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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깊이보기]목소리 키우는 마크롱...독일 지고 프랑스 뜬다?

딸기21 2019. 8. 2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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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지고 프랑스가 뜬다?

 

지난 26일 막을 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의 주인공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었다. 프랑스 남서부 휴양지 비아리츠에서 열렸기 때문에 마크롱 대통령이 주최국 수반으로서 호스트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국제사회에 자신의 역할을 각인시키기 위한 이벤트를 많이 집어넣은 것도 사실이었다. 25일 회의장에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을 깜짝 초빙해 눈길을 끌었고, 회의가 끝난 뒤에는 미국-이란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해 기대감을 모으기도 했다. 브라질 아마존 산불을 끌 수 있게 G7이 돕자며 2000만달러(242억 원) 지원 제안도 내놨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26일 남서부 휴양지 비아리츠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마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비아리츠 AP연합뉴스

 

누가 보기에도 이번 정상회의는 ‘마크롱의 G7 회의’였다. 반면 오랜 기간 ‘유럽의 여제’로 군림해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의 마지막 날인 26일 양자회동을 하면서 미·중 무역전쟁, 미-유럽 무역협정, 이란 문제 등을 논의했으나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야체크 로스토프스키 전 폴란드 부총리는 지난 16일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독일 전성기의 종말과 프랑스의 귀환”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유럽을 좌지우지하던 독일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로스토프스키는 유럽의 맹주로서 독일의 위상을 떠받쳐온 두 축으로 미국의 안전보장과 막강한 제조업을 꼽으면서, 이 양대 축이 지금은 모두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트럼프 시대가 되면서 미국은 유럽에 안보비 부담을 늘리라며 거센 압력을 가하고 있다. 핵심 쟁점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경비를 누가 부담할 것이냐는 점이고, 워싱턴의 눈총은 당연하게도 베를린을 향하고 있다.

 

그동안 메르켈이 유럽연합(EU)에서 누려온 위상은 개인의 카리스마나 외교술이 아니라 ‘유럽의 기관차’라는 경제력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메르켈은 2021년 총리 임기가 끝나면 재임하지 않고 정계에서 아예 은퇴하겠다고 지난 5월 발표했다. 메르켈의 발언권이 줄어든 것은 ‘떠날 총리’임을 미리 밝힌 탓이기도 하지만, 유럽 경제위기 후 10년에 걸쳐 서서히 축적돼온 경제엔진으로서 독일의 한계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최근 독일 경제는 유럽의 경제기반을 흔드는 위험요인으로 부상했다. 2분기 제조업생산량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독일의 자랑이던 제조업 후퇴 조짐이 지표로 확인됐다.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지난 19일 올해 독일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무부가 나서서 500억 유로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시사했지만 독일 경제의 기상도는 갈수록 흐려지고 있다. 제조업에 바탕을 둔 수출주도형 경제라는 것이 지금까지는 독일의 강점이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맞지 않는 모델’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브렉시트라는 지정학적 변화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유럽 정치판도에서 최대 패자는 독일이 될 것이며, 대륙과 영국 사이에서 독일에 눌려 있던 프랑스가 운신폭을 넓힐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독일이 그동안 이탈리아, 스페인 등과 함께 유럽 통합을 주도해온 반면에 영국은 통합회의론 쪽에 서 있었고 그것이 브렉시트 결정으로 이어졌다. 로스토프스키는 “(통합되기 전인) 1990년대 이전 시기처럼 프랑스가 스윙 보터(swing voter)로 되살아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브렉시트를 놓고 분주히 움직여야 할 상황에서 메르켈은 갈수록 권위를 잃어가는 반면, 마크롱은 목소리를 키웠다. 새 EU 집행위원장에 독일 국방장관을 지낸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을 내세운 것조차 메르켈이 아닌 마크롱의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는 독일 경제가 나빠지면 내부적으로 극우파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며 정치적 분열이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드파워’ 분야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엇갈린 위치를 언급하는 이들도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력과 거리를 둬온 독일과 달리 프랑스는 핵무기 보유국이며, 재래식 군사력 측면에서 유럽에선 독보적이라는 것이다. 러시아가 무력시위를 불사하며 유럽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프랑스의 군사적 강점이 부각될 수도 있다.

 

물론 아직은 섣부른 관측이며, 독일이 한계를 보여준다 해서 프랑스가 ‘뜰지’는 알 수 없다. 마크롱이 국제무대에 나서고는 있지만 ‘노란조끼’ 사태에서 보이듯 자국 내 여론이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G7 회의장에서 내세운 것들은 많았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미-이란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마크롱의 눈부신 업적이 되겠지만 가능성은 적다. 아마존 지원 제안은 브라질이 거부했다. 지난 20여년 동안 프랑스는 늘 ‘중재자’가 아닌 ‘반대자’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다. 올해 프랑스의 경제성장률은 1.3% 정도로 예상되며, 다른 지표들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국제적 위상을 떠받쳐줄 만큼은 아니다. 독일이나 이탈리아보다는 성장률이 높지만 소비심리는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프랑스의 실업률은 8.7%로 10년 새 최저 수준에 이르렀으나, 여전히 높은 편이다. 경제전문가 에마뉘엘 제쉬아는 파이낸셜타임스에 “마크롱 정부가 추진해온 감세 등 경기부양책이 실패로 돌아가면 가계부채와 재정적자 양 측면에 오히려 위험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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