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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 살인범 몰려 20년 복역한 재일동포, 시민들 도움 속에 마침내 석방

딸기21 2015. 10. 23. 21:47

일본 오사카(大阪)에 살고 있던 재일 동포 박용호씨(49)는 20년 전 동거하던 여성의 딸을 살해한 범인으로 몰렸다. 한국 국적인 박씨는 보험금을 노린 방화와 살인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됐으나, 오랜 법정 투쟁 끝에 마침내 법원의 재심 결정을 받았으며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게 됐다. 그의 뒤에는 아들의 결백을 믿었던 어머니와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고발하며 구명운동을 벌여온 일본 시민 모임이 있었다.

 

일본 NHK방송은 오사카 고등법원이 방화와 보험금 목적 살인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던 박용호씨와 아오키 게이코(51) 두 사람에 대한 재심을 인정했으며 형 집행을 중지하고 석방하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23일 보도했다.


1995년 7월, 박씨와 아오키가 살고 있던 오사카시 히가시스미요시 구의 집이 전소돼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오키의 딸 메구미가 대피하지 못하고 목욕탕에서 사망했다. 검찰 수사에서 박씨는 목욕탕과 붙어 있는 주차장에 가솔린을 뿌리고 불을 지른 뒤 메구미를 남겨둔 채 다른 가족들만 데리고 피신했다고 자백했다. 검찰은 아오키가 내연관계였던 박씨와 함께 딸 명의의 보험금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며 두 사람을 살인죄로 기소했고, 두 사람은 2006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그러나 박씨는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강요에 의한 거짓자백이었다고 주장했고, 변호인들은 그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고문을 받았다며 2009년 재심을 청구했다. 결백을 주장하는 아오키의 편지가 공개되고 검찰 수사의 문제점이 알려지자 두 사람의 구명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졌고, 이들을 돕기 위한 시민 지원 모임까지 결성됐다. 


3년 전 오사카 지방법원은 “박씨가 목욕탕 옆에 불을 지른 뒤 화상을 전혀 입지 않고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변호인 측의 주장과 이를 입증해주는 재연 실험 결과를 받아들여 재심을 결정했다. 검찰은 즉시 고등법원에 항소했으나 과학적 실험 결과를 거부한 것이라는 비난이 일었고 이 사건은 전국적인 이슈가 됐다.


박용호씨의 변호인이 23일 오전 일본 오사카 고등법원 앞에서 재판부의 재심 결정을 알리고 있다. NHK 화면 캡처


23일 고등법원의 요네야마 마사아키 재판장은 “재연 실험 결과로 볼 때 방화가 아닌 자연발화일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며 재심을 결정했다. 변호인단이 ‘재심 개시, 형 집행정지’라 쓰인 깃발을 내보이며 재판부의 결정을 알리자 법원 앞에서 기다리던 두 사람의 가족들과 지원 모임에서는 박수와 환성이 터져나왔다. 변호인단은 박씨가 “어려운 싸움에서 올바른 결정을 얻어낸 것에 진심으로 안도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들을 위해 힘겨운 법정 투쟁을 해온 박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무죄를 믿고 싸워왔다"며 눈물을 흘렸다. 지원 모임의 기시모토 오사무 회장은 “시민의 힘으로 재심의 문을 열 수 있었다”며 “완전한 무죄를 쟁취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 사건을 주시하며 소송을 도왔던 일본변호사연합회도 “정의가 실현된 것”이라며 검찰에 항고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박씨는 26일 오후 석방될 예정이다. 검찰은 형 집행정지에 불복해 오사카 고법에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