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메리카vs아메리카

남미 앙숙 아르헨-브라질의 '대선 싸움'...핵심에는 좌파 상징 룰라

딸기21 2019. 8. 21. 16:20
728x90

남미의 앙숙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서로 상대의 대선을 놓고 ‘훈수 싸움’을 하고 있다. 좌파 정권의 복귀 가능성이 높아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우파 대통령이 연일 설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두 나라 좌우파의 대립이지만, 태풍의 눈에 있는 인물은 수감 중에도 여전히 남미 좌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다.

 

아르헨 좌파 대선후보 “룰라 석방하라”

 

아르헨티나 좌파 대통령 후보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와 부통령 후보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20일 브라질의 룰라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리우타임스 등 브라질 언론들에 따르면 이들은 ‘500일간의 불의’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불의로부터의 자유는 너무나 중요한 요구”라면서 500일 넘게 수감돼 있는 룰라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 성명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르헨티나의 진보적 지식인 아돌포 페레스 에스퀴벨,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인권단체 ‘5월 광장 할머니들’의 지도자였던 에스텔라 카를로토와 교수·언론인·노동운동가·예술가들이 서명했다. 앞서 6월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두 나라 정상회담에 맞춰 아르헨티나의 사회단체와 노조들이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아르헨티나의 좌파 대선후보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우파인 마우리시오 마크리 현 대통령, 브라질의 우파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 수감 중인 좌파 지도자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왼쪽부터).  EPA·로이터·AFP연합뉴스

 

페르난데스는 지난 11일 대선 예비후보에서 15%포인트가 넘는 차이로 마우리시오 마크리 현 대통령을 따돌려, 오는 10월 27일 대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닝메이트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한 유력 정치인이고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2010년 사망)도 대통령을 지냈었다. 이들은 마크리가 집권 뒤 무분별하게 시장을 개방하고 복지를 줄였다며 서민·빈곤층을 위한 정책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르난데스와 크리스티나는 지난달에는 브라질 쿠리치바를 방문해 수감 중인 룰라를 면담했다. 룰라는 아르헨티나 예비선거 뒤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빈민들을 돌봐야 한다”면서 페르난데스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500일 넘게 수감 중인 ‘좌파의 상징’

 

룰라는 옥중에 있지만 남미 좌파 지도자로서의 상징성과 빈곤 퇴치라는 성과, 부당한 수감에 대한 반발여론 등으로 여전히 브라질 정국의 핵이다. 지난달에는 중남미 좌파 정치인들이 멕시코 수도에 모여 룰라 수감을 비판하며 “빈곤과 싸운 사람”이라 치하하고 석방을 촉구했다.

 

브라질 우파들이 ‘유사 쿠데타’로 노동자당(PT) 정권을 몰아내고 집권하긴 했지만, 빈부격차가 극심하고 여전히 인구 상당수가 빈곤선 이하에서 살아가는 남미에서 룰라의 공적은 무시할 수 없는 성과다. 특히 PT가 추진한 ‘보우사 파밀리아’라는 복지프로그램은 저소득층 가정에 생계비와 교육비를 줘 빈곤층을 줄이는 효과가 컸다. 지난 10일 브라질 국책연구기관인 응용경제연구소(IPEA)는 2001~2017년 사이 340만명이 극빈상태에서 벗어남으로써 극빈층이 25% 줄었고, 320만명은 빈곤층에서 중산층으로 올라섰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이 프로그램의 효과를 인정하며 지원을 늘리라고 권고할 정도다.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이 중도·우파 정당들의 결탁으로 탄핵되고 룰라마저 수감되면서, 2002년부터 2017년까지 ‘장기집권’했던 PT 세력은 많이 약화됐다. 2022년 대선에 룰라를 내세우겠다는 입장이지만 룰라가 수감 중이라 출마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프레난두 아다지 전 상파울루 시장 등이 룰라의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브라질 우파 대통령은 아르헨 좌파에 ‘악담’

 

브라질의 우파 대통령 보우소나루는 룰라가 계속 거론되고 아르헨티나에서 좌파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자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마크리가 재선돼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던 보우소나루는 예비선거가 끝나자 “좌파가 이기면 아르헨티나는 베네수엘라 꼴이 된다”고 주장했다. 페르난데스와 크리스티나에 대해서도 악담을 서슴지 않았다.

 

정작 보우소나루 자신은 안팎의 비난으로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 셋째 아들을 주미대사로 보내려다가 거센 비판에 밀려 포기했고, 교도소 폭동에 금융시장 불안까지 겹쳤다. 아마존 숲을 베어내는 마구잡이 개발을 추진해 세계 환경단체들이 항의를 했고 국제사회와도 마찰을 빚었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10년 넘게 아마존 보호기금을 내왔던 노르웨이는 지난 16일 120억달러 규모의 돈을 끊어버렸다. 브라질 북동부의 중도·좌파 주지사들은 ‘반보우소나루’ 전선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주요 도시들에선 지난달 5월 두 차례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퇴진 구호까지 나왔고 지난 13일에도 우파 정부의 교육·환경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갈등은 두 나라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두 나라 우파 정권들은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와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앞장서서 추진해왔다. 아르헨티나에서 좌파 페르난데스가 집권하면 공약대로 FTA에 제동을 걸 것이 분명하다.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에서 좌파 포퓰리스트가 이기면 메르코수르에서 탈퇴해버리겠다”고까지 했다. 페르난데스가 이기면 양국 갈등을 넘어 메르코수르의 미래와 자유무역 둘러싼 논란으로 확산될 것이 분명하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