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바다
칼 슈미트. 김남시 옮김. 꾸리에. 3/17

세계사는 땅의 힘에 대한 대양의 힘의 투쟁, 대양의 힘에 대 한 땅의 힘의 투쟁의 역사란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땅과 바다의 원소적 대립을 알아 차리고 있었는데, 19세기 말까지도 당시 러시아와 영국 간 의 긴장을 "곰과 고래의 투쟁"이라고 지칭하곤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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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광범위한 사유세계의 정신을 담지하던 독일의 지리철 학자 에른스트 캅Ernst Kapp은 『비교 보편 지리학Vergleichende Allgemeinen Brdkunde』 (1845)에서 물에 의거해서 제국의 발전 단계를 규정한 바 있단다. 그는 세 가지 발전단계를 구분하 는데, 이는 거대한 드라마 한 편의 세 막에 해당돼. 그에게 세계역사는 "하천학적 Potanischen " 문화, 다시 말해 동양Orient의 하천문화와 더불어 시작되는데, 이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동방Osten의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이집트 제국이 연한 나일 강 변에서 시작되지. 그 뒤를 잇는 것이 지중해 내해Binnenmeer와 해안Meeresbecken의 소위 "연안thalassische" 시기인데, 여기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세 지중해가 속 하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범선의] 지구주항Umsegelung
과 더불어 세 번째이자 최고의 단계인 해양ozeanische 문화 단계에 도달하는데, 그 문화의 담지자가 게르만 민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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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빌은 『모비 딕』에서 이 싸움의 과정에서 사냥꾼과 사냥 감 사이에 거의 "개인적 관계 persinliche Beriehung"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미묘한 적대와 동지적 결합이 어떻게 맺어지는지 묘사하고 있어. 바다에 사는 다른 생명체와의 이런 투쟁을 통해 인간은 점점 해상적 실존의 원소적 깊이까지 빠져들게 되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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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물고기가 없었더라면 어부들은 언제까지고 해안에만 들붙어 있 었을 거야. 고래가 그들을 유혹해 해양으로 끌어들임으로 써 해안에서 해방시켰던 것이지. 고래를 통해 인간은 해류를 발견하고 북쪽의 관통로 Durchgang를 발견했어. 고래가 우리를 안내했던 거야.
16세기 우리가 사는 행성에는 동시에 서로 다른 두 종 류의 사냥꾼들이 원소적 출발점에 위치하고 있었어. 열려진이 두 새롭고 무한한 공간들이 위대한 제국들의 요람이 었던 거야. 땅에서는 러시아의 모피동물 사냥꾼들이 모피 동물들을 쫓아 시베리아를 정복하고 육로를 통해 동아시아 해안에 도달했지. 대양에서는 바다를 헤치고 전진하며 고 래를 사냥했던 북유럽, 서유럽에서 온 고래 사냥꾼들이, 미슐레가 옳게 말했듯, 지구Globus를 우리에게 열어젖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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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영국이 상속자, 유럽 국가들의 존재에 큰 변화를 가져온 보편상속자 Universalerbe가 된 거란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이는 이전의 해양 패권의 역사적 사례 들, 즉 아테네나 카르타고, 로마, 비잔티움 또는 베네치아와 비교한다고 해서 확실히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니야. 영국의 경우는 그 자체로 고유하기 때문이지.
그것의 비교 불가능성은 영국이 이전 시기 대양 권력들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순간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원소적 변형 elementare Wandlung을 겪었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어. 영국은 자신의 실존을 진정으로 바다 쪽으로 돌렸고 그것을 바다 원소의 중심에 놓았어. 이를 통해 영국은 수많은 해전과 전쟁에서 이겼을 뿐 아니라 뭔가 훨씬 더 다른 것, 바로 혁명 을 성취할 수 있었어. 전 지구적planetarische 차원에서의 공 간혁명이 그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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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공간"에 대한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의식은 거대한 역사적 변화들에 종속되어 있지.
수많은 존재형식에 상응하는 만큼이나 다양한 공간들이 있어.
그러니 서로 다른 민족들, 나아가 인류의 역사에서 서로 다른 시대에 공간에 대한 표상의 차이는 그만큼 더 깊고 클 수밖에 없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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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코페르니쿠스가 그랬던 것처럼, 역사를 구축한 힘Kralle과 권력 Machte은 학문을 기다리지 않는단다. 역사적 힘들이 새로운 자극을 야기할 때마다 새로운 에너지의 파동은 인간 의식의 시야에 새로운 땅과 새로운 바다를 가져오고, 역사적 실존 공간들은 그에 상응하는 변화를 겪는단다. 그런 이유로 새로운 척도가, 정치적-역사적 행위의 새로운 차원이, 새로운 학문과 새로운 질서가 동시에 나타나지. 즉, 새로 탄생한 아니 재탄생한 민족의 새로운 삶이 생겨나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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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 황제의 스승이자 교육자 였다가 결국 그의 희생자가 되는 세네카 Licius Annaeus Seneca는 당시에 경험한 전 지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감정을 균형 잡힌 구절과 문장으로 써놓았단다.
“뜨거운 인도와 차가운 아라스 강Araxes이 서로 만난다.
페르시아가 엘베와 라인 강의 물을 마신다.
테티스Thethis가 새로운 세계들novos orbes의 장막을 걷어낼 것이다.
툴레 Thule가 더 이상 지구의 경계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시간 계산Zeitechnung의 출발은 시간의 충만Fille에 대한 의식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지평과 가득 찬erilten 지구 공간이라는 의식과도 결합되어 있던 명실상부한 시간의 전환 Zeienvende이었어. 세네카의 말들은 현시대와 위대한 발견의 시대를 잇는 비밀스런 다리였어. 그의 말은 수백 년 동안 중세 유럽의 공간의 암흑화와 육지화 Verlandung를 가로질러 왔어. 그의 말은 사유하는 사람들에게 지구적으로 확장된 광대한 공간에 대한 감정을 전해주었고, 그것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줬어. 동시대 많은 사람들처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세네카의 말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말에서, 새로운 세계로의 항해, 즉 서쪽으로 항해하여 동쪽에 도달하는, 그리고 결국 실제로 도달했던 대담한 탐험에 착수하는 데 필요한 자극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어. 세네카가 사용한 "새로운 세계novus orvis"라는 표현이 1492년 발견 된 아메리카 대륙에 곧바로 적용되었던 것도 이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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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원정을 거치며 프랑스, 영국, 독일의 기사와 상인들이 근동을 알게 되었지. 북쪽에서는 독일 한자동맹과 튜턴기사단Teutonic knights이 새로운 지평 을 열었어. 여기서 "중세 시대의 세계 경제"라고 불리는 교 통과 무역 체계가 생성된 것이란다.
고딕 성당의 궁룡은 각 요소들 이 단지 무게로만 서로 균형을 유지하면서 지지하는 구조야. 로마네스크 구조물의 육중하고 정적인 덩어리들과 비교했을 때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공간에 대한 감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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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본적인 질서는 공간의 질서야. 한 나라Land 혹은 한 대륙의 법Verfassung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것의 근본적인 질서, 즉 노모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이야. 때문에 모든 위대한 시대의 시작은 광대한 땅의 취득Landnahme과 일치하지. 특히 지구/땅의 이미지 Erdbildes에 있어 모든 의미심장한 변화와 전환은 정치적 변화들과 지구/땅의 새로운 분배, 새로운 땅의 점령 과 불가분의 관계야. 그러니 16~17세기에 있었던 놀랍고 유례없는 공간혁명이 그만큼 놀랍고 유례없는 땅의 취득으 로 이어지는 건 당연하지 않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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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와 19세기에 오면 기독교 선교라는 명은, 아 직 문명화되지 않은 민족들에게 유럽 문명을 전파한다는 명으로 바뀌게 되지. 바로 이러한 정당화Rechtierigungen 로부터 기독교-유럽적 국제법 [대륙법] Volkertecht, 다시 말해 나머지 세계와는 다른 유럽 기독교 민족들의 공동체 Gemeinschaft 의 법이 생겨나게 돼. 이것이 기독교 민족 국가 간의 질서 인 "국가의 가족ramilen der Natonen'을 형성하게 되지. 이러 한 국제법은 기독교와 비기독교 민족의 구분, 1세기 후에는 (기독교-유럽적 의미에서) 문명화된 민족과 문명화되지 않 은 민족의 구분에 근거하고 있어. 이러한 의미에서 문명화 되지 않은 민족은 이 국제법 공동체 Volkerrechtsgemeinschalit의 일원이 될 수 없었던 거야. 그러한 나라는 국제법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여겨졌지. 다시 말하면 그 나라는 식민지 아니면 식민지 보호국Protektorat으로서 문명화된 나라들의 소유물일 뿐이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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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비니즘은 그에게 걸맞은 믿음보다 바다를 향한 원소적 출발dementare Aubruch에 더 사로잡혀 있었지.
모든 비-칼빈파가 칼빈주의 신앙에 경악했는데, 인간 이 영원 가운데에서 선택되었다는 강한 믿음, 즉 "예정론 Pradestination" 때문이었어. 근대 사회학의 언어로 말하자면 그 믿음은, 역사에서 자신들의 서열과 사회적 입지Sunde에 대해 확신하는 엘리트들의 극단적인 자기의식이지. 간단히 말해, 그 것은 구원받았다는 확실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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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바다로 돌리기만 해도 우리는 터져 나오는 유럽의 자유로운 해양적 에너지와 정치적 칼비니즘을 결부시키는 만남Zusammentrefien, 혹은 이렇게 불러도 된다 면, 세계 역사적인 형제애(Brudeschat를 볼 수 있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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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관점에서 엄밀하게 보자면 대 륙은 그저 해안, 즉 "배후의 땅Hinterland"을 가진 해변에 불과해. 바다로부터, 대양적 실존에서 보자면, 땅 전체는 표류물Strandgut이면서 대양의 분출물Auswuri일 수도 있어. "스페인, 그것은 유럽 해안에 좌초한 거대한 고래"라는 에드먼드 버크의 놀라운 말은 바다로부터 출발하는 관점의 대표적인 사례인 셈이지.
영국은 모든 것을 거점과 이동경로라는 측면에서 사고했어. 다른 민족들에게는 대지Boden와 고향이었던 것이 영국에게는 그저 배후의 땅으로만 보였기 때문이야. '대륙적 kontinental' 이라는 단어는 시대에 뒤떨어진rickstandig'이라는 부가적 의미를 얻게 되었고, 해당 국민들은 '퇴보하는 국민들backward People 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면서 그 섬은, 다시 말해 순수한 해상적 실존 위에 세워진 세계 제국의 수도Metropole는 뿌리를 제거하고, 땅을 떨쳐버렸어enta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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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7월 머핸은 영국과 미합중국의 재통일 가능성에 관한 글을 써. 하지만 그에게 같은 인종이라든가, 언어, 문화는 단지 있으면 좋을 장신구에 불과했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 바다에 대한 앵글로색슨의 지배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어.
디즈레일리 같은 정치인이 영국의 세계 제국을 아시아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미국의 해군제독은 영국을 미국으로 이식하는 것을 생각했던 거야.
머핸이라는 인물 자체의 중요성뿐 아니라 더 거대한 섬 이라는 그의 구상 역시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그 구상은 새 로운 공간질서의 원소적 본질에 이르지 못하고 있어. 그것 은 노련한 대양항해자Seefahrer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야. 그 구상은 과감한 대양 항해와 칼비니즘적 예정조화론 사이의 세계사적 연맹이 16, 17세기에 이룩했던 원소적 분출Autbruch의 에너지와는 무관한, 지정학적 안정에 대한 보수적 요구에서 나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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