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의사당 앞에 20만명이 모여 3일(현지시간) 행진을 했다. 1970~80년대 독재정권의 ‘추악한 전쟁’에 항의하는 ‘5월 광장 어머니회’의 시위가 벌어졌던 플라사데마요를 비롯한 곳곳의 광장들이 여성들로 가득 찼다. 이들이 이날 한 목소리로 규탄한 상대는 독재정권이 아닌 ‘남성들의 폭력’과 이에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뿐 아니라 전국 80개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니우나메노스(Ni Una Menos·한 명도 적지 않다)’를 외치며 시위의 중심에 선 것은 남편이나 파트너에게 목숨을 잃은 여성들의 가족이었으며, 몸의 일부가 마비됐거나 시각장애인이 된 폭력 피해 생존 여성들도 합류했다. 여성단체들은 물론이고 노동조합과 주요 정당들, 가톨릭 교회도 행진에 동참했다. 칠레와 우루과이에서도 연대 집회가 열렸다고 부에노스아이레스헤럴드는 전했다.
하지만 여성 살해는 끊이지 않는다. 아르헨티나에서는 7년 새 1808명의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잔혹하게 살해됐다. 지난해에만 277명의 여성들이 희생됐다. 31시간마다 1명씩 여성이 희생되고 있는 셈이다. 범인은 주로 남편이나 남자친구, 혹은 가족·친척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남성이라는 이유로 살해하는 것을 ‘젠더사이드(gendercide)’라 부른다. 분쟁 지역에서 남성들을 골라 살해하는 일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의 젠더사이드는 여성살해 즉 페미사이드(femicide)다. 아르헨티나 여성들은 잇단 폭력·살해를 페미사이드로 규정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도 이날 시위를 응원하며 “반 페미니즘의 황폐한 문화”를 비난했지만, 정부 대책이 여전히 미흡하다고 시위대는 주장했다.
시위를 조직한 여성단체들은 각급 교육기관에서의 통합적인 양성평등·성교육, 피해자에 대한 법률적 구제를 보장할 것,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생활고 때문에 저항하지 못하는 여성들에 대한 지원 등을 요구했다. 남미 위성방송 텔레수르는 콜롬비아, 에콰도르, 볼리비아, 브라질의 경우 페미사이드를 형법 상 특수범죄로 규정해 강력 처벌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르헨티나 여성들의 호소는 세계로 퍼지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있는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도 페이스북에 ‘#NiUnaMenos’라는 해시태그(주제어)를 붙이고 “페미사이드는 더이상 안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우리도 오늘 모든 아르헨티나 사람들과 함께 큰 소리로 니 우나 메노스를 외친다”는 글을 올렸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는 같은 해시태그를 붙인 글과 사진들이 세계 곳곳에서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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