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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샌즈,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딸기21 2025. 11. 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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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EAST WEST STREET.
필립 샌즈. 정철승, 황문주 옮김. 더봄. 11/19


뚜올슬랭(캄보디아), 시에라리온, 사라예보와 스레브레니차, 아우슈비츠, 르완다. 어쩌다 보니 다크 투어를 선호하는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재작년 아우슈비츠, 그리고 지난해 키갈리(르완다)를 끝으로 더 이상 학살이나 제노사이드는 생각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이 책이 너무 오래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결국 꺼내들었다.

재미는 있었는데 읽는 데에 석달 가까이 걸렸다. 국제법적 배경과 논쟁을 기대했는데, 그보다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후손이 집안의 상처를 추적해가며 또 다른 희생자와 생존자들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돼 있다(솔직히 이런 부분은 살짝 지루했다). 국제법 전문가이자 국제형사재판소(로마규약) 설립에 관여한 저자는 그 여정에서 반인도 범죄 개념을 정립한 허쉬 라우터퍼하트와 제노사이드라는 개념을 만든 라파엘 렘킨의 인생을 만난다. 저자는 지금의 우크라이나 도시인 리비우(르보프, 렘베르크)를 배경으로 저 둘과 자신의 할아버지를 비롯한 이들의 엇갈리고 교차하는 삶을 따라간다. 세상에 너무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베일에 쌓여 있는 피해자들의 스토리, 그들 인생의 빈 틈을 퍼즐처럼 하나하나 채워가는 내용으로 돼 있다.

다 좋은데,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제노사이드를 저지르고 있는 상황에 이 책을 읽다 보니 내 마음이 살짝 꼬여 있었던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번역은 뒷부분 좀 틀린 게 많다. 르완다국제전범재판소(ICTR)를 국제형사재판소(ICC)로 번역한 것 등. 하지만 읽는 데 큰 지장은 없다. 친일파 단죄에 실패한 한국의 문제 등등에 대한 역자의 절절한 후기도 의미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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