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 되어가는군요. 저도 실은 잊고 있었습니다. 10년 전의 바그다드를.
개전 두달 뒤인 2003년 5월 1일, 부시는 미 항모 에이브러햄 링컨 호 선상에서 From the left: French President Jacques Chirac, U.S. President George W. Bush, UK Prime Minister Tony Blair /위키피디아
'전쟁이 일어난 그 날'이 다가오니, 이라크 전쟁 10년을 돌아보는 외신 기사들이 하나둘씩 흘러 나오네요.
그래서,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볼까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조지 W 부시의 거짓말'이 되겠습니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뒤 테러조직 알카에다(Al Qaeda)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Osama Bin Laden. 1957-2011)이 은신해있던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은 아프간 침공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빌 클린턴에 이어 미국 43대 대통령이 된 조지 W 부시(George Walker Bush. 1946-)는 집권 첫해에 시작한 아프간 전쟁에 이어, 2년 뒤인 2003년 또 다른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공격 대상은, 12년 전 아버지 조지 H. 부시 집권 시절 한 차례 공격했던 이라크였습니다.
부시(이하 아들 조지 W 부시)는 당초 이라크가 알카에다와 연계된 ‘테러 지원 국가’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이슬람세력을 오히려 억눌러온 세속주의 정권이었고, 이라크와 알카에다가 관련돼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에 이 주장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미국은 이라크를 ‘민주화’시키고 억압받는 국민들을 ‘해방(liberate)’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습죠?
이전까지 미국은 중동과 중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반미 성향의 정권이 쿠데타 등에 의해 전복되도록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전략을 써왔습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직접 개입’ 즉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 정권을 교체해버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른바 ‘체제교체(regime change)’ 전략이었습니다.
목표는 미리 정해놓은 것이고, 명분은 그저 갖다붙이면 되는 것이었을 뿐.
부시 행정부 안팎에 포진한 신보수주의자들, 이른바 ‘네오콘(neo-conservatives)’들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제거해야 한다는 명분을 찾으려 애를 썼습니다. 알카에다 연계설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 다음에 내놓은 것은 ‘대량살상무기(WMD)’문제였습니다. 이라크가 핵무기·생물무기·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거나, 혹은 제조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주장이었습니다.
한번 살펴 보지요.
먼저 부시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손에 쥔 사담은 이미 화학무기로 수천 명을 숨지게 한 살인마 독재자”라고 주장합니다.
사실입니다. 사담 후세인은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 끝 무렵인 1980년대 말 북부 쿠르드 지역에서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쿠르드족 수천 명을 화학무기로 학살했습니다. 사담 후세인의 측근인 알리 하산 알 마지드(Ali Hassan al-Majid. 1941-2010)가 할라브자(Halabja)라는 지역에서 쿠르드족 주민들에게 이란과의 내통 혐의를 뒤집어 씌워 학살을 저질렀습니다.
사린가스와 VX 가스 등 맹독성 화학물질로 주민들을 학살했다 해서 알리에겐 ‘케미컬(화학) 알리’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학살 주범 알리는 2010년 이라크 새 정권 치하에서 처형됐습니다.
“우리는 그 정권이 겨자가스와 사린 신경가스, VX 가스를 포함해 화학무기 수천 톤을 만들어온 걸 알고 있습니다. 사담 후세인은 화학무기를 쓴 적도 있습니다.”
부시는 화학에 대해 잘 알았던 모양이네요 -_- 부시가 어느 연설에서 했던 말이랍니다.
VX가스가 뭐냐면, 사린가스보다 몇배 더 위험하다는 맹독성 기체입니다. 영국의 과학자 라나지트 고슈(Ranajit Ghosh)가 실험 과정에서 발견했고 1954년 잠시 살충제로 사용됐으나 독성이 너무 강해 곧바로 금지됐다고 합니다. 화학무기 이외의 용도로는 사용하기 힘든 맹독성 신경교란 물질이랍니다. 유엔은 결의안 687호로 이 물질을 대량살상무기로 규정했고, 1993년에는 화학무기금지협정을 통해 VX 가스의 사용을 전면 금지시킨 바 있습니다. 사담 후세인이 이란과의 전쟁 때 이란 지역에서 이 가스를 사용했고, 쿠르드족 학살 때에도 이 가스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담이 살인마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이라크를 공격해야 한다?
유엔은 할라브자 학살이 알려지자 1990년부터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지역(쿠르디스탄·Kurdistan)을 비행금지구역(이라크의 남부와 북부의 제공권을 차단해 사실상 이라크의 대공방어망을 무력화시킨 조치)으로 설정했으며 쿠르드족이 자치정부를 구성하도록 지원했습니다. 이때부터 사실상 북부 쿠르드지역은 사담 정권의 통제에서 벗어난 상태였습니다.
"이라크전 주요 전투는 종료됐다(전쟁에 이겼다!)고 선언합니다. 이 사진은 함상에 도착한 부시의 모습.
부시가 선언한 그 뒤로 7년 동안 미국은 더 전쟁을 했습니다... /위키피디아
부시는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이라크는 몇 년째 아부 니달 같은 테러범을 숨겨주고 있습니다....이라크는 또 아킬레 라우로(Achille Lauro)호를 잡아 미국인 승객을 살해한 아부 압바스에게도 피난처를 내줬습니다. 또 우리는 이라크가 테러범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중동 평화를 해치기 위해 테러조직들을 밀어주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아부 니달(Abu Nidal. 1937-2002). 본명은 사브리 할릴 알 반나(Sabri Khalil al-Banna)이고요. 팔레스타인 출신의 저항운동가입니다. 한때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1929–2004)가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에 소속돼 활동하기도 했으나 외교협상을 통한 팔레스타인 독립 노선에 반대하며 독자노선을 걸었습니다.
테러공격을 수단으로 이스라엘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아부 니달 기구(ANO)’라 불리는 테러조직을 만들었죠. 이스라엘 인사 뿐 아니라 아라파트의 측근 등 팔레스타인 온건파 인사들을 상대로도 테러를 저질렀습니다. 아부 니달이 이라크에 피신해 있던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이라크에 머물던 도중,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2002년 의문의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이스라엘 정보원의 암살이라는 추측이 무성했고요. 암튼 전쟁 전에 이미 아부 니달은 사망했습니다.
아부 압바스 사건 역시 팔레스타인과 관계돼 있습니다. 1985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저항조직인 팔레스타인해방전선(Palestine Liberation Front. PLF) 조직원 4명이 이탈리아를 출발해 이집트로 가는 이탈리아 나폴리 선적의 호화유람선 아킬레 라우로 호를 납치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부 압바스(Abu Abbas)를 중심으로 한 납치범들은 승객들을 인질로 잡고 이스라엘이 붙잡아 가둔 팔레스타인 저항조직원 50명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납치범들은 승객 중 제비를 뽑아 유대계 미국인을 본보기로 사살한 뒤 시신을 바다로 던졌습니다
미국 레이건 정부의 강경대처 방침으로 협상이 성사되지 않자 납치범들은 사흘 만에 이집트에 투항했습니다. 납치범들이 항공기를 타고 이집트에서 튀니지로 탈출한다는 걸 알아챈 미국은 요격 작전까지 세워 납치범들이 이탈리아에 강제착륙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 정부와 이집트 정부, 그리고 아라파트 PLO 의장 간의 물밑 밀약 때문에 이탈리아 측은 미국에 납치범들을 인도하길 거부했습니다. 아부 압바스는 이탈리아에서 테러 혐의로 기소됐지만 증거부족으로 풀려났습니다.
부시가 이라크 공격을 옹호하기 위해 했던 말들은 거짓과 왜곡이 어떻게 세상을 전란에 몰아넣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하나 더 볼까요. 부시는 "유엔 안보리가 사담 후세인의 무장해제에 합의했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는 이라크전이 마치 '국제적 지지'를 얻은 걸로들 알고 있지요. 미국=세계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부시의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은 이미 10여년에 걸친 금수조치와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으로 날개가 꺾인 상태였습니다. 또한 이라크는 유엔 무기사찰단(UNSCOM)의 정기적인 사찰도 받고 있었습니다. 9·11 테러의 충격 때문에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에는 안보리가 어느 정도 동의를 해준 것이 사실이지만, 이라크 침공 내지는 사담을 상대로 한 무력행사에 국제사회가 동의하지는 않았습니다.
유엔 안보리에서는 미국의 치열한 외교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중국, 프랑스가 끝내 무력사용 결의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아프간 전쟁 개전 뒤에는 뒷수습을 위해 유엔 안보리 결의로 다국적 국제치안유지군(ISAF)이 결성됐지만, 이라크에 대해서는 군사행동을 안보리가 허용하지 않았으며 뒷수습을 위해서조차 유엔 차원의 파병을 허용하거나 독려하는 결의를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몹시 비판적인 입장이었고, 미국이 유엔과 국제사회를 무시하고 마침내 침공을 감행하자 격렬히 비판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입김을 강하게 받는 영국, 캐나다, 일본, 한국, 그리고 동유럽과 중남미의 일부 소국들만이 이라크 전쟁에 파병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라크에 파병된 우리 부대는 유엔이나 국제사회의 요구와 상관없이 걍 미국한테 잘 보이려고 보낸 것에 불과합니다. 과연 그게 우리에게 어떤 '국익'을 안겨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더 웃긴 것은, 아프간의 우리 부대조차 ISAF 소속이 아니었다는 것... 한국이 내세우는 '파병'의 현실...)
이라크와 알카에다 관련설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뒤에 드러났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뒤에 드러난 게 아니라, 다 알고 있는 걸 부시가 우겼다고 해야겠죠.
사담 후세인 정권은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인 알카에다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세속주의 독재정권이었고, 오히려 이슬람 극단주의를 억누르기 위해 애썼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이웃한 이란에 이슬람 근본주의 쉬아파 혁명이 일어나자 미국 못잖게 경계를 한 것이 사담 후세인이었습니다.
부시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이라크가 알카에다의 무대가 된 것은 미국의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였습니다. 극단주의 테러집단을 억제할 독재정권의 물리력이 사라지고 반미감정이 극에 이르자 미군 점령 하 이라크에서는 외부에서 유입된 테러조직원들이 ‘이라크 알카에다’ 지부를 만들어 기승을 부렸습니다.
이라크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에 대해 부시가 얘기한 내용들 또한 대부분 과장됐거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났습니다.
미국은 이라크를 점령한 뒤 유엔 사찰단이 아닌 자체 사찰단 성격의 ‘이라크조사그룹(Iraq Study Group. ISG)’이라는 것을 만들어 이라크 전역을 샅샅이 뒤졌으나 핵 관련시설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계획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를 찾아내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부시는 사담의 ‘대통령궁’에 대량살상무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둥 밑도끝도 없는 애기들을 했는데 이 또한 근거 없는 소리였습니다. 미군은 바그다드 중심가의 대통령궁을 점령 뒤 본부로 사용하면서 샅샅이 뒤졌지만 이라크 사람들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혔을 뿐, 핵 관련 설비를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이라크 ‘핵 계획’에 대한 정보왜곡은 뒤에 미국 내에서도 엄청난 논란거리가 됐습니다. 이라크 침공의 정당성을 놓고 미국 내에서조차 논란이 벌어지던 2003년 7월 미국 전직외교관 조지프 윌슨은 부시 행정부가 주장한 ‘이라크 핵개발 프로그램’ 증거들이 왜곡·과장됐음을 폭로했습니다. 윌슨은 이라크 침공 약 1년 전인 2002년 2월 중앙정보국(CIA)의 요청에 따라 아프리카 니제르를 방문한 사람입니다. 이라크가 1990년대 후반 니제르로부터 핵무기 원료인 정제우라늄을 구입했다는 정보가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정보를 이라크 침공의 근거로 삼자고 강력 주장한 것은 부시 행정부의 ‘전쟁 총지휘자’였던 딕 체니(Richard Bruce Cheney. 1941-) 부통령이었습니다. 윌슨은 니제르를 현지조사한 뒤 정제우라늄이 이라크로 넘어가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부시는 2003년 1월 국정연설에서 니제르 산 정제우라늄 이라크 유입설을 다시 들먹이며 이라크 침공을 주장했습니다. 윌슨이 이 사실을 폭로하자 백악관 측은 윌슨의 부인이 CIA 요원임을 언론에 흘렸습니다. 체니가 아니라 부인의 요청 때문에 윌슨이 니제르에 갔다고 암시함으로서 윌슨의 발언을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CIA 요원의 신원을 밝히는 것은 미국 법상 위법이며, 이 때문에 백악관 ‘누출(leak) 주범’이 누구인지 다시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이 복잡한 논란은 ‘리크게이트’로 비화했고, 체니의 비서실장이던 루이스 리비가 결국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2008년 미국 언론들은 2001년 9·11 테러 때부터 2003년 이라크 침공 때까지 부시 대통령과 최측근 7명이 공개적으로 발언한 내용들을 분석한 결과 935건이 거짓 발표나 진술들로 드러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부시 행정부의 거짓과 왜곡이 드러난 것은, 전쟁으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다음이었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2003년 3월 끝내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습니다(당초 부시 행정부는 2002년 가을 이라크를 공격하고자 했으나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의 거센 반발과 미국 내 정통보수파들의 반대에 부딪쳐 계획을 미뤘습니다).
사담 후세인은 개전 직후 축출됐고 2003년 12월 미군에 체포됐습니다. 그는 2006년 말 이라크 새 정부 산하에 세워진 특별재판소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됐습니다. 죽은 것이 사담 뿐이었다면 모르지만...
오늘 외신에 뜬 보도를 보니 전쟁으로 이라크 민간인 11만6000명이 숨졌고, 미군과 다국적군 4800명 이상이 사망한 걸로 집계됐네요. 이라크의 피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미국인들도 부시가 했던 거짓말에 동의해준 짐을 져야할 것 같군요.
미군은 2011년 거의 모두 철군했습니다만, 미국은 지금까지 전쟁비용으로 2조달러 이상을 썼고, 앞으로도 40년에 걸쳐 4조 달러 정도를 더 들여야 할 것 같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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