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에 강타당한 일본 구마모토현 마시키마치의 주택가가 17일 폐허로 변해 있다. 마시키마치|윤희일 특파원
일본 규슈의 지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14일의 지진에 이은 16일 새벽의 강진으로 곳곳에서 건물과 도로가 무너졌으며, 구마모토현 미나미아소와 오이타현, 후쿠오카현, 사가현 등 곳곳에서 잇달아 지진이 일어났다. 구마모토현의 사망자는 14일 9명, 16일 32명 등 지금까지 41명이 확인됐다. 학교와 주거지역 등에 매몰자가 많아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요미우리신문 등은 보도했다. 중상자는 184명에 이른다.
일본 기상청은 400년 역사의 구마모토성마저 파손되게 만든 14일의 강진이 거대 지진의 전조 격인 ‘전진(前震)’이었으며, 16일의 지진이 ‘본진(本震)’이라고 발표했다. 여진이 수십차례 계속돼 주민들은 공포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상청은 “앞으로 1주일 동안 강진이 더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지진이 일어난 곳은 구마모토현의 아소 화산, 가고시마현의 사쿠라지마 화산 등과 멀지 않은 곳이어서 환태평양 ‘불의 고리’에 속해 있는 일본 남서부의 화산대가 격렬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16일 새벽 1시 25분에 발생한 규모 7.3의 지진은 지표면 12km 아래에서 일어났으며, 1995년 한신(고베) 지진보다도 규모가 컸다. 규슈 내륙에서 이렇게 큰 지진이 일어난 것은 100년 만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 아사히신문 웹사이트
아소 지역에서는 지진으로 토사가 쏟아져내려 길이 200m의 아소 대교가 무너졌다. 이 지역 도카이대학 농학부 학생들이 머물던 아파트가 붕괴돼 12명이 깔렸고 2명이 숨졌다. 다리가 끊기면서 대학은 외부로부터 고립됐다. 이 대학 체육관에는 학생과 교직원, 주변 마을 주민들 400명이 외부 지원이 끊긴 채 대피해 있다. 당국은 매몰 신고가 44건, 집이 무너져 갇혀 있다는 신고가 123건, 화재가 9건이었다고 밝혔다.
구마모토현에서는 16일 686곳의 대피소에 약 9만명이 피난했다. 주택과 공공시설 등 무너진 건물은 936동에 이른다. 10만4000가구가 정전됐고, 구마모토시를 비롯해 37만3600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겨 구호요원들이 급수차로 물을 실어나르고 있다.
| 강진으로 무너진 일본 구마모토현 마시키마치의 한 주택 앞으로 17일 주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윤희일 특파원
구마모토현은 교통망이 거의 두절된 상태다. 철도회사 JR규슈에 따르면 16일 새벽 지진 직후 아소시의 아카미즈역 부근에서 회송열차가 탈선했고, 그 주변에서는 토사가 흘러내려 선로가 유실됐다. 규슈신칸센도 끊겼다. 고속도로 통행도 금지됐다. 구마모토 공항은 시설이 무너져 폐쇄됐다. 폭우 예보가 이어지고 있어, 토사 피해가 잇따를 것으로 우려된다고 기상청은 밝혔다.
벳푸·유후인 등 한국인 관광 많은 곳... 골든위크 앞두고 터진 지진에 관광산업 큰 타격
14일과 16일의 지진에 강타 당한 일본 규슈는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유명 관광지다. 구마모토(熊本)현과 오이타(大分)현 일대에는 일본의 3대 성(城) 중의 하나인 구마모토성을 비롯해 아소(阿蘇) 화산, 벳푸(別府) 온천, 유후인(由布院) 온천 등이 몰려 있다.
이번 강진으로 이 지역의 주력산업인 관광산업은 큰 타격을 입을게 됐다. 일본 언론들은 특히 관광 최성수기인 4월 말~5월 초의 ‘골든 위크’를 앞두고 지진이 일어난 탓에 경제적 손실이 더 클 것이라고 보도했다. 구마모토현 아소의 아소플라자호텔은 14일 지진이 일어나자 15일부터 휴업을 했다. 그런데 16일 새벽 다시 강진이 일어나 건물 일부가 부서지고 전기, 물 공급이 끊겼다. 아사히신문은 “예약 손님에게 연락하려고 해도 인터넷 연결을 못해 예약목록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오이타현 벳푸시 여관호텔조합연합회는 회원 업체들 대부분의 숙박 예약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매달 6만명이 머무는 스기노이호텔은 골든위크에 투숙하려던 손님 4000명 대부분이 예약을 취소했다. 역시 오이타현의 관광명소인 유후인에서도 16일 지진 뒤 상점들이 거의 다 휴업했다. 이웃한 가고시마현도 상황은 비슷하다. 규슈신칸센과 고속도로마저 끊겼고 언제 완전히 복구될지 알 수 없는 처지다.
한국 정부는 17일 구마모토현에 한국인 피해를 파악하고 지원할 외교부 신속대응팀을 파견했으며 주 후쿠오카 총영사관에 비상대책반을 설치했다. 정부는 앞서 16일 벳푸에 발이 묶인 한국인 여행객 200명을 위해 전세버스 5대를 투입했으며 후쿠오카 공항 임시항공편도 운항했다. 구마모토현에는 한국인 1000여명이 거주하고 있지만 교민 인명·재산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
일본 규슈 지진에 공장들 일제히 가동중단...경제 전체에 영향
구마모토(熊本)현 등 규슈 지역을 강타한 지진은 일본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규슈에 대기업 부품생산 거점들이 대거 몰려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은 후쿠오카(福岡)현 미야와카(宮若)시에 있는 도요타자동차규슈가 16일 생산라인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고 17일 보도했다. 부품업체들의 생산 차질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이 회사에 자동차 부품을 공급하는 아이신규슈는 공장이 구마모토시에 있어, 강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여진이 이어진 탓에 공장건물 내부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하고 있어, 언제 생산을 재개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주로 이륜차를 생산하는 구마모토현 오즈(大津)의 혼다 구마모토제작소도 부품 업체들이 피해를 입은 탓에 18일부터 생산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소니는 구마모토현 기쿠요(菊陽)에 반도체 공장을 두고 스마트폰 등에 사용되는 화상센서를 생산해왔다. 이 공장 역시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이 공장뿐 아니라 나가사키(長崎)현 이사하야(諫早)에 있는 소니 공장의 생산라인도 일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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