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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WTO 수장 도전, 유명희 본부장 라이벌은 ‘나이지리아 반부패 상징’

딸기21 2020. 7. 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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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6월 2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WTO 사무총장 출마 선언 브리핑을 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세계무역기구(WTO) 차기 수장에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등 8명이 출사표를 냈다. WTO는 8일(현지시간) 마감된 사무총장 후보 접수에 한국, 나이지리아, 이집트, 케냐, 멕시코, 몰도바,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등 8개국 출신이 지원을 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이번이 세 번째 WTO 사무총장 도전이다.

 

유명희 본부장은 지난달 24일 WTO에 낸 지원서에서 “한국의 통상각료로 25년간 교역 부분에서 혁신가, 협상가, 전락가이자 개척자로 일해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다자 시스템의 중요성을 믿으며 개방적인 교역체제의 수혜자인 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갱신해나가야 한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유 본부장의 강력한 경쟁자로는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전 재무장관(66)이 꼽힌다. 석유대국 나이지리아의 부패와 싸우고 재정 투명성을 높여 국제기구나 재정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아온 인물이다. 22세에 하버드대 경제학부를 졸업했고 27세에 매서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저개발국 지역금융과 신용정책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은행에서 25년간 근무했고 2007~2011년에는 부총재를 지냈다. 2000년대, 2010년대 두 차례 나이지리아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군부 독재가 끝나고 1999년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문제는 석유자원에서 비롯된 지역갈등과 연방 내 여러 주들의 이익 챙기기와 부패였다. 2003년 재무장관이 된 오콘조-이웰라는 채권국 모임인 파리클럽과 협상해 180억 달러 규모의 빚을 줄이고 유가와 연동해 재정수입을 정비했다. 니제르델타 유전의 석유에서 나온 수입을 놓고 각 주들이 쟁탈전을 벌이던 상황에서, 그는 이 자금이 지방 정부에 어떻게 내려가는지 온라인에 모두 공개했다. 원유초과계정(ECA)’이라는 특별 회계를 만들어 유가가 올라갔을 때 추가로 거둔 수입을 쟁여 재정불안정을 줄였다.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에 도전장을 낸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전 재무장관.  AFP

 

공공부문 재정관리를 강화하고 ‘유령 공무원’들에게 새나가는 돈을 없앴다. 나이지리아는 2006년 최초로 피치와 S&P 신용등급이 BB-로 올라갔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이었던 로버트 게스트는 “오콘조-이웰라 장관이 공항에서 일반인들과 똑같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고 적었다.

 

오콘조-이웰라 전 장관은 첫 임기를 마친 뒤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내고 2011년 2번째 재무장관 임기를 맞았다. 정부의 대규모 주택건설 프로젝트에 맞춰 모기지 시스템을 만들고 여성·청년정책을 추진했다. 여성 경제력 강화와 청년창업 등을 지원해 세계은행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효과적인 프로그램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시기 나이지리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치고 아프리카 최대 경제국으로 떠올랐다. 재무장관을 마친 뒤에는 세계경제·기후위원회(GCEC) 활동을 했고, 현재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유 본부장의 강점이 통상이라면, 오콘조-이웰라 전 장관은 국제무대 경험이 많고 WTO 본부가 있는 제네바에서 인지도가 높다. 하지만 재무관료 출신이고 개발경제 전문가여서 통상분야는 다소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유 본부장은 코로나19 대응 ‘K방역’의 후광효과와 ‘여성 리더십’을 강조할 것으로 보이지만 오콘조-이웰라 전 장관도 여성이고 Gavi를 이끌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의 강점은 겹친다.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무역기구(WTO) 본부. WTO 웹사이트

 

유 본부장은 일본의 견제를 막아내야 한다. 오콘조-이웰라 전 장관도 케냐의 라이벌을 제껴야 한다. 당초 아프리카연합(AU)이 단일후보를 내려 했으나 무산됐다. 마감시한을 하루 앞두고 7일 지원서를 낸 케냐의 아미나 모하메드 전 외교통상장관은 WTO 총회 의장을 지냈으며 역시 국제무대에서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벨기에 브뤼셀 국제정치경제유럽센터의 에밀리 리스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지금 WTO는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가 필요한 게 아니다”라며 “케냐와 나이지리아 후보들이 정치적으로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모두에게서 중립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데다 한번도 WTO 수장을 낸 적 없는 아프리카 출신에 여성이라는 명분도 이롭게 작용할 것으로 봤다.

 

이밖에 WTO 관리 출신인 이집트의 하미드 맘두, 영국의 리엄 폭스 전 국제통상장관, 동유럽 몰도바의 투도르 울리아노브스키 전 외교장관,멕시코의 헤수스 세아데 쿠리 외교차관,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마지아드 알투와이즈리 전 경제기획부 장관 등 거의 전 대륙에서 후보들이 나섰다. 사퇴의사를 밝힌 호베르투 아제베두 현 WTO 사무총장이 브라질 출신이라 멕시코 후보는 승산이 낮아 보이고, 사우디·영국은 막판에 가세해 판세를 점치기 어렵다.

 

케냐의 아미나 모하메드 전 WTO 총회 의장.  AP

 

후보들은 15∼17일 WTO 일반이사회에 나와 비전을 밝히고 질의응답을 한다. 이후 최종 1명만 남을 때까지 지지도가 낮은 후보들부터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선출된다. 길게는 반년이 소요될 수도 있다. 유 본부장이 선출되면 국제기구 수장을 다시한번 배출함으로써 한국이 국제사회 리더 국가로 각인될 수 있다.

 

하지만 WTO는 다자주의가 훼손되고 도하개발어젠다(DDA)까지 무산되면서 힘이 많이 빠진 상황이다. 특히 과거 세계에 시장개방을 강요했던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자간 교역체계를 무시하고 ‘무역 일방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 의회전문지 더힐에 따르면 공화당 일부 의원들은 코로나19 대응에서 ‘중국편’을 든 세계보건기구(WHO)에 이어 WTO도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무역 때문에 미국의 일자리가 줄었으며, WTO의 무역분쟁 판결이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새 사무총장은 코로나19로 붕괴된 세계의 교역망을 정비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공격에도 맞서야 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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