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룩소르에 가보신 분들이라면, 혹은 터키 이스탄불이나 미국 워싱턴에 가보신 분들이라면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는 하얀 건축물이 눈에 들어오셨을 겁니다. 고대 이집트의 유적인 ‘오벨리스크’죠.
하늘에 닿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인들이 오벨리스코스라고 부르면서 오벨리스크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이 뾰족탑들은 그런 역사를 보여줍니다. 원래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첨탑이나 못을 가리키는 것이었다지요. 네모난 기둥이 점점 위로 갈수록 좁아지다가 바늘처럼 날카롭게 하늘을 찌르며 끝나는 모양새가 그 단어와 잘 어울립니다. 오벨리스크에서 마천루까지, 하늘을 향해 뻗어나간 건축물의 역사를 훑어봅니다.
태양을 향한 인간의 욕망, 오벨리스크
고대 이집트인들이 남긴 오벨리스크 중 가장 큰 것은 이탈리아 로마의 라테란 바실리카 앞에 있습니다. 높이가 32.2m, 무게가 455톤에 이른다고 합니다. 터키의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스3세 시절의 것인데 서기 390년 로마제국의 동방 정제(正帝)였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배에 실어 옮겨갔다고 합니다.
저 오벨리스크를 만든 사람들이나 그걸 배에 싣고 간 사람들이나, 참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요. 지배자들의 욕망 뒤에는 수많은 이들의 땀과 노동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이기도 한 것이죠.
오벨리스크의 고향은 고대 이집트입니다. 이집트 중부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신전, 카이로 헬리오폴리스, 심지어 카이로 국제공항 앞에도 오벨리스크들이 서 있습니다. 그 중 몇 개는 외국으로 반출됐습니다. 람세스2세의 오벨리스크 하나는 프랑스 파리 콩코드광장 앞에 세워졌습니다. 이탈리아에는 로마 제국 시절 가져간 오벨리스크 8개가 있습니다. 폴란드와 터키, 영국, 미국에도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있습니다.오늘날의 시리아와 이라크를 비롯한 중근동 일대에 있었던 고대 아시리아 문명도 오벨리스크를 남겼습니다. 아슈나르시팔1세(기원전 1050-1031년 재위) 혹은 그 후임자인 2세의 것으로 추정되는 ‘하얀 오벨리스크’는 1853년 이라크의 니느웨(니네베)에서 ‘발견’돼 영국으로 끌려갔습니다.
에티오피아에는 ‘시바 여왕의 나라’로 알려진 악숨이라는 제국이 있었지요. 악숨 오벨리스크도 유명합니다. 그 중 하나, 수난의 오벨리스크 얘기를 해볼까요. 1700여 년 전 만들어진 이 오벨리스크는 이탈리아 파시스트 베니토 무솔리니 정권이 1937년 에티오피아를 침공해 로마로 가져갔습니다. 높이 24m, 무게 160톤의 오벨리스크는 로마에 세워져 있는 동안 대기오염에 시달렸고 2002년에는 벼락을 맞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는 1947년 유엔의 권고로 오벨리스크 반환에 합의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아 에티오피아 측의 반발을 샀지요.
그러다가 2003년 말부터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는데, 이 커다란 석조물을 비행기에 실을 수 없어서 화강암 몸통을 세 토막으로 잘랐습니다! 이 작업만 1년 넘게 걸렸습니다. 2005년 마침내 운반비와 재건비용을 포함한 4억5000만 달러의 비용을 이탈리아가 내면서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으나, 몸통이 잘리는 비운을 겪어야 했던 것이죠. 악숨은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700km 떨어져 있는 유적 도시로 고대국가 악숨의 수도였고, 지금도 130여개의 크고 작은 오벨리스크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티그리스가 내려다보이는 사마라의 미나레트
10여 년 전 이라크 사마라에 갔습니다. 사마라는 바그다드 북쪽 120km,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이곳에는 유명한 미나레트가 있답니다.
원래 미나레트는 모스크 옆에 있는 망루인데, 예전에는 여기에 사람이 올라가 큰 소리로 기도시간을 알렸습니다.
850여개의 사암 조각들로 만들어진 사마라의 미나레트는 나선형 구조로 유명합니다. 현지 사람들은 미나레트가 아니라 ‘말위야(Malwiya)’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면서 보니, 바로 이 사마라의 말위야를 그대로 본뜬 현대의 탑이 보이더군요.
사마라는 9세기에 한때 압바스 왕조의 수도였던 곳입니다. 당시 칼리프(왕)였던 알 무르타심은 바그다드를 떠나 수도를 옮기기로 하고 사마라에 새 도시를 만들었는데, 사마라는 <보는 사람이 즐겁다>는 뜻이라더군요. 그때 모스크와 탑을 만들었습니다. 사마라의 미나레트는 높이가 52m입니다. 숫자로 하면 감(感)이 잘 오지 않지만, 평지에 홀로 우뚝 서있는 탑은 아주 거대합니다.
군데군데 패인 돌계단을 올라가봤습니다. 난간도 없는 계단을 한참 뱅글뱅글 돌아 꼭대기에 이르렀더니 티그리스 강과 사마라 시가지, 탑 밑에 있는 알리 하지 모스크의 금빛 지붕이 보였습니다. 먼지바람 사이로 갈대숲을 끼고 티그리스 강이 굽이굽이 흘렀고 물새가 날았습니다. 사마라의 탑은 나중에 미군과 저항세력의 교전 과정에서 수니파 저항세력의 박격포 공격으로 윗부분이 무너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무언가를 앞에 놓고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요. 하지만 63빌딩이나 강남의 주상복합 아파트 앞에서 그런 압도되는 느낌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 감정의 또 다른 축은 거기 쌓아올려진 시간의 무게, 바로 ‘역사’가 아닐까 합니다. 아, 물론 피라미드나 지구라트처럼 더 높고 더 오래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집트 기자에 있는 대(大)피라미드의 높이는 147m나 된답니다. 4000년 전에 이런 대공사를 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죠.
고대와 중세의 ‘고층아파트’들
도시의 인구밀도가 높아질수록 건물의 높이가 올라가는 것은 공간이용을 효율화하기 위한 것이지만, ‘더 높은 건물’을 향한 사람들의 야심에는 그런 실용적인 면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라마다, 도시마다 ‘랜드마크’라며 높이 짓기 경쟁을 벌이는 것을 보면요.
고대 로마제국의 대도시들에는 10층 넘는 아파트들이 있었고 중세 유럽에도 80~100m에 이르는 건물들이 있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고대에나 중세에나 높은 걸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사막에서의 공간감각은 지형지물이 많은 다른 곳에서의 감각과는 다를 법도 하고요.
11세기 페르시아(이란) 시인 나시르 후스로(Nasir Khusraw)는 이집트에 14층 건물이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 시인에 따르면 당대의 고층빌딩이던 이 건물 지붕에는 정원이 있어서, 관개용수를 끌어다가 지붕 위에서 소를 키웠다는군요. 예멘의 시밤에는 16세기에 지어진 5~11층의 건물군(群)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볼로냐는 12세기에 이미 아시넬리 탑(97.2m)을 세웠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아주 오래도록 세계 최고 건조물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피라미드의 기록을 처음으로 깨뜨린 것은 14세기 영국 국교회 성당으로 지어진 링컨대성당입니다.
도시화와 빌딩숲의 탄생
19세기 유럽과 미국에는 새로운 건축기술들을 적용한 고층건물들이 잇달아 탄생합니다. 고층건물의 시대를 연 것은 1852년 엘리샤 오티스가 도입한 승강기 기술이었습니다. 영국 리버풀에는 1864년 건축가 피터 엘리스가 설계한 오리얼체임버스 빌딩이 지어집니다. 세계 최초로 철조 프레임에 유리창으로 이뤄진 벽을 덧대어 만들어진 건물이었고 높이는 5층이었습니다.
명실상부 세계 최초의 현대적 마천루라고 부를 수 있는 건물은 미국 시카고에 세워진 홈인슈어런스 빌딩입니다. 1884~1885년 지어진 10층 건물인데, 고대와 중세의 고층건물들이 널따란 돌벽으로 지탱됐던 것과 달리 오로지 철골조로만 받쳐졌습니다. 이어 시카고의 랜드맥낼리 빌딩(1889년),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의 웨인라이트 빌딩(1891년) 같은 건물들이 들어섭니다.
초창기 마천루의 고향은 시카고나 뉴욕 등 미국 대도시들이었습니다만 이내 유럽으로도 옮겨갑니다. 1898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지어진 비테하이스(하얀 집), 영국 리버풀의 로열리버빌딩(1911년), 독일 뒤셀도르프의 막스하우스(1924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쿵슈토르넨(왕의 탑·1924~1925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에디피시오 텔레포니카 빌딩(1929년) 같은 것들이죠.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1932년 완공된 뵈렌토렌은 26층 건물이었고, 이어 1940년 이탈리아 제노아에 31층짜리 토레 피아센티니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마천루의 신세계는 뉴욕!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뉴욕 부동산업계는 최고층 건물 짓기 경쟁을 벌입니다. 1930년 크라이슬러 빌딩에 이어 1931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지어졌지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이후 40년 동안 세계 최고층 건물 기록을 보유했답니다. 몇 년 전에 이 건물 전망대에 올라갔는데, 승강기를 타고 높이높이 올라간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던 관광... 별로 재미는 없었습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의 기록을 깬 것은 뉴욕 세계무역센터였습니다. 지금 이 건물은 2001년의 9·11 테러로 무너지고 없지요. 얼마 전 이 자리, ‘그라운드제로’에 새로 지어진 ‘원월드트레이드센터’가 문을 열기는 했습니다만. 아무튼 이전의 세계무역센터도 최고층 빌딩이라는 타이틀을 오래 쥐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1974년 시카고의 시어스타워가 완공되면서 곧바로 기록을 빼앗아갔거든요.
더 높이, 더 높이.. 신흥국들의 랜드마크 전쟁
시어스타워의 기록을 깬 것은 1998년 지어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입니다. 2004년에는 타이베이에 타이베이101 빌딩이 들어섰지요. 지난해 이 건물에도 가봤는데, 전망대 올라가는 입장료가 비싸서 올라가보지는 않았습니다. 2008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상하이세계금융센터가 세워졌습니다.
요즘 가장 유명한 고층빌딩은 두바이의 부르즈칼리파(Burj Khalifa)일 것 같습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에 있지요. 높이가 무려 829.8m!
원래는 ‘부르즈두바이’라는 이름으로 계획됐습니다. ‘부르즈’는 탑을 가리키는 아랍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만 건축 도중에 두바이가 금융위기를 맞았고, UAE 안에서 두바이의 형님 격인 아부다비 측이 두바이에 자금을 지원해줬습니다. 그래서 두바이 측에선 고마움을 담아, 이 건물 이름에 아부다비 지배자 칼리파의 이름을 붙였답니다.
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에 지어진 200m이상 빌딩은 모두 97동으로 2011년 최다기록인 81동을 앞섰다고 합니다. 이들 빌딩의 높이를 모두 더하면 2만3333m에 이른답니다. 높이 올라가려는 경쟁이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초고층건물들 때문에 생겨나는 환경오염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어찌 보면 이제는 ‘더 높이’가 아닌 ‘더 깨끗하게’ 혹은 ‘더 푸르게’를 놓고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3월 영국 가디언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내년쯤 ‘나무로 된 마천루’가 들어설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높이 84m로 설계된 이 건물은 재활용 나무로 주요 부분을 제작하며, ‘환경발자국’을 최소화하는 데에 주력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저 높이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지구와 공생할 수 있는 멋진 건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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