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마거릿 대처, 미국인들에게 말하다

딸기21 2013. 4. 9. 15:26

영국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총리인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1980년대 세계 정치무대를 휩쓴 인물이죠. 국내에서도 어느 대기업이 신문 전면광고로 '여성 인재를 중시하겠다'면서 대처를 광고모델(?)로 내세웠던 기억이 납니다. 


왜 이걸 생생하게 기억하냐면, 그 얼마 뒤 제가 그 기업의 입사시험을 치렀고 '여성전문직'이라는 이름으로 합격했기 때문입니다. 좀 우스꽝스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만, 직종이 무려 '전문비서직'이었습니다. 여차저차한 사정이 있어서 그 회사에 가지는 않았고, 몇년 뒤 그 기업이 '여성전문직' 직원들부터 우선적으로 다 잘라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대처의 후예(?)들은 그렇게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의 희생양이 됐다는 슬픈 전설... 


대처의 이름 앞에는 철의 여인(Iron Lady)’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습니다. 맨 처음 이 별명을 붙인 것은, 총리가 되기도 전인 1977년. 소련 '붉은 군대' 기관지인 크라스나야 가제타가 이 말을 썼다죠.



대처는 1925년 링컨셔의 그랜텀(Grantham)에서 태어났고, 1959년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습니다. 1970년부터 4년 동안 교육장관을 지냈으며, 이듬해부터 1979년까지 야당으로 전락한 보수당의 대표로 당을 이끌었습니다. 19795월 총선에서의 압승과 함께 총리가 된 그는 1990년까지 11년간 재직하면서 영국의 경제구조조정과 사회변화를 주도했습니다.



사진 가디언 (http://www.guardian.co.uk/)



대처, 미국인들에게 말하다


오늘 소개할 것은 대처가 정권 잡은 뒤 미국을 첫 방문해서 했던 연설입니다.


대외적으로 대처는 람보 식 근육질 대결정책을 펼친 미국 로널드 레이건 정부와 손잡고 철저하게 냉전적인 외교를 펴나갔습니다대처가 미국과 함께 갈 것임을 천명한 것은 집권 첫해인 1979년 미국을 방문해서였습니다뉴욕을 찾은 대처는 자신이 이끄는 보수당 정부의 외교정책 접근방식을 미국인들 앞에서 설파했는데핵심은 동서 양극화를 불사하는 단호한 우파 정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양극화를 좋아하는 철의 여인이었던 것 모양입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1970년대의 마지막 해인 1979년이 2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10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저는 다가올 10년을 위험한 10이라 부릅니다. 우리의 안보와 삶의 방식을 비롯해 모든 것에 도전이 들이닥칠 수 있는 기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서방국과 그 지도자들은 단호하면서도 차분하고 결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약함과 분노, 절망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국제문제 중에 간단한 해법으로 풀리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긍정할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더 이상 별도로 분리해서 다룰 수 있는 문제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 문제들이 점점 더 많이 서로 얽히고 있습니다. 여전히 가속화되고 있는 기술 혁명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사는 지구와 그 자원들이 한정돼 있다는 것, 그리고 여러모로 보아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지구적 상호의존(global interdependence)’은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통화량이 지나치게 많아져 문제가 일어난 초창기 사례로는, 400년 전 남미에서 금과 은이 흘러들어와 유럽의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걸 들 수 있습니다하지만 상호의존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현실보다 뒤쳐져 있습니다. 제가 10대일 때 영국 총리는 체코슬로바키아를 영국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먼 나라라고 말한 적 있었습니다. 미국 대통령도 유럽의 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국민들을 설득하느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분명한 것은, 오늘날에는 어떤 사람도, 어떤 나라도 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클리브랜드(Stephen Grover Cleveland. 미국 22, 24대 대통령) 대통령이 말한 남의 나라 소동(foreign broils)’이 지금은 모든 가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나이지리아의 기름 가격, 캔자스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확량이 곧바로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사가 됩니다. 중동(The ‘Middle’ East)과 미국 중서부(the ‘middle’ West)는 이웃이 됐고, 때때로 불편한 일이 벌어지긴 하겠지만 앞으로도 이웃으로 지내게 될 겁니다. 종은 우리 모두를 위해 울립니다(The bell tolls for us all).

 

대처의 연설은 점점 격앙됩니다. 이어지는 주제는 1979년 이란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발생한 인질사건입니다


잠시 설명하자면 아야툴라 호메이니(Grand Ayatollah Ruhollah Khomeini. 1902-1989. ‘그랜드 아야툴라는 이슬람 시아파 최고위 성직자의 호칭입니다)가 이끄는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면서 파흘라비(Pahlavi) 왕조의 친미 독재정권이 몰락했지요. 파흘라비의 마지막 독재자 모하마드 레자 샤(Mohammad Reza Shah. 1919-1980) 국왕이 권좌에서 쫓겨난 겁니다


테헤란의 젊은 대학생 3000여명은 미국으로 망명한 전 국왕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며 테헤란 미 대사관을 점거했고대사관에 있던 미국인들을 비롯해 90여명이 억류됐습니다이듬해 미국의 지미 카터 행정부는 이란과 국교를 끊고 인질 구출작전을 펼쳤지만 실패했으며 444일 만인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식 무렵에 이르러서야 인질들이 풀려났습니다


테헤란 미대사관 점거 뿐 아니라 이란 이슬람혁명 자체가 미국의 중동정책에는 엄청난 타격을 입힌 일대 사건이었습니다미국은 당시만 해도 백색테러를 일삼는 이란 친미독재 왕정을 지원하면서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대리인으로 삼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이란인들이 중동에서의 미-소 대결 구도를 무너뜨리고 전혀 새로운 길인 이슬람 근본주의를 주창하고 나선 겁니다일격을 맞은 미국은 이슬람 신정(神政이란 대신 이웃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과 결탁했습니다이란과 미국의 적대관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요. 


영국은 중동에서 늘 미국과 이해관계를 같이 해왔습니다. 왜냐고요? 미국은 중동 석유를 모두 빼내 자기네 나라로 가져간 게 아니거든요. 오히려 미국의 중동 석유 '안보'는, 냉전 시기 유럽을 위한 석유공급원을 확보해준다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영국은 이름하여 '앵글로-아메리칸' 패권이라는 이름으로 중동에서 미국에 붙어 이익을 지켜왔습니다. 


최근 몇 주 사이에이를 비극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일어났습니다전 세계 사람들이 테헤란에서 일어난 사건을 지켜보며 분노하고 경악했습니다우리는 모두 인질의 운명에 공감을 느꼈습니다문명화된 국가 간 관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외교사절의 면책특권) 원칙이 구조적으로 무시됐습니다.


영국은 카터(Jimmy Carter) 대통령이 이 끔찍한 상황을 침착하고 결연하게 다루고 있다고 보며그를 존경하고 지지합니다유럽 파트너들과 우리는인질들이 조건 없이 석방되게끔 하기 위한 그의 노력에 공적·사적인 모든 지지를 보냅니다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지원하고 도울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동료 시민들을 향한 모욕에도 미국 국민들이 관용으로 대처한 것을 존경합니다억류돼 있는 사람들에게 (미국인들의그런 자제심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미국 국민들이 관용으로 대처... ㅎㅎ 

일단 넘어갑시다.


세계가 점차 작아지면서정치·경제·사회적인 대격변이 본질적인 속성이 되고 있습니다이란 위기는 그 작아지는 세계 속에서 공존하기 위해 우리가 부딪쳐야 할 문제를 그대로 보여줍니다어떤 이들은 대격변의 목록에 종교적 변화를 덧붙이기도 합니다만저는 이란에서 일어난 사건을 가지고 이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인질을 잡은 행위를 가지고 이슬람을 판단하려는 것도 아닙니다이란 혁명 이전부터 무슬림 세계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존감을 고양하는 흐름이 있었습니다지금은 그것이 과도하게 표출되고 있지만이 지나친 시기가 지나더라도 (무슬림의 자아 찾기라는조류는 더 오래 갈 것입니다서방은 이를 적대하지 말고 존중해줘야 합니다중동은 우리의 이해관계가 크게 걸려 있는 곳입니다우리는 오랫동안 자신들만의 종교적 전통을 형성해온 그 지역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그들이 외래에서 들어온 마르크스주의의 기만적인 주장에 넘어가는 걸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중동 그 너머를 보건대저는 원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슬람 혁명에 미친 자극은 그리 크지 않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마르크스주의의 독트린이 실질적으로 실패했다는 사실이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지면서 그 동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마르크스주의는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습니다인습이 판치고 권위주의자들이 지배하거나 과거로 회귀한 나라들에서는 뿌리를 내렸지만그런 곳들에서도 지속적으로 경제적·사회적 발전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남은 것은 체제를 전복시키는 기술과 구호 뭉텅이 뿐입니다. 


그 중 전복의 기술은 여전히 위험합니다테러리즘과 마찬가지로그것은 어디에서 발생하든 맞서 싸워야 할 악()입니다최근 몇 년 사이영국 총리들에겐 테러리즘을 강도 높게 언급할 이유가 있었습니다(1970년대 북아일랜드 독립진영의 테러공격이 거세게 일어났던 것을 지칭합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캐치프레이즈라는 면에서 보자면그런 구호들은 아직도 어느 정도는 힘을 발휘합니다하지만 정작 마르크스주의 원칙들이 지배하는 나라들은 (마르크스주의의구호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대처의 인식은 굉장히 '현실적'입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슬람이 아니라 '공산주의의 위협'이 근본적인 위험으로 여겨지던 때였죠. 대처는 반공주의를 국내외 정치에 적극 활용했다는 점에서 레이건의 정치적 쌍둥이였습니다.


소련으로부터 오는 당장의 위협은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아닌 군사적인 위협입니다. 유럽과 북미의 안보에 위협일 뿐만 아니라직접적으로든 대리인들에 의해서든 제3세계에서도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쿠바와 동독에서도 소련의 대리인들이 판을 칩니다.


러시아가 무기를 갖고 있고 더 많이 모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우리 영국은 전략적인 수준을 비롯해모든 단계에서 모든 능력을 발휘해 신중하게 대응할 겁니다연합국은 지난주 장거리 핵무기를 현대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이 결정에 따라 적절한 시점에서러시아가 이미 유럽을 타깃으로 삼고 개발한 정교한 신식무기들과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될 겁니다


미국과 서방 연합국의 전략적 군사력은 최고입니다그러나 저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sation)의 유럽 측 회원국들의 공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러시아도 이를 결코 간과하지 않고 있고요.

현대의 무기는 너무나도 파괴적이며 대단히 비쌉니다서로의 핵심적인 안전을 보장하는 군축협정을 맺는 것이 양측 모두에게 마땅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영국은 전략무기 제한(Strategic Arms Limitation)과 상호 군사력 균형감축(Mutual and Balanced Force Reductions)을 위한 협상을 지지해왔습니다소련 정부는 서방이 자신들에 유리하게 협상하려 한다고 주장하며 저를 공격해왔습니다그러나 소비에트 정부 스스로가 야욕의 메아리를 계속해서 외쳐왔을 뿐제가 그 이상을 말한 적은 없습니다저는 협상의 우위에 서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저는 균형을 맞춰 협상을 하고 싶습니다


미국인들을 앞에 두고 대처는 영연방의 분쟁을 '안정'시킨 자신의 치적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대표적인 게 짐바브웨 문제입니다. 


영국은 짐바브웨 로디지아(Zimbabwe-Rhodesia. 현재의 짐바브웨가 1979-1980년에는 이렇게 불렸습니다)로 골치를 좀 썩였습니다.  ‘로디지아라는 것은 영국의 남아프리카 식민지 점령자였던 세실 로즈(Cecil Rhodes)에게서 따온 명칭입니다남아프리카공화국이 독립한 뒤에도 짐바브웨는 오랫동안 영국령으로 남아 있다가 100여년의 식민통치를 거쳐 1980년 4월 18일에야 공화국으로 독립했습니다.


독립에 앞서, 수개월의 격렬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영국 자치령이었던 남()로디지아 독립에 반대한 소수 백인들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운동을 벌였고이에 맞서 흑인 민족주의 세력의 무장 독립운동에도 불이 붙었던 겁니다. 국제사회가 백인사회와의 중재에 나서, 1979년 새 헌법 제정과 자유로운 총선 실시를 골자로 한 랭커스터 평화협정이 체결됐습니다. 이것이 랭커스터 평화협정(Lancaster House Agreement)입니다.


(짐바브웨 문제와) 같은 맥락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남아공 국경지대와 로디지아나미비아(이 나라는 오랜 투쟁 끝에 1990년에야 남아공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등지의 분쟁이 곧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풀지 못할 난제로 여겨선 안 됩니다서방은 어마어마한 물질적도덕적 자산을 가지고 있습니다그 자산에 더해서 우리의 강점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명확성그 강점을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의지와 자신감상황을 꿰뚫어볼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합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서구 민주주의는 여전히 압도적일 만큼 강력한 존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서방의 정치적 힘과 안정성 역시 마찬가지로 탁월합니다우리의 제도는 보통 사람들의 열망을 충족시켜주고 있고그걸 누리지 못하는 이들은 우리의 제도들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제가 언급하고 싶은 마지막 자산은 서방과 제3세계의 관계입니다최근 (이란 등지에서벌어진 사건이나 과거에 벌어졌던 부당한 일들그리고 반()식민주의라는 구시대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3세계와 서방의 이익이 합치되는 이해수렴이 결국 일어날 겁니다경험을 통해서 제3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알고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서방의 우리입니다우리가 세계 대부분의 시장에서 그들을 위해 상품과 원자재를 공급합니다우리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의 대부분을 전해주고 있습니다그들에게 민간투자와 정부 보조를 제공하고 있고요.


우리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힘과 자기규율과 단호함을 지닌 세대로 역사에 남읍시다그것이 우리 세대입니다그것이 1980년대의 의무입니다.


대단한 자신감입니다. 


영국 내에서 대처는 강한 카리스마로 민영화를 밀어붙였습니다. 결과는 대공황 이래 최악의 실업률이었습니다. 하지만 1983년 총선에서 대처는 총리로 다시 선출됐습니다. 국내정치에서의 정책적 승리보다는, 포클랜드 전쟁(the Falklands War) 덕분에 거둔 승리였습니다


남미 대륙 남단에 있는 포클랜드 섬(아르헨티나 이름은 말비나스 제도·Islas Malvinas)1833년 영국군이 원주민들을 강제로 몰아낸 뒤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1982년 아르헨티나가 자신들의 영토라며 섬에 주둔 중이던 영국군을 공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대처는 군대를 대거 파병해 아르헨티나 군과의 무력충돌을 불사하는 강공을 했고, 결국 승리했습니다. 아르헨티나 군사독재정권이 이 사건 여파로 실각한 반면 대처는 정권을 재창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대처, 영국 노동자들을 내쫓다


<브래스트 오프>라는 영화를 보신 적 있으신지요. 대처의 정책 때문에 탄광폐쇄와 구조조정으로 잘려나간 탄광 노동자들의 밴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두 번 봤답니다. 음악도 정말 좋았고요.


다 아시겠지만, 총리 시절 그의 정책과 그 결과에 대해서는 극명하게 평가가 엇갈립니다세계의 보수 우파들은 민영화와 노동자 대량해고로 특징지을 수 있는 대처 식 개혁에 대해 영국병()을 고친 강력하고 위대한 지도자라 예찬합니다. 오늘 아침 조선일보 등도 예찬을 아끼지 않았더군요.


하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 저변에 있는 서민들에게 돌아갔고빈부격차는 심해졌으며민영화로 인해 국가 인프라가 오히려 부실해지고 거대기업들만 이익을 독식하는 구조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 2000년대 들어 대처리즘(Thatcherism)’으로 통칭되는 이런 신자유주의적 기획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면서대처를 세계 노동자들의 공적(公敵)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졌습니다.


잠시, 대처 시대 전후의 영국 경제지표를 볼까요. 9일 bbc방송 웹사이트에 실린 그래픽들입니다. 



석탄 생산량이 확 줄어듭니다. 하지만 곧 이전 수준 비슷하게 복귀했고, 점진적으로 내리막을 타네요. 이 그래픽만 보면 대처 때문에 영국 석탄산업이 망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석탄산업이 '21세기형' 산업은 아니고, 장기적으로 하향세를 그릴 수밖에 없었을테니까요. 


문제는, '석탄 생산량'과 '탄광노동자들의 삶'은 같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노동자들 잘라내고 석탄생산량은 원상복귀시켰다면, 대처리즘을 좇는 이들의 말대로 석탄산업의 효율성은 엄청 높아진 거겠죠. 그러면 노동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건 실업률 지표입니다. 이 그래픽만 봐도 대처리즘이 경제적으로 실패했다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대처식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진보주의자들의 주문처럼 되어 있으나, 실업자 수는 1990년대 이후 다시 줄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생산성 높이고 경쟁력 키우고 1990년대 토니 블레어 시기의 호황을 준비해준 것이 대처였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사실일까요? 이것도 진실이라 보기엔 찝찝한 부분이 많습니다. 1990년대에는 아시아 금융위기 이전까지 대부분 호황이었습니다. 미국 빌 클린턴 정권 때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IT) 붐으로 흥청거렸거든요. 



이건 어떤가요.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감 추이입니다. 1979~81년 급경사를 이룬 것 말고는 뭐 그냥 그렇습니다. 세상 다른 나라들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대처는 찬사와 분노와 좌절감과 빈부격차와 대결과 별명... 등등을 남겼습니다만, 경제적으로 '대처리즘'의 실적은 뭐 특이한 게 없다, 하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어버리네요... 사람들의 망가진 삶을 빼면.

그것조차도 '대처가 망가뜨린 게 아니다'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대처리즘을 '복지병 고친 처방전'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것 같군요. 대처 시기에 실직한 탄광노동자들, 민영화 정책으로 밀려난 옛 공공기관 직원들은 펄펄 뛰며 대처에게 돌을 던질 것이고요.


어제 대처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의 대내외 정책만큼이나 양극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