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지(Panj) 강. 중앙아시아를 흐르는 아무다리야 강의 지류다. 900킬로미터가 넘는 판지 강은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나누는 경계선이다. 판지강 계곡을 따라 협곡과 바위산이 이어지는 파미르 고원은 멀리 히말라야에서부터 힌두쿠슈, 카라코람, 중국의 톈산과 쿤룬 등 험준한 산맥들이 만나는 곳이다. 그래서 19세기부터 영국 탐험가들은 파미르를 ‘세계의 지붕’이라 불렀다.
7월임에도 해발고도 4000미터를 넘어서면 하루에 사계절을 다 만날 수 있는 곳.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를 출발해 파미르로 가는 길은 거칠었다. ‘황량’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곳을 묘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단어가 아닐까 싶었다. 계곡을 따라가는 내내 오른편에는 아프간의 메마르고 척박한 풍광이 함께 했다. 저런 곳에서 전쟁을 치르려 한 미국은 대체 얼마나 무모했던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새삼스레 밀려왔다. 타지키스탄 쪽인 이편은 포장도로, 저편은 흙길. 이편은 컬러, 저편은 모래빛깔. 백 걸음도 되지 않을 건너편에 강바닥에서 퍼낸 모래가 쌓여 있다. 탈레반의 사금 채취장이다. 바위산 계곡에 다이너마이트가 터지고 모래먼지가 솟아올랐다.

이 고산지대에서 19세기 영국과 러시아가 세력 경쟁을 벌였다. 그들끼리 ‘그레이트 게임’이라 불렀던 그 경쟁의 산물이 아프간 북동쪽 끝에서 동쪽으로 뻗은 와한 회랑(Wakhan Corridor) 지대다. 북쪽으로는 타지키스탄, 남쪽으로는 파키스탄과 접경하고 멀리 동쪽 끝부분은 중국 신장과 닿아 있다. 러시아와 영국이 완충지대로 이곳은 둘 다 차지하지 않은 채 남겨뒀는데, 파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이 독립국가가 되면서 여러 나라에 둘러싸인 복잡한 땅이 돼버렸다. 강 가운데 작은 섬에 타지키스탄이 국경시장을 세우고 아프간인들이 오가게 해주고 있지만, 총 든 군인들이 지키는 다리 입구부터 외국인은 출입금지였다.
저 멀리 동쪽 끝 중국 국경지대로 가는 컨테이너 트럭들이 먼지 날리며 줄이어 가는 M41 도로, 흔히 ‘파미르 하이웨이’라고 불린다. 우즈베키스탄 테르미즈에서 출발해 타지키스탄을 지나 키르기스스탄의 오슈까지 이어진다. 고속도로를 의미하는 하이웨이가 아니라 말 그대로 높이 있는 길이다. 아스팔트 포장은 군데군데 끊겨 있고 높이가 올라갈수록 구멍이 숭숭 뚫려 차라리 흙길이 편하다. 메마른 산에서 굴러떨어진 바위들이 곳곳에서 가로막는다. 하지만 이 길의 역사는 유라시아의 역사와 함께 유유히 흘러왔다. 기원전 2세기 한 무제 때 비단길을 열었다는 장건(張騫)이 지나간 길이자 불교 순례자들의 고행길이었고 후대에는 마르코 폴로가 지나간 길이라 한다. 영국과 다투던 19세기 러시아가 실크로드 옛 길을 따라 군사도로를 만들었고 소련 시절인 1937년 현대적인 도로 형태를 갖췄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파키스탄의 카라코룸 하이웨이, 중국 서부와도 이어졌다.

과거의 영광을 보여주는 성채들을 지나 불룬쿨 마을로 가는 길. 이제부터는 파미르 강을 따라 본격적으로 고원을 향해 올라간다. 3000미터를 넘어서면서부터 바람이 차가워졌다. 4300미터 하르구쉬 호수에 이르니, 높긴 높았다. 호숫가에 다녀오느라 30미터 남짓 뛰었을 뿐인데 고산증이 없어도 숨이 가빴다. 건기라 물이 줄어든 호수 몇 곳을 더 지나니 검푸른 불룬쿨 호수가 나온다. ‘쿨’은 호수라는 뜻이다. 호수에 기대어 사는 불룬쿨 마을은 겨울 최저기온이 영하 63도를 찍었다는 곳이다. 흙집 몇 채에 열 다섯 가구가 사는 이 산꼭대기 마을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전력 사정이 다른 곳보다 좋고, 와이파이도 된다!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스타링크는 보이지 않지만, 파미르의 밤하늘에 북두칠성은 잡힐 듯 가까이 있었다.
불룬쿨을 떠나, 여행의 정점인 카라쿨로 가는 길. 해발 4650미터, 파미르하이웨이의 최고점인 악바이탈 고개를 넘을 때에는 눈이 쏟아졌다. 양 옆의 바위산들은 비현실적이었다. 어쩌면 내가 화성에 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파미르를 찾은 것은 ‘화성 같고 목성 같은’ 풍경을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이곳은 ‘풍경’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아름답다는 말은 더더욱. ‘경기차 좋다’는 말도 맞지 않는다. 그저 까마득한 어딘가에, 이상하고 장엄하고 낯선 곳에 서 있는 기분이랄까.
마침내 카라쿨에 다다랐다. 호숫가 작은 마을 게스트하우스에 도요타 랜드크루저로, 모터바이크로, 자전거로, 심지어는 걸어서 파미르하이웨이를 넘는 관광객들이 모여들었다. ‘검은 호수’라는 뜻의 카라쿨은 고기가 못 사는 짠물 호수다. 가운데에 작은 반도와 섬이 있다. 그 지형을 경계로 이쪽은 얕고 저쪽은 깊단다. 그래서 이쪽은 파랗고 저쪽은 검다고 했다. 어제의 눈보라가 언제 일이었나 싶을 정도로 눈부신 햇살과 눈부신 호수, 아침의 카라쿨은 잊지 못할 장관이었다.


하이웨이를 떠나 파미르 안쪽, 바르탕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 바르탕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 고지대 개울가에 꽃들이 피어 있다. 타지크어로는 추쿠리, 파미르 말로는 ‘와다르’라 불린다는 풀의 줄기를 뚝 끊어 껍질을 벗겨 베어먹으면 아삭아삭 새콤하고 시원하다. 파미르족 가이드 함로즈가 가리킨 곳에 남북극을 빼면 세계에서 가장 긴 빙하인 페드첸코(반치-야흐) 빙하가 보였다. 자갈과 모래가 섞인 빙하 녹은 물이 회색빛으로 계곡을 덮으며 흘러간다. 파미르 고원 면적의 약 10%(12,500㎢)가 빙하로 덮여 있다. 하지만 세계의 지붕도 기후변화를 피해갈 수는 없다. 파미르 하이웨이가 실크로드 시절부터 이용됐던 것은 워낙 건조해 겨울에도 눈이 많이 오지 않아 길이 끊기지 않는 덕분이었다. 강수량은 더욱 줄고 있고, 빙하도 줄고 있다.
빙하가 녹으면 하류에는 물폭탄이 쏟아진다. 2022년의 파키스탄 대홍수처럼. 그렇게 몇 번 반복되고 나면 그 뒤에는 되돌릴 수 없는 가뭄이 올 것이다. 자갈로 덮인 아슬아슬 굽이길, 험악하기 짝이 없는 쿠자르 패스를 따라 내려간다. 3년 전 스위스 커플이 계곡길을 오르려다 조난당해 두고갔다는 캠핑카가 사정없이 구겨진 채 강변에 버려져 있다. 빙하마저 쪼그라들게 만드는 인간의 파괴력은 얼마나 오만한가. 그러나 또한 대자연의 파괴력 앞에 인간은 또 얼마나 무력한가.
해발 3000미터, 바르탕 계곡 꼭대기 쿠다라 마을에는 2016년에야 전기가 들어왔다. 그 전 해에 지진이 일어나 민심이 안 좋아지자 에모말리 라흐몬 대통령이 오지 중의 오지인 이곳을 찾았고, 그 덕에 전기가 들어왔다고 한다. 이 마을 출신인 함로즈는 모스크바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일자리가 없어 투어 가이드를 한다. 여행철이 석 달 밖에 안 되기 때문에 연중 아홉 달은 집에서 논다. 그의 집은 전통적인 파미르 가옥인데, 천장 꼭대기는 하늘을 향해 뚫려 있다. 타지키스탄은 주민 대부분이 무슬림 수니파이지만 파미르는 시아파의 한 갈래인 이스마일파다. 파미르 가옥에는 이슬람 이전 중앙아시아의 종교였던 조로아스터(배화교)의 신 아후라마즈다를 섬기던 불구덩이와, 이슬람의 천사들과 선지자들을 상징하는 들보와 기둥들이 합쳐져 있다.

아프간 쪽 일부를 제외하면 파미르 고원 대부분 지역은 타지키스탄의 고르노바다흐샨 자치주(GBAO)로 이뤄져 있고, 토착어를 쓰는 파미르족들이 산다. 면적은 타지키스탄 국토의 절반에 가까운데 인구는 23만명, 전체의 2%에 불과하다. 소련은 1925년 파미르를 별도의 자치공화국으로 만들었다가 4년 뒤 타지키스탄 내 자치주로 격하시켰다. 그래도 소련 시절에는 국경의 전략 요충지라는 점 때문에 교육이나 인프라 면에서 우대를 받았다고 한다. 타지키스탄이 1991년 독립할 때에도 파미르는 분리독립을 고민했으나, 잠시 독립을 선언했다가 철회했다. 겉보기엔 평화로운 산골 마을들이지만 2010년대 이후 반정부 시위가 적지 않았다. 2022년 5월에는 파미르 청년 정치인이 고문·살해되자 자치주 중심도시 호로그에서 시위가 일어났고, 정부군이 발포해 40명이 사망했다. 인권단체들은 이를 ‘민족 청소’로 비판하기도 했다.
열 하루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두샨베는 더웠다. 전체 인구 1090만명 중 120만 명이 여기 모여 산다. 6000년 역사를 안고 있는 타지키스탄인데, 중앙아시아 이슬람의 중심이었던 사마르칸드와 부하라를 소련이 우즈베키스탄에 넘겨버린 것은 뼈아픈 일일 것이다. 소련은 ‘바스마치’라 불리던 게릴라의 저항을 진압한 뒤 1924년 이곳에 소비에트자치공화국을 세웠고, 1929년 연방 공화국으로 격상시켰다. 역사적으로 페르시아(이란) 문화권이던 이곳에서 이란과의 연계를 끊기 위해 이들의 언어를 이란어가아닌 ‘타지크어’로 규정하고 키릴 문자를 쓰게 했다. 2차 대전에 타지크인 26만명이 끌려갔고 절반 가까이가 전사했다.


1991년 9월 독립을 선언했으나 곧바로 내전이 발발했다. 사망자가 10만 명이 넘었다. 러시아계는 40만 명 중 2만 명만 남고 다 떠났다. 독립 이후 지금까지 라흐몬 대통령 1인 지배가 계속되고 있다. 반발이 없느냐는 물음에, 두샨베에서 만난 친구 사이드마마드는 “예전엔 있었는데 요새 경기가 좀 좋아지면서 사라졌다”고 했다.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 6300달러, 세계은행 분류에 따르면 타지키스탄은 중위소득 국가 가운데 아래쪽에 있는 나라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7%가 넘었고 빈곤율은 2010년 55%에서 2025년 15%로 뚝 떨어졌다. 실제로 두샨베는 도시 전체가 공사판이어서 건설붐을 실감케했다. 하지만 물도 없고 인구도 적고 제조업도 없는 이곳의 경기를 지탱하는 주축은 밖으로 나간 타지크인들이 보내오는 송금이다. 해외로부터의 송금이 GDP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수출 대부분은 금·은 등 광물 채굴과 알루미늄 생산이 차지하는데 거의 다 중국으로 간다고 한다.
금테 두른 발코니들이 줄줄이 달린 고층 아파트가 블록마다 올라가는 두샨베, 소련 시절의 모자이크 벽화와 그 시절 물건들을 관광객들에게 파는 기념품 가게, 전국을 덮은 대통령의 사진들, 지금은 닫힌 아프간과의 ‘우정의 다리’, 중국이 뚫어줬다는 느닷없는 고속도로와 터널들, 10년 전에야 전기가 들어온 산골 마을, 스타링크와 연결된 하늘 밑 산꼭대기 호숫가. 타지키스탄은 이 모든 것들이 뒤섞인, 풍광은 장엄하고 사람들은 따뜻한 곳이었다. 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곳에는 이처럼 과거와 미래가, 종교와 이념이, 갈등과 환대가 혼재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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