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31
지난해 9월,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우고 차베스의 뒤를 이은 좌파 정치인 마두로는 격렬한 반정부 시위와 서방의 퇴진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통화 상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였다.
마두로를 퇴진시키고, 자원부국인 베네수엘라에 미국 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줄리아니의 목적이었다. 줄리아니와 피트 세션스 전 하원의원이 막후에서 마두로에게 이런 거래를 제안했으며, 여기엔 두 사람의 개인적인 이해관계도 걸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워싱턴포스트가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11차례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세션스는 지난해 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를 방문해 마두로를 직접 만났다. 이어 9월에 마두로에게 전화를 했고, 줄리아니가 합류해 마두로와 통화를 했다. 당시 백악관에서는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강경 정책을 밀어붙이며 제재를 확대하려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줄리아니는 뒤에서 마두로에게 물러나라고 설득하며 시장 개방을 앞당기려 했던 것이다. 줄리아니의 통화 내용은 백악관에도 전해졌지만, 내용을 전달받은 ‘전직 고위 관리’도 줄리아니가 왜 이 문제에 개입했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이들의 통화는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깊숙이 관여한 줄리아니가 어떻게 트럼프의 비선 실세로서 외교 문제들에 개입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정적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수사를 요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하원 탄핵안까지 통과됐다. 뉴욕 시장을 지낸 줄리아니는 이 스캔들의 핵심에 있는 인물이다. 줄리아니가 개입한 것을 알게 된 볼턴이 몹시 화를 냈고, 백악관 안보라인 내 균열로 이어진 사실도 의회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그런데 베네수엘라 문제를 놓고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마두로와 줄리아니의 통화를 주선한 세션스는 백악관이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를 멋대로 갈아치우는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원의원을 11차례 역임한 세션스는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낙선했고, 그 뒤에 줄리아니와 가까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줄리아니는 마두로와 통화를 할 무렵 볼턴을 찾아가 ‘마두로를 달래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으나 볼턴은 거부했다. 올 1월 미국은 마두로의 라이벌인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공식 인정했다. 이 조치를 강력하게 밀어붙인 것이 볼턴이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그 후 줄리아니는 베네수엘라 문제에 개입하기 위해 또 다른 파트너를 찾아나섰다. 자금 세탁 혐의로 미 법무부의 조사를 받고 있던 베네수엘라의 재벌 기업인. 알레한드로 베탕코트였다. 줄리아니는 플로리다에서 기소 위기에 놓인 베탕코트를 위해 법무부에 로비를 하기도 했다.
줄리아니 뒤에는 베네수엘라 시장을 노리는 기업인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플로리다에 본사를 둔 에너지·선박회사 경영자 해리 서전트는 “카라카스의 정치적 격동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경제제재 같은 적대적인 정책들은 심대한 역효과를 낼 수 있으니 막후 채널을 활용해야 한다”는 성명을 낸 적이 있다. 서전트는 미국 기업들이 베네수엘라에서 러시아와 중국 측에 비해 불이익을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텍사스 출신으로 엑손모빌을 비롯한 에너지 기업들과 깊숙이 연결돼 있는 세션스가 그후 마두로를 찾아가 만났고, 몇 달 뒤 줄리아니와의 전화를 연결해줬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마두로와의 물밑 협상에 반대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이 모든 과정에서 국무부는 배제됐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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