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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깊이보기]‘마약왕 구스만 탈옥’, 궁지에 몰린 멕시코 대통령

딸기21 2015. 7. 13.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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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왕’ 호아킨 엘 차포 구스만의 탈옥으로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이 궁지에 몰렸다. 지난해 대학생 집단 납치·피살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페냐 니에토 정부는 또다시 갱들에게 발목을 잡히는 신세가 됐다.

 

AP통신은 프랑스를 국빈 방문 중인 페냐 니에토 대통령이 구스만 탈옥 때문에 곤혹스런 처지가 됐다고 13일 보도했다. 프랑스 정부는 14일 혁명 기념일인 ‘바스티유의 날’를 앞두고 페냐 니에토 대통령을 초청했다. 페냐 니에토는 13일 파리 시내 라틴아메리카문화센터에서 기념메달을 받았으며, 이튿날에는 바스티유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 프랑스 정부측 인사들과의 포럼에 참석할 예정이다.


프랑스를 방문 중인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이 13일 파리 시내에서 열린 프랑스-멕시코 과학연구포럼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AP


하지만 구스만 탈옥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페냐 니에토의 일정은 빛이 바랬다. 설상가상으로 파리에서 그의 권위주의적인 행태와 부패를 비난하는 시위까지 열릴 예정이다.

 

구스만은 11일 멕시코시티에서 서쪽으로 약 90㎞ 떨어진 곳에 있는 알티플라노 감옥에서 탈출했다. 구스만이 사라진 뒤, 마지막으로 감시 카메라에 잡혔던 교도소 내 샤워실에서는 환기구와 계단까지 갖춘 1.5㎞ 길이의 도주용 터널이 발견됐다. 터널 안에는 파낸 흙더미를 제거하기 위한 여러 종류의 연장과 설비들도 발견됐다.

 

남미 콜롬비아에서 미국 남부까지 마약을 유통시키는 거대 갱조직인 ‘시날로아 카르텔’의 두목이었던 구스만은 1993년 붙잡혀 징역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2001년 교도소 경비원들을 매수해 세탁물 운반차를 타고 탈옥했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지난해 멕시코 경찰은 그를 다시 체포했다. 미국은 ‘엘 차포(땅딸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구스만을 계속 추적해왔다. 

 

미국은 지난해 체포된 구스만을 인도하라고 요구했으나 멕시코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구스만이 또다시 탈옥을 감행함으로써, 멕시코 정부는 체면을 구겼다. 이번에 발견된 도주용 땅굴은 “두 번째 탈옥은 불가능하다”던 멕시코 측의 호언장담과 달리 교도소 경비가 허술했음을 드러냈다. 특히 발견된 땅굴은 교도소 안팎에서 구스만에게 매수돼 탈옥을 도운 사람들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멕시코 검찰이 12일 공개한 ‘마약왕’ 엘 차포 구스만의 탈옥 현장. 멕시코시티 서쪽에 있는 알티플라노 감옥의 샤워실에서부터 1.5km에 이르는 도주용 땅굴이 발견됐다. AFP


미국 사법당국은 구스만의 재탈옥 뒤 일단 신중한 입장을 보였으나, 멕시코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로레타 린치 미국 법무장관은 12일 “수색에 협력할 것”이라고만 밝혔으나, 과거 구스만 체포에 관여했던 마약단속국 전 국장 피터 벤싱어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마약조직의 두목이 탈옥했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라며 구스만을 미국 감옥에 가뒀어야 했다고 말했다. 

 

페냐 니에토 정부는 미국의 불신을 자초하게 된 것뿐 아니라, 자국 내에서도 범죄조직 소탕에 무능하다는 비난을 듣게 됐다. 지난해 9월 멕시코 남부 이괄라 부근에서 교육대학 학생 43명이 부패한 시장과 그 측근들의 사주를 받은 범죄조직에 납치된 뒤 모두 시신으로 발견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멕시코 전역에서 치안 불안과 부패에 항의하는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났다. 페냐 니에토는 피해 학생 가족들과 만나 범죄에 강력 대처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비난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그나마 페냐 니에토 정부가 내세워왔던 것은 거물급 마약조직 두목들을 체포한 것이었다. 2012년말 취임한 페냐 니에토는 집권 이듬해인 2013년 7월 미국과 멕시코가 몇 년간 추적해온 악명 높은 마약조직 로스 세타스 카르텔을 이끌던 미겔 트레비뇨 모랄레스를 검거했다. 이어 구스만을 다시 체포함으로써 마약조직과의 전쟁에 큰 성과를 거두는 듯했다.

 

그런데 구스만이 다시 도망침으로써 이런 성과는 퇴색될 수밖에 없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마약왕의 두 번째 탈옥 사건이 페냐 니에토 정부에 큰 타격을 입힐 것으로 내다봤다. 당국과 마약조직 간 부패의 연결고리가 다시 부각될 것이고, 페냐 니에토가 누누이 공언해온 ‘구조적인 개혁’이 허울뿐임이 드러나게 됐다는 것이다.



멕시코에는 시날로아, 로스 세타스, 미초아카나 등 ‘카르텔’로 불리는 마약조직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멕시코는 전임 펠리페 칼데론 정부 시절인 2007년부터 마약조직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으나 이에 반발한 마약조직들의 보복전과 마약조직들 간 세력다툼이 계속되면서 오히려 전국이 극도의 치안불안에 빠졌다. 2007년 이후 멕시코 전역에서 7만명 이상이 마약조직과 관련돼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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