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라운드업] 시리아 난민과 유럽 난민 유입 사태

딸기21 2015. 9. 15. 11:01
728x90

바닷가에 주검으로 떼밀려 온 아일란 쿠르디. 겨우 세 살이었습니다. 이 아이의 죽음이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요. 아마도 세계 전체를 바꾸지는 못하겠지요. 세상의 모든 난민을 구해주지도 못할 것이고요. 하지만 400만 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들 중 일부만이라도 아일란 덕에 도움의 손길을 잡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그들의 삶을 바꾸는 손길이 될 것 같습니다. 시리아 난민 문제, 그리고 유럽의 난민 유입 사태가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정리해봅니다.


2011년 3월 15일 

시리아 남부의 다라(Daraa)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납니다. 시위는 곧 전국으로 확산됩니다.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은 시위대를 대거 체포하고, 강경진압과 구금과 고문으로 대응합니다. 그 해 4월이 되자,시리아 '아랍의 봄' 시위는 아사드 정권 대 반정부 진영 간 내전으로 변합니다.



정부군과 반정부군 간 싸움으로 진행되던 시리아 내전의 양상은 곧 '극단주의 무장세력과의 전쟁'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변화합니다. 아사드 정부에 맞선 세력 중 일부는 이슬람주의를 내세운 극단주의자들이었고, 그들 중 이슬람국가(IS)가 세력을 확대해 칼리프 국가 수립을 선포하고 나선 겁니다.


요르단의 자타리 Jaatari 시리아 난민촌



내전이 격화되면서 국경을 넘는 시리아 난민들은 갈수록 늘어납니다. 전쟁 전 인구 2300만명 중 절반이 넘는 1200만명 가량이 시리아 내에서 국내 유민(IDP)이 되거나, 국외로 탈출한 난민이 됩니다.


2015년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등을 떠난 난민들 상당수가 유럽을 향해 가면서 지중해는 '난민선의 무덤'이 돼버립니다. 올초부터 난민선 문제가 유럽의 핫이슈로 부상합니다.


지중해 한 가운데 난민 수백명 버리는 '유령선' 기승

‘유령선 수법’은 대형 화물선을 사용해 난민 수백명을 태운 뒤, 지중해 한가운데서 승무원들이 난민들만 남기고 모두 내려 도망가는 수법이다. 브로커들과 승무원들은 해안 경비대의 단속을 피하고, 난민들만 연료가 떨어진 배에 남아 지중해 한가운데 표류하게 된다.


2월 11일

지중해에서 난민선이 또 침몰, 300여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주민들은 작은 배 4척에 나눠 타고 지난 7일 리비아를 출발했습니다. 9일 배들이 가라앉으면서 탑승자들은 거의 숨진 것으로 보입니다.



2월 15일 
이탈리아와 몰타 당국이 하루 동안 난민 2000명을 구조했습니다. 유엔은 이 지중해 해상 난민 루트를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루트 중 한 곳으로 꼽고 있습니다. 작년에 지중해에서 사망한 난민은 3500여명에 이릅니다.



3월 15일 

내전 발발 4년, 시리아 인구의 절반인 1000만명은 집을 버리고 피란을 떠났습니다. 그중 380만명은 살길을 찾아 국경을 넘었다. 해외로 나간 시리아 난민 수는 팔레스타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습니다.



3월 26일 
지난해 전세계 난민신청자가 22년만에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엔난민기구 2014 동향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선진산업국가에 제출된 신규 난민지위 신청은 86만6000건으로 2013년의 59만6600건보다 45%나 증가했습니다. 보스니아 내전 이후 최대 규모입니다. 신규 난민신청자는 시리아인이 가장 많았고 이라크, 아프라니스탄이 뒤를 이었습니다. 난민신청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는 독일이었습니다. 




4월 4일

이탈리아 당국이 하룻 동안 지중해에서 표류하는 난민선 5척에서 1500명을 구조했습니다. 이들은 이탈리아 람페두사섬과 시칠리아섬의 아우구스타 및 포르토 엠페도클레로 옮겨졌습니다.


4월 14일 

이탈리아로 향하던 난민 550명을 태운 보트가 지중해에서 뒤집혀, 400여명이 숨지고 144명이 구조됐습니다. 



4월 18일

결국 지중해에서 사상 최악의 난민선 전복사고가 일어납니다. 4월 18일 자정 무렵 북아프리카 리비아를 떠나 이탈리아 쪽으로 향하던 난민선이 뒤집혀 가라앉으면서 700여명으로 추정되는 난민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고는 이탈리아령 섬인 람페두사에서 남쪽으로 약 193㎞, 리비아 해안에서 북쪽으로 약 96㎞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지중해 밀항’은 마피아 등이 가담하면서 기업화한 범죄가 됐습니다. 이 '검은 비즈니스'의 규모가 연간 7000억원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4월 23일

유럽 정상들은 지중해 난민참사를 논의한 뒤, 벨기에 브뤼셀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난민구조기금을 3배 늘리기로 합의했습니다. 난민구조프로그램인 트리톤에 대한 지원 자금을 매달 900만 유로(약 104억)까지 증액하기로 한 겁니다. 하지만 정상들의 논의는 지중해 난민 수색과 구조를 강화하고, 불법난민에 대한 단속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EU 난민 대책 ‘인도주의보다 이기주의’ 


5월 2일

난민선 참사가 잇따르고 있는 와중에도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오려는 난민들의 숫자는 조금도 줄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당국은 지중해 해상에서 하루 구조인원으로는 기록적인 수준인 3700명에 가까운 난민들을 구조했습니다. 난민들은 모두 리비아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진 난민선 세 척에 나눠타고 유럽으로 이동 중이었습니다.


5월 6일

비정부기구 노르웨이난민협의회(NRC)의 내부난민감시센터(IDMC)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98만4874명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국외로 탈출한 난민 외에 내부 난민만 전 세계 3800만명에 이른다고 보고서는 밝혔습니다.




5월 11일

내전 위기 속에 레바논으로 피신한 시리아 난민들이 낳은 아기 3만 6000여명이 ‘무국적자’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기록상 ‘없는 존재’인 이 아이들은 날때부터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5월 18일

유럽연합(EU)이 난민 인신매매 조직을 소탕하겠다며 군사작전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EU 28개국 외무·국방장관들은 난민선이 주로 출발하는 리비아 해안에서 군사작전을 펼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군사작전을 실행하는 데 걸림돌이 많은 데다 난민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6월 18일

유엔난민기구는 세계 난민의 날을 하루 앞두고 지난해 전쟁, 분쟁, 박해 등으로 살던 나라를 떠난 난민이 6000만명에 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2004년 3750만명에서 2000만명 가량 증가한 수치입니다. 가장 많은 난민이 발생한 국가는 역시 시리아였습니다. 



7월 9일

유엔난민기구는 시리아 난민이 4백만명을 넘어 단일 분쟁 최고 난민 규모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7월 28~29일

프랑스 칼레항 인근에서 난민 3600여명이 유로터널을 통해 영국으로 향하는 열차와 트럭으로 한꺼번에 뛰어들었습니다. 극심한 혼란 속에 1명이 숨졌습니다. 유로터널 사태 뒤 프랑스와 영국은 유로터널 주변 경계를 강화하고, 난민촌 철거와 진압 작전에 나섰습니다.




 7월 한 달에만 난민 10만7500명이 유럽에 유입됐다고 유럽연합(EU)의 국경 관리기구 프론텍스(Frontex)가 밝혔습니다. 지난 6월의 7만명에 비해서 크게 증가했습니다. 또한 올해 들어 전체 난민의 숫자는 34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2만3500명에 비해서도 3배로 늘었습니다. 


8월 12일
지중해에 이어, 터키에서 출발해 그리스로 건너가는 '에게해 난민' 문제가 이슈가 됐습니다. 경제난에 몰린 그리스는 대책없이 에게해 코스 섬의 축구장에 난민들을 가둬놨다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8월 20일

에게해를 통해 그리스로 상륙한 난민들은 발칸반도를 거쳐 독일로 향합니다. 이 '발칸 루트'에 있는 나라들이 모두 아우성을 치기 시작합니다. 발칸반도의 내륙국 마케도니아는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들을 막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헝가리는 국경에 장벽을 설치했습니다.



8월 24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베를린에서 만나 “더 이상 시간을 끌 문제가 아니다”라며 “유럽이 공동 대응 시스템을 마련하고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독일 정부는 입국을 신청하는 시리아 난민을 모두 수용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8월 27일

오스트리아 고속도로 주차장의 버려진 냉동트럭에서 시리아 난민으로 보이는 시신 70여구가 쏟아져나왔습니다.




죽음의 ‘난민 루트’… 시리아 난민들의 이동경로는 


수많은 시리아인들이 터키로 가는 국경을 넘는다. 걸어서 철조망을 넘는 이들도 많다. 돈이 있는 이들은 레바논의 베이루트까지 육로로 이동해 비행기를 타고 터키 이스탄불에 간다. 터키에 도착한 난민들은 에게해에 면한 이즈미르로 향한다. 원래는 관광객용이던 딩기(고무보트)를 타고 출발한 난민들의 기착지는 에게해의 그리스 영토인 레스보스나 코스 섬이다.


8월 31일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출발한 열차가 오스트리아 빈 역에 도착했습니다. 빈 기차역에는 시민들이 나와 따뜻하게 환영했습니다. 난민 대부분은 다시 기차를 타고 독일로 향했습니다. 독일언론 타게스슈피겔은 이날 “뮌헨에만 800여명의 난민이 도착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난민 대응을 둘러싸고 동-서 유럽 간 갈등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9월 2일

세살배기 시리아 아이 아일란 쿠르디의 주검이 터키 바닷가에서 발견됐습니다. 



9월 3일

독일과 프랑스는 난민을 '분산 수용'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두 나라 정상이 유럽연합(EU)이 회원국에 구속력 있는 난민 쿼터를 부과하는데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세 살 쿠르디, 유럽을 깨웠다 
아일란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펀드에는 하루 만에 2만1280유로(약 2824만원)가 모였다. 이 펀드에 모인 돈은 영국구호단체 ‘시리아를 위해 손에 손잡고’를 통해 시리아 구호에 쓰일 예정이다. 인디펜던트가 시작한 ‘난민을 환영합니다’ 인터넷 청원에는 하루 만에 2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명을 남겼다. 이들은 “영국 정부가 더 많은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사설]인류의 양심을 깨우는 세살배기 난민 아일란 쿠르디
난민촌으로 변한 부다페스트 역사, 신생아도 탄생
 


9월 5일

유럽국들이 난민 문턱을 낮추고 있습니다. 5일 오스트리아 동쪽 국경지대의 작은 마을 니켈스도르프에는 하루종일 푸른색 버스 120여대가 국경을 넘나들며 난민 수천명을 토해냈습니다. 주민들은 담요와 우산, 뜨거운 음료를 들고 난민들을 맞았습니다. 독일 뮌헨 역에는 난민 8000명이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시리아 난민 408만 명 가운데 90% 이상은 여전히 터키, 레바논, 요르단 등 주변국들에 있습니다. 사실 유럽이 받아들인 난민 수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투옥, 브로커, 가짜 구명조끼... 단란한 이발사 가족이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이발사 압둘라 쿠르디(40)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 갈립과 함께 살았다. 행복했던 이들의 집에 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건 2011년 ‘아랍의 봄’ 실패 후 정부군과 반군간의 내전이 시작되면서였다. 유엔난민기구는 아일란 쿠르디의 아버지 압둘라가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공군정보국에 5달동안 갇혀 있었고 가게를 판 돈 2만5000달러(약 3000만원)를 뇌물로 주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고 전했다. 


9월 6일

아일린 쿠르디 사건 뒤 유럽에서는 난민들을 위해 방을 내놓겠다는 주민들의 캠페인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에 통신재벌 출신 핀란드 총리도 동참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집트 갑부는 그리스의 섬을 사들여 난민들에게 내주겠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시리아 난민이 넘어올까봐 장벽을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9월 7일
독일과 프랑스가 7일 난민 5만5000명을 추가로 수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두 나라를 포함해, 유럽연합(EU) 22개 회원국은 난민 12만명을 나눠 받아들이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9월 14일

EU가 내무장관 긴급회의를 열고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이 제안한 난민 16만명(기존 합의된 4만명 + 추가 12만명) 분담 수용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합의된 4만명은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나머지 12만명에 대한 '난민 쿼터제'는 결국 동유럽국들의 반대 속에 결렬됐고, '추후 논의'로 넘겨졌습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