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남중국해 '모래장성', 고민하는 미국

딸기21 2015. 6. 2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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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남중국해의 산호초에 군사기지를 만들었다는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남중국해는 걸프 석유가 아시아로 가는 통로이자 세계의 핵심적인 무역로 중 하나다. 중국이 이 지역에서 군사력을 확대하고 나서면서 미국이 고민에 빠졌다. 단순한 산호초 문제가 아니라, 미국은 “중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놓고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길이 3000미터, 폭 200~300미터의 모래섬인 피어리크로스. 중국 등 6개국이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스프래틀리 제도(난사군도)의 이 작은 모래섬에 중국은 군사기지를 만들었다. 미국 전략국제연구소(CSIA)가 지난 4월 공개한 피어리크로스 중국 군사시설의 위성사진이다. 사진 CSIS 웹사이트


지난 4월 워싱턴의 싱크탱크 전략국제연구소(CSIS)는 남중국해에 중국이 만든 인공구조물의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해리 해리스 미군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구조물이 미국의 국방·외교전략에 가져올 타격을 표현하며 ‘모래장성(Great wall of sand)’이라 불렀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지난해부터 인공구조물을 착착 만들어왔다. 이를 찍은 위성사진들이 지난해 3월 30일, 8월 7일, 올 1월 30일, 그리고 지난 4월 차례로 공개됐다. 일련의 사진들을 통해 드러난 것은 중국 군함과 수송선들이 정박할 수 있는 일종의 항구이지 기지다. 


모래장성과 ‘양배추 전략’

 

이 시설이 있는 곳은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군도)의 게이븐환초 부근에 있는 피어리크로스라는 아주 작은 모래섬이다. 문제는 이 일대가 중국을 비롯해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대만, 브루나이 6개국의 영토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이라는 점이다. 필리핀은 호주와 함께 지난 4월 미국과 합동군사훈련을 했고, 6월 말 또다시 미국과 남중국해 군사훈련에 나섰다. 베트남도 중국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21일 남중국해 중국 군사기지가 미·중 관계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의 야심찬 외교정책에 따른 경고음 정도가 아니라, 점증해가는 중국의 영향력을 어떻게 다룰지 미국은 확신이 없으며 이로 인해 두려움이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아시아 담당 보좌관을 지냈고 지금은 맨스필드재단 대표로 있는 프랭크 자누지는 “(리처드 닉슨 이후) 35년간 5개 행정부에 걸쳐 이어져오던 중국에 대한 컨센서스가 흔들리고 있다. 미·중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확신을 잃고 있다”며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US-China: Shifting sands /파이낸셜타임스


미국 쪽에서 본 중국의 남중국해 공세는 일종의 ‘양배추 전략’이다. 모래섬에 시설물을 조금씩 늘리는 식으로, 양배추 껍질을 벗기듯 영역을 넓히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악관 아시아 담당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CSIS의 마이클 그린 연구원은 “그들은 한번에 한 잎씩 양배추 껍질을 벗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우파 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플란은 글로브&메일 인터뷰에서 최근 “중국에 있어서 남중국해는 미국에 카리브해가 갖는 위치와 같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19~20세기 카리브해를 손에 넣고 대국이 됐듯, 중국에게 남중국해는 말라카 해협과 인도양, 태평양을 넘어 나아가는 관문이라는 것이다. 

 

아직까지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의 대중국 전략에서는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오바마 정부는 여전히 중국을 협력 파트너로 여기며, 대결보다는 협력을 늘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외교 전문가들과 싱크탱크들 사이에서는 “이제는 대중국 플랜B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미국은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계획을 좌절시키고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전술을 펼쳤다가 오히려 홀로 따돌림당하는 쓰디쓴 패배를 겪었다. 이 일은 미국의 대중국 전략이 마비상태임을 보여줬다.

 


미국의 대중국 플랜B는 크게 3가지가 거론된다. 펜타곤 매파는 오바마 정부에 ‘강력한 대응’을 요구한다. 오랫동안 중국의 군사적 확장에 촉각을 곤두세워온 펜타곤은 남중국해 시설을 경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산호초 모래둔덕을 항구로 만들면서 중국이 모래장성을 만들고 있다는 해리스 사령관의 발언은 이런 인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중국은 2013년 동중국해에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고, 1년 만인 지난해 남중국해 기지를 짓기 시작했다. 특히 시 주석 취임 이후 중국의 팽창 정책은 노골적이다. 


미국의 대중국 ‘플랜B’는?

 

국방부를 넘어 미국 외교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강경대응론이 지지를 얻고 있다. 키신저와 일했던 로버트 블랙윌 외교관계협의회 회장 등은 지난 4월 ‘중국을 향한 미국의 대전략 개편’(Revising U.S. Grand Strategy Toward China)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미국이 중국보다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냉전 때 소련에 적용했던 군사적·경제적 ‘봉쇄 전략’의 일부 항목들을 다시 거론한 점이다. 중국으로의 기술 이전을 더욱 엄격히 제한하고, 아시아 무역체제에서 중국을 더욱 교묘하게 배제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하지만 중국 측의 무역 보복을 부를 수 있다는 함정이 있다. 무엇보다 오바마 정부는 중국과의 또 다른 ‘신냉전’을 원치 않는다.



두번째 노선은 여전히 미국의 군사력이 압도적임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스테이터스쿠오(현상유지)’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마이클 스웨인은 잠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한 아시아에서의 ‘지정학적 바겐(교환)’을 제안한다. 만일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 간 충돌이 벌어진다면 그 지점은 대만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만 문제를 놓고 뇌관을 미리 제거함으로써 지정학적 불안을 관리하자는 것이 이런 주장의 요체다. 



미국은 대만에 무기 파는 걸 줄이고, 중국은 대만에 대한 위협을 중단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거래의 근본은 상호 신뢰다. 워싱턴-베이징 간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는 공염불일 뿐이다. 미국 일각에서는 이런 시도 자체가 “미국이 약해졌다”는 메시지를 중국에 전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반대한다.

 

세번째 그룹은 미국과 중국이 ‘조금씩 조금씩(inch by inch)’ 신뢰구축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이 몇년 새 거칠어지긴 했지만 이란 핵, 기후변화 등등 여전히 두 강국간 협력할 이슈는 많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국무부 차관을 지낸 로버트 죌릭은 “안보 문제나 사이버 분쟁에선 강력 대응해야 하지만 여전히 중국과 함께 할 일이 많다. 중국이 세계무대에서 역할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점을 미국이 적극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의 AIIB에 화들짝 놀랐지만,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금융체제의 개혁은 미국도 오래 전부터 바라왔던 것이다. 죌릭은 이런 이슈에서 미국이 중국을 지렛대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몇몇 전문가들은 미국 주도 세계체제 속에서 중국의 도전이 때로는 ‘지나칠’ 때도 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중국이 세계의 안정을 위해 나름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오는 9월 취임 이후 첫 미국 ‘국빈방문’을 한다. 그 때까지 미국은 어떤 새로운 대중국 전략을 짜낼지가 세계의 관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