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부터 10월 6일까지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유엔 총회가 열립니다. 올해 총회는 유엔 창설 70주년을 맞아 열리는 것이라 더욱 뜻 깊은 행사가 될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 160여 개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초대형 총회’가 될 예정이기도 하고요. 유엔이 가진 한계와 개혁할 것들을 지적하는 이들도 많지만,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며 인류가 ‘좀 더 평화롭고 인권이 보장되는’ 지구를 만들기 위해 창설한 이 기구의 의미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세계 각국이 목소리를 높이는 국제정치의 무대이다 보니 유엔 총회에서 벌어진 해프닝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 역사를 모아봤습니다.
의장은 사무총장, 3분의 2 이상 찬성하면 주요 의제 ‘통과’
먼저 유엔 총회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부터 하겠습니다. 유엔 총회는 유엔헌장 4조에 의거해 해마다 한 차례, 주로 9월 말에 개최됩니다. 총회에 앞서 정상들의 미팅, 각종 위원회 회의도 열립니다. 지금은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리는 것으로 거의 굳어졌으나 1946년 1월 10일 소집됐던 첫 총회는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센트럴 홀에서 열렸습니다. 51개 회원국 대표들이 참석했습니다.
총회에서는 투표로 중요한 일들을 정합니다. 주된 의제는 평화와 국제안보, 유엔 재정과 이사회·위원회·산하기구 선출직 대표 선출, 새 회원국 가입 혹은 기존 회원국의 퇴출 등입니다. 이런 주요 의제의 경우 표결에 부쳤을 때 3분의 2 이상의 회원국이 찬성하면 통과됩니다. 하지만 일반 행정에 관한 것이나 첨예한 정치적 논란을 빚는 문제가 아닐 경우에는 3분의 2 이상 표를 얻지 못해도 다수결로 통과시키기도 합니다.
한 국가 당 1표를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습니다. 인구가 13억명이 넘는 중국이든 1만명이 채 못 되는 태평양 섬나라 나우루든 모두 1표를 갖게 되는 것이니까요. 작고 힘 없는 나라들에도 권리를 보장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주장과, 1국가 1표 시스템이 지구 상의 인구분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엇갈립니다.
1946년 첫 유엔 총회가 열린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센트럴 홀.
냉전 시기 동안에는 유엔 총회가 주로 제3세계 저개발국들이나 ‘비동맹국’들이 외교전을 펼치는 무대였습니다. 저개발국들에 대한 원조와 지원은 오랜 세월 유엔의 주요 임무였습니다. 반면 동서 진영의 갈등은 주로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펼쳐졌고, 상임이사국들이 비토권(거부권)을 무기로 힘 대결을 벌이곤 했지요.
흐루쇼프의 ‘신발 소동’
2008년 말, 이라크 기자 문타다르 알자이디가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장에서 신발을 집어던졌지요. 하지만 신발이 국제무대에서 화제가 된 것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신발 소동’의 원조는 옛소련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였습니다.
신발을 흔드는 흐루쇼프를 묘사한 ‘합성’ 사진(위). 인터넷에 널리 퍼졌으나 아래 AP 사진에 신발을 조작한 합성물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줄거리는 이런 겁니다. 1960년 10월 13일, 필리핀 대표가 유엔 총회 단상에 나온 흐루쇼프를 비판했습니다. 소련이 동유럽을 “집어삼키고” 동유럽의 “정치적 권리와 시민들의 권리를 박탈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흐루쇼프는 흥분해서 오른쪽 신발을 벗어 들더니 흔들었습니다. 당시 뉴욕타임스 취재기자로 현장에 있었던 벤저민 웰스의 보도에 따른 겁니다.
하지만 유엔 총회의 대표적인 해프닝으로 불리는 이 사건에 대해서는 뒤에 다른 주장도 나왔습니다. 뉴욕타임스의 또 다른 기자 제임스 페론도 당시 현장에 있었는데, 이 사람은 “흐루쇼프가 신발을 흔들지는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신발을 벗어서 연단의 테이블 위에 올린 것은 맞는데, “흔들지는 않았다”고 하는군요.
반면에 소련 정보기관인 KGB의 전직 간부는 흐루쇼프가 “리드미컬하게 신발을 흔들었다”고 증언했다고 합니다. 이미 오래 전 사건인데다 녹화된 동영상도 없으니 당시의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요. 아무튼 신발과 관련해서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총과 올리브 가지를 들고 총회장에 선 투사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알 나크바’ 즉 ‘대재앙’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에 땅을 빼앗기고 난민이 된 이들, 망명자들은 야세르 아라파트를 중심으로 모여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결성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면서, 1970년대 들어 이들의 목소리에 대답해야 한다는 캠페인이 벌어집니다. 그 해 유엔 총회에 아라파트가 초청됐습니다. 아라파트는 총과 올리브 가지를 들고 단상에 올라섰습니다. 올리브 가지는 평화의 상징이죠. 유명한 그 연설, 일부분을 인용해봅니다.
"오늘 나는 올리브 가지와 자유 투사의 총을 가지고 왔습니다. 올리브 가지가 내 손에서 떨어지게 하지 마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올리브 가지가 내 손에서 떨어지게 하지 마십시오."
아라파트의 호소 뒤, 유엔은 그 해 11월 29일을 ‘국제 팔레스타인 연대의 날(International Day of Solidarity with thePalestinian People)’로 정했습니다. 또한 PLO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유일한 합법적 대표기구’로 인정했고 ‘비(非)국가 옵서버’로 받아들였습니다.
지금은 팔레스타인이 사실상 국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만(한국도 대표부를 두고 있습니다) 여전히 이스라엘과 미국의 반대 때문에 정식 회원국이 아닌 옵서버 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여러 유엔 산하기구들에는 팔레스타인도 회원국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유엔 결의안 찢어버린 이스라엘 대사
아라파트의 ‘올리브 가지 연설’ 뒤 유엔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보호하고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이스라엘의 건국 자체는 유엔의 승인을 받은 것입니다만 1967년 전쟁을 일으켜 유엔이 인정한 팔레스타인 땅까지 불법 점령을 했지요. 점령된 땅을 반환하라는 숱한 총회 결의안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무법자처럼 결의를 온전히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을 끝내기 위한 결의안들이 통과됩니다.
그 중 이스라엘을 가장 궁지로 몬 것이 아라파트 연설 이듬해인 1975년의 유엔 결의안 3379호입니다. 이 결의안의 핵심은 “시오니즘은 인종주의와 인종주의적 차별의 한 형태다”라는 것입니다. 결의안은 “인종 간 우월함에 차이가 있다는 어떤 독트린도 과학적으로 거짓이며, 도덕적으로 비난 받아야 하고, 사회적으로 불공정하며 위험하다”고 규정했습니다. 세계의 정부들이 인종 차별에 맞서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점령 하의 팔레스타인 영토, 짐바브웨(당시 공식 독립 전이어서 백인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통치당국을 인종차별적 레짐(체제)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러자 당시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였던 차임 헤르조그(뒤에 이스라엘의 대통령이 됐습니다)는 단상에 올라 결의문을 찢어버렸습니다.
결의안은 1991년 결국 개정됐습니다만, 이스라엘의 오만한 행위는 지금도 유엔에서 ‘친 이스라엘’ 일부 국가들과 ‘친 팔레스타인’ 다수 국가들 사이의 갈등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차베스 “유황불 냄새가 난다”
2006년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유엔 총회 단상에 올랐습니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일 때였지요.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향한 차베스의 독설은 지금도 회자됩니다. 부시가 총회에서 연설한 바로 다음날이었습니다.
차베스는 “어제 여기 악마가 왔다. 오늘까지도 내 앞의 테이블에서는 (지옥의) 유황불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십자가 성호를 긋고,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았습니다. 잠시 뒤 차베스는 다시 부시를 공격합니다. “어제, 신사숙녀 여러분, 이 연단에, 내가 악마라고 부르는 미국 대통령이 와서 마치 세상이 자기 것인 듯이 얘기했습니다.”
차베스는 이 연설을 하면서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 노엄 촘스키의 책 <패권인가 생존인가>를 들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미 제국은 자신들의 지배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놔둘 수는 없습니다. 세계 독재가 강화되도록 둘 수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차베스는 2013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대를 풍미했던 인물이었죠. 이단아에서부터 영웅까지,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합니다만, 그가 가고 난 뒤 세계무대에서 ‘독설가’가 사라진 것은 분명합니다.
아마디네자드 연설 ‘보이콧’ 소동
차베스와 함께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반미 대통령’으로는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를 꼽을 수 있습니다. 2013년 퇴임하기까지 8년간 연임을 했지요. 아마디네자드가 유엔 총회 연설에서 여러 나라를 격앙되게 만든 적은 여러 번입니다만, 대표적인 게 2011년의 연설입니다.
아마디네자드는 미국을 “제국”이라고 불렀고, 미국과 유럽이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60년 동안 이스라엘 감싸기에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외교관들은 아마디네자드가 연설할 차례가 되자 ‘보이콧’하고 총회장을 나가버렸습니다.
아마디네자드는 홀로코스트 자체가 과장 혹은 조작됐다고 주장하고,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려야 한다”는 말도 한 적 있습니다. 미국에서 연설하면서 “이란을 이 나라같이 동성애자들이 들끓는 나라로 만들 수 없다”면서 성적 소수자들을 차별하기도 했고요.
2009년 유엔 총회 연설에서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비난했고, 그 전 해에는 “아메리카 제국은 종말에 가까이 와 있으며 이스라엘은 붕괴할 것이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올해 총회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각국 정상들이 대거 참석합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옵니다. 집권 2기 때인 2005년을 마지막으로 유엔 총회에 나오지 않았던 푸틴의 ‘10년 만의 외출’입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2013년 취임 후 처음으로 유엔 무대에 섭니다. 핵 협상을 마무리한 이란의 개혁파 하산 로하니 대통령도 연설합니다.
그러나 어떤 정상들보다도, 평화와 화해와 인도주의를 설파할 프란치스코 교황의 목소리에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릴 것 같습니다. 교황은 지난 15년 동안 유엔이 세계의 목표로 선정했던 ‘새천년개발목표(MDGs)’의 후속탄이 될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채택하기 위한 회의의 개막을 앞두고, 25일 오프닝 연설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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