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세계의 군주국들

딸기21 2015. 9. 1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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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89)이 9일(현지시간)로 즉위한 지 63년 217일을 맞아,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이 가지고 있던 영국 최장 기간 재위 군주의 기록을 경신했다. 여왕은 즉위한 이래 12명의 총리를 지켜봤고, 로마가톨릭 교황 6명을 만났다. 영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 옥좌를 차지하고 있는 왕일 뿐 아니라,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여성 군주다. 또한 여왕이 된 뒤 116개국을 방문, 세계여행을 가장 많이 한 군주이기도 하다고 BBC방송 등은 전했다.


어쩐지 부부싸움 모드로 보이는 여왕님 부부. /AFP

길에서 애완견을 쓰다듬고 있는 1973년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AP자료사진


유럽에는 영국처럼 입헌군주제가 유지되는 나라들이 많다. 사실 20세기 초반만 해도 유럽에서 공화정 형태를 갖고 있던 나라는 프랑스와 스위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으로 꼽히는 이탈리아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 산마리노뿐이었다. 피레네 산지의 작은 공국부터 북유럽의 왕국들까지, 지금도 12개 나라가 군주제를 이어오고 있다. 그 중 10개국에서는 국왕이 헌법 상의 국가수반이며, 세습으로 자리를 잇는다. 나머지 한 곳은 수장인 교황을 추기경들의 회의로 선출하는 바티칸이고, 나머지 한 곳은 교황에 의해 임명된 주교와 프랑스 대통령이 공동으로 국가수반을 맡는 안도라 공국(公國)이다. 유럽의 왕국들 중 벨기에·덴마크·룩셈부르크·네덜란드·스페인·스웨덴·영국 등 7개 나라가 유럽연합(EU) 회원국이다.


■ 전투기 조종사 자격 보유한 국왕


벨기에 왕국이 탄생한 것은 1831년 7월이다. 영국과 네덜란드의 통치에서 독립하면서 레오폴드 1세가 첫 국왕이 됐다. 이 나라 왕은 ‘벨기에 국왕’이 아닌 ‘벨기에 사람들의 왕’이라 불린다. 일부에선 이 점을 들어 어느 나라 왕실보다 사랑받는 왕실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레오폴드 1세의 아들인 레오폴드 2세(1835~1909)는 콩고(현재 콩고민주공화국)를 점령한 뒤 식민통치가 아닌 ‘개인 영지’로 소유하면서 원주민들에게 고무채취를 강요하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손목을 자르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4대 국왕인 레오폴드 3세는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중립’을 내세워 나치에 맞서 저항하자는 프랑스와 영국의 협력 요구를 거절했으며, 내각으로부터 거부당하는 등 소동을 겪은 끝에 아들 보두앵 1세에게 양위했다. 현 국왕 필리페(55)는 영국 옥스퍼드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으며, 전투기 조종사 자격증과 고공낙하 증명서를 갖고 있다.



덴마크 왕실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도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유명한 햄릿 왕자일 것이다. 햄릿은 셰익스피어 희곡 속의 인물이지만, 덴마크 왕실은 10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바이킹 왕 ‘늙은 예름’과 ‘푸른 이빨 하랄트’ 등에 의해 통일 왕국이 형성됐으며, 현존하는 유럽 왕실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왕국이 세워진 뒤에도 상당 기간 선출을 통해 수장을 뽑았던 독특한 전통을 갖고 있다. 세습 군주제가 굳어진 것은 17세기 프레데리크 3세 때다. 현 국왕은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이다. 그는 덴마크뿐 아니라 자치 지역인 그린란드와 파로군도의 국가수반이기도 하다. 마르그레테 2세는 엘리자베스 2세와 함께 현재 세계에 단 둘뿐인 여왕이다.

 

안도라 공국은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468㎢의 작은 나라다. 8세기부터 고트족이 거주하기 시작했고, 1278년 영유권을 다투던 우르젤의 주교와 푸아 백작이 협약을 맺어 공동 통치를 하기로 하면서 독립 공국이 됐다. 16세기에 푸아 백작 가문이 주권을 프랑스 나바르 왕실에 넘겼다. 1812~1813년에는 스페인 북부 카탈루냐 지방과 함께 프랑스 제국에 병합된 적도 있었지만 곧 독립을 되찾았다. 지금도 명목상 프랑스 대통령이 공동 국가수반을 맡고 있긴 하나, 1993년 헌법을 새로 제정하고 유엔에 가입한 엄연한 독립국이다. 현재의 국가수반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조안 엔릭 비베스 시칠리아 주교다.


③2013년 9월 안트베르펜을 방문한 벨기에 국왕 필리페. 위키피디아



■123년 만에 탄생한 ‘남자국왕’

 

16세기 오랑예 가문의 통치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네덜란드 왕실의 역사는 복잡하다. 현재의 왕실 계보는 1890~1948년 재위한 빌헬미나 여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만 10세에 왕위에 올라 두 차례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빌헬미나는 명실상부 현대 네덜란드의 국모인 셈이다. 빌헬미나는 57년 넘게 왕좌를 지키다가 외동딸 율리아나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율리아나는 네 딸을 뒀고, 1980년 맏딸인 베아트릭스에게 양위했다. 네덜란드 왕실은 이렇게 3대에 걸쳐 여왕들이 이끌었고, 모두 자식에게 스스로 양위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베아트릭스 역시 2013년 4월30일 ‘여왕의 날’을 맞아 맏아들인 빌렘-알렉산데르에게 자리를 내놨다. 123년 만에 탄생한 ‘남자 국왕’ 빌렘-알렉산데르는 어머니 못잖게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스페인 왕실은 최근 몇년 동안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한때 공화정으로 갔던 스페인은 1975년 11월 독재자 프랑코가 숨진 뒤 입헌군주제가 부활했고 옛 왕실의 후안 카를로스가 국왕이 됐다. 후안 카를로스는 명목상의 군주에 머물지 않고 군사쿠데타 시도가 있을 때나 정치적 소요가 발생할 때면 정치세력들 간의 분쟁을 중재하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스페인 펠리페 4세 국왕이 지난해 6월19일 즉위식을 마친 뒤 마드리드의 왕궁 발코니에 나와 인사하고 있다. 마드리드/AP연합뉴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스페인 경제가 휘청이면서 왕실의 사치스러운 행태가 도마에 올랐고, 막내딸 크리스티나 공주가 공금 유용혐의로 수사를 받는 일까지 벌어져 왕실의 인기가 추락했다. 후안 카를로스는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지난해 6월 아들 펠리페에게 양위를 했으나 여전히 스페인에서 왕실은 찬밥 신세다. 최근 집권한 좌파 지방정부들은 왕실 상징을 공공기관에서 없애는 등 ‘왕실 지우기’에 앞장서고 있다. 


룩셈부르크는 독일·프랑스 사이에 낀 면적 2600㎢의 작은 나라다. 1815년 독립했고, 명목상 국가수반인 앙리 대공(58)이 이끄는 입헌군주국이다. 1868년 제정된 헌법에 따라 대공이 내각을 구성하고 의회를 해산할 권한을 갖고 있지만 1919년 이래로 대공이 이런 권한을 행사한 적은 없다고 한다. 60명의 의원들로 구성된 의회는 임기 5년에 단원제이며 정당 지지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된다. 의회 외에 형식상 대공의 임명을 거친 21명의 시민들로 이뤄진 국민협의회(Conseil d’Etat)가 있어서, 의회의 입법을 보완·자문하는 역할을 한다.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돼 있고 왕실이 분란을 일으킨 적도 없는 까닭에 입헌군주제에 대한 지지가 높다. 2007년 조사에서 80.34%가 현재의 군주제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그 외에 유럽에서는 1719년부터 독립 공국으로 이어오고 있는 리히텐슈타인, 프랑스 남부의 모나코, 덴마크와 마찬가지로 10세기 바이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지닌 스웨덴노르웨이 등이 입헌군주제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왕이 실권 행사하는 군주국들

 

유럽 왕국들은 국왕을 헌법상 행정수반으로 삼은 입헌군주국들이지만, 중동과 아프리카·아시아에는 국왕이 실권을 행사하는 군주국들도 남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오만, 카타르, 아프리카 동남부의 스와질란드가 그런 나라들이다. 


요르단의 라니아 왕비가 지난달 26일 프랑스 파리 근교 주이앙조사를 방문해 기업인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주이앙조사/AF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는 건국자 이븐 사우드 국왕의 아들들이 줄줄이 형제상속으로 왕위를 계승해왔으나 차기 국왕부터는 3세대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바레인모로코, 요르단, 쿠웨이트 등은 국왕이 실권을 갖고 있으면서 선출된 의회가 있는 ‘반(半) 입헌군주제’ 국가들이라 할 수 있다. 요르단 압둘라 2세 국왕의 왕비 라니아는 활발한 외교와 사회활동으로 유명하며, 세계 여러 왕실에서도 돋보이는 ‘셀레브리티’다.


전근대적인 통치와 부패로 악명 높은 사우디와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카타르의 알타니 왕실이다.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는 마천루가 치솟고 국제행사와 세계적인 스포츠대회를 유치하고 수도 도하를 첨단도시로 만든 주인공이다. 그는 1995년 아버지인 셰이크 칼리파를 궁정쿠데타로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한 뒤 카타르의 현대화를 일궈냈다. 중동 전제국가들의 눈엣가시인 알자지라방송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2013년에는 61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가 더 새로운 개혁을 차지할 수 있도록” 아들 타밈에게 양위했다.


2011년 10월 결혼식 뒤 손님들에게 인사하는 부탄의 왕축 국왕(왼쪽)과 제선 페마 왕비. AP자료사진


보르네오섬 북부에 있는 산유국 브루네이의 술탄 하사날 볼키아 국왕(69)은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군주다. 네팔에서는 왕실의 분란 속에 2008년 공화정으로 옮겨갔다. 부탄의 지그메 싱계 전 국왕은 2008년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뒤 아들 왕축에게 양위했다. 왕실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위로부터의 민주화’를 추진한 것이다. 휴대전화도, TV도, 도로조차 제대로 없는 ‘은둔의 왕국’에서 갑자기 국왕의 지시에 따라 정당들이 만들어지고 의회 선거를 치르게 되자 소동이 벌어졌으나, 큰 분란 없이 민주주의로 이동해 갈 수 있었다. 2011년 왕축 국왕의 검소한 결혼식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재위 기간이 긴 왕은 태국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88)이다. 1946년 즉위한 이래 69년째 왕위를 지키고 있으나 최근 몇년 동안은 건강이 나빠 대외활동을 거의 중단했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군주국’이지만 실권은 없고 세습직도 아니며 7개 지역의 수장들이 돌아가며 국왕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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