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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 베트남이 ‘미국의 재침공‘ 걱정하는 이유는

딸기21 2026. 2. 13. 21:51

미국이 또다시 침공해올까봐 베트남이 걱정하고 있다면?

 

1975년에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났으니 50년도 넘었다. 그런데 미국이 다시 침공을? 터무니없는 걱정 같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베트남 지도부는 그런 걱정을 하고 있나 보다. 베트남군 내부 보고서를 ‘88프로젝트’라는 단체에서 입수해 이달 초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 군은 미국이 만에 하나 침략해올 수도 있다면서 대비하기 위한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공개한 단체 측에서는 “이 문서뿐 아니라 여러 문서에서 비슷한 시각이 보인다”면서 “베트남 군이나 공산당 내 일각의 시각이 아니라 여러 부처가 공유하고 있는 생각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AP통신은 "미국과 외교관계를 최고수준으로 격상한 1년 뒤에 베트남은 미국 침공에 대비하는 문서를 만들었다"고 적었다.

 

‘미국 2차 침공 계획(357/KH-BTL)’으로 알려진 이 문서는 2024년 8월 1일 베트남 해군이 발행한 문서다. 문서는 첫 장에서 미국에 대해 ‘자국의 궤도에서 벗어나는 국가들을 침공하는 호전적 초강대국’으로 규정했다. “현재로서는 전쟁 가능성이 크지 않다. 그러나 미국의 호전적 성격을 고려할 때,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침략 전쟁을 벌일 구실을 만들어내지 못하도록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2025년 11월 2일 하노이를 방문해 또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오른쪽)과 회담하는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 ❘ AP

 

침공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본격 침공에 앞서 미국이 선제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면서 미국이 토마호크 미사일, JDAM 정밀유도폭탄, 함포, 무장 헬리콥터를 사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해군과 해병대를 중심으로 2~3개의 원정 전투부대를 배치할 것이며 ‘동맹국 해군의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해상 공격에 이은 상륙 단계에서는 일본, 한국, 호주, 동남아시아에 주둔한 미군 병력을 활용할 것이며 항공모함 전단 2~3개, 잠수함과 순양함·구축함으로 구성된 타격 전단 2~3개, 사단급 상륙 부대 3~4개를 동원할 것으로 예상했다. 동맹국들이 해상 공격에 가담하거나 수송선 호위 혹은 병참 지원 등을 맡을 수도 있다고 봤다. 상륙작전에 실패할 경우 생화학 무기나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베트남은 미국과 1995년 외교관계를 복원했고 계속 관계를 개선해왔다. 특히 지난 10여년 새 국방·안보 협력이 늘었다. 2011년 ‘양자 국방관계 증진을 위한 양해각서’, 2015년 ‘국방관계 공동 비전 성명’ 등이 줄줄이 나왔다. 2013년 ‘포괄적 동반자 관계’에 합의하면서 안보·국방 협력도 포함시켰고 2023년에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살상무기 판매 금지도 풀어줬다. 베트남은 미국산 스캔이글 무인기를 샀고 T-6 훈련기도 구입했다. 2018년 칼 빈슨의 다낭 방문은 베트남전 이후 처음으로 미군 항모가 베트남에 기항했다 해서 눈길을 끌었다. 고위급 상호 방문, 정치·안보·국방 대화, 국방정책대화 등 정례적 협의 채널도 만들어졌다.

 

물론 아시아의 다른 미국 동맹국들처럼 긴밀한 것은 아니었다.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편을 가르지 않는 외교정책을 표방해왔다. 또 국방 분야에는 ‘4불’ 원칙이있다. 첫째 군사 동맹에 가담하지 않고, 둘째 특정국과 손 잡고 다른 나라와 적대하지 않으며, 셋째 외국 군사 기지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제 관계에서 무력 사용이나 무력을 동원한 위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네번째다.

 

원칙만 보면 미국과 중국의 세력 경쟁이 격화되는 역내 지정학 속에서 균형을 잡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하지만 속내는 달랐던 모양이다. 문서는 미국이 계속해서 아시아 지역에 군사 배치를 늘린 것, 미 공군이 B2와 B52 폭격기를 태평양과 인도양 기지에 순환 배치하는 것, 2024년 ‘발리카탄 연합훈련’ 같은 아시아 동맹국들과의 군사훈련을 자꾸 확대하는 것 등등을 강조했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을 포위·봉쇄하려 하면서 아시아 국가들을 포섭하고 있다는 인식은 중국의 시각과 거의 비슷하다. 거기에 베트남 입장에선 ‘미국의 이런 요구를 따라주지 않으면 침공해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추가되는 것이다.

 

문서는 미국 조 바이든 정부 때 만들어졌다. 앞선 버락 오바마 정부나 바이든 정부가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절제된 접근을 취했던 반면에 도널드 트럼프 1기 정부(2017~2020년)는 매우 공세적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자신들도 전쟁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인정했는데, 이렇게 불안감을 가질 이유가 있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 전략이다. 미국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세워 말 안 듣는 정권들을 쫓아내는 짓을 계속하고 있다고 베트남은 보는 것이다. 베트남 공산당 정권은 2003년 조지아 ‘장미혁명’이나 2004년 우크라이나 ‘오렌지혁명’ 같은 시민 저항들, 권위주의 정권에 맞선 통칭 ‘색깔 혁명’들을 미국이 부추긴 음모로 인식한다. 그래서 미국이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이용해서 베트남 공산당 체제도 약화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88프로젝트가 입수한 2023년의 한 문서는 베트남 안에서 활동하는 외국 정보기관들의 동향을 평가한 것인데 미국 정보기관들을 ‘베트남 공산당을 전복하려는 세력’으로 묘사했다. 또다른 기밀문서들은 미국이 베트남 체제를 흔들고자 사이버전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2020년 베트남은 ‘색깔 혁명 예방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202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하노이를 찾았을 때에는 체제 안보를 위한 정보 공유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정보 협력은 베트남 측이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5년은 베트남 전쟁 종전 50년, 미-베트남 수교 30년이 되는 해였다. 9월 중국의 전승절에 시 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연대’를 과시했다. 베트남에서는 루옹끄억 국가주석이 베이징을 찾았다. 좀 이례적이었다. 1인자인 공산당 서기장 대신에 2인자를 보냈던 것이다. 당시 선출된 지 1년여 밖에 안 됐던 또럼 서기장은 다음달인 10월에 중국이 아니라 북한에 갔다.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의 북한 방문은 근 20년만이었다. 베트남이 러시아산 수호이 전투기 40대를 사려 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몇 주 지나지 않은 11월, 이번엔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하노이를 방문했다.

 

베트남이 미국을 신뢰할 수 있을지 의심하면서 일종의 헤징, 즉 위험 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렇게만 보면 딱히 특이할 것은 없다. 모든 나라들이 그렇게 하니까. 그런데 군 문서에 드러난 시각은 헤징이나 균형잡기가 아니라 아예 미국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경제적 측면은 어떨까. 지난해 8월 미국은 베트남이 무역 흑자를 보고 있다며 20% 관세를 부과했다. 그나마 처음엔 46% 매긴다고 했다가 낮춘 것이다. 그럼에도 베트남의 대미 수출은 2024년 약 1200억달러에서 지난해 1530억 달러로 30% 가까이 늘었다. 대미 흑자는 약 1340억 달러, 사상 최고였으며 베트남은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대미 무역 흑자국이 됐다. 그러나 베트남 지도부 입장에선 이런 교역 이익도 중요하지만 체제 안보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여전히 미국을 적으로 여기는 베트남의 인식이 구시대적이라 얘기할 수도 있지만, 미국의 행태가 베트남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중국을 견제한다며 아시아에서 군사력 배치를 늘리고 아시아 국가들을 줄 세우는 미국의 행태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베트남은 중국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때가 많았고 심지어 중국과 전쟁도 했다. 그런데 미국이 중국을 견제한다며 압박을 하면서, 미-중 양쪽과 거리를 유지하던 베트남을 오히려 친중국 쪽으로 몰아가는 측면도 있다.

 

미국의 역사 인식은 또한 극도로 자기중심적이다. 베트남 정부가 중국에 홀로 맞서기 힘들어서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미국은 이제 베트남 입장에선 적이라기보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균형추라고 미국 인사들이나 언론들은 주장해왔다. 하지만 그 처참한 전쟁 피해를 당한 베트남 사람들에게 역사가 그리 쉽게 잊히는 것이겠는가.

 

일본 평화학자 히가시 다이사쿠가 쓴 <적과의 대화>라는 책에는 베트남전을 주도한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국 국방장관이 1990년대에 베트남을 찾아가 옛 적들과 나눈 대화가 소개돼 있다. 미국은 당시 베트남이 공산화되면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공산화될 것이라는 ‘도미노 이론’을 믿었고 베트남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맥나마라는 털어놓는다. 근거도 없는 이론에 사로잡혀 전쟁에 뛰어들어 한 나라를 초토화한 미국. “그때는 잘못 생각했었다”고 맥나마라는 인정하지만 그 앙금이 말 한 마디로 풀릴 리 없다. 대화 속에서 베트남 측은 미국의 당시 오류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질타한다. 

 

불신, 그것도 역사적 근거가 확실한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미국이 지금 보여주는 오만한 행태가 과거의 불신을 현재형으로 만든다. 맘에 안 드는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잡아다 미국 법정에 세운 행동만 봐도 그렇다. 미국과 ‘다른 체제’를 가진 나라들이 미국을 신뢰하기는 쉽지 않다. 또럼 서기장은 2024년 집권했을 때만 해도 대미 관계에 적극적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베트남 북부에 트럼프 일가 사업체가 골프리조트를 짓게 해줬고 트럼프가 제안한 ‘평화위원회’ 참여 요청도 거의 즉시 수락했다. 하지만 연초 세계를 흔든 베네수엘라 사건은 베트남 보수파들의 불안감을 키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는 한편,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사회주의 국가들 중 하나인 쿠바도 공격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노이타임스 2일 기사에 따르면 베트남 외교부는 “쿠바에 석유를 파는 나라들은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는 미국의 조치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속내야 어떻든, 베트남은 늘 주장한 ‘편을 맺지 않는’ 방침대로 미국·중국·러시아 모두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고 지난달 말에는 유럽연합과도 같은 관계에 합의했다. 트럼프 정부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이리저리 손잡고 모색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만, 전쟁을 치른 나라들이 진심으로 화해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