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블로크, <역사를 위한 변명>

역사를 위한 변명 Apologie pour l'histoire
마르크 블로크. 고봉만 옮김. 한길사. 7/27

교회 열심히 다닌다는 김민석 총리의 차별금지법 입장을 보니 기가 막힌다. 나는 그 종교가 한국 사회의(아니 세계의) 장애물이라고 본다. 저래놓고 내란세력 욕하면 뭐하나? 혐오 선동, 가짜뉴스 퍼뜨리는 것을 막지 못하게 방해하는 게 민주당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 종교를 욕하는 것만으로는 답답해서 종교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를 해보자 싶었다. 마침 두껍고 오래된 책을 함께 읽는 좋은 친구가 생겨서 지난 달에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었는데 겁나 재미있었다.
이번 달엔 에밀 뒤르켐의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를 읽었는데 이건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이 책들이 왜 고전인지 알겠다. 둘 다 흥미진진, 정말 신나는 독서였다.

스크랩 해두고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을 펼쳤는데 첫머리부터 ‘뒤르켐 사회학 비판‘이 나온다 ㅎㅎㅎ

블로크의 책은 또 다른 의미에서 감동이었다. 독일군에 총살당한 역사학자. 마음의 울림이 컸다. 마음 속으로 학문 대신에 ’저널리즘’으로 단어를 바꿔 가며 읽은 부분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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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도대체 역사란 무엇에 쓰는 것인지 저에게 설명 좀 해주세요." 몇 년 전 아들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는이 책이 위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학자에게나 초등학교 학생에게나 같은 어조로 이야기한다는 말보다 더 큰 칭찬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3

그날은 1940년 6월,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하던 날이었다. 노르망디 지방의 정원에서 우리는 이 참담한 패배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가운데 하나가 역사가 우리를 배반했다고 생각해야 될까?" 하고 중얼거렸다. 이렇게 해서 어른의 고뇌가 좀더 쓰라린 어조와 함께 소년의 단순한 호기심과 결합되었다. 이제 어른의 고뇌와 소년의 호기심 두 가지 모두에 대답해야만 한다.
-36

역사가 비록 도구적 인간(homo faber)이나 정치적 인간(homo politicus)에 영원히 무관심하다 하더라도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으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받기만 한다면 그 존재 이유가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학문이란 오직 여러 현상들 사이에 나름대로 설명적인 관계를 확립해줄 수 있어야 한다. 말브랑슈의 표현에 따르면 그 나머지는 ‘박식‘일 뿐이다.
-39

인류가 나타난 이래 역사학의 개입을 요청하는 것처럼 보이는 요소는 늘 존재해왔다. 그 이유는 역사학에 인간적인 요소가 개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역사학의 대상은 본래 인간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들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추상화에 적합한 단수형보다는 상대성의 문법적 형태인 복수형이 다양한 것을 탐구하는 학문에는 더 적합할 것이다. 훌륭한 역사가는 전설에 나오는 식인귀와 흡사하다. 역사가는 인간의 살냄새를 맡게 되는 바로 그곳에 자신의 사냥감이 있음을 안다.
-56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실천할 것인가? 현실과 끊임없이 접촉하는 것 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을까?
과거의 오래된 사료에서 인간생활의 살아 있는 느낌을 감지하려면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하며, 이것은 현실과의 끊임없는 접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과거를 재구성하는 데 쓰이는 요소를 최종적으로 분석하고, 필요한 경우 새로운 조명을 드리우기 위해 언제나 일상의 경험의 도움을 받고 있다.
-76

그러므로 시간 속의 인간들에 관한 학문은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 그것은 죽은 사람에 관한 연구와 살아 있는 사람에 관한 연구를 결합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한다.
-78

필연적으로 과거에 대해 종속적인 입장에 있는 우리는 그러니까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점 때문에 자유로워진다. 즉 전적으로 흔적에 의해서만 과거를 알 수밖에 없는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가 우리에게 알려주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과거에 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무조건 증인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증인들의 뜻에 어긋난다 할지라도 증인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질문서를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옮긴이 주: 블로크의 질문서는 가설을 기초로 한다. 즉 가 설은 가정적인 여러 사실, 곧 진술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 진술들을 의문형으로 고치기만 하면 하나의 질문서가 되며, 이 질문서의 결과를 바탕으로 자기의 가설을 검증하게 된다. 그것은 곧 그 가설을 구성하는 개개의 가정적인 사실을 사료에서 끌어내는 것이며, 그 개개의 진술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이다(양병우, 『역사의 방법』, 민음사. 1989 참고).
-95

격렬한 열정의 발산이 없는 평화스러운 사회생활이 계속되는 것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기억의 전달에는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다. 대신들이 금고의 문을 열고 그들의 비밀서류를 불태운 뒤에 도망갈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은 것은 혁명뿐이었다.
-104

올바른 정보를 갖기 위해서 사회는 망각 또는 무지에 대한 두 가지 주요한 책임을 과감하게 비판해야 할 것이다. 두 가지 책임이란 첫째, 기록을 분실하는 태만이며, 둘째, 더욱 위험한 현상인 비밀 애호-외교상의 비밀, 사업의 비밀, 가정의 비밀 등-이다.
행동의 규칙으로서 그리고 부르주아적인 미덕으로까지 추켜세워졌던 은폐라는 것이 정보를 향한 욕구, 말하자면 정보를 교환하고자 하는 욕구에 자리를 양보하게 되는 날, 우리의 문명은 거대한 진보를 이룩하게 될 것이다.
-105-106

이른바 상식이란 불합리한 공리와 조급하게 일반화한 경험의 복합체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현상에 관한 것을 예로 들어보자. 상식에 따르면 지구 반대쪽에 있는 사람은 거꾸로 서 있는 셈이 된다는 사실은 부정되며 아인슈타인적인 우주도 부정된다. 또한 상식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을 돌아갈 때 뱃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해가 뜨는 지점이 그들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바뀌었다고 보고하는 헤르도토스의 기록은 지어낸 이야기라고 취급된다. 인간 행위의 측면에서 보면 가장 큰 문제는 어느 시대에나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된 관찰들, 즉 상식은 필연적으로 시간의 극히 짧은 한순간, 즉 바로 그 시대에서 빌려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110

이전까지만 해도 개인적 취미로서의 판단을 가리키는 데 지나지 않던 비판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진실의 검증이라는 전혀 새로운 의미로 변화하였다. 비판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들은 이 단어의 사용 자체를 몹시 주저하고 망설였으며,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조심스럽게 사용하였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전혀 올바른 관용어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즉 비판이라는 단어에는 다분히 기술적인 냄새가 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는 여러모로 점점 널리 쓰이게 되었다.
-113

책의 각 페이지 밑에 있는 여백은 수많은 학자를 흥분시킬 정도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본문 아래에서 혼자 동떨어져 놀고 있는 각주를 하나라도 보게 되면 현기증을 느낀다고 불평하는 독자들, 또는 실제로는 그다지 감수성이 예민하지 못한 고객들이 이처럼 엉망이 되어버린 지면을 보고 몹시 고통을 느낀다고 주장하는 출판업자들, 위와 같은 까다로운 사람들은 지성이 갖는 초보적인 도덕적 원칙에 관한 자신들의 몰이해를 증명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학문의 가치는 반박을 어느 정도 쉽게 받아들이는가에 달렸다고 대중을 설득할 수 있을 때 이성의 힘은 가장 찬란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대개의 재주꾼들이 조롱하는 우리의 소박한 각주와, 우리의 하찮은 작은 참조는 이러한 승리를 준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작업이다.
-118-119

진리에 대한 모욕은 하나의 톱니바퀴 장치와 같아서 모든 허위는 거의 필연적으로 또 다른 수많은 허위 -그것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상호보완적이다-를 동반한다.
기만에는 한층 더 교활한 형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노골적이고 완전하며, 또한 솔직한 거짓말이 아니라 음험한 개작이다. 진짜 문서에 가필하거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의 진실한 내용 속에 터무니없는 사실을 각색하여 과장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아마 오늘날의 신문에서도 이와 같은 속임수 미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신문사의 편집국 안에는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나 킨틸리아누스가 있다.
불행하게도 신문은 아직 그들 나름의 마비용이나 파펜부르크 같은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약간 시대에 뒤떨어진, 문학적인 규범에 대한 복종이나 상투적인 심리학에 대한 존중, 또는 생동감에 대한 열광 등이 허위를 선동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아직 자리를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127-128

모든 유형의 거짓말 가운데 자기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이야말로 가장 흔한 거짓말 중의 하나이다.
-129

오류란 대개 미리 방향이 결정되어 있다. 특히 그것은 여론의 편견과 일치하면서 널리 퍼져나가기 시작하며 활기를 띠게 된다. 이때 오류는 집단적 의식이 자신들의 특징을 반영하는 하나의 거울과 같은 것이 된다.
한 사람의 증인이 범한 오류가 많은 사람의 오류가 되려면 또 부정확한 관찰이 헛소문으로 바뀌려면 사회의 상태가 그러한 소문의 유포를 조장해야만 한다.
-135-136

역사에서 공정성이라는 것이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가?
학자와 재판관의 길이 갈라지는 시기가 오게 된다. 학자의 임무는 관찰하고 설명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재판관에게는 판결을 내려야 하는 일이 남아 있다. 그는 일체의 개인적인 성향을 억누르고 법에 따라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물론 재판관은 자기가 공정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오랫동안 역사가는 죽은 영웅들에게 찬사나 비난을 부여하는 일종의 지옥의 심판관으로 행세하였다.
파스칼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적절하다. "모든 사람들은 판단을 내릴 때 이것은 좋고 이것은 나쁘다고 하면서 신인 척한다." 사람들은 가치판단이 확고하게 인정된 도덕적인 기준에 따라 행 동하고 판단하기 위한 준비과정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선조들 가운데서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가려낼 수 있을 만큼 우리 자신과 우리 시대에 자신을 갖고 있을까?
몽테뉴는 일찍이 우리에게 그 점을 경고한 바 있다. "사람 들의 판단이 한쪽 방향으로 기울고 난 뒤에는 이야기를 그 방향으로 휘지 않게 막을 수가 없다."
-166-168

자연과학의 용어는 목적원인론을 배제한다. 성공' 또는 실패, '서투름' 또는 '능숙함‘이라는 단어는 이 경우 기껏해야 늘 수많은 위험을 안고 있는 허구의 역할을 연출하는 데 그칠 것이다. 이러한 단어들은 반대로 역사의 보편적인 어휘에 속한다. 왜냐하면 역사란 본래 의식적으로 목적을 추구할 수 있는 존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170

솔직히 ‘이해하다'라는 말은 우리를 곤경에 빠지게 하지만 반면 희망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 말 속에는 무엇보다도 '친밀함'이 깃들어 있다. 소송의 경우에서조차 우리는 너무 많이 판단을 내린다. "총살형에 처하라"고 외치기는 지극히 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와는 다른 사람, 즉 외국인이나 정치적 적수 등은 거의 필연적으로 악한으로 간주된다.
피할 수 없는 투쟁을 지휘하기 위해서조차 인간의 이해력이 약간은 필요하다. 하물며 적절한 시기에 그러한 투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더욱 필요하다.
-171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 경제적 인간(homo ceconomicus), 정치적 인간(homo politicus) 등 라틴어로 표현할 수 있는 인간에 관한 이러한 규정은 마음대로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분류가 사실상 방해만 받지 않는다면 편리하게 사용할 수도 있는 환상과 같다는 점을 잊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살과 뼈를 가진 유일한 존재는 인간뿐이며, 인간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종합한다.
의식은 분명히 내부적인 칸막이를 갖고 있으며, 우리 가운데 일부는 이러한 칸막이를 만드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귀스타브 르노트르는 공포정치가 가운데 훌륭한 가장이 많이 있음을 발견하고 매우 놀라워했다.
많은 사람들은 서로 다른 3~4개의 방면에서 여러 개 의 생활을 한다. 그들은 각각의 생활을 구별된 그대로 두기를 희망하며 때때로 그렇게 유지하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로 말미암아 자아의 근본적 통일성과 이러한 각종 태도의 끊임없는 상호침투를 부정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177-178

역사는 무엇보다도 우두머리들의 연대기였다. 역사가 전통적으로 이야기를 조목조목 자세히 기술하는 경우는 군주들의 갖가지 변천에 관한 것이다. 위대한 시대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파괴해가는 정복 민족의 지배에 의해 만들어졌다. 거의 중세 전체에 걸쳐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는 이처럼 메디아(Media, 이란의 고대 왕국)•페르시아•그리스•로마라는 4제국의 종말론적 신화가 살아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지없이 불편한 틀이다. 그것은 단지 성스러운 텍스트에 대한 복종에 따라 허구적인 로마의 단일성의 환상을 현재에까지 연장시키도록 하라고 강요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또한 역사는 각 나라에서의 연이은 왕위 계승을 경계로 더 작은 시대로 나누어졌다. 이러한 관습은 매우 깨뜨리기 힘들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203

최근의 여러 교과서는 근대사의 흐름을 각 국가가 패권을 잡았던 시기-과거의 제국을 적당히 완화한 용어이다-를 중심으로 나눈다. 그러나 일찍이 18세기는 이와 같은 역사의 구분에 반대의 목소리를 드높였다. 볼테르는 "1400년 전부터 갈리아에는 국왕, 대신, 장군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리하여 점차 새로운 역 사의 구분법이 등장하게 되었다. 특정한 시대의 명칭인 동시에 사회적, 정치적 체계의 명칭이기도 한 '봉건제'라는 명칭은, 이미 고찰한 것처럼, 이 시기부터 비롯되었다.
-204

(역자 해제)

블로크는 1920년 카페 왕조 왕령지에서의 농민해방을 다룬 「왕과 농노(Rois et Sers, un chapite d'histoire Capetienne)라는 논문으로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사회경제사 농업사 연구에 주력하게 되었다.
1929년 블로크는 페브르와 더불어 『사회경제사 연보』 (Annales dVisoire conomique et sociale), 이른바 『아날」 (프랑스어로 '연보')지를 창간했고, 1931년에는 『프랑스 농촌사의 기본성격』(Les Caractères originaux de l'histoire rurale française)을 발표함으로써 사회경제사가로서의 독보적인 지위를 확립하였다. 이 저서에 이르러 농업사는 단순한 농업제도사가 아니라 농지의 구체적인 편성, 농업기술(예를 들어 쟁기의 형태)과 경지의 면적 및 경지형태의 관계, 노동의 형태, 일상적인 삶에서의 영주와 농민의 관계 및 그 법적 표현, 토지 소유방식, 촌락공동체 내에서 펼쳐지는 인간관계 등을 포함 하는 포괄적인 농촌사, 농촌의 구조사가 될 수 있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블로크는 다시 연구실을 박차고 나가 자원 입대하였다. 여섯 자녀를 거느린 53세의 노교수가 일개 대위로서 참전한 것이다. 이듬해 프랑스가 패배하자 런던으로 철수한 그는 제대하여 귀국하게 된다. 그뒤 비시 정권의 유대인 배척법에 따라 교단 에서 쫓겨나자, 남부로 가서 1943년부터 의용 유격대 (Franc-Tireur)에 가입해 '나르본' 같은 가명을 쓰면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한다.
1944년 3월 8일 비시 정부의 친독 의용대(Milice)에 체포되어 게슈 타포에 넘겨진 블로크는 몽뤼크(Montuc)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과 심문을 받은 뒤 처형당하였다.
레지스탕스 동지였던 조르주 알 트망(Georges Alman)은 블로크의 『이상한 패배」에 붙인 서문에서 그의 마지막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이에 따르면 블로크는 1944년 6월 16일 리옹 북동쪽 생 디디에 드 포르망(Saint-Didier-de-Formans) 근처의 벌판에서 독일에 저항한 26명의 프랑스인과 함께 총살당하였다. 블로크 옆에는 16살 소년이 떨고 있었다. "아프겠죠?" 라고 소년이 문자 블로크는 따뜻한 손길로 소년의 팔을 잡으며 "그렇지 않단다, 얘야. 조금도 아프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 만세!"라고 외치면서 쓰러졌다. 그의 죽음은 야만의 시대에 역사가가 죽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뜨겁게 상징하고 있다.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