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WHO 돈줄 끊은 트럼프에 쏟아진 비난…시진핑 위상만 높인다

딸기21 2020. 4. 16. 15:05

15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보건기구(WHO) 본부에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의학과 의사를 상징하는 지팡이와 뱀을 형상화한 로고가 걸려 있다.  제네바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에 실패한 책임을 묻겠다며 세계보건기구(WHO)에 내야 할 기여금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 세계에서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감염자 수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을 비롯해 중국과 러시아 등이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고, 유엔 사무총장도 국제사회의 연대를 호소하며 트럼프 정부의 조치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이 조치로 ‘미국 대 세계’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게 됐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5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에서 “지금은 WHO를 비롯한 인도주의 기구들의 바이러스 퇴치에 대한 지원을 줄일 때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연대하고 협력할 때”라고 호소했다. EU의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트위터에 “전염병과 싸우는 WHO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시점”이라며 미국의 조치가 “매우 유감스럽다”고 적었다. 보렐 대표는 미국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교장관도 트위터에 “바이러스에게는 국경이 없다”며 “최고의 투자는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WHO와 유엔에 힘을 보태는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슈테펜 자이베르트 독일 총리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WHO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며, 독일 정부는 WHO를 충분히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미국의 발표를 크게 우려한다”며 “WHO를 공격하는 행위는 어떤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했다. 프랑스 정부도 트럼프 정부의 결정에 유감을 표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자랑해온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 측은 “영국은 WHO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면서도 미국 조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하지 않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이스트베이의 캘리포니아주립대학에 설치된 코로나19 ‘드라이브스루’ 진료소에 15일(현지시간) 검사 대기줄을 표시한 팻말이 세워져 있다.  이스트베이 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WHO가 코로나19에 관한 중국의 허위 정보를 촉진했다”며 자금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WHO는 유엔 등 국제기구들이 내는 돈과 세계 190여개국이 내는 기여금으로 운영된다. 각국의 기여금은 강제성을 띠는 할당금과 자발적 기여금으로 나뉜다. 미국은 할당금의 5분의1을 부담하고 있는 최대 기여국이다.

 

미국이 이 돈을 내지 않으면 아프리카나 중남미의 빈국들은 기초적인 질병 관리에도 구멍이 뚫리게 된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위중한 상황에서 미국이 돈줄을 끊으면 세계의 빈곤층은 직접적인 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 55개 국가들의 연합체인 아프리카연합(AU)의 무사 파키 마하마트 집행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가 발표된 뒤 “세계는 어느 때보다도 WHO의 지도력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WHO가 유엔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대응 실패의 책임을 외부로 돌린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에는 미국 내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당장 미국의 감염증 대응을 맡고 있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부터 백악관과 반대되는 목소리가 나왔다. 로버트 레드필드 CDC 국장은 현지 방송들에 “WHO는 우리의 훌륭한 파트너”라면서 앞으로도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빌&멜린다게이츠재단’을 이끌며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세계의 보건위기 속에 WHO 자금지원을 끊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WHO를 대체할 기관은 없다”고 했다.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무분별하고 위험한 결정”이라는 성명을 냈고, 세출위 간사인 민주당 패트릭 레이히 상원의원은 “적이 다가오는데 우군의 탄약을 뺏는 짓”에 비유했다. 미국의사협회(AMA)도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위험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투입돼 코로나19 긴급지원을 펼쳤던 의료진들이 15일 해단식을 하고 있다.  우한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도 ‘중국의 허위정보’ ‘중국을 편드는 WHO 책임’을 거론했지만 이번 조치는 오히려 중국의 위상을 높이고 미국을 더더욱 고립시킬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WHO를 중심으로 각국이 협력해야 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16일 인민일보에 따르면 시 주석은 중국공산당 이론지 치우스(求是)에 ‘단결과 협력은 전염병과 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글을 실었다. 이 글에서 시 주석은 “바이러스에는 국경이 없고 인종을 구분하지 않는다”며 “인류는 하나의 공동운명체이고, 질병과 싸워 이기려면 단결과 협력이 가장 위력적인 무기다”라고 주장했다. 국제 협력을 강조함으로써 중국의 주도적인 역할을 부각시키고, 중국인들을 겨냥한 서구의 ‘코로나19 인종주의’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은 “중화민족은 은혜를 갚는 민족”이라면서 “중국 정부는 투명하고 책임성 있는 태도로 WHO와 각국에 감염증 상황을 알리고 치료 경험을 공유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당초 불투명하고 혼란스런 대응으로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았던 중국 정부는 미국과 유럽에 의료장비들을 보내고 아프리카 빈국들의 코로나19 대응을 지원하며 국제무대에서 다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