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13일로 즉위한 지 만 2년이 된다. 지난 2년 동안 교황은 로마가톨릭이라는 특정 종교의 수장을 넘어 세계의 가난한 이들, 상처받은 이들을 보듬고 난민·빈곤문제와 빈부격차, 동성애자 차별 등 여러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며 ‘세계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교황의 지난 2년을 되돌아본다.
▲2013년 3월 11일 교황 프란치스코 즉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추기경단 비공개 회의인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임됐다. 현대 들어 처음으로 유럽 이외의 대륙에서 탄생한 새 교황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따 즉위명을 ‘프란치스코’로 선택했다. 교황은 콘클라베에 앞서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자신이 교황이 되더라도 “로마에 축하하러 오는 대신 그 돈으로 가난한 이들을 도우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 7월 8일 이탈리아 ‘난민섬’ 람페두사 방문
교황은 즉위 뒤 로마 밖으로 나가는 첫 외출의 행선지로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과 아프리카 대륙 사이에 있는 지중해의 람페두사 섬을 택했다. 이 섬은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려는 난민들이 수용되는 곳이다. 바티칸 외부 첫 공식 방문지로 람페두사를 택함으로써, 교황은 난민문제에 대한 유럽과 세계의 관심을 촉구했다.
이탈리아 람페두사섬을 방문한 교황이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건너온 난민들과 만나고 있다. 사진 유엔난민기구(UNHCR)
▲2013년 7월 22~29일 브라질 방문
교황은 가톨릭 세계청년대회 참석차 브라질을 방문했으며 안전 우려에도 불구하고 리우데자네이루의 슬럼가 등을 찾아 빈민들을 만났다. 남미 출신의 첫 교황의 남미 국가 방문에 전 대륙이 열광했다. 마지막 일정으로 28일 열린 코파카바나 해변 미사에는 약 300만명이 운집했으며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과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등 남미 정상들도 참석했다. 교황은 신자들에게 “사회의 주변인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저녁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27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코파카바나 해변에 도착, 기다리고 있던 신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AP연합뉴스
▲2013년 10월 4일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유적 방문
‘빈자들의 성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즉위명으로 택한 교황은 이탈리아 중부 아시시에 있는 성인 프란치스코의 유적을 방문했다. 교황은 프란치스코의 뜻을 기리는 가톨릭 구호기구 카리타스의 아시시 지부를 방문해 격려하고 카리타스의 부엌에스 빈민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2013년 10월 26일 바티칸 행사 연단에 올라온 꼬마
로마 성베드로광장에서 열린 ‘가족을 위한 주교협의회’ 주최 행사에서 교황이 연설하는데 연단에 빡빡머리 꼬마가 올라와 춤추고 노는 일이 벌어졌다. 교황청 신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교황이 춤추고 장난치는 꼬마를 옆에 두고 설교를 계속하는 모습과,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미국 최대 성적 소수자 잡지 ‘애드버케이트’는 그 해의 인물로 교황 프란치스코를 선정하고 “동성애자인 사람이 선한 의지로 하느님을 찾는다면, 내가 어떻게 그를 판단(단죄)할 수 있겠는가”라는 교황의 발언과 사진을 표지에 실었다. 교황은 브라질 순방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동성애자들을 차별하지 말라며 이 같이 말한 바 있다.
교황은 2박 3일 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요르단을 방문했다. 특히 이스라엘 땅을 밟지 않고 비행기로 직접 팔레스타인을 찾아가 팔레스타인을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예수가 태어난 팔레스타인의 베들레헴을 방문한 뒤 의례적인 정찬 대신 빈민들과 시리아 난민들을 만나 식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치지도자들과 각 종교의 성직자들을 모아 함께 기도를 했다. 교황은 8일 저녁 바티칸 정원에서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합동기도회를 열었다. 이날 기도회에는 유대교·이슬람 성직자와 그리스 정교회 총대주교인 바르톨로뮤1세 등이 함께 했다. 기도회 뒤에는 교황과 이·팔 수반이 바티칸 정원에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나무를 심었다.
프란치스코는 아시아청년회의 참석과 한국 초기 가톨릭 순교자 시복식을 위해 닷새 동안 한국을 방문했다. 교황은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 중이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 슬픔을 위로했으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광화문에서 열린 순교자 124명의 시복식에는 80만명으로 추산되는 인파가 집결했다.
▲2014년 10월 5~19일 ‘가족의 가치’ 논의 마당 된 시노드
바티칸에서 가톨릭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가 2주 동안 열렸다. 이 회의는 추기경·대주교 등을 포함해, 최고위급 성직자들이 모여 가톨릭의 의제를 논의하는 자리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는 결혼과 이혼, 피임과 낙태, 동성애 등 가톨릭이 금기시해온 문제들을 공론에 부쳐졌다.
교황청 언론 ‘로세르바토레로 로마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에서 패럴림픽에 참가했던 두 팔 없는 여성 스포츠선수 시모나 앗초리와 만나는 모습을 4일자에 실었다.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제공
교황은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에서 일하던 때부터 슬럼가 미혼모들을 보살피기 위해 애썼고, “교리에 복종하라고만 할 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이 겪는 문제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혼모 자녀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을 거부한 사제들을 “현대의 위선자들”이라 비판한 적도 있다.
▲2014년 11월 28~30일 터키 방문
교황은 동방교회로 불리는 정교회 총대주교 바르톨로뮤의 초청을 받아들여 성안드레아 축일 기념축제 참석차 터키를 방문했다. 이스탄불의 술탄아흐메트 모스크(‘블루 모스크’)에서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 이슬람 종교지도자 라흐미 야란이 기도를 하는 동안 눈을 감고 고개 숙인 자세로 함께 서 있었다. 페데리코 롬바르디 바티칸 대변인은 이를 ‘침묵 경배의 순간’이라 표현하며 “다른 종교 간에 대화가 이뤄지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9일 이스탄불의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에서 경배를 올리고 있다. 이슬람 종교지도자 라흐미 야란은 이슬람 방식으로 손을 하늘로 향한 채 기도를 올렸다.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제공|EPA연합뉴스
이어 교황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갈등과 화해를 상징하는 아야 소피아를 방문했다.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의 아야 소피아는 6세기 비잔틴 제국 때 지어져 동방정교의 대성당으로 쓰이다 오스만 제국이 이스탄불을 정복한 1453년 이후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교황은 순방 마지막 날인 30일 동방정교회의 바르톨로메오 1세 총대주교와 함께 종교간 화합을 촉구하는 공동선언문을 냈다.
▲2014년 12월 2일 ‘현대판 노예들’에 관심 촉구
난민들을 보살피고 돕자고 촉구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의 ‘현대판 노예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촉구하고 나섰다. 영국 켄터베리 대주교, 그리스 정교회의 바로톨로메오 총대주교를 비롯해 유대교·이슬람·힌두교·불교 지도자들은 이날 바티칸에서 교황과 회동하고 ‘종교지도자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 성매매, 인체조직·장기밀매 같은 반인도적인 범죄에 맞섬으로써 현대판 노예제를 근절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황이 불교국가인 스리랑카와 아시아 최대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을 잇달아 방문했다. 일요일인 18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 리잘공원에서 교황이 집전한 미사에는 700만명이 몰리는 대기록이 세워졌다. 아기예수의 조각상을 들거나 금빛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민 사람들은 미사 현장을 축제 분위기로 만들었다. 이 미사의 전날 교황은 2013년 초대형 태풍 하이옌으로 피해를 입었던 타클로반에 방문해 피해자들을 위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마닐라 가톨릭대학에서 12세 고아 소녀 글리젤레 팔로마를 안아주고 있다. 마닐라/AP연합뉴스
▲2015년 3월 10일 “암살 위협? 내 생명은 신의 손에...”
교황은 아르헨티나 언론 라카르코바와의 인터뷰에서 “광신도들이 교황을 암살하려 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내 생명은 주님의 손에 있다”고 답했다. 교황이 필리핀을 방문한 직후 현지의 극단주의 무장단체 제마이슬라미야(JI)가 교황 암살 계획을 세웠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라크·시리아 극단세력 이슬람국가(IS)도 지난 달 “유럽을 정복하겠다”며 교황청이 있는 이탈리아를 거론한 적 있다. 교황은 이런 소문과 우려들에 대해 “나의 죽음이 신의 뜻이라면, 누군가 그런 일을 해야 한다면 너무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이라고 말했다.
3월 12일 경향신문 김용민의 그림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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