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딸기의 하루하루

목사님을 만나고 온 날

딸기21 2019. 6. 24. 16:31

어릴적 난지도에 나를 데리고 가주신 목사님이 계셨다. ‘쓰레기마을 사람들’을 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1983년. 
그 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고, 목사님과의 인연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기억은 생생하다. 그분 인척이 울엄마와 아는 사이라 얼마 전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여전히 내 이름을 기억하고 계시고, 가끔 신문에 내가 쓴 글도 읽었다고 하셨댄다.

 

내 책의 에필로그를 쓰면서 난지도의 기억도 짤막하게 적었다. 그러면서 목사님 생각이 났다. 지난 토요일에 36년만에 목사님을 만났다. 늙으셨다. 국민학생이던 내가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으니. 내 책을 선물해드렸다.

목사님은 그 조그만 개척교회(당시엔 전도사님이셨다)를 만들 무렵에 난지도 빈민들과 함께 하고 있었고, 근육병 장애인들과 함께 하고 있었고,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었다고 하셨다. 당시에 난지도엔 따라가봤지만 장애인들과도 함께 하셨던 것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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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까지 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치신 건 이해되지만(법학 전공이시니) 태권도 때문에 같은 대학에서 학생들 생활체육 지도도 하셨다고. 벌써 오래 전에 가라테 국제심판 자격증도 따셨고. “내가 50 될 때까지도 근육장애인 업고 다녔다. 근데 삐끗 하니까 ‘목사님 이제 업지 말아요’ 하더라. 그래서 요샌 가벼운 애들만 안아서 옮겨준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걸 하세요, 여쭸더니 “하나하나 차례로 하면 되지”라고 하셨다. 세상에나.

한 몇년 난지도 다니니까 거기 사람들이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오고. 그러면 가서 의논해주고. 장애인들이랑 한 몇년 같이 하니까 또 그렇게 이어지고. 그렇게 ‘차례로’ 하면 된다는 어마어마한 얘기...를 마치 아무 것도 아닌 듯이 말씀하셨다. 운동은요? 하루 한 시간만 하면 되는데, 라고 또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신다. 그날은 얘기 안 하셨지만 학교에서 퇴직한 뒤에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따신 모양이다.

목사님이 일하신 개척교회는 그 시절 우리 건물 4층에 세들어 있었다. 내가 태어나 자란 집을 허물고 아버지가 빚내어 지은 건물이었다. 혹시 내가 건물주 딸인 걸로 오해하실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몇년 못 가 울아부지가 그 작은 건물을 말아드셨고 ^^;; 우리 가족은 그 동네를 떠났다.


며칠전 택시를 타고 우연히 그 동네를 지났다. 역시나, 상전벽해처럼 건물은 헐렸고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우리집 자리엔 상가가 세워져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동네, 목사님은 아직도 그 동네에 사신다고 했다. “거기 시민아파트 자리가 공원이 됐어. 산책로도 있고 근사해.” 내가 잊었던 우리 집, “그 건물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까지 내가 다 봤다”고 하셨다. 집 옆에 교회를 만들었는데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작은 빌라를 쓰고 있는 것 같고, 소속된 '교단'은 없다고 한다. 

헤어지기 전에 목사님께서 쓰신 책을 내게 한권 주셨다. 집에 와서 펼쳐 몇 장을 읽었다. 목사님께 내가 드린, ‘졸저’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그저 자료와 인상들을 모았을 뿐 삶이 담겨 있지 않은 내 책이 너무 부끄러웠다. 반갑고 기뻤고, 돌아서자마자 부끄러웠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