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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뉴욕증시 4시간 마비... 컴퓨터화된 금융시장의 취약성 드러내

딸기21 2015. 7. 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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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일까, 누군가의 공격일까. 미국에서 항공사와 언론사와 주식시장의 컴퓨터시스템이 동시다발 마비되는 일이 벌어졌다. 해킹 가능성은 낮다지만 당국은 사태를 주시하며 조사 중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고도로 컴퓨터화된 비즈니스가 작은 사고에도 매우 취약할 수 있음을 다시한번 보여준 사건이었다.

 

8일(현지시간) 오전 11시30분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컴퓨터시스템에 이상이 생겨 거래가 4시간 가까이 중단됐다. 이 시간 동안의 거래주문은 모두 무효가 됐고,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비슷한 시간에 유나이티드항공 시스템에서도 이상이 발견돼 전세계로 이어지는 항공편 4900편의 운항이 지연되는 등 영향을 받았다.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의 홈페이지도 다운돼 에러메시지가 뜨다가 복구됐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뉴욕증시 측은 사고가 벌어진 원인을 조사하고 있으며 현재로선 “(해킹 같은) 악의적 공격이 벌어졌다는 징후는 없다”고 밝혔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뉴욕증시 사건을 보고받았다고 전했다. 연방수사국(FBI)은 “상황을 주시하고 있지만 추가 수사를 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본다”는 성명을 냈다. 일단 해킹 같은 범죄가 아닌 ‘기술적인 문제’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3곳에서 거의 동시에 ‘사이버 정전’이 일어난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뉴욕증시의 경우 이전에도 시스템 사고가 난 적은 있지만 전면 마비된 것은 처음이다. 일부 언론들은 국제 해커조직인 ‘어나니머스’가 전날 “월스트리트에 내일은 나쁜 날이 될지 모르겠다”는 트위터 글을 올렸다며 해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사고 경위는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겠지만, 클릭 한 번에 수억 달러가 오가는 금융시장의 ‘구조적인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사고는 처음이 아니다. 세계최대 선물시장인 시카고상업거래소에서 지난해 8월 소프트웨어 이상으로 4시간 동안 거래가 중단됐고, 그 전 해에는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거래소가 3시간 넘게 마비됐다. 뉴욕증시에서도 2012년 11월 US스틸 등 216개 기업의 거래가 중단된 적 있다. 지난해에도 뉴욕증시에서 IEG라는 한 회사의 옵션거래에서 컴퓨터 오작동이 일어나 2만건의 거래가 줄줄이 취소됐다.


New York Stock Exchange


2012년 5월 소셜미디어 업계의 공룡 페이스북이 기업공개(IPO)를 하면서 나스닥에 데뷔하자 투자자들의 어마어마한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당일 기술적인 실수로 거래가 20분 지연됐고 나스닥은 이로 인해 1000만 달러의 벌금을 냈다. 2010년에는 오사카 시장과 연결된 도이체방크 일본 선물거래부문 전산망이 고장났다. 2007년에는 크레디스위스 전산망에 수십만건의 에러메시지가 떴다. 일본에서는 2006년 1월 라이브도어라는 기업의 회계부정 스캔들로 도쿄증시에 매도 주문이 몰리면서 전산망 과부하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증시 전체 거래가 중단되면서 시스템 문제가 드러났다.

 

실수로 매입·매도 주문을 잘못 내 거액을 잃는 일명 ‘팻 핑거(Fat-finger)’ 사고도 적지 않다. 2006년 일본 미즈노증권은 클릭 실수로 400억엔을 날렸다. 지난해에도 일본에서 증권브로커가 무려 6170억달러 어치의 주식 매입 버튼을 잘못 눌렀다가 취소해 소동이 벌어졌다. 이런 사고로 기업이 망하기도 한다. 2012년 8월 미국 투자회사 나이트캐피탈이 매입주문을 잘못 넣어 4억6100만달러의 손실을 봤다. 그 여파로 이 회사는 위기를 맞았고 라이벌인 겟코에 인수됐다. 50년 가까이 뉴욕증시에서 거래해온 거래중개인 테드 와이즈버그는 워싱턴포스트에 “사고는 처음이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모두가 컴퓨터에 의존하고 있고, 컴퓨터는 고장이 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뉴욕증시는 전면 마비됐지만 나스닥을 비롯한 다른 시장들은 정상적으로 운용됐다. 뉴욕타임스는 사고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대체거래시장의 활성화를 꼽았다. 10년전만 해도 미국 주식거래량의 80%가 뉴욕증시와 나스닥에서 움직였으나 지금은 뉴욕증시 25%, 또 다른 거래소인 BATS 20%, 나스닥 19% 등으로 다양화됐다. 기관투자자들이 증시 개장 전 매입·매도주문을 내고 거래 종료 뒤 결산하는 익명시장, 이른바 ‘다크풀’ 거래도 최근 크게 늘어 전체 미국 내 주식거래량의 40%에 이른다. 하지만 증시가 세분화되고 다양해지는 게 사고를 막을 대안이 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거래와 극초단타매매를 부추겨 시장이 오히려 더욱 복잡해지고 연동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