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나이키 한 켤레에 치킨 한 마리' 코로나가 낳은 필리핀의 물물교환

딸기21 2020. 9. 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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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 필리핀 마닐라 교외의 라스피나스시티에서 로레인 임페리오(왼쪽)가 쓰지 않는 우유병들을 가지고 나와 물물교환을 하고 있다.  마닐라 AFP연합뉴스

 

나이키 신발 한 켤레에 치킨 한 마리.

 

필리핀 마닐라에 사는 28살 로레인 임페리오는 두 아이의 엄마다. 도넛가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남편은 ‘코로나19 봉쇄’ 때문에 근무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은 한 달에 9000페소, 20만원에 불과하다. 그 중 절반은 아파트 월세로 나간다. 궁여지책으로 식료품점에서 외상으로 먹을거리를 받아오곤 했지만 그 돈을 어떻게 갚을지 막막하다.

 

그러던 차에 임페리오의 눈에 들어온 것이 물물교환 사이트다. 페이스북에 생긴 물물교환 장터를 발견한 것이다. 아기가 입던 점퍼와 랄프로렌 후드티를 ‘매물’로 내놔서 쌀 6kg과 바꿨다. 나이키 슬립온(끈 없는 신발) 한 켤레를 올려봤다. 치킨 한 마리와 교환이 성사됐다. 임페리오는 지금 나이키 신발 한 켤레를 더 올려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필리핀의 코로나19 감염자는 22만명이 넘고 사망자도 3600명에 이른다.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거나 재택근무로 임금이 줄었다. 생계비가 부족해진 필리핀인들 사이에 페이스북을 이용한 ‘물물교환 장터’들이 생겨나 인기를 끌고 있다고 AFP통신이 2일 보도했다.

 

AFP가 집계해보니 페이스북에만 100개 가까운 물물교환 그룹이 생겨났다. 회원 수는 200만명이 넘는다. 방법은 단순하다. 갖고 있는 물건의 사진을 올리면 원하는 이들이 댓글을 단다. 조건이 맞으면 거래가 성사된다. 주로 교환되는 물품은 식료품이나 잡화 종류다.

 

조셀 바타파 시그는 중부 도시 바콜로드에 사는 변호사다. 필리핀 정부는 지난 3월 고강도 봉쇄를 시작했다. 시그는 가족 중에 남편에게만 통행증이 발급돼 꼼짝 없이 집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물건을 사러 나가지도 못하고 돈도 부족해진 사람들끼리 서로 돕기 위해 시그는 ‘바콜로드 물물교환 모임’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회원 수가 벌써 23만명에 이르며, 날마다 늘어나고 있다. 거래되는 품목은 샴푸에서부터 생일케이크, 휴대전화와 화장품까지 수천종에 이른다고 시그는 설명했다. 그는 AFP에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물물교환 커뮤니티가 이렇게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조사기관의 7월 초 조사에 따르면 520만 가구가 석달 사이에 1번 이상 ‘먹을 것이 부족해서 굶은’ 적이 있다고 했다. 당장 봉쇄와 생계비도 문제이지만,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김에 쌓아두고 있던 물건들을 정리하려는 사람들도 많다고 AFP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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