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조지프 슘페터. 변상진 옮김. 한길사. 8/23

1942년 책이다. 그 후의 상황을 알고 읽으니 전반적으로 우습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전혀 우습지 않다. 두고두고 언급괴는 ‘창조적 파괴’와 경기 순환에 대한 것은 그렇다 치고, 당대의 지식인이 마르크스주의와 전간기 역사를 어떻게 분석했는가를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기 때문이다.
사실상 자본주의 경제는 정상적이지도 않고 정상적 일 수도 없으며 일률적인 방식으로 단순히 확대되지도 않는다. 자본주의 경제는 새로운 기업에 의해서. 즉 새로운 상품 또는 새로운 생산방법 또는 상업상의 새로운 기회를 그때그때 존재하는 산업구조에 침투시킴으로써 내부로부터 부단히 변혁되고 있다.
새로운 생산물들과 새로운 생산방법들은 기존의 생산물들 및 기존의 방법들과 경쟁하게 되는데, 동등한 조건에서가 아니라 기존의 것들에는 죽음을 의미할지도 모르는 결정적 우위를 가지고 경쟁한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보"가 실현되는 방식이다.
마르크스에게 산업변동 과정의 메커니즘은 자본량의 단순한 역학으로 환원된다. 그에게는 적절한 기업이론이 없었다. 기업가와 자본가를 구별하는 데에 실패한 것은 결점이 많은 이론적 기법과 더불어 많은 불합리한 추론과 많은 오류의 원인이 되었다.
-100-101
마르크스의 시대상황을 생각한다면, 대비즈니스의 출현을 예측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도 하나의 업적이다.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의 것을 달성했다. 그는 자본의 집중을 축적과정에 교묘하게 연결시켰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둘러싼 분위기를 계급투쟁과 정치의 모든 발전기를 동원 해서 증폭시켰다. 특히 독자적 상상력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마르크스의 설명을 무미건조한 경제 정리들 을 훨씬 능가하는 것으로 만드는 데에 충분했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궁핍화 이론(Verelendung, 또는 내가 감히 채택하기로 한 그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를 쓸 경우 immiserization)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경기순환 이론 가운데 전자는 분석과 비전 모두에서 구제될 수 없을 정도로 실패작이고, 후자에서는 분석과 비전 모두가 장점 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104
경제적 범주인 "노동"과 사회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적어도 원리적으로 일치하며, 사실상 동일시된다.
이런 방식에 의해 분석에 활력이 증대한다는 점에 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경제이론의 유령과 같은 개념들이 숨쉬기 시작한다. 핏기 없는 정리가 티끌과 소음으로 가득 찬 사회로 내려온다. 정리는 비즈니스 절차에 있는 통상적 규 칙에 부합하든 부합하지 않든 간에 모든 종류의 계급행동을 그 표상 안에 그려 넣는다. 전쟁, 혁명, 모든 타입의 입법, 정부구조의 변화 등 비마르크스적 경제학이 단지 외적 교란으로 처리하는 모든 것들이 예컨대 기계에 대한 투자나 노동자와의 교섭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자기자리를 찾는다. 모든 것이 단일의 설명도식에 의해서 다루어진다.
이런 일반화는 쓸모없지도 내용이 빈약하지도 않다. 반대로 그것은 사물의 사회학적 국면에 대해도 통찰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와 프롤레타리아트가 동일시됨으로써 사회학적 국면은 모호해지며, 실제로 이 국면이 표상으로부터 완전히 추방된다.
정치적 사실들과 경제적 정리와의 실로 장대한 결합이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강제로 결합되고 있기 때문에 이들 가운데 어떤 것도 숨을 쉴 수 없다.
-124-125
마르크스적 체계가 갖는 독자적 특징은 역사적 사건과 사회제도 자체를 경제분석의 설명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 즉 전문용어를 빌리면 그것들을 여건이 아닌 변수로 다룬다는 데에 있다.
나폴레옹 전쟁, 크리미아 전쟁, 미국의 남북전쟁, 제1차 세계대전, 프랑스 대혁명, 영국의 자유무역, 모든 나라와 시대에서 전체로서의 노동운동과 이의 특수한 표현형태, 식민지 확장, 제도적 변화,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서의 국가정치 또는 정당정치, 이 모든 것은 계급투쟁. 착취의 기도와 이에 대한 반항, 축적과 자본구조의 질적 변화.
잉여가치율과 이윤을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이론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영역에 속한다.
"정치“는 원리에 관한 연구에서 사상될 수 있거나
사상되어야 할 독립적인 요인이 더 이상 아니다. 정치 자체는 경제과정의 구조와 상태에 의해서 결정되며, 경제이론의 영역 안에서 어떤 매매거래와 꼭 마찬가지로 영향의 전도체가 된다.
그러나 이 이론을 개별 경우에 체계적으로 적용해보자마자 우리는 곧바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계급 투쟁에 관한 끝없는 반복에 완전히 진절머리를 느끼게 되고 이 이론이 불충분하다는 것, 더 나아가서 그 이론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통감하게 된다.
-126-128
내가 확립하려는 테제는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 체제의 현실적 • 전망적 성과는 자본주의가 경제적 실패의 중압에 의해 붕괴된다는 아이디어를 부정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바로 그 성공이 오히려 이 체제를 옹호하는 사회제도들 의 토대를 침식하여 "불가피하게" 그 존속을 불가능하게 만들며, 사회주의를 강력히 지향하는 상태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150
자본주의 엔진을 가동시키고 그 가동을 지속시키는 기본적 추진력은 자본주의 기업이 창조하는 새로운 소비재, 새로운 생산방법 또는 새로운 운송방법, 새로운 시장들, 산업조직의 새로운 형태들에서 유래한다.
전형적인 농장의 생산설비의 역사는 혁명의 역사이다. 석탄용 광로에서 현재 형태의 용광로에 이르는 철강산업의 생산설비의 역사, 또는 수차에서 현대 동력공장에 이르는 동력 생산 설비의 역사, 우편마차에서 비행기에 이르는 운송의 역사, 그 모두가 다 그렇다. 국내외의 새로운 시장의 개척, 수공업적 작업장 및 공장에서 유에스스틸과 같은 기업들에 이르는 조직상의 발전은 부단히 옛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여 부단히 내부에서 경제구조를 혁명하는 산업상의 돌연변이 -생물학적 용어를 사용해도 좋다 면 -의 동일한 과정을 예시한다.
이러한 창조적 파괴 과정은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본질적인 사실이다. 자본주의를 형성하는 것은 그것이며, 모든 자본주의적 콘체른은 이 안에서 살아왔다.
-184
폐기해야 할 첫 번째 것은 경쟁의 작용방식에 관한 전통적 개념이다.
경제학자들은 드디어 가격경쟁만을 보아왔던 단계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적 표상과 구별되는 자본주의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상품, 새로운 기술, 새로운 원료공급원, 새로운 타입의 조직(예컨대 대규모의 지배단위) 등에서의 경쟁이다. 이 경쟁은 결정적인 비용 또는 품질우위를 차지하는 경쟁이다. 그것은 또 현존기업의 이윤과 생산물의 판매수익을 강타하는 경쟁이 아니라 그의 기초와 생존 자체를 강타하는 경쟁이다.
지금 우리가 염두에 두는 종류의 경쟁은 그것이 현존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단순히 언제나 존재하는 위협에 불과한 경우에도 영향력을 가진다. 그 경쟁은 실제로 공격하기 전 부터 사람들을 규제한다. 비즈니스맨은 비록 자신의 영역에 홀로 있다 하더라도 그 영역에서 자기자신이 경쟁상태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186-187
자본주의는 두 가지 서로 연관된 방법으로 합리성을 발전시키고 이에 새로운 날카로움을 덧붙인다.
첫째, 자본주의는 화폐단위 -그 자체는 자본주의의 산물이 아니다 - 를 계산단위로까지 격상시킨다. 즉 자본주의적 실행은 화폐단위를 합리적 비용 이윤의 계산도구로 전환시킨다.
경제적 합리성의 진화의 산물인 비용 이윤 계산이 거꾸로 합리성 자체를 숫자로 구체화시키고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강력하게 기업의 논리를 추진시킨다. 이렇듯 수량화된 타입의 논리 또는 태도 또는 방법은 그 다음에는 인간의 도구와 철학, 의료실행, 우주관, 인생관, 미와 정의에 관한 개념과 정신적 포부를 포함하는 사실상 모든 것을 예속시키는 합리화하는 정복자의 질주를 시작한다.
-247-248
비범한 능력과 야심을 가진 사람들이 제3의 배출구로서 비즈니스로 전향하기 시작한 것은 자본주의적 기업 -처음 에는 상업과 금융업, 다음에는 광업, 끝으로 공업 -이 그의 가능성을 펼쳤던 바로 그때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단지 경제행동 일반뿐만이 아니라 결국 인간행동을 합리화하는 추진력이 되었다.
현대의 기계화된 공장과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산물, 현대적 기술과 경제조직뿐만 아니라 현대 문명의 모든 특징과 성취까지도 직간접적으로 자본주의 과정의 산물이다.
-250
지식인들은 사실상 입과 붓으로 언어의 힘을 휘두르는 사람이다. 이들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실제 업무에 대해서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추가되어야 할 것은 비판적 태도이다. 이 태도는 지식인이 인정받게 되는 주된 기회가 그가 현실적으로 또는 잠재적으로 훼방꾼으로서 가치를 갖는다는 데에 있다.
수도원이 중세 지식인의 탄생지였다 해도 그를 자유롭게 만들고 그에게 인쇄물을 제공한 것은 자본주의였다.
텍스트의 비판에서 사회의 비판에 이르는 길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짧았다. 그런데도 전형적인 지식인은 당시 여전히 이단자를 기다렸던 화형이란 아이디어를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명예와 안락함이 그들에게 훨씬 더 적합했다.
-284-286
유년기 시대의 사회주의 도식이 꿈이었다면 그 꿈의 대부분은 합리화된 꿈이었다. 그리고 개별 사상가가 다소나마 완전하게 꿈을 합리화하는 데에 성공했던 것은 단지 그들 자신의 개인적 꿈이 아니라 비지배계급의 꿈이었다는 것이다. 이들 사상가는 완전히 공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또한 지하에서 잠자고 있었으나 잠을 깰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 지상으로 올라오는 것을 도와주었다.
유년기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후일 유용하게 밝혀진 많은 초석과 많은 도구를 제공해주었다. 사회주의 사회의 아이디어 자체는 그들의 창조물이었고, 마르크스와 그의 동시대 사람들이 그것을 논의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 사상가의 노력의 덕택이었다. 그러나 많은 유토피아주의자들은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나아갔다. 그들은 사회주의 계획의 세부사항들 또는 사회주의 계획의 특정한 변종들의 세부사항들을 다듬어내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문제를 공식화했고 많은 문제들을 해결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유토피아주의자라는 범주에 포함시켰던 사람들 모두가 대중운동과의 접촉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542
더욱이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마르크스주의가 사회 드라마의 대단원에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할당한 역할이다. 변형과정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면 프롤레타리아트가 할 역할은 거의 없다. 대혁명이 일어난다면 돌격대의 최선봉은 반 범법자인 폭도들의 보좌를 받는 지식인들로 이루어질 것이다.
대부분의 선행자들과는 달리 마르크스는 다만 현존 운동을 합리화하려 했을 뿐이지 꿈을 합리화하려 하지 않았다유토피아주의자들의 사상에는 더 많은 현실주의가 있었고, 마르크스의 사상에는 마르크스 주의자들이 인정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비현실적 공상이 들어 있었다.
-545
1906년의 노동쟁의법이 국가와 사유재산제도를 근간으로 삼은 법률제도를 여전히 신봉했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지 않을 수 없었는지를 인식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어렵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배상책임으로부터 노동조합의 기금을 면제하는 데서 이 법이 사실상 노동조합에 국가권한의 일부를 양도했고, 특권적 지위를 노동조합에 부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보수당이 집권했던 1903년에 설치된 왕립위원회 보고서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보수당 당수(밸푸어)는 조금도 불쾌감을 보이지도 않고 이 법안에 찬성했다. [저자 주]
-563
페이비언의 행동방식이 자본주의 체제의 외곽의 방어에 몰두한 나머지 이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할 위험을 자초했다는 비판은 그들이 지닌 특수한 태도를 고려하지 못한다.만에 하나라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페이비언들의 공격이 그 체제를 소멸하지 않고서도 개혁하는 데에 충분한 성공을 거두었다면 그것은 오직 축하할 문제일 것이다.
계급투쟁의 문제에서도 페이비언주의가 마르크스주의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지닌다는 것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또한 페이비언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마르크스 자신보다 도 더 훌륭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실제적인 정치적 범주 안에 있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 사회적 사물의 진화에 보조를 맞추어 행동하는 것과 궁극적 목표가 스스로 달성되도록 방임하는 것은 실제로 마르크스 자신이 자기의 근본교리에 접목한 혁명적 이데올로기보다도 더 마르크스의 기본적 학설에 합치한다.
-569
모든 나라에는 그 자신의 사회주의가 있다. 스웨덴의 예술, 과학, 정치, 사회제도와 그 이외의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 나라의 사회주의와 사회주의자들이 지닌 특이성들은 원리 또는 지향의 어떤 독특한 특징이 아니라 스웨덴 국민들 소질과 예외적으로 훌륭하게 균형이 잡힌 스웨덴의 사회구조 덕분이다. 그래서 다른 국가들이 스웨덴의 실례를 모방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거의 언제나 유능하고 양심적으로 영도된 사회주의 정당은 정상적 발전을 앞질러 선도하며. 적대를 위한 적대의 행동을 취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정상적인 사회과정에 부응하여 서서히 성장했다. 따라서 사회주의 정당이 정치세력으로 등장하는 과정에서 어떤 격동도 없었다.
그 정당 내부에서도 지식인과 노동자 사이의 적대는 현미경을 가지고 보아야 겨우 보일 정도이다. 그 이유는 노동자와 지식인 양쪽 모두의 수준 때문에 그들 사이에 커다란 문화적 격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또한 스웨덴의 사회기관이 다른 사회기관보다 상대적으로 더 적은 수의 고용될 수 없는 지식인들을 배출하기 때문에 절망에 빠진 또 절망에 빠지고 있는 지식인들이 다른 나라만큼 많지 않 다는 데 있다.
-569-570
척도의 다른 극단을 보면 우리는 러시아에서 거의 순수하게 마르크스주의적이고, 따라서 충분히 그의 호의를 누렸던 사회주의를 발견한다. 그러나 이 사회주의는 러시아의 환경으로부터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상업 부르주아지와 산업 부르주아지는 그 수에서 열세였고, 정부가 육성한 자본주의 진화는 급속한 추진력을 얻었지만 다른 어떤 나라에 비해서도 훨씬 덜 유능했다. 이러한 구조에 끼워 넣어진 것이 바로 인텔리겐치아였는데, 러시아의 풍토에 서는 생소했다.
많은 지식인들에게 당시 유행인 정부형태 -거대한 관료를 이끌고, 토지귀족, 교회와 연합한 절대군주제(전제정체) -는 물론 혐오스러웠다. 그리고 전 세계의 여론은 이들 지식인의 역사해석을 받아들였다. 사실상 그러한 정부형태는 영국의 의회주의적 군주제와 미국의 민주주의적 공화제와 마찬가지로 이것을 만들어낸 사회적 패턴에 적합한 것이었다.
-571
국민정신과 충돌을 빚었던 것은 수입된 급진주의와 지식인들의 그룹이익이었지, 모든 계층의 절대다수를 강력하게 장악했던 차르 군주제가 아니었다.
1789년에 붕괴된 사회구조는 쓸모없는 것이었고 거의 모든 것의 앞길을 가로막았으며 당시의 재정적 • 경제적 • 사회적 문제에 대처할 수가 없었다. 1905년의 러시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국가는 무질서를 퇴치하는 과제 뿐만 아니라 그 뒤에 도사린 문제를 척결하는 과제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러시아의 사회조직에 강요한 긴장이 없었다면, 전제군주제가 경제발전과 보조를 맞추어 스스로를 평화적으로 또 성공적으로 변형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가정할 이유는 없다.
-572-573
마르크스는 폭동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러시아 혁명가들 가운데 몇몇 어릿광대, 특히 바쿠닌 타입의 몇몇 어릿광대들을 경멸에 버금갈 정도로 증오했다.
우리는 그의 교리가 러시아 지식인들 사이에서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던 이유를 쉽게 이해할 것이다. 그들은 혁명가들이었고 장래의 목표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여기에는 어떤 것도 능가할 수 없는 힘을 가진 혁명적 복음이 있었다. 마르크스의 작열하는 어구들과 천년왕국을 약속하는 예언은 그들이 허무주의라는 황량한 사막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 바로 그것이었다.
-575
러시아가 한두 나라를 삼키도록 만들자. 그것이 어떻단 말인가. 러시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충분히 공급해주자. 그러면 러시아는 불쾌감을 표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20년 후 러시아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적이고 평화적일 것이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느낄 것이다. 스탈린은 그때까지는 사라질 것이다.
-692
다음과 같은 것이 대비되어야 한다. 첫째, 스탈린 체제의 대외정책에서 어떤 것도 용의주도한 인내보다도 더 뚜렷한 것은 없다는 것, 둘째 이 체제는 인내심을 가짐으로써 모든 이득을 얻는다는 것, 셋째 제국주의적 성공의 정점에 서 행동함으로써 이 체제는 실질적 위험신호가 있을 때마다, 또는 "더 강경한 논조"에 직면할 때마다 인내할 수 있고 전초기지를 양도할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 등이다.
-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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