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뢰플러는 미국 텍사스주 출신으로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고, 2008년에는 존 매케인 대선후보의 선거자문과 모금활동을 맡았습니다. 뢰플러는 15일 대권 도전을 선언한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선거캠페인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기구를 이끌고 있습니다.
조제 빌라레알은 기업 컨설턴트입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시절인 2010년에는 중국 상하이 세계엑스포 미국측 커미셔너로 일했고(빌라레알이 공식 페이지에 올린 소개글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지금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겠다고 나선 클린턴을 위해 ‘미국을 위한 힐러리’라는 이름의 모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워싱턴의 법률회사 겸 로비업체 에이킨검프에 소속돼 있다는 것입니다. 부시가 출마선언을 함으로써 내년 미국 대선은 두달 전 출마 의사를 밝힌 클린턴과의 ‘양강 구도’로 가고 있지요. 대선까지 17개월이 남았지만 벌써부터 부시 대 클린턴 가문의 재대결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 이면에서는 치열한 모금경쟁이 이미 시작됐습니다. 사상 최대의 선거자금이 동원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선을 앞두고 모금의 첨병으로 나선 것이 저들이 일하는 에이킨검프입니다.
Hillary Clinton is joined by Bill Clinton, Chelsea Clinton and Marc Mezvinsky at a campaign rally in New York City. (Photo: Reuters/Lucas Jackson)
이 업체의 ‘활약’은 ‘K스트리트’라 불리는 정치컨설팅·로비업체들의 모금 전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K스트리트’는 로비업체들이 몰려 있는 워싱턴의 거리 이름에서 따온 것이죠.
워싱턴포스트는 15일 부시의 출마선언 뒤 부시와 K스트리트의 밀착관계를 분석하면서 유명 컨설턴트들과 로비스트들이 부시 곁에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부시 가문과 오랜 세월 결합해온 이들이 많습니다. 뢰플러는 1988년 젭의 아버지인 조지 HW부시의 대선 캠페인 때부터 함께 했다고 하고요. 뢰플러와 마찬가지로 에이킨검프 소속인 빌 팩슨도 젭 부시를 위해 뛰고 있습니다. 그 역시 뉴욕주 공화당 하원의원을 지내고 로비스트로 변신한 인물입니다. 어디서든 회전문 인사...
하지만 이런 업체들은 한 후보만 밀어주는 게 아닙니다. 지난달 말 의회전문지 더힐은 “K스트리트 최대 로비회사인 에이킨검프가 클린턴 캠프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회사에서 클린턴 지원에 재선 핵심인물이 빌라레알입니다.
이 회사는 22곳에 사무실을 두고 있고, 그 중 8곳은 해외에 있습니다. 이 업체의 워싱턴 사무실에만 힐러리를 위해 뛰는 ‘힐스타터(힐러리 지지운동가)’가 여러 명입니다. 연방 하원의장을 지낸 낸시 펠로시의 선임보좌관을 했던 버논 조단, 민주당 외곽조직을 이끌어온 앨 프롬 등이 에이킨검프 소속 힐스타터입니다.
클린턴뿐 아니라 민주당 대선후보 출마 의사를 밝힌 버니 샌더스와 마틴 오말리도 에이킨검프 로비스트들을 활용하고 있다고 더힐은 전했습니다.
Former Florida Gov. Jeb Bush waves as he takes the stage as he formally announced he is joining the race for president with a speech, June 15, 2015, at Miami Dade College in Miami. David Goldman/AP Photo
이런 모금책들이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연방선거운동법(FECA)에 따라 개인들의 정치자금 기부한도가 정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제한을 벗어날 ‘합법적인’ 경로가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돈선거’ 비난여론이 일면서 정치자금 모금에 제한을 두기 위한 개혁이 2000년대 들어서면 몇 차례나 이뤄졌으나 여전히 빈틈은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팩(PAC)’이라 불리는 정치활동위원회입니다. 시민 개인이나 단체가 특정 후보와 선거캠프에 기부할 수 있는 돈은 소액으로 제한돼 있으나, 후보 본인과 캠프가 아닌 ‘독립적인 선거운동기구’에는 얼마든지 낼 수 있습니다.
미 연방법에 따라 활동을 보장받는 정치활동위원회(PAC·팩)
- 팩: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반대, 혹은 주민투표와 입법 등을 위해 시민들이 구성하는 위원회. 특정 캠프에 대한 개인 기부 한도를 적용받지 않고 무제한 모금 가능
- 연합팩: 후보자에 대한 직접 기부가 금지된 노조 등의 단체들이 별도분리기금(SSF)을 구성해 만드는 위원회
- 리더십팩: 연방법에 따라 직접 기부한도가 제한돼 있는 선출직 관리들과 정당 등은 독립적인 리더십팩을 만들어 제한없이 모금 가능
- 수퍼팩: 특정 캠프나 후보자·정당에 소액 기부를 할 수 있는 일반 팩들과 달리, 캠프·후보자들과 완전히 독립돼 운영되면서 주로 거액기부자들을 통해 모금
그래서 각 후보 진영은 에이킨검프같은 업체와 모금원들을 동원해 캠프와 별도로 운영되는 팩을 만듭니다. 물론 팩들이 모두 특정 정당이나 후보 측에서 만든 것은 아닙니다만... 팩은 모금한 돈을 특정 후보측에 건네줄 수는 없지만 자체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캠페인을 할 수 있습니다.
기부금을 낸 개인과 단체들을 모아 한데 묶는 모금원들은 ‘번들러’라고 부릅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번들러들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몇년 새에는 기업가들이나 자산가들로부터 거액을 끌어모으는 대규모 모금기구, 이른바 ‘수퍼팩’들이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 오픈시크리츠에 따르면 지난달 현재 미 전역에 1360개의 수퍼팩이 있습니다. 내년 대선을 위해 ‘레디포힐러리클린턴’ 등 여러 수퍼팩들이 클린턴을 위한 모금에 나섰습니다. 부시 쪽에서는 ‘라잇투라이즈’ 등 활동하고 있습니다. 에이킨검프의 로비스트들은 이런 수퍼팩들에 결합해 모금을 합니다.
모금책을 낀 수퍼팩 활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CNN방송은 클린턴이 수퍼팩을 활용하는 것을 놓고 민주당 내 진보파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물론 클린턴이 수퍼팩과 관계를 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지만~" 이라는 말을 덧붙였네요. 워싱턴포스트는 “젭 부시는 로비에 좌우되는 정계를 비판하지만 정작 선거캠페인에서는 로비스트들에 의존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공공통합센터 등 시민단체들은 내년 미 대선 선거자금 규모가 최소 40억달러에 이를 것이며, 역대 최악의 돈 선거가 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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