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된 위기
백승욱. 생각의힘. 1/12

현재는 사회주의를 경험한 두 대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오히려 세계질서에 대한 위협적 존재가 되었으며 새로운 대안으로서 사회주의 운동은 찾아볼 수 없다. 수많은 저항과 불만이 분출되고 있음에도, 그 저항이 한 세기 전처럼 집중점을 찾기는 어려워 보이고, 그 때문에 오히려 부정적 상황으로만 전개되고 있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위험 한 선동만 분출하고 있다. 내가 앞서 출간한 책에서 한국 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이런 선동의 한 측면을 '앞선 세대의 게으른 습관적 반미주의'라고 부르며 비판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을 때 외부의 큰 힘을 빌려 '거대 악'을 제거하려는 사고는 사회주의나 국제주의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위험한 분노의 표출일 따름이다.
-19
탈냉전 시기에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국가들 간 경합이 늘어나고 나토가 쇠퇴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나토는 계속 팽창했다. '신냉전'의 결과로 팽창한 것이 아니라, 1945년 이후 형성된 국가간체계를 변형하기 어렵고 기성 제도적 지속성이 강고했던 것이 오히려 원인이었다. 이렇게 되면 대안적 질서는 형성되기 어렵고 안보 위협은 증가하는 데, 그 결과 기존 질서의 보호 속에 들어서서 안보 비용을 줄이려는 국가들이 더 늘어나면서 나토가 팽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신냉전이 나토를 팽창시켰다기보다는 다른 대안적 안보체제가 등장하지 못하면서 나토가 팽창해가고 그 결과 현실이 역설적으로 '신냉전'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53
비핀 나랑Vipin Narang은 핵전략을 촉매형 catalystic, 확중보복형 asured retaliation, 비대칭적 확전형 asymetrical escalation 셋으로 구분하고, 북한의 핵전략은 촉매형에서 비대칭적 확전형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2008년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북한의 핵전략은 촉매형에 가까웠는데, 핵개발을 추진하되 그 도달 수준과 대응태세를 모호하게 유지함으로써 대결 당사자가 아닌 '제3국'의 적극 개입을 유도해 안보를 유지하고자 하는 방식이다. '제3국'으로 중국을 활용 해 중국이 한편에서는 북한 핵개발을 제어하면서도 다른 한편 북 한 안보의 후견자가 될 수 있도록 최대한 활용했던 것이다.
반면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의 핵전략은 두드러지게 '비대칭적 확전형'으로 전환한다. 핵사용의 문턱을 낮추고 영구적 도발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적대적 세력의 재래식 대량공격이나 '참수작전'의 수행을 불가능하게 만들고자 하는 전략이다. 더는 '비핵화'나 중국이라는 제3국의 개입을 통한 '촉매형'으로 유도가 어려워진 것이다.
이 핵전략 전환은 2021년 노동당 8차 당대회 선언과 2022년 '핵무력 정책법'으로 공식화되었다. 네 가지 중요한 특징이 관찰된다. 첫째, '응징억제pumishment deterrence - 선사용 배제no first-use' 교리로부터 '거부억제denial deterrence -선 사용 가능first-use
으로 핵전략 교리가 바뀌었다. 둘째, 재래식 전쟁과 핵전쟁의 경계가 낮아지고 평시와 전시를 구분하지 않고 핵벼랑에 설 가능성이 커지면서 실제 전투에서 전술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 셋째, 전략핵 사 용 결정권을 김정은 위원장이 장악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술핵의 실전 지휘통제 권한이 현장 지휘관에게 위임되는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전술핵 지휘통제권이 현장에 위임되면 우발적 확전 가능성이 생기면서 재래식 무력에 대한 억제력이 작용할 수 있게 된다.
78-79
‘수세적'이라는 의미는 직접적으로 서구가 제시하는 보편에 도전하지 않고 중국이 추구하는 가치를 비서구 지역에 강제할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지만, '예외주의'는 중국의 독자적 가치와 노선 그리고 중국이 '내정'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한 어떤 간섭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의 천명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유럽의 위기가 '대만 위기' 즉 중국의 대만 점령 위협과 연결되는 고리가 바로 이 수세적 예의주의이며, 이런 연쇄고리는 다시 북한의 핵확산이 촉발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로 연결되고 있다.
-92
(왜지? 책 읽는 내내 해소되지 않는 의문.)
제3차 역사결의는 두 번째 역사결의의 '절충성' 정도로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고 보고 새로운 시도로 나아간다. 앞선 시기에 등장한 적이 없던 '중화민족'이라는 용어가
등장해 새로운 공간을 열고 점차 '인민'의 자리를 밀어낸다.
"중화민족의 부흥"은 1987년 당의 13차 당대회 보고에서 처음 등장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중요한 정치 용어가 된 것은 2012년 18차 당대회 이후이며, 특히 2021년 시진핑 주석의 7.1 강화'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중국공산당 100년의 주제로 부각시켰다.
-113
좀 더 직접적으로 대만 위기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중국몽'을 실현할 현실 구상으로서 등장한 '강군몽‘이다.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강군몽의 기본 방향이 제출 되었는데 2035년까지 인민해방군의 현대화를 완성하고 2050년까지 세계 일류의 강한 군대를 만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원해방어', '우주방어, '정보대항'이 특히 강조되고 인민 해방군의 중심 또한 대륙군에서 해양군으로 전환하고 해군력의 현대화가 중요해지면서 신형 잠수함, 항공모함, 순양함, 대한순항미사일ASCMS (YJ-18 미사일과 YJ-12 미사일) 등을 갖추었다. 5세대 전투기, 수송기,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을 중심으로 한 공군력의 증강 또한 대대적이다. 2016년 이후 미사일 방어망 등 첨 단무기 수출과 공동 군사훈련을 통해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도 강군몽 추진에 중요한 배경이 된다. 강군몽의 세부 내용은 2019년 1월 '신시대 군사전략방침'으로, 그 지도이념은 '시진핑 군사전략 사상'으로 발표되었다.
군사편제도 지역 중심의 군구 체제로부터 실제 전투를 강 조하는 전구 체제로 전환해 한반도와 대만 지역의 분쟁은 난징에 사령부를 둔 동부전구와 부차적으로 선양에 사령부를 둔 북부 전구 담당으로 편제하였다. 수평적으로 업무를 분장해 관리하던 군사조직 또한 수직적 통합도를 높이고 시진핑 총서기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외에 ‘중앙군사위원회 연합지휘 총사령관'이 되면서 군에 대한 전례 없는(마오쩌둥도 지녀본 적이 없는) 직접적이고 집중적인 통솔권을 갖게 되었다. 핵전략 또한 소수 핵심무기 보유에서 사실상 무제한 핵무기 보유로 전환했다.
-132
중국은 얄타 이후 오랜 시간 계속해서 중심적 변동의 요인이었는데, 그 위상은 일관된 것이 아니고 알타체제의 취약함이 노정되는 순간마다 그 취약함을 작동시키거나 취약함의 혜택을 받는 참여자의 위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처음에 중국은 얄타구상의 일부였고, 얄타체제의 틀 내에서 중국혁명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얄타체제가 균열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된 한국전쟁이라는 무대의 중심 요인으로 등장했고, 뒤이어서는 비동맹 '제3세계'의 주력으로 나타났으며, 동시에 냉전 진영 대립의 주요 국가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닉슨독트린 이후는 미소 양강 대립의 구도를 변형시키는 국가이기도 했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주요한 수혜자인 듯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얄타체제 해체를 주동하는 핵심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기도 하다.
-225
후진타오 시기에 현대사 연구를 주도한 양퀘이쑹은 표준적 서사에 대립하는 '수정주의적'이라고 할 만한 해석을 내놓았다. 중국혁명이 중국 내부 모순의 결과가 아니고 중 국공산당의 역량이 국민당을 압도해 거둔 성과도 아닌 '중간지대의 혁명'이었다는 것이다.
양퀘이쑹은 중국혁명의 성공은 '소련과 미국의 태도에 따라 결정'되었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중간지대의 혁명'으로서 중국혁명의 특징이다. 소련과 미국의 태도란 바로 얄 타회담에서의 합의를 가리키고 이후의 갈등 속에서도 유지된 관계를 말한다. 중국은 바로 이 중간지대, 소련과 미국 사이의 공간을 파고들면서 불가능해 보이던 혁명의 출구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단순한 '외인론'은 아니고 국제정세의 흐름에 올라타기를 중시한 입장, 또는 혁명의 '정세적 해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34-235
“대외 정책에서 세력 '범위'를 교환하는 방법은 러시아 역사에서 매우 고전적 수법이 라는 것이다. (••) 스탈린이 중시한 것은 전쟁의 발발 그 자체이지 전쟁의 결과가 아니었다.“ (션즈화)
스탈린은 알타 합의의 취지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서와 동 양쪽에서 세력권을 확장하려 했다.
-238
후발 국가들은 유럽 세계가 세운 보편의 기준에 일방적으로 편입되거나 이를 따라가는 '평준화'를 지향하기도 하지만 거기에 담겨 있는 유럽 중심주의와 식민주의의 위험성 때문에 거리를 두면서 자기 고유의 경로를 세우려는 '고유화'의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동아시아 상황에서는 평준화와 고유화라는 상반되는 지향성 사이에 '동류화'라는 제3항의 범주가 등장했다.
-242
(저자는 중국에서 동류화의 대상은 일본에서 소련으로 향했으며 장제스를 비롯한 국민당 좌파를 형성했다고 설명)
한국은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 개입에 동의하지 않으며 북한의 핵도발에 대한 중국의 분명한 태도를 요구한다는 점을 확실히 전달하고, 중국의 태도 변화에 따라 대중협력과 한미일 안보협력의 방식 모두 가변적일 수 있음을 알려야 할 것이다.
더불어 한국과 일본 주도로 베트남 등 남중국해 안보에 우려가 큰 국가들을 주요 파트너로 삼아 동아시아 자체 다자적 안보 논의 기구를 설립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여기에 중국을 포함시키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한미일 협력이 '인태 나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나 낡은 냉전의 '반공연대' 같은 것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불식시키고 또 중국이 자신의 표준을 일방적으로 인근 국가에 강요할 우려도 제어하는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대만 위기 상황에서 중국의 대만 문제 해결 방식을 묵인하라는 매우 강한 압박이 진행될 것이고, 요구되는 태도를 보이지 않을 때 한국에 대한 복합적 제재나 보복이 작동할 것이다. 이 관계에서도 대만 문제에 대한 선제적 '중립 선언'은 도움이 되기보다 그 후 여러 통로의 압박을 강화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334-335
(동의. 우리가 미리 대만 유사시 ‘불개입 선언‘을 하자는 미친 소리는 정말 황당했다. 그런 자가 외교 전문가랍시고 진보정당 국회의원 하는 꼬라지라니)
전체적으로 아이디어는 솔깃한데 야마 장사 느낌이 있었던 책. 연결된 위기라는데 연결 고리들이 잘 안 보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중국이 대만을 무력 점령할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북한도 한국을 도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다. 왜? 왜지?
북한이 전술핵으로 남한을 공격하면 힘 없는 남한은 북한의 공납국이 될 것이고 북한이 주도하는 연방제 하에 들어가게 될 지도 모른다는 논리는 신기했다. 이렇게 보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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