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구정은의 '현실지구'

러시아의 수상한 경고, 남극에선 무슨 일이?

딸기21 2026. 8. 29. 19:36

남극은 이제부터 봄이다. 북반구의 여름이 끝나갈 무렵 남극행 항로에는 비행기가 뜨기 시작한다. 남극 연구기지를 둔 나라들이 인력과 장비와 물자를 수송하는 때인 것이다. 미국도 19일 C17 수송헬기를 띄웠다. 그런데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를 떠난 지 2시간 반 만에 회항했다. 뉴질랜드 항공당국이 항공고시보(NOTAM)를 띄워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헤럴드 등에 따르면 전날 러시아가 “예정된 미사일 발사계획”과 함께, 뉴질랜드의 비행정보구역(FIR)에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통보를 해왔다고 한다. 비행정보구역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지정한 영공 관할구역을 말한다. 관할 국가가 기상정보, 항공고시보, 항공교통관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책임을 진다. 주권이 미치는 ‘영공’과는 다른 개념이며 공해까지 포함할 때가 많다. 관할국은 위험 정보를 제공할 뿐, 공해에서 벌어지는 활동을 통제할 수는 없다.

 

The US Air Force C-17 Globemaster pictured soon after take-off from Christchurch Airport on Tuesday. Photo / Graham Sutherland ❘ New Zealand Herald

 

이런 경우 ‘위험’은 대체로 지구 대기권으로 떨어지는 인공위성이나 미사일 파편 따위를 가리킨다. 하지만 이번엔 좀 이상했다. 발사 지점으로 예상된 바다에서 러시아 선박이 전혀 포착되지 않은 것이다. 7월 6일 중국이 남태평양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했을 때에는 궤적을 관측하고 파편을 수거하기 위해 추적선 3척을 파견했다. 그런데 이번에 러시아 측에선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발사하지 않을 거면서 마치 발사할 것처럼, 거짓 정보를 흘려 적대국에 혼란을 주는 러시아식 하이브리드전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실제로 시기가 미묘했다. 이달 2일 이탈리아 해군이 EU 합동팀을 이끌고, 제재를 피해 몰래 화물을 실어나르는 러시아의 이른바 ‘그림자 함대’ 유조선에 승선 검사를 했다. 뉴질랜드도 해상 제한조치를 통해 대러 제재에 동참해왔다. 열흘 뒤인 1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태평양 쿠릴열도에서 실시된 대규모 해군훈련을 참관한 뒤 연설하면서 “몇몇 나라들이 국제해양법을 어기면서 러시아 선박 이동을 막으려 하니 우리도 대응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대응은 태평양함대의 관할구역을 포함해 어떤 곳에서든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태평양함대의 관할구역은 아시아태평양 전지역에 이른다. 그 뒤에 뉴질랜드 주변에서 미심쩍은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뉴질랜드가 경고를 발령한 해역은 남섬에서 남서쪽으로 1900킬로미터 떨어진 로스해 부근인데 이 항로를 오가는 비행기는 미국, 뉴질랜드, 호주의 군용기뿐이다. 공해상에서 잠수함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제한하는 국제법은 없다. 미사일 발사 ‘가짜 경고’에 대한 규정은 당연히 없다. 국제 규범의 공백을 이용해 무력을 과시해온 러시아가, 이번에는 위협 행위 자체를 정보전에 활용한 것일 수 있다.

 

가짜 정보였다 하더라도 뉴질랜드로선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2010년 일본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존 키 당시 총리가 러시아 대통령이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게, 러시아 미사일이 뉴질랜드까지 닿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물었다. 메드베데프는 “22분 걸린다고 하니 미리 전화하겠다”며 웃었다고 한다. 메드베데프에게는 농담이었지만 뉴질랜드에는 간담이 서늘한 말이었을 것이다. 국제 시사전문지 더디플로맷이 19일 소개한 일화다. 쿠릴열도 해군 훈련 때 러시아 타스통신은 메드베데프가 말했던, 뉴질랜드까지 22분만에 도달한다는 바로 그 미사일이 탑재된 잠수함 사진을 띄웠다. 그러고 이번 미사일 경고 소동이 일어나자, 뉴질랜드 정부는 러시아 측에 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추가 정보를 요청한 상태다. 

 

극지방을 둘러싼 강대국 경쟁은 갈수록 가열되고 있다. 지구 전체를 대상으로 위치 정보를 알려주는 범지구위성항법시스템(GNSS)만 해도 그렇다. 대표적인 게 미국의 GPS, 러시아의 글로나스, 중국의 베이더우인데 이 세 나라는 남극에 각각 자국산 위성항법시스템의 지상국을 두고 있다. 이 시스템은 핵미사일의 시간 동기화와 위치 측정에 쓰인다. 극지 지상국은 국방의 신경망인 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감시·정찰(C4ISR) 체계의 핵심 요소인 셈이다.

 

The Russian Bellingshausen Station in Antartica (Vanderlei Almeida/AFP via Getty Images)

 

러시아는 남극에 상주 기지 5개를 비롯해 11개 기지를 갖고 있다. 2021년 국가안보전략 ‘2030 남극 행동계획’, 2022년 해양 독트린, 2023년 대외정책 개념 등은 “러시아의 안보와 외교정책에서 남극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경제적 이권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2024년 푸틴은 2년간의 남극 탐사에 “대규모 재정 투자”를 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 해 러시아 국영 지질탐사기업은 남극 심해에 석유 5110억 배럴 분량의 화석연료가 묻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더니 지난해 10월 남극 관련 회의를 앞두고 러시아가 병합한 크름반도에서 우크라이나 출신 과학자가 갑자기 체포됐다. 그의 변호인들이 제공한 문서를 호주 ABC방송이 입수해 공개했다. 러시아가 남극 대륙붕 에너지자원 채굴을 노리고 남극 해양보호구역 설정에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1959년 미국과 소련을 포함해 남극에 과학자들을 파견해온 12개국은 남극조약을 체결했다. 남극을 어느 나라의 소유도 아닌 것으로 규정하고, ‘협의당사국’들이 합의해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지금은 협의당사국 29개국을 포함해 조약 서명국이 58개국에 이른다. 조약에 따라 남극 대륙은 “오직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되며, 군사 활동은 금지된다. 가입국들은 기지, 선박, 항공기를 사찰받아야 한다. 그런데 2018년 러시아는 일부 기지의 사찰을 거부했다. 러시아가 수로 조사를 명분으로 잠수함 동원해 정보수집하고 있다는 얘기가 전부터 나왔었다. 

 

환경 보호와 관련해서는 1998년 채택된 남극조약 부속 마드리드 의정서에 “과학 연구를 제외한 광물 자원과 관련된 모든 활동은 금지된다”고 명시됐다. 어떠한 광물도 채굴이 무기한 금지돼 있는데 러시아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모양이다. 하기야, 미국은 그린란드를 빼앗아 자원을 캐내겠다 하는 판에.

 

중국은 1985년 남극조약에 가입하면서 협의당사국 지위를 얻었다. 상주 기지 3개를 포함한 기지 5개와 쇄빙선 두 척을 갖고 있다. 중국은 해양 관련된 모든 활동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해양영역인식(MDA) 역량 구축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남극에 정보통신망을 구축해 해상 감시와 통제력을 강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중국은 2018년 발표한 북극정책 백서에서 스스로를 '근(近)북극국가'로 공식 규정했고, 러시아를 발판 삼아 접근을 늘리고 있다. 북극에 비하면 아직 남극에서 중국의 행보는 공세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남극 해역은 태평양을 둘러싼 강대국 경쟁과 떼어놓을 수 없다. 미국의 태평양 방어 개념인 이른바 도련선(Island Chain)으로 보자면 남극 해역은 제3의 도련선, 최후의 방어선으로 간주된다. 

 

미국은 냉전 시절부터 태평양 전체를 앞바다처럼 여기면서 러시아와 중국의 접근을 막아왔다. 그런데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면서 미군 항모체제에 공백이 생겼다. 중동의 항모와 교대하도록 서태평양에 있던 조지워싱턴호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자칫 태평양에 미군 항모가 없는 상태가 몇 달 간 지속될 수 있다. AP통신은 군사전문가의 말을 빌어 “이란 전쟁 때문에 미국의 항모 운용이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틈을 타 중국과 러시아의 무력 과시가 늘어날 것이고, 남극 주변도 갈수록 시끄러워질 것 같다. 황제펭귄을 '특별보호종'으로 지정하려는 구상조차 남극조약 회의에서 번번이 무산될 정도이니, 얼음 대륙의 안녕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참고자료

https://edition.cnn.com/2026/08/19/us/us-air-force-antarctica-flight-space-activity-hnk

https://www.nzherald.co.nz/nz/winston-peters-asks-russia-about-missile-warning-after-us-antarctic-flight-turns-back/7YK36H4EVJAEZCJEBKFBYOTXAQ/

https://www.space.com/space-exploration/launches-spacecraft/mysterious-russian-space-activity-causes-us-air-force-flight-to-antarctica-to-turn-around-report

https://www.reuters.com/world/europe/italian-led-eu-force-boards-sanctioned-tanker-russias-shadow-fleet-mediterranean-2026-08-02/

https://www.thepost.co.nz/politics/361065159/nz-seeking-answers-over-russian-missile-warning-disrupted-us-flight

https://thediplomat.com/2026/08/russia-issues-missile-test-warning-to-new-zealand/

https://apnews.com/article/aircraft-carriers-trump-china-pacific-iran-war-87cfb838de8c13464fa3cab1840ad87d

https://www.rferl.org/a/putin-russia-shadow-fleet-sanctions/33827667.html

https://geopolitics.reva.edu.in/circular-detail/military-and-mining-ambitions-of-russia-and-china-threaten-the-antarctica-treaty

https://www.shinkim.com/kor/media/newsletter/3327

https://www.lowyinstitute.org/the-interpreter/russia-s-antarctic-posture-provokes-but-don-t-invoke

https://www.csis.org/analysis/chinas-slbm-test-underscores-importance-ballistic-missile-launch-notification-agreement

https://www.politico.com/news/magazine/2026/05/08/ukraine-war-russia-antarctica-vernadsky-00910436

https://www.gisreportsonline.com/r/polar-compet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