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가 국방장관으로 제임스 매티스(66)를 내정했다고 워싱턴포스트 등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직설화법 탓에 ‘미친 개’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매티스는 미군 해병대 사령관과 중부사령관을 지낸 중장 출신에 강경파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에서 국방부장관은 직업군인 출신이 아닌 민간인이 맡아 군에 대한 ‘문민통제’ 원칙을 지켜왔는데, 매티스가 장관이 되면 이 원칙이 70년만에 깨지게 된다.
트럼프는 1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를 방문해 “‘매드독(mad dog)’ 매티스를 우리 국방장관으로 삼으려 한다”면서 다음주 초 내정 사실을 공식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트럼프 행정부의 장관직 15명 중 7명이 결정됐다.
매티스는 사병에서 4성장군에 오른 인물로, 베트남전 때인 1969년 해병대에 입대해 군 생활을 시작했다. 2000년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테러전에서 활약했다. 2003년 미군의 이라크 침공 때 바그다드로 진격한 것이 그 휘하의 해병대 부대였다. ‘해병대의 상징’이던 매티스는 2010년 미군의 중동 지역 전략을 총괄하는 중부사령부 사령관이 됐다. 독서광에 평생 독신이라 ‘수도승 장군’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19일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골프클럽에서 매티스를 한 차례 면담했고, 국방장관 유력설이 흘러나왔다. 이라크 군사작전을 지휘할 때 2004년 미군과 용병업체들에 의한 ‘팔루자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것이 오점이지만, 군과 민주·공화 양당으로부터 폭넓게 신망을 얻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때때로 거친 발언을 하기는 하지만 같은 세대 군 장성 중 가장 전략적인 사고를 하는 인물로 영향력이 크다”고 소개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는 갈등이 없지 않았다. 2013년 이란과 핵협상을 추진하면서 오바마는 이란 문제에서 ‘지나치게 강경한’ 매티스를 사실상 물러나게 했다. 하지만 트럼프처럼 ‘재계의 이익’을 내세운 고립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매티스는 “오바마 정부의 중동 불개입 정책은 극단주의의 부상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향후 이슬람국가(IS) 격퇴전 등에 미국이 본격적으로 나설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그는 중동에 대한 ‘포괄적 정책’이 필요하며, 아시아·태평양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미군 주둔규모를 늘리자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매티스를 격찬했으나, 실제로 두 사람 사이엔 견해 차이가 크다고 미국 언론들은 지적했다. 매티스는 이란 핵 협정이 미국에 해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협정을 뒤집어 엎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이 동맹국들과 함께 협정이 잘 이행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러시아에 대한 트럼프의 우호감정과 달리 매티스는 시리아, 우크라이나, 발트해 지역 문제에서 러시아의 팽창정책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또 물고문을 부활시키려는 트럼프에게 “고문은 전혀 효과가 없다”고 직언했다. 최근 뉴욕타임스를 방문한 트럼프는 “그의 발언에 놀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미군의 중부 남부 등등의 사령부는 미국의 중부와 남부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중부 남부’를 지칭한다. 미군 사령부 체제는 여기를 참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제임스 매티스 전 중부군사령관이 19일(현지시간)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럼에서 환담한 후 언론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Getty Images
*샛길로 가자면, 당시 ‘팔루자 학살’로 불렸던 팔루자 작전에서 잔혹행위를 했던 것이 민간군사회사(PMC) 즉 ‘용병회사’ 블랙워터였다. 이 회사는 뒤에 문제가 불거지자 이름을 Xe로 바꿨다가 다시 ‘아카데미’로 바꿨다. 이 블랙워터 설립자의 여동생인 벳시 디보스는 트럼프 정부의 교육장관으로 내정됐다!
매티스가 국방장관이 되기 위해서는 법적 절차가 남아 있다. 현행법상 군인 출신이 미국 국방장관이 되려면 퇴역후 7년이 지나야 한다. 매티스는 2013년 퇴역했기 때문에, 현행 법규의 적용을 면해주는 별도의 면제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돼야 한다. 공화당이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민주당에서도 평판이 좋아 면제법 통과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947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각 군을 총괄할 국방부를 신설한 이래 미국의 국방장관은 대대로 민간인이 맡아 왔다. 잠시 군에 복무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장관이 된 적은 있지만 직업군인 출신이 국방장관이 되지는 않았다. 군 장성 출신 국방장관이 임명된 것은 1950년 조지 마셜 뿐이다. 2차 세계대전 때 활약한 장성 출신의 마셜은 유럽 복구계획인 ‘마셜플랜’으로 더 유명하다.
조지 마셜
매티스가 취임하면 애슈턴 카터 현 장관의 뒤를 이은 26대 국방장관이 된다. 역대 국방장관 중에는 제너럴모터스(GM) 사장 출신인 찰스 어윈 윌슨(1953-1957년), 프록터&갬블 최고경영자였던 닐 매컬로이(1957-1959년), 포드자동차 출신의 로버트 맥나마라(1961-1968년) 등 기업가가 많았다. 이란-콘트라 스캔들 당시 국방장관이던 카스퍼 와인버거도 사업가 출신이었다.
버락 오바마 정부 들어서는 3명의 국방장관이 임명됐는데 리언 패네타와 척 헤이글은 정치인들이었고, 카터 현 장관은 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물리학자였다.
‘군인이 아닌’ 역대 미국 국방장관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1대 제임스 포레스털(James Forrestal·민주당)은 해군 출신이었다. 계급은 장성은 아니고 위관급(Lieutenant)이었다.
2대 루이스 존슨(Louis A. Johnson·민주당)은 전쟁부 차관을 거쳐 국방장관이 됐다. 군 복무 경력이 있지만 군인이라기보다는 정치인이었다.
3대가 조지 마셜(George C. Marshall)이다. 육군 참모총장을 지냈고, 트루먼 시절에 국방장관이 됐다. 민주·공화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4대는 한국전쟁 때인 1951-53년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로벳(Robert A. Lovett·공화당)이다. 예일대를 나와 전쟁부, 공군사령부 등에서 일을 했으나 역시 군인은 아니었다. 별명이 ‘현자(wise man)’, ‘냉전의 설계사’였다고 한다. 이 때까지가 트루먼 정부였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시절인 1953년부터 1957년까지 국방장관을 지낸 5대 찰스 어윈 윌슨(Charles Erwin Wilson·공화당)은 엔지니어, 사업가였다. 그래서 별명이 ‘엔진 찰리(Engine Charlie)’였다고 한다.
장관이 되기 전에 제너럴모터스(GM) 최고경영자를 지냈다. 사실 장관으로서보다는 GM 사장으로 더 유명하다. 그 때는 ‘GM의 시대’였다. 1952년 윌슨이 의회 청문회 때 “장관이 되어 GM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미국에 좋은 것은 곧 GM에 좋은 것이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 답한 일화는 유명하다.
6대 닐 매컬로이(Neil H. McElroy·공화당)도 프록터&갬블 최고경영자 출신의 기업인이었다.
7대 토머스 게이츠 주니어(Thomas S. Gates Jr.·공화당)는 위관급으로 복무한 적 있다. 주요 직업은 ‘공무원’이었던 듯. 해군장관을 거쳐 국방장관이 됐다.
8대는 유명한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공화당)다. 존 F 케네디 정부를 거쳐 린든 존슨 정부까지 국방장관이었다. 베트남전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인물이지만, 원래는 포드자동차 경영자를 지낸 기업인이었다. 육군에 6년간 복무한 경험이 있다. 맥나마라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 것은, 역설적이지만 국방부의 베트남전 ‘음모’를 파헤친 내부기록 ‘펜타곤 페이퍼’였다. MI 연구원이던 대니얼 엘스버그가 국방장관 맥나마라의 지시로 2차 대전 때부터 1968년 5월까지 인도차이나에서 미국의 역할을 기록한 보고서를 만든 것이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프랑스-베트남 전쟁 이전부터 이 지역 문제에 개입해왔고, 백악관이 1954년 이미 북베트남 공산정권을 전복하기로 결정한 사실을 폭로했다.
베트남전이 끝난 뒤 맥나마라는 1968-81년 세계은행 총재를 지냈고...아내가 먼저 세상을 뜬 뒤에는 워싱턴포스트 사주 집안이자 발행인인 캐서린 그레이엄과 데이트를 하는 사이였다고. 그레이엄은 2001년 타계했고, 맥나마라는 2009년 사망했다.
린든 존슨 때인 9대 장관은 클라크 클리포드(Clark Clifford·민주당)였다. 변호사 출신으로 트루먼, 케네디, 존슨, 지미 카터 등 여러 대통령의 정책자문을 했던 인물이다.
10대 멜빈 레어드(Melvin Laird·공화당)는 위스콘신주 정치인이었다.
11대 엘리엇 리처드슨(Elliot Richardson·공화당)은 국방장관보다는 법률가로 더 유명하다. 때는 바야흐로 리처드 닉슨 시절, 워터게이트 사건...당시 법무장관(검찰총장)이었는데 닉슨이 아치볼드 콕스 특검을 쫓아내려고 하자 항의하며 사임했다. 보건교육복지장관을 3년간 했고, 국방장관은 1973년 4개월 재임하는 데 그쳤다. 1976-77년에는 상무장관도 했으니 ‘직업이 장관’이라 해도 되겠다. 미국 역사에서 4개 부처 장관직을 섭렵한 사람은 리처드슨과 조지 슐츠 2명 뿐이라고.
12대 제임스 슐레진저(James R. Schlesinger·공화당)는 닉슨 말기부터 포드 정부 들어서서까지 국방장관을 지냈다. 원래 경제학자 출신인데 냉전 시절 강경 매파로 이름을 날렸다.
포드 정부의 두번째 국방장관이 13대 도널드 럼즈펠드(Donald Rumsfeld·공화당).... 이 작자에 대해서는 생략함.
14대 지미 카터 행정부의 해럴드 브라운(Harold Brown·민주당)은 핵물리학자 출신이다. 로런스 리버모어 방사능 연구소에서 일했고, 연방 정부 핵 정책 자문위원을 거쳤다. 칼텍 총장을 지내고 국방장관이 됐다.
15대 카스퍼 와인버거(Caspar Weinberger·공화당)는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첫 국방장관이었다. 2차 대전 때 군 복무를 하긴 했지만 정치인 겸 사업가였다. 이 작자가 장관일 때 이란-콘트라 스캔들이 터졌다.
팀 와이너의 <잿더미의 유산>에서 한 구절 인용하면:
“CIA는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의 낙후된 미사일을 받아 이란에 전달했다. 이란 정부는 물량이 적은데다 구식이라는 점, 이스라엘 글자가 적혀 있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후에는 펜타곤이 CIA에 수천 기의 토우 미사일을 전달하게 되는데, 한 기 가격은 할인된 3496달러였다. 와인버거 국방장관은 1985년 1월 수석보좌관 콜린 파월에게 토우 미사일 천 기를 펜타곤 창고에서 CIA에 넘기라고 지시했다. CIA가 펜타곤에 지불하는 가격은 1만 달러였고 한 기에 6532달러가 남았다. 이 순수익은 고스란히 중미의 콘트라에 넘어갔다. 이란 사기꾼 고르바니파르는 이 1만달러에 얼마를 더 붙여 이란 정부에 팔았다. 무기들은 2월에 이란으로 들어갔다.”
16대 프랑크 칼루치(Frank Carlucci·공화당)가 레이건 정부의 두번째 국방장관. CIA 부국장 지낸 정보·안보분야 관료였다. CIA가 제3세계에서 저지른 대표적인 몹쓸 짓 중의 하나인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 파트리스 루뭄바 축출·살해 음모와 관련돼 있다.
조지 H W 부시 정부 때인 17대 국방장관은 딕 체니(Richard B. Cheney·공화당). 그냥 넘어가자............ 설명하기 화난다...
빌 클린턴 정부의 국방장관은 3명이다. 민주당 소속 2명, 공화당 소속 1명.
18대 레슬리 애스핀(Leslie Aspin·민주당)은 의원 출신.
19대 윌리엄 페리(William J. Perry·민주당)는 여러가지를 두루 했다. 수학자, 엔지니어, 사업가...
20대 윌리엄 코언(William Cohen·공화당)은 의원 출신.
대규모 전쟁을 2번이나 일으킨 조지 W 부시 시절엔 국방장관이 1명 뿐이다.
21대 도널드 럼즈펠드...................
버락 오바마 정부 들어서는 좀 많이 바뀌었다.
23대 리언 파네타(Leon Panetta·민주당)는 워싱턴의 기묘한 정치인
24대 척 헤이글(Chuck Hagel·공화당)은 유명한 정치인
25대 애슈턴 카터(Ashton Carter·민주당) 현 국방장관은 하버드대 교수 지낸 물리학자 출신....
뭐 이렇다능.
국방장관이 민간인 출신이라고 ‘평화적’인 것은 아닌 듯.
콜린 파월 등등 군인 출신들이 “이라크 침공 절대로 안 된다”고 목청 높였음에도 체니, 럼즈펠드 등 군대 안 갔다온 작자들이 기어이 전쟁을 일으킨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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