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몬트리얼 출신의 사업가 도브 차니(51)는 198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아메리칸어패럴’이라는 의류회사를 창업했다. 생산부터 유통까지 모두 수직통합시킨 이 의류회사는 13개국에 수출을 하며 직원이 250여명에 이르는 ‘북미 최대 의류공장’으로 성장했다. 차니는 캘빈 클라인이 받았던 마이클상, LA패션상 등을 받으며 유력 청년사업가가 됐다.
차니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그린카드(영주권)’ 소유자라는 점 때문에 ‘이민자의 성공스토리’로 각광받기도 했다. 공장 직원들도 90%가 멕시코 출신 이주노동자였다. 차니는 2000년대 중반 ‘LA합법화(Legalize LA)’라는 이름으로 미등록 이주자들에게 합법적인 신분을 내주자는 캠페인에 나섰다. ‘LA 합법화’라는 구호가 쓰인 티셔츠를 팔고, 입간판들을 세웠다. 2008년 주의회에서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주민발의가 통과됐을 때에는 ‘게이 합법화’라 쓰인 티셔츠를 만들어 성소수자 권익 옹호에 앞장섰다. 물론 이런 ‘캠페인 티셔츠’들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차니는 개도국 의류공장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개탄하기도 했다. 2013년 5월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의류공장이 무너져 노동자 1100여명이 숨지자 그는 ‘노예노동’, ‘덫에 걸린 대량생산’을 비판하며 “세계의 의류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과 공장의 현실은 달랐다. 아메리칸어패럴에서 2000년대 중반 이후 차니에게 성추행·성희롱을 당했다는 노동자들의 소송이 잇달았다. 차니는 CNBC 등에 출연해 “나는 결백하다”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모두 재판까지 가지 않고 보상금으로 합의했던 것이었다. 2008년의 한 사건에선 피해자에게 130만달러를 주기도 했다. 이런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회사는 무너져갔고 2014년 이사회가 차니를 해임했다. 이사회는 “차니의 성적 학대에 대한 제소가 계속돼 더이상 경영이 불가능하다”고 발표했다. 뉴욕포스트 등의 당시 보도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보험료만 100만달러가 밀리는 등 재무관리도 엉망이었다. 아메리칸어패럴은 2016년 파산을 신청했다.
쫓겨난 차니는 회사가 파산하자마자 곧바로 ‘로스앤젤레스어패럴’을 새로 만들었다. 생산·운영방식이 이전 회사와 똑같은 것은 물론이고, 직원도 90%가 아메리칸어패럴에서 빼온 사람들이었다. LA어패럴은 직원 400명의 의류회사로 다시 성장했고 무너진 줄 알았던 차니도 회생했다.
코로나19는 새로운 기회가 되는 듯했다. LA타임스는 차니가 미국에서 감염증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전인 2월부터 이미 품귀현상을 내다보고 의류생산 라인을 마스크와 방호복 등 개인보호장비(PPE) 생산으로 바꿨다고 전했다. 차니는 ‘여러번 사용할 수 있는 N95 마스크’를 생산한다고 홍보했다.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상황에서도 회사는 주당 마스크 10만개를 생산하기 위해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LA어패럴은 결국 부메랑을 맞았다. 최근 직원 300명 이상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그 중 4명은 사망했다. LA카운티는 11일(현지시간) 이 회사 공장을 폐쇄했다. 카운티 보건국은 회사가 방역지침을 무시했고 조사에도 협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집단발병이 일어난 것 같다는 보험사 제보를 받고 당국이 직원 명단을 요구했지만 사측이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국이 현장조사를 해보니 방역 규정을 명백하게 어긴 사실이 드러났다. 지역 노동단체는 LA타임스에 “이미 5월부터 그 공장 노동자들이 감염된 것 같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거리두기를 지키지 않아 걱정스러웠다”고 했다.
뉴욕주에 이어 미국 주들 가운데 두 번째로 코로나19가 많이 퍼진 캘리포니아주에서는 11일까지 누적 확진자가 32만명에 이르고 사망자가 7000명이 넘는다. LA카운티에서만 13만명이 감염됐다. 이번엔 차니도 ‘물밑 보상금’으로 합의하고 끝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바버라 페러 LA카운티 보건국장은 “의류노동자들의 사망은 충격적인 비극”이라며 “기업주와 관리자들에게는 직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기업윤리가 필요하며 특히 치명적인 바이러스와 싸우는 이런 시기에는 윤리가 더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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