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 베네수엘라, 미국, 중국

딸기21 2026. 1. 16.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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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베네수엘라를 공습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잡아다 미국 법원에 세웠다. 연초부터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결국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과연 이 사태는 중국에는 득일까 실일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마두로 피랍 직후 기자들 질문에 답하면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의 행위는 “국제법과 국제관계의 기본 규범, 유엔 헌장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며 마두로 부부를 즉시 풀어주고 “베네수엘라 정부를 전복하려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공습은 1월 2일 마두로가 중국의 라틴아메리카 특사 치우샤오치를 포함한 대표단을 만난 직후에 일어났기에 중국의 심기는 특히나 불편했을 법하다. 게다가 미국이 베네수엘라 임시대통령인 델시 로드리게스에게 중국, 러시아와의 경제 관계를 끊도록 압박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자 마오닝 대변인은 “전형적인 괴롭힘 행위” “심각한 국제법 위반이자 베네수엘라 주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China's JY-27A radar didn't appear to be effective during the US raid on Venezuela.   US Air Force Photo

 

베네수엘라는 1974년에 중국을 외교 상대로 승인했지만 가까워진 것은 우고 차베스 대통령 시절부터다. 차베스는 1999년 집권 첫해 중국을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1999~2012년 중남미 지도자 중 중국을 가장 많이 찾았다. 남미 독립 혁명가 시몬 볼리바르를 ‘마오쩌둥의 영혼의 동반자’라 불렀고, 베이징대 연설에서 자신이 내세우는 남미 통합의 역사적 뿌리인 ‘볼리바르 혁명’을 마오쩌둥 이념과 연결짓기도 했다.

 

2013년 3월 차베스 사망 뒤 집권한 마두로는 2018년 5월 조기 대선에서 재집권했다. 당시 서방 국가들은 부정선거라며 마두로 정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미국은 제재를 시작했다. 반면 중국은 마두로 집권을 축하했고 미국의 내정간섭을 비난했다. 2019년 2월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베네수엘라 대선 재실시를 요구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거부권으로 막았다. 베네수엘라에서 반마두로 시위가 일어나자 중국은 진압 장비를 내줬다. 논란이 된 2024년 대선에서도 마두로의 승리를 지지했다. 미국의 공격이 임박해가던 지난해 11월 말에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마두로에게 지지를 보냈다. 

 

경제적으로 베네수엘라는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다. 2001년 베네수엘라는 스페인어권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중국과 ‘전략적 발전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2010년대 중국개발은행의 중남미 대출액 약 1500억달러 중 3분의1을 베네수엘라가 가져갔다. 베네수엘라 내 중국계 이민자는 2000년 이후 10배로 늘어 50만 명에 이른다. 2023년까지 20여년 간 중국은 베네수엘라 인프라에 1000억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흔히들 그 고리로 석유를 얘기한다. 베네수엘라는 중동 밖에서 최대 원유 매장량을 가진 나라이지만 고유황 원유인데다 지리적으로 멀고 미국의 제재까지 받고 있어서 중국 수출이 기대만큼 늘지 못했다. 원유 수출량의 80%를 중국으로 보내는 베네수엘라에겐 중국이 절대적이지만 중국 입장에선 다르다. 지난해 중국이 사들인 베네수엘라산 원유는 약 1억4000만~1억7000만 배럴로 중국 전체 원유수입량의 4% 정도였다.

 

하지만 베네수엘라는 중국에는 유용한 지렛대였다. ‘미국이 압박하면 중국에 기대라’는 메시지를 세계에 전할 수 있는 도구였던 것이다. 인프라 투자와 석유 말고도 중국에는 베네수엘라에 소중한 자산이 있다. 중국 장성공업공사가 엘솜브레로 기지와 루에파 기지라는 두 개의 위성추적기지를 베네수엘라에서 운영 중이다. 또 베네수엘라는 2019년까지 10년간 중국 무기 6억달러어치 이상 사들였다. 미국이 2025년 8월 베네수엘라 앞바다에 병력을 배치하자 중국은 정찰함 랴오왕호를 보내 베네수엘라를 측면 지원했다.

 

[로이터] With Venezuela raid, US tells China to keep away from the Americas

 

미국의 공습으로 중국이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하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서반구’ 즉 라틴아메리카를 미국 텃밭처럼 다루면서, 한 세기 전 ‘먼로 독트린’의 제국주의적인 세력권 구상을 되풀이했다. ‘역외 국가는 미주 대륙에서 손 떼라’는 메시지는 명확하게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중국은 중남미 국가들과 20여년 간 경제적 관계를 강화했을 뿐 아니라 ‘미국 턱밑에서’ 지정학적 위협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미국은 줄곧 의심해왔다.

 

베네수엘라는 중국을 겨냥한 본보기로 선택됐다. 트럼프는 9일 석유업계 경영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이웃으로 두기에는 불편한” 나라들이라며 “우리는 당신들이 거기 있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베네수엘라와의 석유거래 비중이 적다 해도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나 시노펙 등 중국 회사들은 혹여 현지 자산이 압류되거나 채굴권을 잃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중국 기업들은 해외 투자에서 ‘미국의 공습 가능성’까지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에서 중국을 시험대에 올렸다.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어떤 행동까지 감행할 것인가?’ 중국이 지금 맞닥뜨린 것은 바로 이 질문이다.

 

베네수엘라 작전은 중국의 이해관계 뿐 아니라 중국의 국제적 위신에 타격을 가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제공한 베네수엘라 방공망은 미군 공격 앞에 무력했다. 중국은 미국을 견제할 능력이 없으며, 대국처럼 보였던 위상과 실제 능력의 격차는 컸음을 드러냈다. 중국과 친한 쿠바는 미국의 다음 타깃이 될까 걱정하고 있다. 중국이 공들여온 파나마는 미국 압박에 진작부터 굴복해 일대일로 협약에서 탈퇴하고 파나마 항만에 대한 홍콩기업 투자를 줄였다.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 China-Venezuela Fact Sheet

 

중국 영향력에 끌려가던 저개발국들,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는 중국이 자신들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점을 여실히 느꼈을 것이다. 중남미 국가들이 미국을 의식해 베이징과 거리두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칠레와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주요국 정권은 친트럼프 성향으로 바뀐 터다. 올해 브라질 대선이 중남미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유지될지 결정할 분수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중국에 지정학적 이득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직 미 국무부 고위관리 대니얼 러셀은 로이터에 “트럼프가 서반구 중심의 세력권 논리로 간 것이 중국에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논리를 가지고 중국은 아시아가 자신의 세력권임을 미국이 인정하길 바랄 것이라는 얘기다. 

 

역설적이지만, 중국의 시각은 오히려 다르다. 중국 남중국대학교 정융녠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인터뷰에서 “각국이 자신만의 영향권 확보를 추구하는 국제 질서의 봉건화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미국이 중국 기업들을 중남미에서 완전히 배제한다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중국이 중남미에서의 활동을 일부 조정하고 미국도 아시아에서 보폭을 좁히겠지만 양국이 각자 ‘세력권’에서 상대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아시아가 중국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세계를 재분할하는 움직임에 합류해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변덕이나 미국의 일방주의와 대비되는 중국의 ‘안정된 파트너‘ 이미지가 더 부각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는 미국이 향후 베네수엘라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인가와 직결된다. 미국은 어떤 플랜을 가지고 있으며, 베네수엘라인들의 저항을 키우지 않으면서 어떤 식으로 현실을 개선해줄 수 있는가? 바꿔 말하면 베네수엘라가 이라크가 되지 않도록 할 방안이 있는가?

 

현재로선 회의적이다. 미국이 전면전을 치르고 3년간 점령한 이라크와 단순히 대통령만 제거한 베네수엘라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트럼프가 밝힌 핵심 구상은 “석유를 팔아 안정시킨다”는 것으로서 이라크전 때 미국의 공언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낡은 인프라와 국영석유회사의 부실 운영 때문에 중국조차 원유를 기대만큼 사가지 못했다. 미국 애틀랜틱카운슬의 멜라니 하트는 “차베스 이전 수준으로 원유 생산량을 회복하는 데에는 10~20년이 걸린다”고 했다. 미국이 이제 베네수엘라에 대한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게 됐으니 결국 금융 지원과 투자를 해야할 것이고, 그렇게 해서 에너지산업 살려 놓으면 결국 그 혜택은 다시 중국으로 갈 수도 있다고 봤다. 영국 BBC도 “지금 이라크산 원유의 최대 구매자는 중국이다. 베네수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라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이권’에 대한 트럼프의 헛물켜기뿐 아니라, 석유에 대한 생각들 자체가 뒤죽박죽이다. 트럼프는 “베이징으로 가던 석유가 미국으로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미 원유 수출국이다. 불과 몇 주 전 국가안보전략에서 백악관도 “미국은 세계에 더 많은 석유를 수출할 것”이라고 했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베네수엘라 사태 이후 “미국이 저렇게 행동한다면 중국이 대만 총통을 납치하지 못할 이유가 있나”는 글들이 올라온다. 물론 중국이 그런 도박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외교협회(CFR)의 데이비드 색스는 “중국은 대만을 내정 문제로 보고 있고 미국을 선례로 삼을 필요가 없다”면서 “중국은 대만을 상대로 압박전략을 계속 쓸 것이고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습이 이 구도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미국이 국제법을 위반하는 짓을 할수록 중국은 대만 문제에서 더 큰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누가 더 깡패인가 경쟁에서 미국이 규범을 멀찌감치 후퇴시켜 놓으면 그만큼 중국은 정치적 부담이 줄어든다. 

 

강대국들 다툼에 휘말려들어간 베네수엘라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대만은, 우크라이나는, 이란은, 쿠바는? 세계의 경찰은커녕 무뢰배가 돼버린 미국은 세계를 얼마나 더 난장판으로 만들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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