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대 실크로드 유적인 ‘둔황 석굴’을 연구해온 학자 겸 문화운동가 리메이인은 2015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 ‘홍콩은 둔황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한때 동·서양을 잇는 교역과 문화교류의 중심지였던 둔황은 시대가 바뀌고 무역 거점들이 이동하면서 버림받았는데, 아시아의 교역 중심지인 홍콩도 ‘자신만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면 둔황처럼 쇠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홍콩 시위사태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미·중 무역갈등으로 어수선한 판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둔황을 찾았다. 19일 간쑤성 둔황 막고굴을 시찰하고 문화재 연구자들을 만났다고 한다.
막고굴은 4세기부터 14세기 사이, 1000년에 걸쳐 지어진 불교 유적으로 윈강·룽먼 석굴과 함께 중국 3대 석굴로 꼽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시 주석은 이날 오전 간쑤성에 있는 만리장성 서쪽 끝 관문인 가욕관 성루를 방문한 뒤 막고굴을 둘러봤다. 이어 둔황연구원에서 학자들과 만나 “둔황 문화는 중화민족의 문화적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감 넘치는 문명만이 특색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문명을 배우고 흡수할 수 있다”고 했다.
전·현직 수뇌부 모임인 베이다이허 회의가 열리고 홍콩 시위가 격화되는 동안 공개석상에서 사라졌다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곳이 고대 실크로드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둔황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면서도 공교롭다.
시 주석은 학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중국의 목소리를 잘 전파해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축에 일조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야심차게 추진해온 육상·해상 신실크로드인 일대일로 계획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건재를 과시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이 2013년 주창한 일대일로는 고대 실크로드의 궤적을 따르면서 멀리 중·북부 유럽까지 구상을 확장시켰고,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바닷길도 포함시켰다. 일대일로가 지나는 길 중에 포함된 중국 내 고대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 중 하나가 둔황이다.
2016년 9월 중국은 일대일로를 홍보하기 위해 첫 ‘실크로드 문화엑스포’를 열었다. 이 엑스포의 상징물이 막고굴 모형이었다. 당시 외국 언론들은 중국이 ‘고대의 영광’을 강조하면서 소프트파워를 보여주려 하는 것으로 봤다.
시 주석은 둔황을 찾아가서, 국내 갈등이나 경제적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일대일로 계획을 강력 추진할 것임을 강조한 셈이다. 중국의 ‘무력진압’을 걱정하고 있는 홍콩 시민들은 시위에 대해선 한 마디 말도 없이 둔황의 석굴을 돌아보는 시 주석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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