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메리카vs아메리카

차별, 폭력, 폭동...상처가 아무는데 반세기가 걸렸다

딸기21 2015. 8. 11. 15:56
728x90

존 크로포드는 22세의 흑인 남성이었다. 지난해 8월 5일,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튼의 월마트에서 아내, 두 아들과 함께 장을 보던 그는 장난감 총을 잠시 집어들었다가 경찰에 사살됐다. 경찰은 크로포드가 쇼핑객들에게 총을 겨눈 줄 알고 쏘았다고 했다. 그런데 현장 모니터를 확인해보니 그는 아무에게도 총을 겨누지 않았고,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타미르 라이스도 지난해 11월 22일 장난감 총을 가지고 놀다가 역시 경찰에게 사살됐다. 라이스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살았고,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을 당시 겨우 12세의 소년이었다.

장난감 총을 들었다가 ‘흑인 범죄자’로 오인받아 경찰에 사살당하는 사람들. 미국에서 이렇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흑인 청년의 죽음으로 대규모 시위와 소요가 일어난지 지난 9일로 1년이 됐지만, 여전히 퍼거슨은 암흑이다. 다시 시위와 총격전이 벌어졌고, 10일 퍼거슨에는 1년만에 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여러 인종이 섞여 살고, 그 중 어느 한 쪽은 가난하다. 범죄와 폭력이 판치고, 경찰은 ‘치안’을 내세워 수시로 총을 쏜다. 이 과정에서 ‘가난한 인종’의 청년들이 죽어나간다. 갈등이 풀리고 믿음이 쌓이기까지는 세월이 얼마나 흘러야 할까.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10일 주민들이 지난해 8월 9일 백인 경찰에 사살된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을 추모하며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격렬한 시위 끝에 총격전이 벌어졌으며 당국은 퍼거슨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퍼거슨/EPA연합뉴스


뉴욕타임스가 반세기 전 인종폭동을 겪었던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남부의 와츠라는 지역을 소개했다. 1965년 8월 11일 와츠에서는 음주운전에 걸린 흑인 청년을 체포하려던 백인 경찰관과 흑인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흑인 폭동이 일어나 엿새 동안 34명이 숨졌다. 부상자는 1000명이 넘었다. 

그 후 50년, 와츠는 힘겨운 노력 속에 갈등을 줄이고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이 곳에서는 아이들이 장난감 총을 들었다고 해서 경찰이 와서 위협하는 일은 없다. 인종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추진해왔고, 지역공동체를 이끄는 이들과 경찰의 협력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와츠의 지역공동체 지도자인 도니 주버트는 젊었을 때 갱조직의 리더였다. 하지만 이제는 평화의 중재자이자 존경받는 멘토가 됐고, 경찰들과 지역공동체 간의 관계는 어느 때보다도 좋다. 매년 여름 와츠는 공공주택단지에 10대들을 모아놓고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와츠 갱 태스크포스(TF)’라는 걸 만들어서 10년 넘게 경찰과 협력하며 범죄와 싸우고 치안유지에 힘써 왔다. 



시 주택국은 열악한 흑인 밀집지역의 주거환경을 고치기 위해 지난 몇년 새 1000만달러 이상을 투입했다. 경찰은 공동주택단지마다 경찰관 10명과 팀장 1명을 배치했다. 이 경찰관들은 패트롤카 대신 걸어서 순찰을 한다. 또 대부분 5년 기한을 정해 근무하기 때문에 주민들과 친숙하다. 경찰과 주민들이 함께 하는 축구리그도 여럿 있다. 노력은 성과로 이어졌다. 50년 전 와츠에서는 해마다 수백건씩 살인 범죄가 일어났으나 지금은 연간 10여건으로 줄었다. 


지난해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흑인 소년 마이클 브라운의 1주기를 하루 앞둔 8일 그의 아버지(가운데)가 추도행사에 참가해 행진하고 있다. 제닝스 _ AP연합뉴스


그럼에도 이 곳이 여전히 ‘유토피아’는 아니며, 갈등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부모 세대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젊은이들도 여전히 가난하다. 주버트를 비롯한 지역 지도자들은 경찰과 신뢰를 쌓아왔으나 10대들은 경찰을 불신의 눈으로 바라본다. 젊은이들은 “우리는 모든 것과 싸워야 한다, 모두가 우리에게 적대적이다”라고 말한다. 흑인이 다수이던 인구는 라틴계가 70%를 차지하는 구조로 바뀌었고, 이것이 흑인 주민들과 라틴계 사이의 새로운 갈등을 만들기도 한다.


퍼거슨을 비롯, 미국 곳곳에서 들려오는 인종 갈등과 살해와 폭동의 소식들은 와츠 사람들을 한층 불안하게 만든다. 지난해 8월 11일 LA 경찰관 2명이 이젤 포드라는 25세 청년을 사살했다. 포드는 정신질환자였고 무장하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경찰이 총을 쐈다고 유족들은 주장했다. 실제로 조사해보니 포드는 총탄 3발을 맞았는데 그 중 1발은 등 뒤에서 쏜 것이었다. 포드가 살해된 곳은 와츠와 이웃해 있는 곳이며, 공교롭게도 그가 숨진 날은 와츠 폭동 기념일이었다. 



와츠에서 자랐고 지금은 지역안전파트너십이라는 프로그램에 고용돼 주택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일하는 에마다 팅기리데스는 “하루도 이 나라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경찰이 (흑인을 향한) 총격에 대해 주민들과 이야기하지 않는 날이 없다”고 말했다.


50년 동안 화합을 위해 애써온 와츠조차도 일순간 퍼거슨처럼 갈등이 폭발하는 위험지대가 될 수 있을까. 와츠는 인종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리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