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채소 바구니에 카메라 숨기고…카슈미르 사진기자들 '퓰리처상' 받는다

딸기21 2020. 5. 5. 19:36

인도 북부 카슈미르의 스리나가르에서 지난해 8월 복면을 쓴 시위자가 경찰차 위로 뛰어오르고 있다. AP통신 사진기자 다르 야신이 찍은 것이다. 야신 등 AP 사진기자 3명은 봉쇄령 속 카슈미르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로 올해 미국 퓰리처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AP연합뉴스

 

지난해 8월 인도 정부는 파키스탄과의 영토분쟁 지역이고 무슬림 주민이 대부분인 잠무카슈미르의 자치권을 박탈한다고 발표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집권 이래 줄곧 ‘힌두민족주의’를 부추기며 무슬림들을 억압해왔지만 카슈미르의 자치권까지 빼앗은 것은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카슈미르 주민들이 저항하자 정부는 야간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통신을 모두 끊었다. 소요를 막는다며 인도군과 준군사조직들을 대거 투입했다. 시위와 진압 속에 인도 군인과 ‘반정부군’, 민간인 등 400명 가까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장의 소식은 당국 통제 때문에 밖으로 잘 전해지지 않았다.

 

다르 야신과 무크타르 칸, 찬니 아난드는 카슈미르에서 일하는 AP통신 사진기자들이다. 낡은 경찰차의 보닛 위로 뛰어오르는 복면 차림의 시위자, 유리탄환에 맞아 눈을 다친 어린 소녀, 풀숲에 숨어 염탐을 하는 인도 군인 등의 사진을 찍었다. 군과 경찰의 눈을 피해 민가에 몸을 숨기거나 채소 바구니에 카메라를 넣고 현장을 담았다. 찍은 뒤에는 외부로 전송하는 게 문제였다. 사진 파일이 담긴 저장장치를 공항에 들고가, 승객들을 붙들고 부탁해 뉴델리의 AP 사무실로 전달했다.

 

올해 미국 퓰리처상 수상자로 선정된 AP통신 사진기자 다르 야신.  다르 야신 트위터

 

카슈미르의 현실을 알린 세 기자들은 올해 미국의 유명 언론상인 퓰리처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AP통신 소속이기는 하지만, 미국 언론들을 대상으로 한 이 상을 외국인이 받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알자지라방송 등은 전했다.

 

카슈미르의 중심도시 스리나가르에 살고 있는 야신은 e메일로 공개한 소감에서 그간의 작업을 보안당국과의 숨바꼭질에 비유했다. “그런 상황들은 우리를 침묵시키기는커녕 더 결연해지게 만들었다”고 했다. AP통신의 개리 프루이트 대표는 이들의 사진이 “아주 중요하고 탁월했다”며 “카슈미르 안에서 일하는 팀 덕에 독립을 둘러싼 그 지역이 오랜 분쟁이 극적으로 고조되는 것을 세계가 목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퓰리처상 위원회는 4일(현지시간) 웹사이트를 통해 올해의 수상작과 수상자들을 발표했다. 알래스카 원주민 지역의 성폭력 문제를 파헤친 앵커리지데일리뉴스와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가 공공서비스부문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됐다.

 

AP 사진기자 무크타르 칸이 지난해 8월 인도 카슈미르에서 찍은 사진. 정부군이 쏜 유리탄환에 오른쪽 눈을 맞아 눈물을 흘리는 6살 소녀 무니파 나지르의 모습이다.  AP연합뉴스

 

탐사보도 부문에서는 택시기사들의 자살로까지 이어진 택시면허 ‘웃돈’ 실태를 폭로한 뉴욕타임스 기사가 수상작이 됐다. ‘러시아 스캔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타격을 거의 입히지 못했지만, 러시아의 해외개입 공작을 다룬 뉴욕타임스 기사는 국제보도부문 수상작이 됐다. 야신을 비롯한 카슈미르의 세 기자들은 특집사진 부문 수상자가 됐다. 홍콩 시위현장 풍경을 전한 로이터통신 기자는 속보사진 부문 상을 받는다. 올해 처음 만들어진 오디오보문 상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돌아갔다.

 

코로나19는 퓰리처상 발표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로 예정됐던 발표가 감염증 때문에 한 달 연기된데다,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수상자를 공개하던 전례를 바꿔 데이나 캐너디 사무국장이 자택에서 동영상으로 발표했다. 캐너디 사무국장은 “전례없이 불확실한 시절이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저널리즘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