말라카 해협의 통과료 얘기를 꺼냈다. 지난해 말라카 해협을 지나간 배가 10만 척이 넘었다. 연안국들이 바닷길 관리에 돈을 쓰는데 수익은 없다는 볼멘 소리가 종종 나오곤 했는데 호르무즈를 계기로 논란이 다시 일어난 것이다. 연안국인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모두 반대하는데다 인도네시아 외교장관이 나서서 “통행료는 적절하지 않다”고 밝혀 일단락됐지만, 이란이 유엔해양법의 기본 틀을 흔들어버리면 여기저기 따라쟁이들이 나올 수 있다.
국제법으로 대응할 방법은 없는 걸까.
유엔해양법은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라는 분쟁 해결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해양법협약 비준국들은 오만을 여기 제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란은 비준국이 아니니 제소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국제사법재판소(ICJ)를 활용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1949년 영국 군함이 알바니아 영해에서 기뢰 폭발로 피해를 입은 ‘코르푸 해협 사건’에서 “국가들은 평시에 국제 해협을 허가 없이 통과할 권리가 있다”며 통과통행 조항의 원칙을 세운 게 국제사법재판소였다.
이란이 해협 관리 비용을 요구한다면, 실제로 제공한 관리서비스에 맞게 요금을 제한하도록 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얼마 전 그리스 해운재벌이 “통행료를 내는 게 막대한 전쟁 보험료를 내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가 논란을 빚었다. 그리스는 해운 대국이고, 그리스 선주 가문들이 세계 선박의 약 20%를 갖고 있다.
해운업계는 현실적인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겠지만 유엔해양법 체제와 세계 경제가 흔들리지 않게 하려면 결국 정치적 해법이 필요하다.
미국은 오만을 윽박질러 이란을 돕지 못하게 하는 쪽을 선호하는 듯하다. 마리타임이그제큐티브는 “미국 또한 호르무즈 통과 비용 문제는 미국의 핵심 이익이 아니고, 강력하게 반대할 사안도 아니라는” 태도에 가깝다고 보도했다. 불법 공격을 저지른 미국은 이란에 피해를 물어줄 생각이 없는 것 같고, 오히려 유탄을 맞은 걸프에 부담을 지우려 한다.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 중 오만을 뺀 바레인·쿠웨이트·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5개국은 국제해사기구를 통해서 선박 회사들에게 ‘이란 지시에 따르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걸프 국가들의 입장은 조금씩 다르다.
사우디는 일단 이란을 달래며 분쟁을 누그러뜨리자는 쪽이고, 파키스탄에서 열린 미-이란 협상에도 적극 힘을 보탰다. 무엇보다 사우디에는 호르무즈 말고도 원유를 수출할 우회로가 있다. 아랍에미리트도 우회로가 있으나, 이란을 적대시해 이스라엘과도 손잡은 판이고 통행료에도 강하게 반대한다.
제일 큰 피해를 입었고 우회로도 없는 카타르, 역시 우회로가 없지만 사우디를 대체로 따르는 바레인과 쿠웨이트 등은 현실적으로 힘이 없다. 바레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호르무즈 해협 안전보장 결의안을 냈지만 러시아와 중국이 거부해 부결됐다.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고,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미-이란 분쟁이 해결돼 통행료 얘기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게 안 된다면 각국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의 호르무즈 관리 체제가 만들어져야 하고, 한국도 포함해서 이해관계가 큰 국가들이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튀르키예가 흑해-지중해 통로에서 배들을 통제하는 것은 1936년 몽트뢰 협약이라는 국제법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이란이 세계를 상대로 ‘삥 뜯을’ 필요가 없도록 제재를 풀어주는 것, 통행료보다 자유로운 항해와 교역이 이란에도 이익이 되게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트럼프가 이란 핵합의를 멋대로 내팽개친 여파가 여기까지 왔다. 해협을 인질로 잡은 것은 이란이지만 지금 더 불신받는 쪽은 미국이다. 통행료에 맞설 국제법적 수단이 마땅찮은 것보다 미국이 약속을 지키도록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게 세계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 참고 자료
https://maritime-executive.com/article/will-passage-fees-be-charged-in-the-strait-of-hormuz
https://www.un.org/depts/los/convention_agreements/texts/unclos/unclos_e.pdf
https://www.unclos.net/what-is-unclos/
https://www.thenation.com/article/world/iran-strait-of-hormuz-international-law/
https://asiatimes.com/2026/04/us-has-left-malaccan-states-no-choice-but-to-charge-tolls/
https://valuechainasia.com/articles/geopolitics/malacca-strait-toll-proposal-transit-fee-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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