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 나서려면 세금기록부터 공개하라.”
2016년 대선 캠페인 때부터 줄기차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괴롭혀왔던 요구다. 지금까지 트럼프는 ‘꿋꿋이’ 세금기록 공개를 거부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져, 내년 대선 캠페인의 복병으로 등장할 판이다. 민주당이 집권한 캘리포니아주가 민주·공화당 대선후보 예비선거에 나설 후보들이 세금기록을 반드시 공개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이에 반발해 캘리포니아를 상대로 소송을 걸면서, ‘트럼프 대 캘리포니아’의 싸움이 격화되고 있다.
CNN방송 등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와 공화당전국위원회(RNC)가 7일(현지시간) 대선 예비후보들에게 반환받은 소득세 내역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한 캘리포니아주 법이 “위헌적”이라며 주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변호인인 윌리엄 콘소보이는 캘리포니아주 동부지역법원에 낸 소장에서 이 법이 “위헌적인 자격기준”을 요구하는 것이며, 대선 후보로 나서려는 이들에게 ‘부당한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RNC는 이 법이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노골적인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같은 날 ‘공화당 유권자들’이라 주장하는 이들 명의로도 RNC를 통해 비슷한 소송이 제기됐다.
이슈가 된 법은 ‘대선에서의 세금 투명성과 책임성 법’을 말한다. 개빈 뉴섬 주지사는 지난달 30일 이 법에 서명하면서 “미국 헌법이 주 정부에 부여한 권리에 따라 세금기록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가 소송을 내자 뉴섬 주지사는 “미국 대통령들은 1973년 이래로 세금기록을 공개해왔고, (트럼프) 대통령도 대선 때 약속했던 것처럼 내역을 공개하면 될 일”이라고 맞받았다. 트럼프는 곧바로 트위터에 캘리포니아를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세계 전역에서 사업을 벌이면서도, 심지어는 그 사업 중 상당수에서 파산 지경에 이르는 실패를 하면서도 트럼프는 ‘쥐꼬리만한’ 세금만 낸 것으로 추정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부터 계속된 이른바 부자감세에 더해 이미 낸 세금의 상당부분을 돌려주는 세금 반환의 혜택을 많이 입었기 때문이다. 돌려받는 세금 액수는 관련법을 잘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부자일수록 더 많다.
의무공개법을 만든 곳은 현재로선 캘리포니아주 뿐이지만 민주당 주지사가 있는 여러 주들이 비슷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법이 위헌적인지에 대한 법률가들의 판단은 엇갈리지만, 돈 문제에서 불투명한 구석이 많은 트럼프의 약점과 직결되는 것이어서 내년 대선 때까지 계속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캘리포니아가 트럼프와 맞선 것은 이 문제에서만이 아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많은 캘리포니아는 트럼프의 환경정책, 이민정책 기조와 반대되는 정책들을 계속 추진해왔다. 연방정부와 얽혀 있는 소송만 40건이 넘는다. 백악관과의 싸움에서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51세의 뉴섬 주지사다. 1992년 이래로 캘리포니아는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택했다. 하지만 2000년 ‘제3 후보’ 랠프 네이더가 예상 밖으로 인기를 끈데다 2003년 공화당의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주지사로 당선되자 민주당은 충격을 받았다.
그 후 캘리포니아와 ‘진보의 아성’인 샌프란시스코를 잡기 위해 민주당이 공들여 키운 사람이 뉴섬이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앨 고어 전 부통령, 흑인 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 등이 일제히 지원에 나서 뉴섬을 2004년 샌프란시스코 시장으로 만들었다. 이 지역 민주당 풀뿌리 운동가 출신으로 볼 수 있는 뉴섬은 이후 부주지사를 거쳤고, 지난해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에 압승했다.
뉴섬은 동성결혼 합법화, 마리화나 ‘비범죄화’, 사형제 폐지, 총기 규제를 주장해왔으며 디지털 민주주의에 관한 책도 썼다. 올초 취임한 뒤로 같은 민주당 소속이었던 제리 브라운 전 주지사 시절보다 캘리포니아를 한층 더 ‘왼쪽으로’ 끌어가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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